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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복(福)'은 어떠십니까? / 사순절 첫째주일 장 본 목사 2026-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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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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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복()은 어떠십니까?

 

사순절 첫째주일

20260222

 

요한복음 13:12-30

12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뒤에, 옷을 입으시고 식탁에 다시 앉으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알겠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님 또는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옳은 말이다. 내가 사실로 그러하다.

14 주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15 내가 너희에게 한 것과 같이, 너희도 이렇게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16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이 주인보다 높지 않으며, 보냄을 받은 사람이 보낸 사람보다 높지 않다.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그대로 하면, 복이 있다.

18 나는 너희 모두를 가리켜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택한 사람들을 안다. 그러나 내 빵을 먹는 자가 나를 배반하였다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다.

19 내가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는 것은, 그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하여금 내가 곧 나임을 믿게 하려는 것이다.

20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사람을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영접하는 사람이요, 나를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사람이다.”

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마음이 괴로우셔서, 환히 드러내어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 넘길 것이다.”

22 제자들은 예수께서,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몰라서, 서로 바라다보았다.

23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 곧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바로 예수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24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짓을 하여,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여쭈어 보라고 하였다.

25 그 제자가 예수의 가슴에 바싹 기대어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이 빵조각을 적셔서 주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리고 그 빵조각을 적셔서 시몬 가룟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27 그가 빵조각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 때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할 일을 어서 하여라.”

28 그러나 거기 앉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아무도, 예수께서 그에게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를 알지 못하였다.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자루를 맡고 있으므로, 예수께서 그에게 명절에 그 일행이 쓸 물건을 사라고 하셨거나, 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하였다.

30 유다는 그 빵조각을 받고 나서, 곧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

 

 

1. 은진교회 교우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교우 여러분에게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오늘은 사순절 성찬식이 있기에 세 본문 말씀 중, 복음서의 말씀으로 평소보다 조금 짧은 설교를 나눕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도 합하여 전해 드립니다.

 

세상에 복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면 복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복 받기 싫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 안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왜 복을 좋아할까요? 복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복 받기를 원하는 것일까요?

 

(). 한자로 풀어도 복 복 자입니다. 국어사전에서는 복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생활에서 누리게 되는 큰 행운과 오붓한 행복. 또는 거기에서 얻는 기쁨과 즐거움. ‘저 사람 복이 터졌어라고 말할 때 쓰이는 복입니다. 또 하나 뜻이 있어요.

 

(2): 어떤 대상으로 하여 만족과 기쁨이 많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앞집 할머니는 그래도 자식 복은 있는 사람이야.’ 자식 덕분에 만족과 기쁨을 얻는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복은 주로 좋은 의미로 많이 쓰입니다. 좋은 것이기에 많은 사람이 복 받기를 바라지요.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나 전이나 이 복을 비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 전통이 남아서였을까요? 믿는 사람들도 복 받기를 참 좋아합니다. 교회에서 모일 때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원합니다.’, ‘축복해 주세요.’ 등등, 많은 자리마다 복을 비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것이 있어요. 무엇을 간구하며, 무엇을 생각하며 복을 비는가 하는 겁니다. 안타까운 것은 믿는 사람들이 구하는 것들이 나의 삶에 관련되고 물질에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죠.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비는 복은 그 옛날 우리의 할머니와, 그들의 어머니, 또 그들의 할머니들이 새벽 동틀 무렵 정화수 한잔 바쳐놓고 빌던 그 기도의 제목과 같다. 다만 비는 대상이 달라져 있을 뿐이다라고요.

 

중요한 사실은 복은 나에게 이로운 것만이 복이 아니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이 그런 복,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순절 첫째주일, 복에 대한 말씀을 통해 진정한 하늘의 복에 가까이 함께 가는 신앙의 여정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 오늘 본문 17절을 함께 읽습니다.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그대로 하면, 복이 있다.

 

복이 나옵니다. 복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하면,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복일까요?

 

요한복음 131. 예수님께서는 이제 자신이 하나님께로 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십니다. 이에 제자들과 함께 저녁을 먹는 중, 일어나서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더니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시작합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내가 학생인데 담임 선생님께서 갑자기 물을 떠다가 여러분의 발을 씻긴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당황하겠죠. 선생님이 왜 그래?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드실 것입니다. 그런데요. 선생님께서 그런 당황스러운 행동을 다 마치시고 여러분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알겠느냐?”이 말에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 질문이 오늘 본문 12절입니다.

 

이 질문의 요지는 왜 내가 이런 행동을 했는지 너희는 아느냐고 묻는 거죠. 제자들의 마음을 상상해 본다면 그것은 아마 두 가지로 추측할 수 있을 듯합니다. 당황스러움과 죄책감요.

 

이유를 알 수 없는 당혹감. 예수님께서 왜 이러시지? 하는 당혹감이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왠지 모르게 마음 한쪽에서 생겨나는 죄책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면 예수님께서 발을 닦아 주던 그 제자들은 직전까지 누가 더 높은지 서로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걸 제자라고 허리를 숙여 발을 닦아 주시는 선생님. 여러분의 부모님이 여러분에게 큰절을 올린다고 생각해 보세요. 도대체 왜 이러세요. 어머니, 아버지! 이러실 것 아닙니까? 그 마음엔 당혹감과 부모에 대한 이유 모를 죄책감이 함께 있을 테지요.

 

예수님의 발을 닦는 모습과 제자들에게 던진 질문, 제자들의 생각들 가운데서 우리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왜냐면 우리도 또한 도토리 키재기를 하며 살아가는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뜻이나 좋은 동기로 일을 하고 있어도 그 내면에서는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며 경쟁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되지요. 세상 사람들이 일하는 방법은 대체로 이런 식입니다. 가정이나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개인적인 욕심들로 가득한 경우가 많습니다.

 

너를 밟고 이겨야 내가 올라가지, 여기서 절대 밀릴 수는 없어.’ 어쩌면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나를 포장하고 과장된 언행으로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우리 앞에 예수님께서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여 발을 닦아 주신 겁니다. 이것이 정녕 무엇을 뜻한다는 말입니까? 13절과 14절입니다.

 

13 너희가 나를 선생님 또는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옳은 말이다. 내가 사실로 그러하다.

14 주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들의 선생이다. 내가 너희들의 주다! 내가 주님이 되어,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이유는 항상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섬기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내면에 경쟁심을 갖지 말고 자존심 내세우지 말며, 이런 것들로 인해 자신이 지배당하지 않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주님이셨고 스승이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예수님 같은 스승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인류 역사상 예수님같은 분은 결단코 없습니다. 그분은 온 인류의 메시아이시고 구원자이시며, 하나님의 독생자이시고 지고지순한 사람이셨습니다. 그런 위대하신 분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에 주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교우 여러분! 성경에는 사람을 짐승, 벌레, 티끌, 먼지, 쓰레기와 같은 존재로 많이 표현합니다. 하물며 그런 낮고 천한 사람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섬겨주셨는데, 같은 사람들끼리 서로 섬기고 발을 씻어주는 것은 마땅하지 않은가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3. 사순절 첫째주일. 예수님의 고난의 길을 기억하는 이 절기를 맞이하는 두 가지 길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첫째 낮아지십시오. 낮아지라는 말, 겸손해지라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겸손은 내가 힘을 가지고 있을 때 그 힘을 남용하지 않는 것이 겸손입니다. 그 힘이란 것이 묘해서 내가 힘을 가지고 있을 때는 그걸 사용해서 다른 사람을 누르고 싶어지고, 그것으로 무엇을 하고 싶어하게 됩니다. 그것을 포기할 수 있는 사순절이 되어 달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내려놓을 때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으신 예수님의 눈높이와 같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솔선수범하세요. 제가 예전에 어린이부 사역을 하던 시절, 교사들에게 그렇게 강조했던 말이 있습니다. 예배시간에 늦을 거면 교사 내려놓으라고 말했습니다. 예배시간에 아이들보다 늦는 교사가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솔선수범은 말로 가르치는 것 아니라 몸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몸으로 먼저 보여주면 되는 겁니다. 먼저 나르면 상자 한두 개 더 나를 수 있습니다. 먼저 움직이면 책상 몇 개 더 걸레질할 수 있어요. 그저 몇 개 더 나르고, 닦고, 치우고 그것뿐입니다. 솔선수범은 그런 겁니다.

 

그런데 솔선수범하는 그 모습이, 퍼지고 퍼지고 또 퍼지면, 그곳이 아마도 지난 주일 그렇게 말씀드린 천국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이 솔선수범하게 될 때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시던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게 될 것입니다.

 

다 아는 이야기 하나 드릴게요. 어떤 사람이 지옥에 갔더랍니다. 그곳에는 상다리가 휘어지게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지요. 그런데 숟가락과 젓가락이 2m짜리였대요. 모두가 자기가 먹겠다고 그 긴 수저로 음식을 먹는데 먹을 수가 있어야지요. 이번엔 천국에 가봤더니 음식에 긴 수저 모두 똑같더랍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맞은 편에 있는 사람에게 긴 수저로 음식을 서로 먹어주고 있더라는 이야기입니다. 같은 곳인데 한 곳은 천국이요, 한 곳은 지옥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서로 발을 씻기라 말씀하셨습니다. ‘서로라는 단어는, 내가 있고 또 당신이 함께 있는 겁니다. 나만 있는 것 아니라, 나는 없고 당신만 있는 것 아니라, 나와 당신이 함께 있는 겁니다. 당신이 있기에 내가 겸손해지고 당신과 함께 살아야 하기에 내가 솔선수범해야 하는 것입니다. 서로 발을 씻기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 세상을 천국으로 살아가기 위한 예수님의 대안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조심해야 할 것 있습니다. 16절인데요. “종이 주인보다 높지 않으며, 보냄을 받은 사람이 보낸 사람보다 높지 않다는 겁니다. 무릎 꿇는다고 누군가의 발을 닦는 일은 내가 커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낮아지고 솔선수범하는 일을 하면 내가 커지는 것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아무리 커봐야 나를 보내신 하나님만큼 커질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다시 한번 읽습니다. 17절입니다.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그대로 하면, 복이 있다.

 

그런데요. 그렇게 발 닦아 준 제자 중 한 명이 훗날 예수를 은 서른 냥에 팔아넘기지요. 그의 이름을 말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그게 누구인지도 궁금할 필요가 없어요. 이리 말씀하셨는데도 그 제자 중에서 일어난 일이었거든요. 그렇게 예수님의 고난은 시작되었습니다.

 

은진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의 이런 복은 어떠십니까? 오늘 우리가 확인한 복,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복을 받는 길을 알면서도, 복을 받았으면서도 예수를 팔아넘긴 이가 있습니다. 우리, 최소한 그런 삶은 살아가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2026년 사순절,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복을 받아 누리며,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겸손하고 솔선수범하며 살아, 이 세상에 보여주신 예수님의 대안을 실천하며 살아가십시다. 그 삶이 예수님 걸으셨던 고난의 길을 우리가 함께 걸어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 서로 발을 씻어주며 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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