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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아름다운 분노 / 부활절 둘째주일 / 씨뿌림주일 장 본 목사 202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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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아름다운 분노

 

부활절 둘째주일

20260412

 

잠언 15:1-4

1 부드러운 대답은 분노를 가라앉히지만, 거친 말은 화를 돋운다.

2 지혜로운 사람의 혀는 좋은 지식을 베풀지만, 미련한 사람의 입은 어리석은 말만 쏟아낸다.

3 주님의 눈은 어느 곳에서든지,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을 모두 지켜 보신다.

4 따뜻한 말은 생명나무와 같지만, 가시돋힌 말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

 

 

1. 은진교회 교우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교우 여러분에게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목사님이 지하철에서 겪었던 상황 하나를 여러분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지하철을 탔는데 어느 역에서 중학생 네 명이 탑승했습니다. 교복을 입고 있어서 어느 학교인지도 다 알 수 있었지요. 그들이 대화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목소리가 큽니다. 그래요, 친구들끼리 있으면 무서울 것이 없는 나이죠.

 

하지만 대화 내용이 좀 충격적이었어요. 모든 대화의 시작은 설교에서 전하기 참 그렇습니다만, ‘x~’로 시작하여 xx~’으로 끝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도 청소년 시기엔 욕 좀 해 보고 살아봤어요.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정말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욕들의 행진이었습니다.

 

한 문장 절반 이상이 욕이었던 것 같아요. 이건 대화가 아니지요. 목소리는 어찌나 우렁차던지 그 욕을 듣던 지하철의 모든 사람이 그저 기가 막혀 학생들을 바라볼 뿐이었지요.

 

참다 참다 한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께서 학생들. 그렇게 욕을 많이 하면서 대화를 하면 쓰나.’라면서 점잖게 한마디 하셨어요. 정말 참 점잖게 한 말씀 하셨지요. 문제는 그 다음에 터졌습니다. 그중 한 명이 침을 찍 뱉으며 아니 씨X!’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저와 비슷한 연배의 남자 세 명이 동시에 일어나서, 그 다음부터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목사님 그때 꾹꾹 참았어요. 요즘 애들 무서우니까 건들면 안 돼. 시비 걸면 촉법소년이라고 일이 더 커질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참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단 한마디의 말 때문에 폭발해 버렸어요. ‘아이~ X!’

 

이전까지 꾹꾹 참아왔던 게 있었겠지만, 조언하는 어르신을 향한 그 한마디에 세 명의 사람이 더는 참을 수 없게 된 거죠. 무엇이 발단이라고 청소년 여러분은 생각하시나요?

 

그래요. 말입니다. 오늘 잠언의 말씀에서도 거친 말은 화를 돋운다고 전하고 있거든요. 살다보면 청소년 여러분도 화날 때 있어요. 물론 그럴 땐 화를 내야 하긴 한답니다. 삭히면 그것도 병되거든요. 하지만 화를 내는 것과 거친 말을 하는 것은 다른 거랍니다.

 

말은 외모를 제외하고는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이게 하는 첫 번째입니다. 말은 사람과 사람을 만나게 하는 시작입니다. 말은 나와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통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기도로 말할 때 욕하진 않잖아요.

 

간절히 원하기는 우리 청소년 여러분이 말로 상대방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신앙인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 말이 여러분을 부활의 삶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2.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부활, 아름다운 분노>입니다. 지난 부활주일 설교 제목 기억하시나요? <부활의 의미, 용서>였습니다. 지난 주일에 저는 예수님의 부활이 용서라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분노라고 하네요. 이건 또 무슨 의미일까요?

 

사람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러 차이가 있을 거예요.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신의 감정 상태를 정말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요. 그래서 사람을 감정의 동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동물이 감정이 없다는 것 아닙니다. 동물들도 분노, 기쁨 다 표현합니다. 다만 사람처럼 다양한 여러 감정 표현을 하는 동물은 없다는 거죠. 이렇게 사람은 감정을 지니고 살아가기에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고, 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평하고, 갖가지 감정을 아주 다양하게 표현하면서 살아갑니다.

 

사람 중에도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은 개개인이 모두 다릅니다. ‘저 사람 다혈질이야.’, ‘저 사람은 참 표현을 안 해.’ 이런 말들은 모두 상대방의 감정 표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20세기 들어서 이 감정에 대한 학문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지금은 수많은 갈래의 세부적인 학문의 영역들이 존재하지요. 대표적인 것이 심리학과 상담학입니다. 많은 상담학자와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은 바로 건강한 사람은 감정의 표현이 다양하고 아름답다는 겁니다.

 

우리가 기쁠 때는 웃습니다. 그런데 기뻐도 웃지 않는 사람은 감정에 상처를 입거나 어떤 이유가 있는 사람입니다. 남들이 모두 웃을 때 혼자 웃지 않는 사람도 모르긴 몰라도 어떤 이유가 있습니다. 즉 사람은, 웃어야 할 때는 웃고 울어야 할 땐 울어야 그것이 건강한 사람이 갖는 감정이라는 것이죠.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수많은 감정 중에 오늘은 분노에 대해 집중해 보고자 합니다. 분노는 어떤 불만스러운 감정의 표현입니다. 쉽게 말해서 내 맘에 딱히 안 들 때, 주로 일어나는 감정인 것이죠. 그런데 분노의 감정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상적인 감정의 표현 중 하나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분노라 하면 좋지 않은 감정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분노는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감정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잠언의 지혜자는 우리에게 분노의 몇 가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절을 함께 다시 읽습니다.

 

1 부드러운 대답은 분노를 가라앉히지만, 거친 말은 화를 돋운다.

 

분노라는 감정이 있기에 사람은 의욕을 가지고 그 분노를 정상적으로 연소시키면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불을 연상하면 됩니다. 적당한 불은 추운 겨울 우리를 따뜻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 불이 너무 과하게 되면 큰 사고가 나게 되고 생명에 위협이 되기도 합니다.

 

분노가 바로 불같은 것입니다. 자신의 분노를 촛불처럼, 한결같은 불꽃으로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분노가 치솟으면 마치 종이 위에 쓰러진 촛불처럼 아무도 말리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노에 불씨를 당기는 것이 있으니 오늘 1절에서 말하고 있는 단어, 바로 말입니다. 부드러운 대답. 부드러운 말이 분노를 가라앉힌다지요. 참 기막힌 표현입니다. 분노를 가라앉힌다. 촛불같이 한결같은 불꽃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반대로 거친 말은 화를 돋운다고 합니다. 새한글성경에서는 화를 치밀게 한다고 전합니다.

 

지금까지 이야기들을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우리의 감정이 내 속에서 조절되어 나올 때는 인간을 아름답고 건강하게, 또 행복해지도록 도와줍니다. 그런데 감정이 조절되지 않는 사람은 자기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거죠. 그 시작이 바로 말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3.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말을 어떻게 하십니까? 청소년을 위한 설교에서 지하철 그 칸에 있던 모든 사람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지난주 미국의 국방장관처럼 하나님을 전쟁의 도구로 사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신 첫 말은 평안하냐?”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말을 하는 사람입니까?

 

여러분께 권합니다. 제발 다른 사람의 분노를 치밀게 하는 말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나쁜 것은, 못된 것은 일부러 그런 말을 한다는 거죠. 화나라고, 성질나라고, 속상하라고 하는 거죠. 가족에게, 직장에서, 친구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까지 알면서 그렇게 말한다는 겁니다. 제발 그러지 마세요. 그것은 죄를 짓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4절을 함께 읽습니다.

4 따뜻한 말은 생명나무와 같지만, 가시돋힌 말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

 

마음을 상하게 하는 혀는 가시가 돋쳐 있습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마땅한 도리를 어기고 순리를 거스르는 혀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럼 저에게 이렇게 따질 분 있습니다. 목사님. 그럼 화를 내지 말라는 것입니까? 분노를 그저 삭히고만 있으라는 말입니까? 어떻게 참고만 삽니까? 저는 그렇게는 못 삽니다.

 

이 질문에 대답은 두 가지로 드립니다. 하나는 제 생각이고, 하나는 성경에 나온 그대로 풀어드립니다. 먼저 장 목사의 생각입니다. 분노를 그저 참고만 있으라고요? 아니지요. 그런데 자신이 분노할 때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냉정하게 생각해 보세요.

 

내가 옳은 일에 분노하고 있는지... 만약 옳은 일이라면 분노하십시오. 분노는 옳은 일에 내는 것이 맞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일 내가 화를 내고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세상이 내 맘대로 돌아가지 않아서 라던지,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없어서 분노한다면 그럴 땐 분노하면 안 되는 겁니다. 분노는 옳은 일에 내야하는 겁니다. 이건 장 목사의 해석이고요.

 

두 번째 해석, 성경대로 풀어드리는 해석에 왜 옳은 일에만 분노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2절과 3절을 함께 읽습니다.

 

2 지혜로운 사람의 혀는 좋은 지식을 베풀지만, 미련한 사람의 입은 어리석은 말만 쏟아낸다.

3 주님의 눈은 어느 곳에서든지,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을 모두 지켜 보신다.

 

혀는 두 가지 결과를 냅니다. 2절에 나오는 좋은 지식과 어리석은 말입니다. 3절에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악한 사람은 어리석은 말을 하는 사람, 선한 사람은 좋은 지식을 베푸는 사람이겠네요.

 

혀의 결과가 선과 악, 이 두 가지 말고는 다른 것은 없을까요? 없습니다. 무슨 말이냐면요,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선한 말이 아니면 악한 말 둘 중에 하나라는 뜻입니다. 중간이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은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을 모두 지켜 보신답니다.

 

여러분. 어느 쪽에 서시겠습니까? 어떤 말을 하시겠습니까? 이왕이면 아니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선한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 입에서는 다른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말, 화나게 하는 말, 그런 말 나오면 안 됩니다. 그게 선한 겁니다. 그게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그럼 분노해야 할 때는 언제입니까? 저는 분노해야 할 때라는 표현보다는 이런 표현을 쓰고 싶습니다. 오늘 제목이죠. “아름다운 분노라고요. 아름다운 분노를 해야 한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왜 아름다운 분노일까요?

 

그것이 하나님의 정의를, 평화를 지켜내는 분노이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후반, 우리는 수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포함한 이 세상의 민주화의 단초를 이루었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분노였습니다.

 

1990년대 노동자들의 피땀으로 말미암아 지금 여러분이 누리는 노동자의 권리를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이것도 아름다운 분노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교회만은 분노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교회는 은혜만을 이야기합니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분노해야 할 일을 회피합니다. 왜일까요? 얼굴 붉히기 싫으니까요.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 편안하고, 그러니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그래서 살이 뒤룩뒤룩 쪄가는데 걸을 수조차 없습니다. 아름다운 분노는 세상을 아름답게 합니다. 아름다운 분노는 세상을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정의로운 세상, 평화로운 세상으로 바꾸어 냅니다. 아름다운 분노는 교회를 균형잡힌 건강한 몸이 되게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전쟁에 끌어들인 미국 국방장관의 기도를 기억하시죠? 이 기도에 천주교 교황은 아름다운 분노를 외치는데, 정작 그 어떤 교회도, 그 어떤 개신교 교단도 그 기도에 침묵합니다. 되려 아멘으로 화답하기도 합니다.

 

마치 독일 나치 치하의 교회들 같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도 소수의 아름다운 분노가 하나님의 마음 편에 섰고, 그 소수가 역사를 건강하게 이어 갔습니다.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 같은 분들, 독일의 고백교회들 말입니다.

 

여러분! ‘아름다운 분노야 말로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 냅니다. 이전과는 다른 세상 말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거스르는, 주님의 가르침을 거스르는 일에 분노하는 아름다운 분노가 상대방을 생각하게 하고 배려하게 합니다. 예전엔 그리 모질게 대했는데 말입니다. 이것도 다른 세상입니다. 그래서 부활의 삶이 되는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아름다운 분노란 다른 표현으로 믿음의 용기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4. 이 시간, 분노에 관한 잠언의 말씀 몇 절을 함께 찾아 읽고 설교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잠언 1417절입니다.

 

17 성을 잘 내는 사람은 어리석은 일을 하고, 음모를 꾸미는 사람은 미움을 받는다.

29 좀처럼 성을 내지 않는 사람은 매우 명철한 사람이지만, 성미가 급한 사람은 어리석음만을 드러낸다.

1518절입니다.

18 화를 쉽게 내는 사람은 다툼을 일으키지만, 성을 더디 내는 사람은 싸움을 그치게 한다.

2922절입니다.

22 화를 잘 내는 사람은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기를 잘하는 사람은 죄를 많이 짓는다.

 

은진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기입니다. 기본기. 운동선수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기본기.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기이며 그 위에 기타 여러분이 바라는 모든 것이 쌓이게 됩니다.

 

그런데 그 기본기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나의 학력, 나의 경력, 나의 모든 것을 쌓으려고 해도, 쌓이지 않습니다. 쌓이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기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기본기의 첫 번째가 바로 입니다.

 

부활절 둘째주일, 여러분에게 부탁이 있습니다. 장 목사는 맨날 여러분에게 부탁만 합니다. 오늘도 부탁을 합니다. 제발 기억해 주십시오. 말을 아껴 하세요. 튀어나오는 게 다 말이 아닙니다. 말을 가려서 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의 기본을 세워 줄 것입니다.

 

나의 말 때문에 다른 사람을 분노하게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죄를 짓는 일입니다. 내가 남을 분노하지 않게 한다면 나도 말 때문에 분노할 일이 없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아름다운 분노를 위해서는 내 소중한 것들도 걸 수 있어야 합니다.

 

부활은 용서의 시작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셨어요. 단 한마디로 말입니다. “평안하냐?”고 물으셨습니다. ‘나를 죽인 너희에게 하나님이 복수하실 거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자비를 베풀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부활의 삶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를 살아내는 일입니다. 그 삶의 시작은 말에 있습니다. 삶은 말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말은 신앙인의 기본 중에 기본입니다. 부활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모르겠다면 오늘부터 따뜻한 말로 살아주십시오. 그렇게만 살아주십시오. 그 말이 우리를 부활의 삶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흔적, 용서의 흔적이 삶에서, 말에서 드러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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