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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첫 사랑. / 부활절 셋째주일 | 장 본 목사 | 2026-04-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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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 부활, 첫 사랑. 부활절 셋째주일 20260419 마가복음 16:14-20 14 그 뒤에 열한 제자가 음식을 먹을 때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이 믿음이 없고 마음이 무딘 것을 꾸짖으셨다. 그들이,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5 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나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여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을 것이다. 17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표징들이 따를 터인데, 곧 그들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으로 말하며, 18 손으로 뱀을 집어들며, 독약을 마실지라도 절대로 해를 입지 않으며, 아픈 사람들에게 손을 얹으면 나을 것이다.” 19 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뒤에, 하늘로 들려 올라가셔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으셨다. 20 그들은 나가서, 곳곳에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일하시고, 여러 가지 표징이 따르게 하셔서, 말씀을 확증하여 주셨다. 1. 은진교회 교우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교우 여러분에게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별로 궁금하지 않을 이야기 하나 해 드릴게요. 제가 어떻게, 누군가로 인해 목사가 되었을까 하는 이야기랍니다. 전혀 궁금하지 않죠? 그래도 한번 들어보세요. 저는 원래 ‘공돌이’였습니다. 목사님 고등학교 다닐 땐 문과, 이과, 예체능 이렇게 나뉘어서 대학입시를 준비했어요. 문과는 인문대학 진학을, 이과는 공과대학, 예체능은 음대, 미대, 체육대학을 목표로 입시를 준비했지요. 이과를 선택해서 대학을 가는 친구들을 뭉뚱그려 ‘공돌이’라고 표현했답니다. 제가 공돌이라는 건 제 첫 번째 전공이 기계설계학과였거든요.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당시에는 문과를 선택해야 했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왜 이과를 선택했는지 아세요? 목사가 되기 싫어서였어요. 목사였던 아버지께서 초등학생 시절부터 목사되라고, 목사되라고 수천 번은 말씀하셨거든요. 제일 듣기 싫은 말이었답니다. 저는 목사안되겠다고, 목사안되겠다고 하면서 선택한 전공이 기계설계였던 거죠. 그렇게 기계설계를 공부하면서 음악을 하기 시작했어요. 기타도 치고, 노래도 부르고 등등요. 그 음악이 교회에서 하던 음악이어서, 그게 너무 좋아서 기계설계 공부도 그만두고 음악을 했어요. 그렇게 스물여덟 살이 되었답니다. 스물일곱 살부터였을 거예요. 어떤 목사님하고, 전도사님하고, 저하고 셋이서 전국 교회를 다니면서 찬양집회를 다녔었답니다. 사람들이 모이고, 불러주는 곳은 어디라도 갔었어요. 집회하던 교회마다, 모였던 사람들은 대부분 여신도분들이었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 있었어요. 찬양하고, 말씀 듣고, 함께 기도를 하는데 어느 교회를 가든, 어떤 성도님들을 만나든 그렇게 열심히 찬양을 하고, 너무 뜨겁게 기도를 해서 눈물을 흘리고, 집회를 마치고 나면 앞으로 나오셔서 너무 고맙다고, 너무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시는 거였어요. 저은 궁금했답니다. ‘저분들이 저렇게 감동을 받는 이유가 무얼까?’, ‘저분들이 저렇게 눈물로 기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치 삶의 어려움에서 어떤 해결의 실마리를 만난 것 같은 표정이었거든요. 저는 그때 저를 데리고 함께 다녀주신 목사님에게 마음으로 깊이 감사했답니다. 그 목사님은 그러셨거든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일은 그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요.’ 제가 그때 할 수 있는 것들은 그저 남보다 기타를 조금 잘 쳤던 것, 노래를 조금 잘 부를 수 있었던 일이 전부였거든요. 그 일로 여러 사람에게 감동을 줍니다. 말씀으로, 모인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칩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을 존경하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저는 스물여덟 살에 문과를 다시 선택해서 수능시험 준비를 하고 신학교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작년에 여러분도 만난 적 있던 제 형이기도 한 장 빈 목사님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냐면요. ‘첫사랑’ 이야기하고 싶었던 겁니다. 누구에 대한 첫사랑일까요? 주님에 대한 첫사랑입니다. 그 첫사랑을 스물여덟 살에야 느끼고 지금에 이르게 된 거죠. 청소년 여러분이 주님에 대해 그 사랑을 고백할 날이 언제일까요? 이미 했을 수도, 앞으로 할 수도 있겠지요. 간절히 바라기는 여러분 신앙의 ‘첫사랑’만큼은 꼭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부활의 삶을 잘 살고 계십니까? 용서로 오신 예수님,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가 우리 일상에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부활주일을 시작으로, 5월까지 부활 절기를 살아갑니다. 부활! 주님의 부활을 믿는 우리에게 어떤 모습의 삶이, 부활하고 있는지요? 우리 속에 부활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오늘 함께 생각해 봅니다. 제 첫사랑 이야기 잘 들으셨죠? 주님에 대한 첫사랑 말입니다. 여러분은 그 첫사랑을 언제 경험하셨습니까? 올해 우리 교회 표어가 “살아계신 하나님, 처음 사랑을 회복하게 하소서!”입니다. 그 사랑 확인하며, 회복하며 살아가고 계시는지요? 여기 예수님을 첫사랑으로 만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암울한 사회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기 어려웠던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세상을 알았습니다. 약한 자도 강할 수 있고, 가난한 자도 풍요로울 수 있으며, 권력이 있든 없든, 한 사람이 소중한 세상 말입니다. 제자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새로운 길을 걷게 한, 첫사랑입니다. 그 주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첫사랑을 잃었어요. 삶이 다시 과거와 다름없이 똑같아지려나 봅니다. 저들은 우울한 세상에 다시 내팽개쳐진 기분이었겠지요. 열한 제자가 모여 있지만, 예수님은 그 자리에 없습니다. 제자들은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음식만 먹고 있습니다. 아무리 돌이켜 보아도, 골고다 언덕 위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며 돌아가신 그들의 첫사랑이자 선생님, 예수님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으니까요. 영혼에 봄을 주셨던 분, 그 주님께서 너무나 무력하게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헤어나오기 어려운 ‘침묵’이 그들을 감쌌습니다. 그런데 여인들이 나타나 그 어두운 분위기를 바꿉니다.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라고 마가복음은 전합니다. 이 여인들은 돌아가신 예수님이 너무 그리워,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갔다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가지고 제자들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제자 가운데 누구도 그 말을 곧이듣지 않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죽은 사람이 살아나다니요, 무슨…. 그런데 며칠 후에는 고향 엠마오로 되돌아가던 두 제자도 돌아와서는 예수님이 살아계시다고 말합니다. 그 역시 믿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는 증언은 애써 가라앉혔던 두려움과 절망감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었습니다. 십자가 그날의 기억이 더 선명하게 떠오르니까요. 그러니 음식을 먹는 식사 자리가 그리 밝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이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직접 그들 앞에 나타나십니다. 마가복음 16장 14절입니다. 14 그 뒤에 열한 제자가 음식을 먹을 때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이 믿음이 없고 마음이 무딘 것을 꾸짖으셨다. 그들이,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자들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은 먼저 꾸짖으시네요. 믿음이 없음을, 마음이 무딘 것을 말입니다. 자신이 살아난 것을 본 이들의 말을 제자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그토록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조차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무덤가에서 울던 마리아도 그랬고,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도 그랬으며, 디베랴에서 물고기를 잡던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주님의 3년 공생애 기간, 가장 가까이에서 지냈던 그들조차, 부활하신 주님을 즉각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부활은 믿음의 눈이 아니고는, 우리 마음의 눈이 새롭게 열리지 않고서는, 그 부활의 현실을 알아차릴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른 모습으로, 지금 우리 가운데 현존하고 계시니 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생명의 힘이,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부활 사건이 2000여 년 전,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역사로만 남는 한, 우리는 십자가의 은혜도, 부활의 능력도 알아챌 수 없습니다. 예수의 부활은 우리 삶을 통해 경험되고, 되살아나야 하니까요. 3. 이제 부활 후 제자들을 찾아가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새로운 소명을 주십니다. 15절입니다. 15 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나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여라.” 전해야 할 복음은 무엇일까요? 생명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세상에서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며 살지만,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그리스도의 생명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바로 그 증거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들의 삶에는 다시 생기가 돌았습니다. 위축되었던 어깨를 다시 펴게 되었습니다. 꼭꼭 닫고 숨어 있던 골방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여전히 가진 것 없었고 십자가 죽음도 변함없는 사실이었지만, 또 그들이 살아갈 세상의 악함도 그대로이지만, 그들의 영혼에는 지금 우리가 만나고 있는 봄이 다시 왔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처음 제자가 되었던 그 순간처럼 그들의 삶에 다시 힘이 차올랐습니다. 주님은 승천하실 터이니 이전처럼 얼굴 맞대며 살지는 못할 겁니다. 그래도 그들은 마음의 고향처럼, 첫사랑처럼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가슴에 품고 새로운 삶을 걸어갈 것입니다. 그 새로운 삶을, 마가복음에서는 몇 가지로 표현합니다. 17절입니다. 17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표징들이 따를 터인데, 곧 그들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으로 말하며, 첫째, 17절 앞부분, 표징입니다. 어떤 표징이냐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여러 것들, 우리 마음을 이리저리 혼란스럽게 하는 것들을 쫓아내는 담대함이 생깁니다. 조바심과 이기심과 소비주의에 매인 마음, 폭력을 부추기는 상황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함부로 파괴하는 마음, 이런 것들을 이기는 힘은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옵니다. 믿으셔야 합니다. 둘째, 17절 뒷부분, 부활의 능력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새 방언을 말하게 됩니다. 이상한 언어를 갖게 되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누구나 그 의미를 알아들을 새로운 말, 모두의 가슴에까지 미치는 언어, 공감의 언어입니다. 연민의 말입니다. 사랑의 언어입니다. 지난주일 말에 대해 내내 말씀드렸잖아요. 이것이 새로워진 이들의 방언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언어, 새 방언으로 말하는 그곳에 용서로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가 깃듭니다. 셋째, 18절입니다. 18 손으로 뱀을 집어들며, 독약을 마실지라도 절대로 해를 입지 않으며, 아픈 사람들에게 손을 얹으면 나을 것이다. 부활의 능력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뱀을 집어들며 독약을 마실지라도 절대로 해를 받지 않는다고 전합니다. 문자로만 이해하는 사람에게 이 말씀은 참 위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뱀과 같은 세상의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우리를 해하려는 독과 같은 힘에도 굴하지 않는 믿음의 든든함을 일컫는 구절입니다. 고난을 당해도, 감옥에 갇혀도, 미움과 시기의 뱀에 물려도 흔들림이 없는 이를 누가 해할 수 있겠습니까? 넷째, 18절 후반부, 부활의 능력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아픈 사람에게 손을 얹으면 나을 것이라 하십니다. 세상에는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이들이 참 많습니다. 냉정한 사회에서 위축된 사람, 불공정한 사회에서 지친 사람, 세상에서 존중받지 못하다 보니, 스스로 자신을 학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 그들을 어루만져 낫게 하는 것 부활 신앙이 나아갈 길입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 다 아는 노래 하나 불러드릴게요. ‘엄마 손은 약손~ 린이 배야 나아라.’ 다 아시죠? 어린 시절 배앓이를 할 때 어머니는 아이의 배를 손으로 쓸어주면서 이 노래를 불러주셨습니다. ‘엄마 손은 약손~’ 그러면 거짓말처럼 배가 아프지 않았습니다. 엄마 손이 약손인 까닭은 무엇일까요? 사랑의 손이기 때문입니다. 엄마의 사랑이 우리 배앓이를 고쳐줍니다.
주님이 손을 내밀어, 환자들의 환부를 어루만질 때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랑의 손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은 이제 우리가 당신의 손이 되어 세상을 어루만지고 치유하기를 기대하십니다. 4. 2026년 오늘, 우리는 부활절 셋째주일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삶이 주님 부활의 증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을 새한글성경으로 여러분에게 읽어드립니다. “이런 것들을 내가 그대들에게 미리 말해 둔 것은 그대들이 내 안에서 평화를 누리게 하려는 겁니다. 세상에서는 그대들이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나 힘내세요! 바로 내가 세상을 이겼습니다!”(요17:33) 이 말씀을 여러분 가슴에 새기기 원합니다. 가족과 떨어져 먼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일이 고되고 힘들 때마다 소중하게 간직한 사진을 들여다보듯이, 부활하신 주님을 새기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불안하고 어두운 실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서두에 했던 질문을 다시 드리겠습니다. ‘우리 삶에는 무엇이 부활하고 있습니까?’ 가진 것 없지만, 당당하기 이를 데 없었던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 안에서 살아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부활 앞에서, 가치 있는 삶의 첫사랑을 회복했던 제자들의 신앙이 우리에게도 살아나기를 원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으로 또 한 주간, 힘찬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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