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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 / 사순절 다섯째주일 장 본 목사 2026-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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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

 

사순절 다섯째주일

2026032

 

에스겔 18:1-4, 21-32

1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2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땅에서 아직도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으면, 아들의 이가 시다하는 속담을 입에 담고 있느냐?

3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너희 가운데서 어느 누구도 다시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속담을 입에 담지 못할 것이다.

4 모든 영혼은 나의 것이다. 아버지의 영혼이나 아들의 영혼이 똑같이 나의 것이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을 것이다.

 

21 그러나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에서 떠나 돌이켜서, 나의 율례를 다 지키고 법과 의를 실천하면, 그는 반드시 살고, 죽지 않을 것이다.

22 그가 지은 모든 죄악을, 내가 다시는 더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지킨 의 때문에 살 것이다.

23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악인이 죽는 것을, 내가 조금이라도 기뻐하겠느냐? 오히려 악인이 자신의 모든 길에서 돌이켜서 사는 것을, 내가 참으로 기뻐하지 않겠느냐?

24 그러나 의인이 자신의 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죄를 범하고, 악인이 저지르는 모든 역겨운 일을 똑같이 하면, 그가 살 수가 있겠느냐? 그가 지킨 모든 의는 전혀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불성실과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죽을 것이다.

25 그런데 너희는, 내가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 공평하지 못하다는 말을 하는구나.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는 잘 들어라. 내가 일하는 방법이 어찌 공평하지 않으냐? 너희가 하는 행실이 오히려 공평하지 않은 것이 아니냐?

26 의인이 자신의 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죄를 짓다가, 그것 때문에 죽는다면, 그는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죽는 것이다.

27 그러나 악인이라도, 자신이 저지른 죄에서 떠나 돌이켜서, 법대로 살며, 의를 행하면, 자기의 목숨을 보전할 것이다.

28 그가 스스로 깨닫고, 자신이 지은 모든 죄에서 떠나 돌이켰으니, 그는 반드시 살 것이요, 죽지 않을 것이다.

29 그런데도 이스라엘 족속은, 내가 일하는 방법이 공평하지 않다는 말을 하는구나.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일하는 방법이 어찌 공평하지 않으냐? 너희가 하는 행실이 오히려 공평하지 않은 것이 아니냐?

30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족속아, 나는 너희 각 사람이 한 일에 따라서 너희를 심판하겠다. 너희는 회개하고, 너희의 모든 범죄에서 떠나 돌이켜라. 그렇게 하면, 죄가 장애물이 되어 너희를 넘어뜨리는 일이 없을 것이다.

31 너희는, 너희가 지은 죄를 모두 너희 자신에게서 떨쳐내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여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왜 죽고자 하느냐?

32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그가 죽는 것을 나는 절대로 기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희는 회개하고 살아라.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갈라디아서 2:15-21

15 우리는 본디 유대 사람이요, 이방인 출신의 죄인이 아닙니다.

16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임을 알고,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받고자 했던 것입니다.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는, 아무도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고 하심을 받으려고 하다가, 우리가 죄인으로 드러난다면,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시는 분이라는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18 내가 헐어 버린 것을 다시 세우면, 나는 나 스스로를 범법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19 나는 율법과의 관계에서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어버렸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2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21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습니다. 의롭다고 하여 주시는 것이 율법으로 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헛되이 죽으신 것이 됩니다.

 

누가복음 23:39-43

39 예수와 함께 달려 있는 죄수 가운데 하나도 그를 모독하며 말하였다. “너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여라.”

40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똑같은 처형을 받고 있는 주제에, 너는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41 우리야 우리가 저지른 일 때문에 그에 마땅한 벌을 받고 있으니 당연하지만, 이분은 아무것도 잘못한 일이 없다.” 그리고 나서 그는 예수께 말하였다.

42 “예수님, 주님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43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1. 은진교회 교우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교우 여러분에게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입니다. 여러분 혹시 같은 상황인데 완전히 다르게 반응해 본 적 있나요?

 

오늘 복음서 말씀에는 예수님 옆에 두 명의 죄수가 나와요. 둘 다 똑같이 십자가에 달려 있었죠. 똑같이 힘들고, 똑같이 고통스러운 상황이었죠. 그런데 두 사람이 예수님에게 했던 반응은 완전히 달랐어요.

 

한 사람은 예수님을 비웃습니다. ‘네가 구원자면 우리도 좀 살려봐!’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은 달랐어요. 자신의 삶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죠. 그리곤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잘못해서 벌 받는 게 맞아. 그런데 이분은 아니야.’ 그리고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해요. ‘예수님, 나를 기억해 주세요.’

 

나를 기억해 주세요.’ 짧은 한마디였어요. 대단한 말도 아니고, 멋진 기도도 아니었어요.

그냥 진심이었어요.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죠.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은 인생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찾았고, 한 사람은 마지막까지도 원망했죠. 예수님은 한 사람은 받아주셨어요. 이 말씀은 우리 청소년들에게 묻습니다.

 

너는 어떤 선택을 할래? 힘들 때 원망할래? 아니면 하나님을 찾을까?

실수했을 때 숨어 버릴까? 아니면 인정하고 다시 돌아가 볼까?

 

어린이-청소년 여러분,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니에요.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에요. 오늘,

짧게라도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요? ‘예수님, 저를 기억해 주세요.’ 그 한마디면 충분하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고 계세요.

 

여러분의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 저를 기억해 주세요.’라고 기도할 수 있는 신앙인으로 서 주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복음서를 다시 여러분을 위해 풀어드립니다. 어느 날 아침이었을 겁니다. 그날은 해가 났습니다. 해골이라 부르는 언덕에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여러분도 지금 그 언덕에 나와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든 이유는 오늘 공개 처형이 있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중대 범죄자를 공개 처형하도록 하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참 잔인하죠. 이것이 로마가 다른 지역을 지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보겠다고 사람들은 모여듭니다. 사람 죽이는 일이 뭐가 그리 흥미로웠을지는 모르겠으나, 사람들은 모입니다. 공개 처형의 대상은 세 명입니다. 두 명은 강도인 듯하고, 다른 한 명은 다름 아닌 예수님입니다.

 

처형 방식은 잔인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들을 십자가에 묶고, 손과 발에 못을 박아 십자가를 세우는 겁니다.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그대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미성년자 관람불가임은 자명합니다. 그렇게 세 개의 십자가가 세워집니다.

 

예수님을 가운데로 두 죄수가 양 옆에 있습니다. 한 죄수가 예수님을 보며 말합니다. “너는 그리스도가 아닌가? 너와 우리를 구원하여라!”라고요.

 

다른 죄수가 말합니다. “똑같이 죽어가는 상황에 너는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은가? 우리야 우리가 지은 죄 때문에 벌을 받고 있지만, 이분은 아무 잘못한 것이 없단 말일세.”

 

이 말을 하고는 예수님께 말합니다. “예수님, 주님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상상력을 총동원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 개의 십자가, 거기에 매달려 있는 세 사람, 예수와 두 명의 흉악범. 공개 처형이라 함은 그들이 한 행위를 다시 하면 당신들도 이렇게 죽는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입니다. 죽을 일만 남은 두 흉악범은 삶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극명하게 달라집니다.

 

아무 말씀이 없으셨던 예수님, 한마디를 하십니다. 누가복음 2343절입니다.

43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그렇게 예수 옆에 있는 한 범죄자는 구원을 받게 됩니다. 여기에서 많은 사람이 이의를 제기합니다. ‘아니, 기껏 죄 지어놓고 마지막 말 한마디에 구원을 받는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제가요. 교회 50년 다녔어요. 제가요. 장로고요, 권사고요, 집사고, 성도이며, 목사입니다. 나도 구원받으려고 이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고작 말 한마디로 구원을 받는다니 이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혹시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나요?

 

교회에 다니지 않는 어떤 사람이 했던 말입니다. 그분 참 똑똑했어요. 합리적인 사람이었답니다. 어느 날 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안 믿으면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간다는데, 그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안 오셨으면 지옥갈 일도 없지 않냐고요. 오히려 예수님이 옴으로 인해 지옥가는 사람만 생기지 않았느냐고, 그래서 자기는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제가 뭐라고 그랬을까요? 믿지 마시라고 했습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그분의 태도가 십자가에 나란히 매달려 어이! 그리스도! 나 좀 구원해봐!’라고 말하는 사람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시기 전 예수를 조롱하고, 침 뱉고, 때렸던 사람들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어디 듣기나 하던가요?

 

교우 여러분. 이제부터 제 말을 잘 들으시고, 잊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가 구원에 대해 크게 착각하는 지점이 있어요. 구원의 전제는 믿음이라고 알고 있는 거죠. 맞는 말 아닙니까? 반만 맞아요. ‘믿음이라는 문자만 이해하면 그래요. 나머지 절반을 채우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회개입니다. 뉘우침요. 돌아봄요. 삶의 전환이요.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가장 극단적인 행동 양식이 바로 예수천당 불신지옥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지하철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여러분 그들을 존경하십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같은 신앙인인데 말이죠. 왜요? 뭔가 좀 이상해서요. 뭔가 부담스럽지 않나요? 뭔가 빠진 듯 보이지 않나요? 그게 회개란 말입니다. 돌이킴이요.

 

예수님 옆에 있던 한 죄수가 구원받은 이유는 예수를 믿어서가 아니라, 그 믿음 이전에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이 장면에 불만이 있는 신앙인이라면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대해 진심으로 주님 앞에 뉘우쳐 본 적이 있습니까? 라고요.

 

마땅한 벌을 받고 있다고 죄수가 말하는 것, 보신 적 있나요? 나는 아니라고, 너무 과한 형량이라고 저 사람 때문에 그랬다고 따지는 사람은 봤어도, 내 죄에 마땅한 벌을 받고 있다고 말하는 죄인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예수 옆에 있던 죄인이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겁니다. 회개했으니까요.

 

 

3. 이스라엘에 속담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으면, 아들의 이가 시다는 속담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아버지의 죄가 아들에게까지 이어진다는 말입니다. 조상의 죄로 인해 후대가 벌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이 속담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아십니까?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긴 포로기 상황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포로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을 바라보며 한탄한 말입니다. 우리 조상들의 죄로 인해 우리가 벌 받는 다고요.

 

이런 삶의 방식에 회개가 있을 수 있을까요? 돌이킴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에스겔 18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3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너희 가운데서 어느 누구도 다시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속담을 입에 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4절에서 말씀하시죠.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을 것이라고요. 아버지의 죄는 아버지가, 조상들의 죄는 조상들의 죄에서 끝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이런 패배주의적 사고에서 일어서라 에스겔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으니 21절입니다.

21 그러나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에서 떠나 돌이켜서, 나의 율례를 다 지키고 법과 의를 실천하면, 그는 반드시 살고, 죽지 않을 것이다.

 

돌이킴이 나옵니다. 회개가 또 나옵니다. 악인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밖에는 없습니다. 제가 복음서에서 드렸던 말씀을 구약에서 증명해 주고 있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구약의 시대에서도 불만 가득한 신앙인들 많았습니다. 확인합니다. 25절입니다.

 

25 그런데 너희는, 내가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 공평하지 못하다는 말을 하는구나.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는 잘 들어라. 내가 일하는 방법이 어찌 공평하지 않으냐? 너희가 하는 행실이 오히려 공평하지 않은 것이 아니냐?

 

여기는 하나님 탓하고 있네요. 그렇죠? 어쩜 이리 신약의 시대와 오늘의 시대와 소름 돋을 만큼 같을 수 있나요?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이 이때도 없었던 모양입니다. 자신의 행실이 공평하다고만, 자신의 생각만이 정의롭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25절의 말씀은 29절에서 토시하나 다르지 않고 반복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괜한 말씀을 반복하지 않아요. 꽤 중요한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주십니다. 32절입니다.

 

32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그가 죽는 것을 나는 절대로 기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희는 회개하고 살아라.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사는 법이 나옵니다. 무엇인가요? 대답해 보십시오. 회개입니다. 사순절, 회개로부터 시작해서 구원으로 끝을 맺는다고 누누이 말씀드렸습니다. 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사는 길은 돌이킴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4. 목사님! 그렇다면 오늘 서신서의 말씀은 목사님 설교에 반하는 말씀이지 않나요? 갈라디아서 216절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서신서로 마지막 말씀 여행을 떠납니다. 함께 읽습니다. 갈라디아서 216절입니다.

 

16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임을 알고,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받고자 했던 것입니다.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는, 아무도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말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하는군요. 제가 거짓말을 했든지, 사도 바울이 거짓말을 했든지 둘 중에 하나겠군요. 진실은 무엇일까요?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갈라디아 공동체에 일어났던 일을 알아야 합니다. 12절에 나오는데요. 제가 설명으로 대신합니다. 베드로가 이방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먹고 있었어요. 이방 사람이라는 것은 유대 사람이 아닌 사람을 의미하죠.

 

그러던 중에 야고보와 유대 사람 몇 사람이 온 거죠. 그때 베드로는 자신이 이방 사람들과 식사를 같이 한다는 것을 유대인들이 볼 것을 두려워하여 식사 자리를 떠나고 맙니다. 같이 있던 바나바도요. 바울은 이 장면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14절에서 이렇게 말하죠. 함께 확인합니다.

 

14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똑바로 걷지 않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 앞에서 게바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유대 사람인데도 유대 사람처럼 살지 않고 이방 사람처럼 살면서, 어찌하여 이방 사람더러 유대 사람이 되라고 강요합니까?”

 

사도 바울은 베드로가 이방 사람들을 차별했다고 나무라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오늘의 본문이 시작합니다. 15우리는 본디 유대 사람이요, 이방인 출신의 죄인이 아닙니다.”라고 하죠. 이제 다시 읽습니다. 16절입니다.

 

16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임을 알고,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받고자 했던 것입니다.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는, 아무도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해가 되는군요. 여기서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어떠한 행동을 의미하는 지 말입니다. 유대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방 사람과 식사하지 말아야 할 터인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그 믿음으로 하는 행동은 이방 사람과도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방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고, 함께 먹고 마실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믿음 있는 자들의 행동이라는 얘깁니다.

 

유대교가 말하고 있는 기존의 믿음을 흔들어버리는 새로운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말이죠. 그러니 율법을 행하는 행동이 아닌, 이방 사람과도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그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중요하네요. 한 존재를, 한 사람을, 존중하고 받아들임이 중요하네요. 왜요? 예수님은 율법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어둠 속 사람들을 건지러 오셨으니까요. 그것을 우리는 구원이라고 부르고, 그 예수님을 우리는 믿는 겁니다.

 

바울은 이어서 너무나 중요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20절입니다.

 

2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20절 마지막,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이 이니라,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라고요.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말이죠.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말로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내야 한다는 사실을 사도 바울은 믿음이라는 단어로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5. 은진교회 교우 여러분. 어떻게 다섯 주의 사순절 내내, 회개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이 나올 수가 있을까요? 저도 이번 사순절 기간, 너무 놀랐습니다. 세 본문을 보는 내내 회개란 단어가 나오더군요.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기억해 주십시오. 회개는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돌아봄은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부족했던 부분을 알게 합니다. 알면 신앙인은 뉘우치게 됩니다. 뉘우치게 되면 삶이 달라집니다. 삶이 달라지면, 새로운 신앙인으로 거듭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이제 다음 주일이면 사순절을 넘어 종려주일을 맞습니다. 다섯 주의 사순절 말씀을 마음 속 깊이 새기며, 다시 한번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으로 서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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