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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으로도, 입으로도... / 사순절 넷째주일 | 장 본 목사 | 2026-03-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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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상의 사이즈와 화질은 500kbps, 중간화질입니다. 영상은 업로드 시 설정할 수 있습니다. . 손으로도, 입으로도... 사순절 넷째주일 총회순교자기념주일 20260315 이사야 59:1-3, 9-20 1 주님의 손이 짧아서 구원하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고, 주님의 귀가 어두워서 듣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다. 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의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의 죄 때문에 주님께서 너희에게서 얼굴을 돌리셔서, 너희의 말을 듣지 않으실 뿐이다. 3 너희의 손이 피로 더러워졌으며, 너희의 손가락이 죄악으로 더러워졌고, 너희의 입술이 거짓말을 하며, 너희의 혀가 악독한 말을 하기 때문이다. 9 그러므로 공평이 우리에게서 멀고, 공의가 우리에게 미치지 못한다. 우리가 빛을 바라나, 어둠뿐이며, 밝음을 바라나, 암흑 속을 걸을 뿐이다. 10 우리는 앞을 못 보는 사람처럼 담을 더듬고, 눈먼 사람처럼 더듬고 다닌다. 대낮에도 우리가 밤길을 걸을 때처럼 넘어지니, 몸이 건강하다고 하나 죽은 사람과 다를 바 없다. 11 우리 모두가 곰처럼 부르짖고, 비둘기처럼 슬피 울며, 공평을 바라지만 공평이 없고, 구원을 바라지만 그 구원이 우리에게서 멀다. 12 주님, 주님께 지은 우리의 죄가 매우 많습니다. 우리의 죄가 우리를 고발합니다. 우리가 지은 죄를 우리가 발뺌할 수 없으며, 우리의 죄를 우리가 잘 압니다. 13 우리가 죄를 짓고 주님을 부정하였습니다. 우리의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물러가서, 포학한 말과 거역하는 말을 하면서, 거짓말을 마음에 품었고, 또 실제로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14 그래서 공평이 뒤로 밀려나고 공의가 멀어졌으며, 성실이 땅바닥에 떨어졌고, 정직이 발붙이지 못합니다. 15 성실이 사라지니, 악에서 떠난 자가 오히려 약탈을 당합니다. 주님께서 이것을 보셨다. 공평이 없는 것을 보시고 슬퍼하셨다. 16 압박받는 사람을 도우려는 사람이 없음을 보시고, 중재자가 없음을 보시고, 주님께서는 놀라셨다. 주님께서는 직접, 억압받는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반드시 공의를 이루시려고, 당신의 능력을 친히 발휘하실 것이다. 17 주님께서 공의를 갑옷으로 입으시고, 구원의 투구를 머리에 쓰셨다. 응징을 속옷으로 입으셨다. 열심을 겉옷으로 입으셨다. 18 그들이 한 대로 갚으신다. 적들에게 진노하시며, 원수들에게 보복하신다. 섬들에게도 보복하신다. 19 해 지는 곳에서 주님의 이름을 두려워하며, 해 뜨는 곳에서 주님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이다. 원수가 강물처럼 몰려오겠으나, 주님의 영이 그들을 물리치실 것이다. 20 주님께서 시온에 속량자로 오시고, 야곱의 자손 가운데서 죄를 회개한 사람들에게 오신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디모데전서 1:12-17 12 나는 나에게 능력을 주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께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나를 신실하게 여기셔서, 나에게 이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은 내가 믿지 않을 때에 알지 못하고 한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14 우리 주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넘치게 부어 주셔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는 믿음과 사랑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15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하는 이 말씀은 믿음직하고,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말씀입니다. 나는 죄인의 우두머리입니다. 1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 뜻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끝없이 참아 주심의 한 사례를 먼저 나에게서 드러내 보이심으로써, 앞으로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본보기로 삼으시려는 것입니다. 17 영원하신 왕, 곧 없어지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 무궁토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요한복음 19:1-16 1 그 때에 빌라도는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으로 쳤다. 2 병정들은 가시나무로 왕관을 엮어서 예수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힌 뒤에, 3 예수 앞으로 나와서 “유대인의 왕 만세!” 하고 소리치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때렸다. 4 그 때에 빌라도가 다시 바깥으로 나와서, 유대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보시오, 내가 그 사람을 당신들 앞에 데려 오겠소.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소. 나는 당신들이 그것을 알아주기를 바라오.” 5 예수가 가시관을 쓰시고, 자색 옷을 입으신 채로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보시오, 이 사람이오” 하고 말하였다. 6 대제사장들과 경비병들이 예수를 보고 외쳤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그러자 빌라도는 그들에게 “당신들이 이 사람을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소” 하고 말하였다. 7 유대 사람들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우리에게는 율법이 있는데 그 율법을 따르면 그는 마땅히 죽어야 합니다. 그가 자기를 가리켜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8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서 9 다시 관저 안으로 들어가서 예수께 물었다. “당신은 어디서 왔소?” 예수께서는 그에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10 그래서 빌라도가 예수께 말하였다. “나에게 말을 하지 않을 작정이오? 나에게는 당신을 놓아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처형할 권한도 있다는 것을 모르시오?” 11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위에서 주지 않으셨더라면, 당신에게는 나를 어찌할 아무런 권한도 없을 것이오. 그러므로 나를 당신에게 넘겨준 사람의 죄는 더 크다 할 것이오.” 12 이 말을 듣고서,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주려고 힘썼다. 그러나 유대 사람들은 “이 사람을 놓아주면, 총독님은 황제 폐하의 충신이 아닙니다. 자기를 가리켜서 왕이라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황제 폐하를 반역하는 자입니다” 하고 외쳤다. 13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데리고 나와서, 리토스트론이라고 부르는 재판석에 앉았다. (리토스트론은 히브리 말로 가바다인데, ‘돌을 박은 자리’라는 뜻이다.) 14 그 날은 유월절 준비일이고, 때는 낮 열두 시쯤이었다. 빌라도가 유대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보시오, 당신들의 왕이오.” 15 그들이 외쳤다. “없애 버리시오! 없애 버리시오!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의 왕을 십자가에 못박으란 말이오?” 대제사장들이 대답하였다. “우리에게는 황제 폐하 밖에는 왕이 없습니다.” 16 이리하여 이제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그들에게 넘겨주었다. 1. 은진교회 교우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교우 여러분에게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구약의 말씀을 풀어드릴 거예요. 오늘 청소년을 위한 말씀은 여러분을 위한 말씀의 서론이기도 하니, 여러분도 함께 잘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목사님이 2주 전 설교에서 사순절은 회개로부터 시작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작년 사순절에도 회개에 관한 말씀을 전했고, 올해도 전하고 있고, 내년도 전할 것이라고 했었지요. 회개란 돌이키는 일이에요. 지난 삶에 대한 반성, 인정, 사과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결심하는 것. 모든 것이 회개라는 단어에 담겨 있답니다. 이 말은 회개하는 상황 앞에 무언가 잘못했다는 것을 뜻하죠. 그 잘못을 기독교에서는 흔히 ‘죄’라고 표현합니다. 오늘 이사야서 말씀은 죄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어요. 확인할 필요가 있답니다. 이사야 59장 3절의 말씀입니다. 3 너희의 손이 피로 더러워졌으며, 너희의 손가락이 죄악으로 더러워졌고, 너희의 입술이 거짓말을 하며, 너희의 혀가 악독한 말을 하기 때문이다. 손이 나오고, 손가락이 나오고, 입술이 나오고 혀가 나옵니다. 우리가 짓는 죄는 손과 입으로 저지르는 일들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손과 손가락은 행동을, 입술과 혀는 말을 의미합니다. 모든 죄는 손과 입으로 만들어 집니다. 손으로는 때릴 수 있어요. 손가락질할 수 있지요. 입으로는 욕하고, 비하하고, 거짓말할 수 있어요. 다 죄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전합니다. 그래서 신앙인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알 수 있지요. 폭력을 사용하면 안 되는 겁니다. 상대방에게 손가락질 해서도 안 되는 거예요. 거짓말은 당연합니다. 십계명에도 나오거든요. 말로 상대방에게 상처주는 것도 신앙인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만 지켜도 지난주 말씀드렸던 하나님의 평화와 정의는 실현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청소년 여러분. 꽃으로도 때리지 마세요. 어떤 말로도 상대방에게 상처 주지 마세요. 이걸 해내면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신앙인이 될 수 있답니다. 말씀대로 살아 하나님의 평화를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에서 이어집니다. 중동에서 벌어지는 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기름값은 왜 이리 오르는지 주유소 가기가 겁이 납니다. 이 와중에 들썩대는 주식은 많은 사람에게 ‘나도 해서 돈 좀 벌어 볼까?’하는 고민에 잠기게 합니다. 불확실성이 더욱 높아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필 사순절 기간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할 수밖에 없는 요즘, 우리는 세상의 고난도 기억하느라 어쩌면 올 사순절은 더 마음이 무거운 듯합니다. 세상의 이런 일들은 왜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오늘 이사야서에서는 이스라엘의 파멸이 주님이 일하지 않으셔서 그리된 것이 아니라 분명히 말씀합니다. 58장 1절, 주님의 손이 짧아서, 귀가 어두워 못하는 일이 아니라고 전하죠. 이스라엘의 멸망은 이것 때문입니다. 2절입니다. 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의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의 죄 때문에 주님께서 너희에게서 얼굴을 돌리셔서, 너희의 말을 듣지 않으실 뿐이다. 죄 때문에 그렇습니다. 죄라는 단어를 설교에서 자꾸 이야기하면 설교가 매처럼 들릴 수 있어요. 설교가 가시처럼 느껴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좀 들어보세요. 하나님과 관계를 틀어지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의 죄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탓이 아니에요. 사람 탓입니다. 그럼 정답은 나왔습니다. 설교 더는 할 필요도 없습니다. 죄짓지 않으면 되잖아요. 그런데 많은 교회에서 죄짓지 말라고는 말하면서 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습니다. 죄가 뭔지를 알아야 짓지 않을 것 아닙니까? 3절입니다. 3 너희의 손이 피로 더러워졌으며, 너희의 손가락이 죄악으로 더러워졌고, 너희의 입술이 거짓말을 하며, 너희의 혀가 악독한 말을 하기 때문이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에서 전한 부분입니다. 손으로 피를 냅니다. 폭력을 행사한다고 볼 수 있지요. 손가락질합니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사람이 상대방에게 손가락질할 일은 없겠지요. 손이 말썽입니다. 모든 폭력은 손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입술은 어떠며 혀는 어떨까요? 말을 뜻합니다. 입만 열면 공격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우리는 보통 사기꾼이라고 부릅니다. 손이 물리적인 폭력을 가할 수 있다면, 입은 정신적인 폭력을 가합니다. 이젠 언어폭력도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세상입니다. 이게 다 죄입니다. 서두에 불확실성이 커지는 세상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세상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이유는 손으로, 입으로 짓는 죄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린이들이 공부하는 학교에 폭탄이 떨어집니다. 이유없이 피를 흘려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모두 사람이 손으로 하는 죄입니다. 그 일을 벌인 사람들은 연일 뉴스에 나와 입으로도 상대방을 공격합니다. 사람은 그런 존재인가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14절부터 15절 상반절입니다. 14 그래서 공평이 뒤로 밀려나고 공의가 멀어졌으며, 성실이 땅바닥에 떨어졌고, 정직이 발붙이지 못합니다. 15 성실이 사라지니, 악에서 떠난 자가 오히려 약탈을 당합니다. 성경은 추상적인 신앙체계를 위인전 마냥 적어놓은 책이 아닙니다. 신앙인의 지침서, 교과서입니다. 오늘의 상황을 정확하게 짚고 있음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다행인 것은 15절 하반절에서 주님께서 이것을 보시고, 공평이 없는 것을 보시고 슬퍼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 16절부터 19절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읽지는 않습니다. 제일 중요한 사실, 20절입니다. 20 주님께서 시온에 속량자로 오시고, 야곱의 자손 가운데서 죄를 회개한 사람들에게 오신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다시 세우시는데, 죄를 회개한 사람들에게만 오십니다. 또 회개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은진교회 교우 여러분. 행동으로도, 말로도 어떠한 폭력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가 됩니다. 특별히, 말로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마세요. 돌고 돌아 결국 나에게 돌아옵니다. 우리, 회개할 일 없는 신앙인의 삶, 말과 행동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3. 오늘은 복음서의 말씀을 먼저 봅니다. 오늘 복음서는 앞서 전한 이사야서 말씀의 실전편입니다. 복음서에서 우리는 손과 입으로 사람이 지을 수 있는 죄의 현실, 폭력의 현실을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눈으로 복음서를 따라오십시오. 1절입니다.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으로 칩니다. 손으로 짓는 폭력입니다. 3절, “유대인의 왕 만세!”라며 조롱합니다. 입으로 행하는 폭력입니다. 그러고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때립니다. 6절로 넘어갑니다. 대제사장들과 경비병들이 예수를 보고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외칩니다. 성난 군중의 목소리로 들리겠지만, 자신들의 사형 계획을 밀어붙이는 말들입니다. 입으로 짓는 폭력 그 자체입니다. 7절 거짓말입니다. 유대 사람들은 그는 마땅히 죽어야 한다며 입으로 죄를 짓습니다. 12절입니다. 유대 사람들은 말로 빌라도 총독을 협박합니다. 예수를 놓아주면 총독은 황제 폐하의 충신이 아니라고 말이죠. 말로 하는 협박도 죄가 됩니다. 15절, 또 입으로 죄를 짓습니다. 무자비한 폭력입니다. 없애랍니다. 죽이랍니다. 십자가에 못박으랍니다. 마지막 16절 빌라도의 한마디는 폭력의 정점에 섭니다. 십자가 처형이라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말입니다. 여기까지 손과 입으로 행할 수 있는 죄의 실전편을 여러분은 어떻게 보고, 어떻게 듣고,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우리가 사순절을 매년 지켜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셨던 그 수많은 고난을 보며, 우리의 삶에서 손과 입으로 지을 수 있는 죄를 소거해 나가는 것이 우리가 사순절을 지켜내는 이유입니다. 은진교회 교우 여러분의 손과 입에서는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세상의 폭력을 거부하는 손짓, 몸짓으로 살아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마지막 서신서의 말씀입니다. 손과 말로 수없이 죄를 저질렀던 한 사람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스스로 훼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다고 스스로 인정합니다. 바울은 스스로 “나는 죄인의 우두머리입니다.”라고 까지 말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일을 방해하고, 공동체를 박해하고, 자기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폭력까지도 서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열정도 있었고, 남부러울 것 없는 지식도 있었고, 유대교 율법을 잘 지키는 흠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말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가치 외에 다른 가치의 차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도덕성을 잣대로 다른 이들을 정죄하는 일에, 비열한 쾌감을 느꼈습니다. 이런 모습을 ‘자기 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가시가 많습니다. 그 가시로 자꾸만 다른 사람들을 찌릅니다. 그래서 자기 의는 폭력과 결합하기 쉽습니다. 세상의 기준에서는 굉장한 스펙이었을지 몰라도 주님을 만나기 전 사도 바울이 바로, 딱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사람이 어떻게 이리 변할 수 있었을까요? 디모데전서 1장 14절입니다. 14 우리 주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넘치게 부어 주셔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는 믿음과 사랑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16절도 읽습니다. 1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 뜻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끝없이 참아 주심의 한 사례를 먼저 나에게서 드러내 보이심으로써, 앞으로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본보기로 삼으시려는 것입니다. 바울이 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넘치도록 부어주신 주님의 은혜와 하나님께서 베푸신 자비 덕분입니다. 다른 것 없습니다. 솔직히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면 우리는 물질적인 것, 건강, 혹은 추상적인 것들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바울에게 은혜란 박해했던 그 예수의 가르침을 내가 전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바울에게 자비란 죄인의 수괴인 자신을 끊임없이 참아 주신 것이었습니다. 즉, 나의 인생을 바뀌게 한 모든 것을, 바울은 은혜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면 기쁘지 않나요? 여러분 6일간 살다가 주일에 교회 오시면 세상과는 다른 감정을 느끼지 않으시는지요? 저는 주일에 여러분 만나는 일이 너무 좋습니다. 행복해요. 이 자리가 좋다는 말입니다. 왜요? 세상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거든요. 세상 사람들에게 설명해도 잘 이해 못하는 그런 느낌이거든요. 이게 바로 은혜란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굳이 박해자요 폭력자인 바울을, 즉 죄인인 바울을 왜 사도로 세우셨는가 하는 겁니다. 15절입니다. 15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하는 이 말씀은 믿음직하고,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말씀입니다. 나는 죄인의 우두머리입니다. 바울의 구원론이 완성되는 지점입니다. 바울을 통해 죄인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게 된 것이죠. 다만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는 있습니다. 분명히 어떤 죄인도 주님 앞에 구원받을 수 있지만, 누구나 바울처럼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지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이 고백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12절입니다. 12 나는 나에게 능력을 주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께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나를 신실하게 여기셔서, 나에게 이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5. 죄로 설교를 시작해서 마음이 무거우셨지요? 하지만 죄로 시작한 설교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끝났습니다. 우리는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런 세상 가운데 믿는 우리조차 자기방어 기재로 폭력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말하죠. 나를 지키기 위해,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그랬다고요. 조금 생각을 달리했으면 합니다. 우리가 폭력이 난무한 세상에 살더라도, 우리는 폭력을 행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 그런 방어기재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도 바울, 그런 방어기재를 사용하다가 결국 고꾸라졌네요. 폭력을 만들어 내는 모든 것은 그것으로 멸망하게 됩니다. 죄를 짓는 모든 것은 죄로 멸망하게 됩니다. 이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하지만 성서는 우리에게 멸망의 길만 알려주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우리의 구원으로 이어지듯이, 바울의 죄인이던 삶이 사도의 삶으로 변화했듯이 복음은 죄를, 죄인을 하나님의 자비과 은혜로 바꾸어냅니다. 우리, 손으로 죄 짓지 마십시다. 우리, 입으로 상처주지 마십시다. 그리고 나를 이 자리로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모든 것 주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십시다. 내가 가진 작은 것 하나라도 주님께 감사하십시다. 그 고백이 우리의 삶을 고난에서 소망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죄에서 구원으로 이끌어 낼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17절을 마지막으로 읽어드리며, 설교를 마칩니다. 17 영원하신 왕, 곧 없어지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 무궁토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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