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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쉼', 거룩의 완성 / 주현절 여섯째주일 장본 목사 2024-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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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 거룩의 완성

 

주현절 여섯째주일

신학교육주일

20240211

 

창세기 2:1-3

1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다 이루셨다.

2 하나님은 하시던 일을 엿샛날까지 다 마치시고, 이렛날에는 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

3 이렛날에 하나님이 창조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으므로, 하나님은 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로마서 14:1-8

1 여러분은 믿음이 약한 이를 받아들이고, 그의 생각을 시비거리로 삼지 마십시오.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믿음이 약한 사람은 채소만 먹습니다.

3 먹는 사람은 먹지 않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사람은 먹는 사람을 비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도 받아들이셨습니다.

4 우리가 누구이기에 남의 종을 비판합니까? 그가 서 있든지 넘어지든지, 그것은 그 주인이 상관할 일입니다. 주님께서 그를 서 있게 할 수 있으시니, 그는 서 있게 될 것입니다.

5 또 어떤 사람은 이 날이 저 날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이 다 같다고 생각합니다. 각각 자기 마음에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6 어떤 날을 더 존중히 여기는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요, 먹는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먹으며, 먹을 때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먹지 않는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먹지 않으며, 또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7 우리 가운데는 자기만을 위하여 사는 사람도 없고, 또 자기만을 위하여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8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마가복음 2:23-3:6

23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다. 제자들이 길을 내면서, 밀 이삭을 자르기 시작하였다.

24 바리새파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어찌하여 이 사람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2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릴 때에,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를 너희는 읽지 못하였느냐?

26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사장들 밖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제단 빵을 먹고, 그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27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

28 그러므로 인자는 또한 안식일에도 주인이다.”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런데 거기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2 사람들은 예수를 고발하려고, 예수가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를 보려고, 예수를 지켜보고 있었다.

3 예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가운데로 나오너라.”

4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그들은 잠잠하였다.

5 예수께서 노하셔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들의 마음이 굳어진 것을 탄식하시면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손을 내밀어라.” 그 사람이 손을 내미니, 그의 손이 회복되었다.

6 그러자 바리새파 사람들은 바깥으로 나가서, 곧바로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를 없앨 모의를 하였다.

 

 

 

은진교회 교우들과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께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시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어린이-청소년 설교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을 위한 설교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부른 노래는 똑같은 건 없어요라는 노래에요. 그 노래 가사를 함께 볼까요? 하나님께서 주신 세상에 똑같은 건 없다고 말해요. 생긴 것도 다르고요. 여러분이 가진 마음도 다 달라요. 시험을 보거나, 달리기를 하면 일등이 있고 꼴지가 있지만, 하나님 주신 세상에는 그런 건 없어요. 그저 다를 뿐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나무도, 꽃들도, 길가에 돌멩이 하나도 똑같은 건 없답니다. 그저 다 다를 뿐이지요.

 

그렇게 다른 여러분이 함께 은진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어요. 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같이 있어요.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우리가 그 다름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기 때문이에요.

 

린이는 시온 오빠를, 서진이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있다고요. 시온이는 린이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있어요. 있는 그대로 보고 있다는 말은 나와는 다르지만, 그 사람을 조금은 믿고 있다는 걸 뜻해요.

 

노래에서 우리는 모두 한 가족이라고 해요. 당연히 정말 가족은 아니죠. 그런데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이라고 해요. ‘하나님 안에서라는 말은 눈에 보이는 그 다름을 그저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랍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이 주변의 친구들을 그저 있는 그대로 보고, 인정하고 이해하면서 커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가 여러분의 삶을 건강한 신앙인으로 커갈 수 있게 할 것입니다.

 

 

0.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 홈페이지 교회 소개에 있는 글을 읽어 드리며 여러분을 위한 말씀을 시작합니다.

 

은진교회는 다름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품어내는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넘어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복음은 전 세계로 퍼질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다름이 존재했지만, 그것을 품어낼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은진교회는 그 사랑을 품어내고 추구하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 홈페이지 교회 소개 두 번째에 올라와 있는 글입니다. 오늘은 그 글에 나오는 다름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성경을 통해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참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같은 대한민국 서울이라는 곳에 살지만, 여러분이 사는 세상은 모두 다릅니다. 여신도회 회장님께서 사는 삶의 자리와 우리 최 장로님이 사는 삶의 자리가 다르다는 말입니다.

 

대한민국과 북한, 미국, 중국, 일본은 다른 나라입니다. 사회를 움직여가는 시스템도 다르고, 정치적인 성향도 모두 다릅니다. 교회도 다릅니다. 우리 교회가 위치한 연희동에는 은진교회 말고도 많은 교회가 있습니다. 각 교회가 속한 교단이 다르고, 예배와 모임 시간도 다르고, 그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의 방향성도 다릅니다.

 

우리 교회로 돌아와 봅니다. 아마 지난 1년간 여러분은 많은 다름을 느끼셨을 겁니다. 목회자가 바뀌니 여러 가지로 달라집니다. 반주자가 바뀌니 교회에서 울리는 음악이 달라집니다. 주일예배를 세대통합예배로 드리니 예배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어린이-청소년이 함께 예배에 참여하니 참여하는 사람도, 바라보는 사람도 마음이 달라집니다. 절기가 바뀔 때마다 열린성찬식을 드리니 성찬식에 대한 우리의 마음도 달라집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분명, ‘다름의 연속 앞에 놓여 있는 듯 합니다.

 

우리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한결같아야 한다고요. 그러면서 한결같음을, 변하지 않음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한 사람의 성격은 잘 변하지 않지요. 오죽하면 사람 고쳐서 쓰지 않는다는 표현을 할까요?

 

세상에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계속 가난합니다. 억압받는 사람은 계속 억압받고 고통받습니다. 선거 때마다 뭔가는 달라지겠지 하지만, 정치인의 얼굴만 달라지지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는 듯합니다.

 

수많은 다름 앞에 살아가는 우리는 어쩌면, 달라지지 않는 나의 마음과 생각들로 그 다름을 지나쳐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세상은 모든 것이 달라지고 있는데, 우리의 마음은 그 다름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요? 본격적으로 성경을 풀어드리기 전에 부탁이 있습니다. 오늘은 내 생각과 마음을 조금 풀어 놓고, 열어 놓고 설교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1. 오늘 구약의 말씀은 짧은 구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엿새, 6일 동안 만드셨습니다. 6일 동안 하나님의 일을 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1절 마지막 다 이루셨다고요. 그다음 날 제 칠일째에 대한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2, 이렛날에는 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습니다. 3, 하나님께서는 쉬시던 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이전의 엿새와는 다른날로 만드신 것이죠.

 

6일 동안 세상 만물을 지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물들이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만드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창조물들은 스스로 이 세상에서 자리 매김을 하면서 살 수 있게 된 거죠. 그 위대한 일을 마치신 다음 날을 하나님은 거룩한 날로 만드셨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창조의 6일이 더 거룩한 날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으니까요. 그런데 모든 것을 완성하시고 난 다음 날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날을 안식일이라고 부릅니다.

 

안식일을 정의하는 많은 다름이 있습니다. 유대교를 열심히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쉬셨으니 사람도 쉬어야 한다고 하지요. 그래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 39가지를 정해 놓고 열심히 지킵니다. 안식일을 무언가를 해서는 안되는 날로 이해한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제 칠일에 교회에 옵니다. 어떤 분은 청소도 하고, 어떤 분은 밥도 짓습니다. 우리가 정성스레 드린 헌금을 매주 정리해 주시는 분도 있습니다. 우리가 먹는 점심밥의 쌀을 혼자서 오시는 것도 힘든데 수레에 끌고 멀리서 버스타고 오시는 권사님도 있습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주일마다 한 시간 예배드리는 음악을 만든다고 리허설하는 반주자도 있고, 피곤한 몸 이끌고 이 예배의 자리에 오는 교우들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죠. 안식일이라며? 쉬는 날이라며? 그런데 왜 그리 일요일에 피곤하게 살아? 우리가 그렇게 사는 이유, 우리는 이렇게 안식일을 정의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것을 만드신 다음 날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스스로 모든 창조물이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그 창조물 중 하나인 우리 사람은, 그 제 칠일을 주일이라 부릅니다. 주님의 날이라는 뜻이죠. 주님의 날이기에 그날만큼은 그분을 만나야 합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을 듣고, 그분이 세상을 향해 펼치시는 뜻을 헤아립니다.

 

우리가 제 칠일에 그러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셨던 6일 동안, 우리가 스스로 살아가는 힘, 에너지, , 기운을 얻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만드신 분의 안식과 창조물의 안식이 다른 겁니다. 창조물은 만드신 분에게 힘을 얻어 살아가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창조물은 오직 사람밖에는 없지요.

 

그래서 안식일에는 무엇무엇을 하지 말라는 것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무언가 살아갈 의미를 찾는 일을 하라고 말하는 것이 옳지 싶습니다. 이것은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죠. 이렇게 거룩한 주님의 날을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교우 여러분에게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힘이, 하나님의 복이 넘쳐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교회에는 참 다른 사람이 모입니다. 한 배에서 나온 자식들도 그리 다른데 당연하겠지요. 저는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교회라는 공동체에 함께 모여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정말 신기합니다. 왜냐면 불가능한 일인데, 그걸 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다르다는 건, 한 공동체를 이루는데 적합한 조건이 아니라는 거죠.

 

우리 교회만 그럴까요? 아니요. 로마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였던 거죠. 유대교를 믿다가 그리스도를 고백한 사람, 다른 종교를 믿다가 그리스도를 믿게 된 사람, 아무것도 믿지 않다가 그리스도를 알게 사람 등요. 그렇게 여러 사람이 모인 공동체에서는 꼭 이런 시비가 일어납니다. ‘누가 정통인가?’하는 거죠. 누가 먼저 믿었냐는 거죠.

 

로마 교회의 시작부터 함께 했던 사람들의 눈에는 나중에 믿게 된 이들의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을 믿음이 강한 자라 생각했고, 자기 눈에 들어오지 않는 다른 이들을 믿음이 약한 자로 생각했지요. 사도 바울의 말씀입니다. 로마서 141절입니다.

 

1 여러분은 믿음이 약한 이를 받아들이고, 그의 생각을 시비거리로 삼지 마십시오.

 

시비걸지 말고, 받아들이십시오. 나와 다르다고 나와 똑같은 신앙을 갖게 하려 들지 마십시오. 이 말입니다. 만약 우리 교회에 비건이 있어요. 비건은 채식주의자에요. 그런데 점심공동식사에 고기반찬이 나온 겁니다. 당연히 고기를 안 먹겠지요. 옆에서 자꾸 그럽니다. “고기 먹어. 맛있어. 고기 먹어야 튼튼해져.” 2절과 3절을 읽습니다.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믿음이 약한 사람은 채소만 먹습니다.

3 먹는 사람은 먹지 않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사람은 먹는 사람을 비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도 받아들이셨습니다.

 

먹을 수도 있지만, 먹지 않을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이유로 못 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저 다를 뿐입니다. 6절까지 그 예는 계속 이어집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은진교회에 모인 여러분이 다 다르지만, 이 교회에 모인 이유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로마 교회에 수없이 많은 다름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지만, 거기에 함께 모인 이유가 있다고요. 7절과 8절입니다.

 

7 우리 가운데는 자기만을 위하여 사는 사람도 없고, 또 자기만을 위하여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8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교회에 모인 우리는 주님을 위해 모인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서로 제각각 달라도 한 공동체에 모일 수 있는 겁니다. ‘주님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 주님으로 인해 서로 다름이 인정될 수 있고, 통용될 수 있는 거죠. 우리 이렇게 옆에 분과 인사합시다. “나와 달라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3. 복음서의 말씀입니다. 오늘 마가복음의 말씀에서는 두 사건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걷다가 일어난 일이고, 다른 하나는 역시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손이 불편한 장애인을 치유하신 일입니다.

 

일어난 사건은 단순합니다. 밀밭 사이를 지나다가 밀 이삭을 자른 일, 손 아픈 사람을 고친 일. 논란은 그 일을 안식일에 했다는 거죠. 반론이 제기됩니다. 반론을 제기한 사람은 지난주 제가 그들이라고 표현한 맥락에 같이 서 있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당원들입니다. 반론의 핵심은 왜 안식일에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합니까?”였습니다.

 

밀 이삭을 자르는 일은 유대교에서 안식일에 금지한 39개 일 중 하나입니다. 사람을 치유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쉬신 날이기에 사람도 쉬어야 하건만, 왜 예수와 당신 제자들은 일을 했냐는 것이죠. 그들의 논리대로 율법에 기준한다면 율법을 어긴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시선은 다릅니다.

 

먼저 밀 이삭을 자른 일에 대해서는 이 말씀으로 일갈합니다. 마가복음 227절입니다.

 

27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

 

안식일에 손이 불편한 사람을 치유한 일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마가복음 34절입니다.

 

4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그들은 잠잠하였다.

 

한 절만 더 봅니다. 앞으로 가서 마가복음 228절입니다.

 

28 그러므로 인자는 또한 안식일에도 주인이다.

 

그들은 다 보고 있었습니다. 어찌하나 말이죠. 예수가 눈엣가시였는데, 스스로 증거를 보이십니다. 중요한 사실은 죽일 수 있는 증거를 보여주는데도, 그들은 잠잠할 뿐입니다. 왜일까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옳았기 때문입니다.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잘랐을 뿐이고, 손이 아프니 고쳐 주었을 뿐입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복음은 먹을 것을 주는 것이고, 아픈 사람에게 복음은 낫게 해주는 것이지요. 복음을 실천한 것뿐입니다. 그것을 행한 날이 안식일인지 아닌지는 예수님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행동으로 인해 안식일의 거룩함이 드러나게 된 것이죠.

 

하나님께서 제 칠일에 안식하신 것과 사람이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전혀 상관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칠일을 거룩하게 하셨다 했습니다. 세상을 완성하시고 그다음 날, 쉬셨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창조물인 사람은 안식일에 거룩한 일을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죠. 배고픈 이이게, 몸 아픈 이에게 거룩한 일이 무엇이었을까요?

 

이렇게 예수님은 안식일에도 주인이 되셨습니다.

 

4. 은진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안식과 사람의 안식은 달라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안식에서 핵심은 거룩함에 있습니다. 사람의 안식은 쉼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함을 완성하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완성하는 길로 배고픈 사람에게, 몸 아픈 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 치유해 주신 거죠.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안식일의 율법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가리는 것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하신 겁니다.

 

예수의 시대에서는 예수님는 당시 유대 사회와 자신의 다름을 인정받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죽으셨고, 부활하셨고, 그제야 그 다름을 세상은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성경은 우리에게 제발 죽기 전에, 생명이 다하기 전에 다른 건 몰라도 서로 다름만은 품어내면서 살아가라고 말씀하고 계신 지 모르겠습니다.

 

장 목사는 여러분과 다릅니다. 여러분은 저와 다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끼리 모두 다릅니다. 그런데 이 거룩한 날에는 한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이 신기한 현상은 분명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서로 달라도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지키겠다는 신앙때문인 것으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안식일의 의미를 우리의 삶에서 따라 살고자 하는 믿음때문인 것으로 믿습니다. 이것 아니고는 이 공동체를 설명할 길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물론 쉬셨다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쉬려고 했을 뿐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해야 할 분명한 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거룩의 완성은 서로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거룩의 완성을 보여주셨으니까요. 그리고 우리는 그 예수님을 따라 산다고 고백하는 이들입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우리 은진의 모든 성도가 이 세상의 수많은 다름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함과 예수님의 고민을 함께 품어내며, 그 다름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녹여내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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