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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가 역사를 만듭니다 / 사순절 둘째주일 / 3.1절기념주일 장 본 목사 2026-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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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가 역사를 만듭니다

 

사순절 둘째주일

3·1절 기념주일

20260301

 

사무엘하 12:1-13

1 주님께서 예언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셨다. 나단은 다윗을 찾아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어떤 성읍에 두 사람이 살았습니다. 한 사람은 부유하였고, 한 사람은 가난하였습니다.

2 그 부자에게는 양과 소가 아주 많았습니다.

3 그러나 그 가난한 사람에게는, 사다가 키우는 어린 암양 한 마리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이 어린 양을 자기 집에서 길렀습니다. 그래서 그 어린 양은 그의 아이들과 함께 자라났습니다. 어린 양은 주인이 먹는 음식을 함께 먹고, 주인의 잔에 있는 것을 함께 마시고, 주인의 품에 안겨서 함께 잤습니다. 이렇게 그 양은 주인의 딸과 같았습니다.

4 그런데 그 부자에게 나그네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 부자는 자기를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는 데, 자기의 양 떼나 소 떼에서는 한 마리도 잡기가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가난한 사람의 어린 암양을 빼앗아다가, 자기를 찾아온 사람에게 대접하였습니다.”

5 다윗은 그 부자가 못마땅하여, 몹시 분개하면서, 나단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확실히 살아 계심을 두고서 맹세하지만, 그런 일을 한 사람은 죽어야 마땅합니다.

6 또 그가 그런 일을 하면서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전혀 없었으니, 그는 마땅히 그 어린 암양을 네 배로 갚아 주어야 합니다.”

7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고, 또 내가 사울의 손에서 너를 구하여 주었다.

8 나는 네 상전의 왕궁을 너에게 넘겨 주고, 네 상전의 아내들도 네 품에 안겨 주었고, 이스라엘 사람들과 유다 나라도 너에게 맡겼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면, 내가 네게 무엇이든지 더 주었을 것이다.

9 그런데도 너는, 어찌하여 나 주의 말을 가볍게 여기고, 내가 악하게 여기는 일을 하였느냐? 너는 헷 사람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다. 너는 그를 암몬 사람의 칼에 맞아서 죽게 하였다.

10 너는 이렇게 나를 무시하여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아다가 네 아내로 삼았으므로, 이제부터는 영영 네 집안에서 칼부림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11 주님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집안에 재앙을 일으키고, 네가 보는 앞에서 내가 너의 아내들도 빼앗아 너와 가까운 사람에게 주어서, 그가 대낮에 너의 아내들을 욕보이게 하겠다.

12 너는 비록 몰래 그러한 일을 하였지만, 나는 대낮에 온 이스라엘이 바라보는 앞에서 이 일을 하겠다.’”

13 그 때에 다윗이 나단에게 자백하였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금님은 죽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14 그러나 임금님은 이번 일로 주님의 원수들에게 우리를 비방할 빌미를 주셨으므로, 밧세바와 임금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죽을 것입니다.”

15 나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사도행전 3:11-19

11 그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 곁에 머물러 있는데, 사람들이 모두 크게 놀라서, 솔로몬 행각이라고 하는 곳으로 달려와서, 그들에게로 모여들었다.

12 베드로가 그 사람들을 보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어찌하여 이 일을 이상하게 여깁니까? 또 어찌하여 여러분은, 우리가 우리의 능력이나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하기나 한 것처럼, 우리를 바라봅니까?

13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이삭의 하나님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서 자기의 종 예수를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일찍이 그를 넘겨주었고, 빌라도가 놓아주기로 작정하였을 때에도, 여러분은 빌라도 앞에서 그것을 거부하였습니다.

14 여러분은 그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을 거절하고, 살인자를 놓아달라고 청하였습니다.

15 그래서 여러분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16 그런데 바로 이 예수의 이름이, 여러분이 지금 보고 있고 잘 알고 있는 이 사람을 낫게 하였으니, 이것은 그의 이름을 믿는 믿음을 힘입어서 된 것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은 그 믿음이 이 사람을 여러분 앞에서 이렇게 완전히 성하게 한 것입니다.

17 그런데 동포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지해서 그렇게 행동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1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의 입을 빌어서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아야만 한다고 미리 선포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습니다.

19 그러므로 여러분은 회개하고 돌아와서, 죄 씻음을 받으십시오.

 

요한복음 18:15-27

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라갔다. 그 제자는 대제사장과 잘 아는 사이라서,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안뜰에까지 들어갔다.

16 그러나 베드로는 대문 밖에 서 있었다. 그런데 대제사장과 잘 아는 사이인 그 다른 제자가 나와서, 문지기 하녀에게 말하고,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갔다.

17 그 때에 문지기 하녀가 베드로에게 말하였다. “당신도 이 사람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지요?” 베드로는 아니오하고 대답하였다.

18 날이 추워서, 종들과 경비병들이 숯불을 피워 놓고 서서 불을 쬐고 있는데, 베드로도 그들과 함께 서서 불을 쬐고 있었다.

19 대제사장은 예수께 그의 제자들과 그의 가르침에 관하여 물었다.

20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소. 나는 언제나 모든 유대 사람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가르쳤으며, 아무것도 숨어서 말한 것이 없소.

21 그런데 어찌하여 나에게 묻소?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를, 들은 사람들에게 물어 보시오. 내가 말한 것을 그들이 알고 있소.”

22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경비병 한 사람이 곁에 서 있다가 대제사장에게 그게 무슨 대답이냐?” 하면서, 손바닥으로 예수를 때렸다.

23 예수께서 그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한 말에 잘못이 있으면, 잘못되었다는 증거를 대시오. 그러나 내가 한 말이 옳다면, 어찌하여 나를 때리시오?”

24 안나스는 예수를 묶은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보냈다.

25 시몬 베드로는 서서, 불을 쬐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도 그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지요?” 베드로가 부인하여 나는 아니오!” 하고 말하였다.

26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으로서, 대제사장의 종 가운데 한 사람이 베드로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동산에서 그와 함께 있는 것을 내가 보았는데 그러시오?”

27 베드로가 다시 부인하였다. 그러자 곧 닭이 울었다.

 

 

1. 은진교회 교우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교우 여러분에게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이 국경일, 3.1절이잖아요. 여러분에게 3.1절의 자세한 내용은 말하지 않을 겁니다. 그건 한국사 시간에 배우는 것이 더 정확하니까요. 목사님은 여러분에게 3.1절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3.1절은 1919년에 일어난 일이에요. 무려 107년 전일입니다. 여러분 부모님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일입니다. 아주 먼 과거의 일이지요.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3.1절의 의미를 지켜나가는 일이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3.1절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거나, 의미를 왜곡하는 일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많아지고 있습니다. 목사님 청소년기에는 그러지 않았어요. 최소한 3.1절과 8.15 광복절에 관해서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요즘 이상한 말들을 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어요. 그것도 역사를 공부했다는 사람들이 말이죠. 우리를 식민지배했던 일본을 두둔한다거나, 외세의 힘으로 독립을 했다고 하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으나, 목사님 생각엔 관점의 차이인 것 같아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요. 힘을 가진 사람들의 관점으로 역사를 보면, 당시 조선은 국력이 약했고, 군사력도 별로여서 자신들이 점령했다고 말하죠. 그러면서 꼭 덧붙이죠. 자기네가 조선의 근대화를 이루었다고요. 그게 발판이 되어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루었다고 말하죠. 힘 있는 자들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았을 때 그래요.

 

당시 힘있는 나라는 일본이었으니까, 일본의 관점에서 보는 거라고요. 그러니 우리나라 사람이 그런 말을 한다면, 그 사람은 일본에 가서 살면 됩니다. 아주 깔끔하게 정리됩니다.

 

그런데 역사를 지배당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3.1절은 자주독립을 위한 한민족의 몸부림이었습니다. 우리가 3.1절을 국경일로 지키고 아직까지 기념하는 이유, 대한민국은 지배당한 사람의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아주 중요해요.

 

역사는 약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미래가 보이거든요. 우리를 식민지화했던 일본 어찌되었나요? 늘 강자의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보다가 2차세계대전에서 패망해 버렸잖아요. 강자의 입장에서 보는 역사의 끝은 멸망임을 세계사는 곳곳에서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약한 사람의 입장에서 역사를 보는 또 한 분이 계세요.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늘 힘없는 사람, 병든 사람, 홀로 사는 여성, 힘없는 어린이... 예수님은 그 사람들을 치켜 세우셨고, 도우셨고, 살게 하셨습니다.

 

그게 보기 싫었던 힘있던 사람들이 예수를 끌고가서 때리고, 재판하고 결국 사형에 처합니다. 그 고난받았던 일들을 기억하며 우리가 지금 사순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이 역사를 힘없는 사람의 관점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지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의 신앙과 이 세상에서 삶이 하나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주님의 인도하심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사순절 둘째주일>이며, 우리 교단이 정한 <3·1절 기념주일>입니다. 두 명칭 모두, 고난을 기억하는 주일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5명의 이름을 불러드립니다. 딱 한 번만 불러드리니 잘 들어 보세요.

 

이지용, 박제순,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

역사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기억하는 이름입니다. 우리나라 주권을 일본에 넘기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 사람들을 을사오적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의 당시 직책을 오늘날의 이름으로 바꿔 보았습니다. 그들 다섯 명은 각각 행정안전부장관, 외교부장관, 국방부장관, 교육부장관, 농림축산부장관이었습니다. 그들이 조선을 팔아먹었습니다.

 

사실 세 명이 더 있어요. 이재극, 민영기, 이하영입니다. 오늘날 직책으로 대통령비서실장, 재정경제부장관, 법무부장관이었습니다. 그들은 당시 왕, 고종을 돕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나라를 팔아먹었습니다.

 

그들이 힘을 합치니 왕은 허수아비가 되었습니다. 당시, 오늘날의 부총리직을 수행하던 한규설만이 이 일에 반대하다가 결국 파면당하고 맙니다.

 

1905년에 일어난 일을 뭐 아직도 31일마다 언급하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천여 년 전, 예수님의 일을 매주 기억하는 사람들입니다.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만이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다섯 명의 이름을 더욱 기억해야 합니다.

 

을사오적의 이름을 기억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어요. 이름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대통령, 국무총리, 국방부장관, 경찰청장 외 여러 사람이 징역 11년부터 무기징역까지 선고받은 일이 열흘 전에 있었습니다. 직함을 보니, 1905년과 비슷하지 않나요?

역사를 기억하지 않으면, 능욕의 역사는 반복됩니다. 역사가 증명하고 있거든요. 우리가 지난 역사를 아프더라도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능욕의 역사가 아닌, 번영의 역사로 이끄는 힘이 되어야 합니다. 먼저 할 것은 기억입니다.

 

 

3. 여기, 자신의 능욕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복음서를 먼저 봅니다. 그 사람은 바로 베드로입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은 여러분 다 알고 있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셨을 때, 다른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습니다. 베드로는 대제사장과 잘 아는 다른 제자의 도움으로 예수님이 잡혀있는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요. 베드로여서 그랬을까요? 용감하게 그곳까지 갔네요.

 

하지만 그곳에서 베드로는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의 질문을 받습니다. 세 번이나요. 그런데 모른다고,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 모두 부인합니다. 예수님께 천국열쇠를 받은 베드로였습니다. 용감하게 예수님 잡힌 곳까지는 갔으나, 그곳에서 베드로는 자신의 능욕의 역사를 쓰고 맙니다. 수제자라 불리던 그였습니다.

 

무서웠을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맞기까지 하셨으니까요. 무기력했을 겁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베드로가 할 수 있는 일은 모여 있던 사람들과 함께 숯불을 쬐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한 제자는 예수를 팔아넘기고, 한 제자는 모른 척합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고난받으셨습니다.

 

 

4. 서신서로 넘어갑니다. 오늘 사도행전 말씀은 무언가 바뀐 베드로의 모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오순절 다락방에서 신비한 경험을 하고 베드로는 달라졌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이후 베드로의 두 번째 설교입니다.

 

베드로는 이 설교를 하기 전에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을 치유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베드로에게 몰려듭니다. 기적을 베풀었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예수님곁에 구름 떼같이 몰려든 군중이 이제는 베드로에게 몰려듭니다.

 

모여든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나음을 받은 사람을 우러러봅니다. 뭔가 특출난 능력이 있다고, 영험한 힘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아니 더 중요한 사실은 그가 사형당한 예수의 제자였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베드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312절입니다.

 

12 베드로가 그 사람들을 보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어찌하여 이 일을 이상하게 여깁니까? 또 어찌하여 여러분은, 우리가 우리의 능력이나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하기나 한 것처럼, 우리를 바라봅니까?

 

베드로의 설교는 이어집니다. 13절과 14, 여러분이 예수를 넘겨주지 않았던가요? 빌라도가 놓아주자고 했을 때도 거부한 당신들 아니던가요?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 대신 살인자를 놓아달라고 소리 지르지 않았던가요? 당신들이 예수를 죽였습니다. 내가 예수를 죽였습니다. 세 번이나 부인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두 다리로 걷고 있는 이 사람 무엇으로 나은지 아십니까? 16절입니다.

16 그런데 바로 이 예수의 이름이, 여러분이 지금 보고 있고 잘 알고 있는 이 사람을 낫게 하였으니, 이것은 그의 이름을 믿는 믿음을 힘입어서 된 것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은 그 믿음이 이 사람을 여러분 앞에서 이렇게 완전히 성하게 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한 일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의 이름이, 그 이름을 믿는 믿음이 기적을 가능하게 했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 있을까요? 세 번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발뺌한 그가 말입니다.

 

이제부터 읽을 말씀이 핵심입니다. 이것이 베드로의 역사를 바꾸게 한 사건이거든요. 19절입니다.

 

19 그러므로 여러분은 회개하고 돌아와서, 죄 씻음을 받으십시오.

 

회개입니다. 여러분 다 아시는 회개요. 벌써 들립니다. ‘에이, 내가 또 회개 얘기할 줄 알았어!’ 그렇죠?

 

회개. 돌아섬. 돌이킴. 지난 것으로부터 새로운 것으로의 전환. 매해 사순절마다 드리는 말씀. 회개입니다.

 

이제 아셔야 합니다. ! 사순절의 가장 중요한 신앙의 중심이 바로 회개로구나. 올해도 말씀드립니다. 내년 사순절에도 말씀드릴 겁니다. 사순절은 회개로부터 시작하는 것이거든요. 중요한 것. 말로만 하는 회개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친일파였던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계엄을 선포한 사람들에게 물으면 이렇게 말합니다. 엄포만 놓으려고 했다고요. 이런 건 핑계라고 하지, 회개라고 하지 않습니다.

 

회개란, 정확하게 사과하고 그 일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받는 일입니다. 그리고는 개과천선하여 새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 과정 없이는 회개는 불가능합니다. 신앙인 중에도 말로만 회개하는 이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래서 회개 다음엔, 삶의 변화가 생겨나야만 합니다. 모른 척하던 베드로, 이젠 예수님 덕이라고 선포합니다. 이런 게 회개입니다. 그러다가 어찌 되었나요? 그 역시 죽임을 당했지요. 죽기 싫어서 예수를 부인하던 그가, 예수를 인정하고 살다가 죽습니다. 회개는 한 사람을 이렇게 변화하게 하는 엄청난 힘이 있는 겁니다.

 

그럼 회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마지막 구약의 말씀입니다.

 

 

5.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자고 한 사람은 가난합니다. 당시 부자니까 양과 소가 많았겠지요. 가난한 사람이 가진 것이라고는 어린 암양 한 마리가 전부입니다. 애지중지 함께 잠도 자며 그렇게 살았지요.

 

어느 날 부자에게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손님 대접을 하는데, 이 부자는 자기 양이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의 전부인, 양 한 마리를 빼앗아 그것으로 자기 손님을 접대합니다.

 

이 부자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이 되기나 합니까? 여러분도 화나지 않으세요? 이 이야기는 예언자 나단이 위대한 왕 다윗에게 한 말입니다. 다윗도 나단의 이야기를 듣고 단단히 화가 나서 그렇게 말합니다. 사무엘하 125, 6절입니다.

 

5 다윗은 그 부자가 못마땅하여, 몹시 분개하면서, 나단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확실히 살아 계심을 두고서 맹세하지만, 그런 일을 한 사람은 죽어야 마땅합니다.

6 또 그가 그런 일을 하면서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전혀 없었으니, 그는 마땅히 그 어린 암양을 네 배로 갚아 주어야 합니다.”

 

왕인 다윗도 이렇게 말합니다. 죽어 마땅하다고요. 그래도 왕인데 백성의 목숨을 소중히 여겨야 할 텐데, 너무나 화가 나긴 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나단이 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라고요. 다윗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우리야 이야기 다 아시죠? 다윗이 자신의 충직한 신하였던 우리야를 살인교사하여 전쟁터에서 죽게 한 후 그의 아내 밧세바를 자신의 아내로 삼은 일 말입니다. 9절을 읽으며 확인합니다.

 

9 그런데도 너는, 어찌하여 나 주의 말을 가볍게 여기고, 내가 악하게 여기는 일을 하였느냐? 너는 헷 사람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다. 너는 그를 암몬 사람의 칼에 맞아서 죽게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 다윗! 양 한 마리 빼앗은 부자가 죽어 마땅하다고 했지? 너도 그러하니 10절 뒷부분, 이제부터는 영영 네 집안에서 칼부림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11, 너의 집안에 재앙을 일으키겠다. 12, 온 이스라엘이 바라보는 앞에서 그리하겠다. 너의 말대로 그대로 하겠다. 나 하나님의 말이다.

 

다윗 본인이 죽어 마땅하다 했으니, 다윗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다윗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13절 다윗의 대답까지만 읽습니다.

 

13 그 때에 다윗이 나단에게 자백하였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여기까지요)

 

자백했습니다. “죄를 지었습니다라고요. 인정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요. 회개는 이렇게 하는 겁니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1905년 역사를 어지럽혔던 사람들 중에, 2024년 겨울 대한민국 역사를 어지럽게 했던 사람들 중에, 국민에게 잘못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저 핑계대는 사람만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요. 회개했는데도 나단은 이렇게 말합니다. 임금의 죄는 용서해 주실 것이고, 그래서 임금님은 죽진 않을 겁니다. 허나, 밧세바와 임금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죽을 것이라고요.

 

다윗은 자신에 죄에 대한 대가를 그렇게 치렀습니다. 회개는 내가 하나님 앞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 죄에 대한 대가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는 일입니다. 위대한 왕 다윗마저도 자신의 잘못에 대해 회개와 함께 이에 따르는 책임을 져야만 했습니다.

 

 

6. 은진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가 지난주, 오늘 받은 사순절 말씀의 핵심은 섬김과 회개 그리고 이에 따르는 새로운 삶입니다.

 

예수를 세 번 부인한 베드로의 모습만 보고서는 그저 사순절의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로 말씀이 끝날 것만 같았습니다. 아니 사실은 어두웠던 분위기가 맞습니다. 예수님의 시대가 끝났다고 여겼으니까요.

 

하지만 서신서에서 만난 베드로의 모습은 당당하게 사람들 앞에서 회개를 선포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했던 첫 마디가 회개하라는 말 아니었던가요? 사실 성경 어디에도 베드로가 회개했다는 말은 없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베드로의 삶이 바뀌었다는 사실입니다. 회개 없이는 불가능한 삶인 것이죠.

 

역사의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것이죠. 3·1절 기념주일이 사순절에 포함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어쩌면 이마저 이 땅의 암울했던 역사를 기억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희망의 역사를 다시 이 땅에 써 내려가라는 하늘의 음성일 수도 있겠습니다.

 

사순절 둘째주일, 진심을 다해 우리 회개하십시다. 그리고 진심을 다해 삶을 살아가십시다. 주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은 삶으로 이 사십일의 기간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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