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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마음이 괴로워서 죽을 지경이라도... / 부활절 넷째주일 | 장 본 목사 | 2026-04-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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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 부활, 마음이 괴로워서 죽을 지경이라도... 부활절 넷째주일 20260426 사사기 16:4-22 4 그 뒤에 삼손은 소렉 골짜기에 사는 어떤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의 이름은 들릴라였다. 5 블레셋 사람의 통치자들이 그 여자를 찾아와서 말하였다. “당신은 그를 꾀어 그의 엄청난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를 잡아 묶어서 꼼짝 못 하게 할 수 있는지 알아내시오. 그러면 우리가 각각 당신에게 은 천백 세겔씩 주겠소.” 6 그래서 들릴라가 삼손에게 물었다. “당신의 그 엄청난 힘은 어디서 나오지요? 어떻게 하면 당신을 묶어 꼼짝 못 하게 할 수 있는지 말해 주세요.” 7 삼손이 그에게 말해 주었다. “마르지 않은 푸른 칡 일곱 매끼로 나를 묶으면, 내가 힘이 빠져서 여느 사람처럼 되지.” 8 그리하여 블레셋 사람의 통치자들이 마르지 않은 푸른 칡 일곱 매끼를 그 여자에게 가져다 주었고, 그 여자는 그것으로 삼손을 묶었다. 9 미리 옆 방에 사람들을 숨겨 놓고 있다가, 그에게 “삼손,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에게 들이닥쳤어요!” 하고 소리쳤다. 그러나 삼손은 그 밧줄을 불에 탄 삼 오라기를 끊듯이 끊어 버렸다. 그의 힘의 비밀은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자 10 들릴라가 삼손에게 말하였다. “이것 봐요. 당신은 나를 놀렸어요. 거짓말까지 했어요. 무엇으로 당신을 묶어야 꼼짝 못 하는지 말해 주세요.” 11 삼손이 그에게 말하였다. “한 번도 쓰지 않은 새 밧줄로 나를 꽁꽁 묶으면, 내가 힘이 빠져서 여느 사람처럼 되지.” 12 들릴라는 새 밧줄을 가져다가 그것으로 그를 묶었다. 미리 옆 방에 사람들을 숨겨 놓고 있다가, 그에게 “삼손,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에게 들이닥쳤어요!” 하고 소리쳤다. 그러나 삼손은 자기 팔을 묶은 새 밧줄을 실오라기 끊듯이 끊어 버렸다. 13 그러자 들릴라가 삼손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여전히 나를 놀리고 있어요. 여태까지 당신은 나에게 거짓말만 했어요! 무엇으로 당신을 묶어야 꼼짝 못 하는지 말해 주세요.” 삼손이 그에게 말하였다. “내 머리칼 일곱 가닥을 베틀 날실에 섞어서 짜면 되지.” 14 그 여자는 그것을 말뚝에 꽉 잡아 매고, 그에게 “삼손,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에게 들이닥쳤어요!”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삼손이 잠에서 깨어나 말뚝과 베틀과 천을 뽑아 올렸다. 15 들릴라가 그에게 또 말하였다. “당신은 마음을 내게 털어놓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가 있어요? 이렇게 세 번씩이나 당신은 나를 놀렸고, 그 엄청난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아직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어요.” 16 들릴라가 같은 말로 날마다 끈질기게 졸라대니까, 삼손은 마음이 괴로워서 죽을 지경이 되었다. 17 하는 수 없이 삼손은 그에게 속마음을 다 털어 놓으면서 말하였다. “나의 머리는 면도칼을 대어 본 적이 없는데, 이것은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 사람이기 때문이오. 내 머리털을 깎으면, 나는 힘을 잃고 약해져서, 여느 사람처럼 될 것이오.” 18 들릴라는 삼손이 자기에게 속마음을 다 털어놓은 것을 보고,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의 통치자들에게 전하였다. “한 번만 더 올라오십시오. 삼손이 나에게 속마음을 다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의 통치자들이 약속한 돈을 가지고 그 여자에게 올라왔다. 19 들릴라는 삼손을 자기 무릎에서 잠들게 한 뒤에, 사람을 불러 일곱 가닥으로 땋은 그의 머리털을 깎게 하였다. 그런 다음에 그를 괴롭혀 보았으나, 그의 엄청난 힘은 이미 그에게서 사라졌다. 20 그 때에 들릴라가 “삼손! 블레셋 사람들이 들이닥쳤어요!” 하고 소리쳤다. 삼손은 잠에서 깨어나 “내가 이번에도 지난 번처럼 뛰쳐 나가서 힘을 떨쳐야지!” 하고 생각하였으나, 주님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였다. 21 블레셋 사람들은 그를 사로잡아, 그의 두 눈을 뽑고, 가사로 끌고 내려갔다. 그들은 삼손을 놋사슬로 묶어, 감옥에서 연자맷돌을 돌리게 하였다. 22 그러나 깎였던 그의 머리털이 다시 자라기 시작하였다. 1. 이 자리에서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교우 여러분에게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구약에 나오는 유명한 인물 중 하나인 삼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꽤 재미난 이야기죠. 그래서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을 여러분을 위한 말씀과 합하여 전해드립니다. 우리 청소년들도 잘 들어보세요. 제가 어렸을 적 교회에 가서 제일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어린이부 선생님께서 무슨 이야기를 해주는 시간이었지요. 매주 그 내용은 바뀌었습니다. 저와 같이 있던 아이들도 내내 떠들다가 그 선생님만 나오면 조용히 선생님께서 해주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이야기를 너무나 재미있게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간은 설교시간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들었던 수많은 설교 중에 아직도 기억나는 설교가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야곱 이야기였고, 다른 하나는 오늘 본문의 삼손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두 이야기 모두 재미있어서 기억에 남은 것이 아니었어요. 그 시절 야곱의 이야기를 듣는데 자꾸 선생님이 야곱을 착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야곱은 형의 것을 빼앗았잖아요. 저는 엄마한테 다른 사람 것을 빼앗으면 나쁜 사람이라고 배웠거든요. 그런데 야곱은 착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게다가 그 이야기를 해주시던 선생님은 다름 아닌 저의 엄마였거든요. 그러니까 어린 나이에 너무 헷갈리는 거예요. 집에서는 엄마가 남의 것을 빼앗으면 나쁜 사람이라고 그랬는데, 야곱은 형의 것을 빼앗았고, 그런데 야곱은 착한 사람이라고 하고,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저의 엄마고... 이런 식으로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또 하나 있으니 바로 삼손 이야기입니다. 교우 여러분. 삼손 이야기 다 들어보신 적 있으시죠? 그런데 혹시 지금, 삼손에 관해 무엇이 기억에 남아 있나요? 제가 어렸을 때 들었던 이야기 중 삼손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첫째 머리가 길었다. 둘째 머리가 일곱 가닥밖에 없었다. 셋째 그 머리카락이 없으면 힘을 쓰지 못했다. 이렇게 세 가지였습니다. 왜 세 가지가 지금까지 기억나는지 아세요? 삼손 이야기를 듣고 어린 나이에 제가 머리를 좀 기른다고 고집을 피웠거든요. 제가 지금은 좀 퉁퉁해도 어렸을 적엔 누나들에게도 맞고 자랄 정도로 비실비실 댔거든요. 힘이 세지고 싶었던 거예요. 그런데 머리카락이 길면 힘이 세진다잖아요. 게다가 삼손은 머리카락이 일곱 개래요. 사실이 아니라 제가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 거니 이해해 주세요. 지금도 제가 왜 어린 시절 삼손의 머리카락이 일곱 가닥으로 기억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저는 대충 머리카락을 뽑아도 일곱 개는 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머리카락을 기르면 삼손보다 더 힘이 세질 수 있다는 나름대로 결론에 도달한 거죠. 어렸을 적 저에게 삼손은 꿈과 희망을 가져다준 존재였습니다. 참 순진무구했죠?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 사사기를 읽어보니, 제가 어릴 적 생각했던 삼손과는 너무나 다른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었던 이야기보다 제가 모르고 있던 이야기들이 더 많았던 것이지요. 여우 꼬리에 불을 붙여 블레셋 사람의 밀밭을 불태워 버린 사건도 어른이 돼서야 알 수 있었고, 어린 사자를 손으로 죽인 사건도, 나귀 턱뼈로 블레셋 사람 일 천명을 죽인 사건도 어른이 돼서 제대로 알게 되었지요. 그런데 모든 이야기를 제대로 알고 나서도 삼손을 생각하면 머리카락밖에 떠오르지 않는 것은 그만큼 어렸을 적 느꼈던 아우라가 강해서인가 봅니다. 저는 이제 목사가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목사가 되어 다시 읽은 삼손은 어렸을 적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던 슈퍼맨 삼손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어렸을 적 느꼈던 삼손에 대해 여러분과 함께 말씀으로 재정립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지요. 삼손 이야기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2. 삼손. 삼손은 훈남이었습니다. 기골도 장대하고, 게다가 잘 생기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 삼손만큼 여성 관계가 복잡했던 인물도 없었습니다. 삼손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좋아하고 사모하던 여인과의 관계가 이야기의 큰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삼손 이야기가 나오는 사사기의 내용 중 어떤 사건도 여성과 관계되지 않은 일이 없습니다. 이런 사실 때문에 삼손이 구약의 중요한 사사의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이지만은 않지요. 여인의 마음 때문에 삼손이 하나님을 버렸다는 논리입니다. 여러분은 삼손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본문은 삼손 이야기 중 후반부에 해당합니다. 이미 20여 년간 이스라엘 민족에겐 사사로, 블레셋 사람에게는 제거해야 할 원수로 여겨진 삼손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사기 16장 1-3절에서는 삼손을 암살하려고까지 했지만 실패하고 맙니다. 죽여야 하는 삼손인데 죽지를 않습니다. 게다가 너무나 힘이 세서 블레셋 사람 중에는 감당할 자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삼손은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지요. 들릴라라는 여인입니다. 결국, 삼손은 스스로 무너지게 됩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삼손은 힘이 아닌 전혀 엉뚱한 이유로 인해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힌 것이지요. 그들은 삼손을 이길 힘은 없었지만, 삼손을 무너뜨릴 다른 계획이 있었던 겁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첫 번째 사실이 있습니다. 삼손은 스스로 망했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힘에 대한 비밀을 들릴라에게 고백했기에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혀 머리를 깎이고 눈을 뽑히게 되지요. 스스로 망했다는 말은 어쩌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겠군요. 마음가짐의 문제라고 해 두죠.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났으니까요. 어쩌면 우리의 삶도 삼손과 닮은 구석이 많을지 모르겠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일로 인해 내 삶과 신앙을 져버리는 일이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내가 음악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기타도 치고, 노래도 웬만큼 합니다. 그 사람만 무대에 서면 모두가 환호성을 보냅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라면 그저 음악을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더 좋은 노래를 만들고, 더 잘 부르기 위해 어제보다 더 열심히 연습할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더 훌륭한 음악가가 될 테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멋진 음악가가 혹해서 마약을 하게 됩니다. 결국, 내가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내가 잘하는 것은 음악이었습니다. 그런데 내 인생을 망치게 된 것은 음악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이런 상황은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계신 교우 여러분, 각각 자신만의 신앙생활을 하는 방식이 있을 것입니다. 아마 오늘 이 예배의 자리에 나온 것도 내가 여기서 열심히 찬양하고 기도하며 말씀 받는 것이 내 삶에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예요. 어떤 분은 그래서 아침기도회도 나오시고, 여러 사역으로 봉사도 하시고 그렇게 열심히 살아갑니다. 각자 자신의 신앙을 조율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마주친 어떤 교우의 말 한마디에 큰 상처를 받아 그렇게 잘 나오던 분이 교회를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 말 한마디가 나의 믿음에 균열을 냅니다. 믿음이 그렇게 좋았는데, 믿음 하나만은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무너지는 것은 말 한마디였다는 사실이지요.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일이잖아요. 사람이요, 내가 잘하는 것으로 망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야구선수 투수가 공을 잘 던지는데, 공을 잘 던져서 망하는 투수 보셨습니까? 내가 일을 잘합니다. 그런 사람이 일 때문에 망하는 것 보셨습니까? 삼손이, 힘이 정말 세서 대적할 이가 없었는데, 삼손이 힘에 밀려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혔냐는 말씀입니다. 내가 잘하는 것 때문에 망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뜻밖에도 다른 이유 때문에 힘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거죠. 3. 저는 오늘 사사기에 나오는 삼손의 이야기가 이렇게 됐고, 저렇게 됐고를 말씀드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삼손이 무너지게 된 이유, 우리 이미 다 알고 있어요. 힘의 원천이 어디에서 오는가라고 묻는 들릴라의 계속되는 요구에 대답한 결과로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16절입니다. 16 들릴라가 같은 말로 날마다 끈질기게 졸라대니까, 삼손은 마음이 괴로워서 죽을 지경이 되었다. 마음이 괴로워서 죽을 지경이 된 것이 문제입니다. 개역개정 성경에는 마음이 번뇌했다고 표현합니다. 내가 그리도 잘하는 것이 있는데, 다른데 마음을 빼앗기니 무너집니다. 은진교회 교우 여러분. 지금 내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십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것 말고도 내가 하나님 앞에 서서 당당하게 잘할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옆에 있는 교우와 이렇게 인사해 봅니다. ‘마음 괴로워하지 맙시다’ 20절입니다. 20 그 때에 들릴라가 “삼손! 블레셋 사람들이 들이닥쳤어요!” 하고 소리쳤다. 삼손은 잠에서 깨어나 “내가 이번에도 지난 번처럼 뛰쳐 나가서 힘을 떨쳐야지!” 하고 생각하였으나, 주님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였다. 20절 하반절. “주님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였다.” 이게 더 큰 문제입니다. 마음이 번뇌한 결과 삼손은 힘의 원천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된 줄을 모르고 있는 겁니다. 여전히 괜찮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주님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 겁니다. 그것도 모른 채, 내가 예전의 삼손인 줄 알고 '힘을 떨쳐야지!' 외칩니다. 마음이 괴롭고 번뇌한 결과가 이렇게 무섭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 마음이 번뇌한 결과가 결국 하나님을 떠나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을 거꾸로 생각해 보면 그동안 삼손이 승승장구한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이라는 거죠. 기도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신앙인이 있습니다. 바쁘니까요. 말씀 없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신앙인이 있습니다. 내 코가 석 자인데요 뭘. 그냥 옛날처럼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세상만사 다 귀찮거든요. 이런 모습들, 삼손이 자신의 상황을 깨닫지 못한 모습의 오늘날 버전입니다. 겉으로는 여전히 신앙생활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하나님 없이도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지고 있어요. 내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저버린 생각들로 꽉 차 있어요. 이를테면 전쟁이 일어났는데, 이럴 땐 방산 주식을 사야 돈 벌 기회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마음속에 ‘자본주의 가치관’으로 가득 차 있는 거죠. 전쟁으로 사람이 죽어가는데, 내 머리 속에는 나도 모르게 돈 벌 궁리가 떠오릅니다. 신앙인이면서도 가치의 혼동이 벌어집니다. 여러분, 간절히 원하기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모여 예배드리는 오늘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으로 세상이 주는 가치의 혼동을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마음 빼앗길 일이 왜 이리도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럴 때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무엇을 꼭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잘하는 일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 신앙’이라고 하잖아요. 다 믿으시잖아요. 그래도 혹시, ‘내 마음이 괴롭고 번뇌한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22절을 함께 읽으며 마지막 메시지를 받습니다. 22 그러나 깎였던 그의 머리털이 다시 자라기 시작하였다. 삼손은 마음이 번뇌한 결과로 머리카락이 잘리고 힘의 원천을 잃은 채, 맷돌을 굴리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그 힘의 원천인 머리카락이 다시 생겨나고 있다는 말로 마무리합니다. 그래요. 마음이 번뇌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인지라 마음이 괴로워 하나님과 잠시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괴로운 우리의 마음을 다시 자라게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삼손의 잘린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나게 하신 것처럼 말이죠. 삼손에게 부활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5. 은진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은 부활절 넷째주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인정하는 신앙인입니다. 부활은 단순히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건이 아니라고 누누이 말씀드렸습니다. 부활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완전한 새로운 시작입니다. 마음이 괴로워도, 번뇌하여도 부활을 인정하는 신앙인은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혹시 이 자리에 삶이 무너진 것 같은 상황에 처한 분 계십니까? 내 믿음과 신앙이 예전 같지 않다고 여기시는 분 있습니까? 기도가 끊어지고, 하나님과 멀어진 것 같은 분 계십니까? 그렇다면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삼손의 맨머리에 머리카락을 다시 나게 하신 이는 주님이셨음을요. 우리는 그보다 더 크고 깊은 부활의 은혜를 받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부활은 완전히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선언이며 가능성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세요.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 단절된 삶을 다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이전과는 다른 새 삶을 시작했습니다. 하여 부활을 인정하는 신앙인이라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라도 그 마음의 번뇌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 ‘나는 주님과 함께 살겠다’ 고백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인정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마음 괴롭고 번뇌하지 않고, 그 마음을 하나님께 두고 다시 자라게 하시는 주님을 느끼며 부활의 생명을 굳게 의지하고, 이전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아름다운 신앙인의 삶을 살아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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