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말씀선포

  • 홈 >
  • 예배와 말씀 >
  • 이 주의 말씀선포
이 주의 말씀선포
기 억 / 부활절 셋째주일 장본 목사 2024-04-14
  • 추천 4
  • 댓글 0
  • 조회 52

http://eunjin.onmam.com/bbs/bbsView/101/6383393

본 영상의 사이즈와 화질은 500kbps, 중간화질입니다. 영상은 업로드 시 설정할 수 있습니다.

.

기 억

 

부활절 셋째주일

씨뿌림주일

4·19혁명기념주일

20240414

 

에스겔 34:11-16

하나님은 선한 목자

11 “참으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나의 양 떼를 찾아서 돌보아 주겠다.

12 양 떼가 흩어졌을 때에 목자가 자기의 양들을 찾는 것처럼, 나도 내 양 떼를 찾겠다. 캄캄하게 구름 낀 날에, 흩어진 그 모든 곳에서, 내 양 떼를 구하여 내겠다.

13 내가 여러 민족 속에서 내 양 떼를 데리고 나오고, 그 여러 나라에서 그들을 모아다가, 그들의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이스라엘의 산과 여러 시냇가와 그 땅의 모든 거주지에서 그들을 먹이겠다.

14 기름진 초원에서 내가 그들을 먹이고, 이스라엘의 높은 산 위에 그들의 목장을 만들어 주겠다. 그들이 거기 좋은 목장에서 누우며, 이스라엘의 산 위에서 좋은 풀을 뜯어 먹을 것이다.

15 내가 직접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직접 내 양 떼를 눕게 하겠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16 헤매는 것은 찾아오고, 길 잃은 것은 도로 데려오며, 다리가 부러지고 상한 것은 싸매어 주며, 약한 것은 튼튼하게 만들겠다. 그러나 살진 것들과 힘센 것들은, 내가 멸하겠다. 내가 이렇게 그것들을 공평하게 먹이겠다.”

 

히브리서 13:7-9

7 여러분의 지도자들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살고 죽었는지를 살펴보고, 그 믿음을 본받으십시오.

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한결같은 분이십니다.

9 여러 가지 이상한 교훈에 끌려 다니지 마십시오. 음식 규정을 지키는 것으로 마음이 튼튼해지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튼튼해지는 것이 좋습니다. 음식 규정에 매여서 사는 사람들은 유익을 얻지 못했습니다.

 

요한복음 10:7-21

7 예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은 다 도둑이고 강도이다. 그래서 양들이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9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얻고, 드나들면서 꼴을 얻을 것이다.

10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파괴하려고 오는 것뿐이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더 넘치게 얻게 하려고 왔다.

11 나는 선한 목자이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들도 자기의 것이 아니므로,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가 양들을 물어가고, 양떼를 흩어 버린다. -

13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14 나는 선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15 그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린다.

16 나에게는 이 우리에 속하지 않은 다른 양들이 있다. 나는 그 양들도 이끌어 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들을 것이며, 한 목자 아래에서 한 무리 양떼가 될 것이다.

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그것은 내가 목숨을 다시 얻으려고 내 목숨을 기꺼이 버리기 때문이다.

18 아무도 내게서 내 목숨을 빼앗아 가지 못한다. 나는 스스로 원해서 내 목숨을 버린다. 나는 목숨을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 이것은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명령이다.”

19 이 말씀 때문에 유대 사람들 가운데 다시 분열이 일어났다.

20 그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그가 귀신이 들려서 미쳤는데, 어찌하여 그의 말을 듣느냐?” 하고,

21 또 다른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 말은 귀신이 들린 사람의 말이 아니다. 귀신이 어떻게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할 수 있겠느냐?” 하였다.

 

 

 

은진교회 교우들과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께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시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오늘은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으로 구약의 말씀을 풀어드리고, 여러분을 위한 말씀으로 서신서와 복음서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어린이-청소년 설교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 구약 성경의 말씀은 에스겔서의 말씀이에요.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에게 에스겔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에스겔이 전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해요. 오늘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의 여러 가지 모습 중 하나를 또 알게 될 겁니다.

 

에스겔은 유다 왕국의 마지막 때를 같이 한 사람이에요. 연도로는 기원전 600년경이에요. 무려 지금보다 2,600년 전 사람이지요. 사람들은 에스겔을 예언자, 선지자라고 불렀어요. 예언자나 선지자나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는 단어고요. 하나님의 말씀을 왕에게 그리고 백성들에게 전하는 사람이었답니다.

 

에스겔은 유다 왕국이 바벨론에게 멸망했을 때, 유다의 왕과 귀족들과 함께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바벨론에게 멸망하기 전까지 에스겔은 이렇게 왕과 백성들에게 외쳤답니다.

 

이렇게 살지 마세요. 이렇게 사는 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에요.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께서 화낼만한 일만 골라서 하고 있어요. 그러면 우리 다 망하고 말아요. 빨리 마음을 돌이켜서 하나님께로 돌아오세요!”라고요. 그런데 왕과 사람들은 말을 듣지 않지요.

 

그래서 결국 나라가 멸망하고 포로로 끌려갑니다. 그런데 포로로 끌려가서도 에스겔은 왕과 백성들에게 계속해서 외칩니다. 그런데 망하기 전과는 조금 다른 말을 전하게 돼요. 포로가 된 상황에서 백성들에게 전한 말이 오늘 에스겔 본문이랍니다. 이제 성경을 찾아보면서 함께 말씀을 봅니다. 모두 에스겔서를 펼쳐 주세요.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이 11절과 12절을 읽어줄래요?

 

11 참으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나의 양 떼를 찾아서 돌보아 주겠다.

12 양 떼가 흩어졌을 때에 목자가 자기의 양들을 찾는 것처럼, 나도 내 양 떼를 찾겠다. 캄캄하게 구름 낀 날에, 흩어진 그 모든 곳에서, 내 양 떼를 구하여 내겠다.

 

여러분이 읽은 두 절의 말씀에서 찾는다라는 단어가 세 번이나 나와요. 찾는 분은 하나님이시죠. 하나님께서 찾는 이유는 11절 마지막 단어, “돌보아 주려고”, 12절 마지막 구하여 내려고찾으시는 거죠.

 

그냥 돌보아 주는 게 아니에요. 그냥 구하는 게 아니에요. “찾아서가 중요해요. 지금 백성들은 포로로 여기저기 다 끌려가 있는 상황이거든요. 망했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이젠 나 하나님이 직접 찾아서 돌봐 주고, 구해 주신다는 거죠.

 

멸망 전에는 경고의 말씀을 전했는데, 이제 망한 유다 백성에게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 약속의 하나님이 되시는 거죠. 오늘 목사님이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여러 가지 모습 중 하나를 알게 된다고 했지요. 바로 위로의 하나님, 약속의 하나님이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약속해 주시는 분이심을 기억하는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이 되어주시길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절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백성들을 이끌어 주실지 말씀하고 계세요. 우리 모두 16절을 함께 읽습니다.

 

16 헤매는 것은 찾아오고, 길 잃은 것은 도로 데려오며, 다리가 부러지고 상한 것은 싸매어 주며, 약한 것은 튼튼하게 만들겠다. 그러나 살진 것들과 힘센 것들은, 내가 멸하겠다. 내가 이렇게 그것들을 공평하게 먹이겠다.

 

길을 잃었어요? 하나님께 길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상하셨어요? 하나님께서 낫게 하시고, 마음을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힘센 사람들이 잘 나가는 것이 걱정돼요? 하나님께서 공평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말씀을 기억하며 서신서로 넘어갑니다.

 

 

 

0.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기억이라는 것은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사람은 기억의 존재입니다. 어떤 사람도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기억을 잃으면 우리는 의학적으로 중대한 병에 걸렸다고 말합니다.

 

기억은 대부분 과거입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모든 것은 나에게 이미 일어난 일을 기억하는 것이죠. 제 기억에 저는 일곱 살 때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는 웬만한 일들은 다 기억에 남습니다. 여러분도 그러하겠지요.

 

기억에는 좋은 기억, 기쁜 기억, 뿌듯한 기억이 있습니다. 반대로 나쁜 기억, 슬픈 기억, 창피한 기억도 있지요. 좋은 기억만 있으면 좋으련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기억이라는 것이 내 머릿속에 새겨 두어 되살려 생각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기억나지 않는 척할 뿐, 모든 사람에게는 나쁜 기억도 존재합니다.

 

기억이 사람을 살게 합니다. 부모님에 대한 건강한 기억은 내가 부모가 되어 자녀들의 삶을 바르게 커가게 합니다. 설령 건강하지 못한 부모에 대한 기억이라도 내 자녀에게 자기만큼은 건강한 부모가 되게 하는 교훈이 됩니다. 그렇게 기억은 사람을 살아내게 하는 매우 중요한 인간의 특징입니다.

 

우리나라의 4월은 참 슬픈 기억이 많은 달입니다. 기독교에서 4월은 부활의 달이지요. 그것과 다르게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서 4월은 무척이나 아픈 달입니다. 지난 43일에는 제주에서 4·3사건이 발생했고, 419일에는 4·19혁명이 일어난 달입니다. 모두 많은 시민이 죽은 사건입니다. 그 사건을 기억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이 시간 떠올려 보십시오.

 

10년 전 416,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벌써 10년이 지났네요. 엊그제 일 같은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세월호 사건과 관련된 분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폐인이 되었습니다. 기억 때문입니다. 그들이 자기 자식, 가족이 죽어서만 폐인이 된 건 아닙니다. 인간은 인간의 죽음에 대해서는 언젠간 일어설 수 있는 매우 강한 존재니까요.

 

그분들이 힘든 건, 그들을 향한 다른 사람들의 저주에 가까운 비하, 폄하의 기억 때문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흘러나오는 그들의 눈물 어린 호소에 대한 세상의 비난은 그들을 더욱 절망으로 몰아넣었지요. 목포 신항에 인양되어 있는 세월호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가보시면 숨이 막혀버립니다. 울고 싶지 않아도 눈물이 납니다. 이 사건이 기억이라는 것이 무척 힘이 듭니다.

 

1. 여러분은 내 인생의 어떤 사건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 가운데 누구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서신서 히브리서 137절입니다.

 

7 여러분의 지도자들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살고 죽었는지를 살펴보고, 그 믿음을 본받으십시오.

 

지난 317일 사순절 다섯째주일 설교에서 저는 히브리서가 신앙이 흔들리는 이들을 위한 추천서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힘들고 지칠 때 히브리서를 읽어보라고 권해 드렸지요. 히브리서가 힘이 되는 이유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지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지도자들을 기억하랍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게 한 사람들입니다. 이미 다 죽은 사람들입니다. 죽은 이유는 대부분 순교입니다.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죽은 사람들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고 성경은 전합니다.

 

히브리서가 말하는 기억은 바로 본받음입니다.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라 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믿음을 기억하라 합니다. 우리는 기억하는 건 좋은데, 쓸데없는 방향으로 기억해서 스스로 힘들게 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일이 잘 풀지 않았던 기억, 아프지만 그 기억을 반면교사 삼아 다시 일어서면 될 것을 풀리지 않았던 기억에 매여 현재도 실패로 살아가는 삶이 그런 겁니다.

 

히브리서는 분명, 믿음을 기억하랍니다. 그들의 삶 가운데 있는 슬픔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바라봤던 미래의 소망을 기억하라는 겁니다. 복음으로 기억은 과거의 일을 떠올리는 것이 아닌 미래를 이끌어 가는 소망의 길이 됩니다. 8절입니다.

 

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한결같은 분이십니다.

 

그 증거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죽으신 분이죠. 그 예수를 봤던 사람들 어제나 오늘이나 그 예수가 한결같은 분임을 기억합니다. 사람들은 지도자들을 기억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믿음이 소망임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그 소망을 주신 분이 예수인 것도 기억해 냅니다. 그래서 8절에서 어제도, 오늘도 예수님이 한결같은 분이라고 전합니다. 복음이 과거를 넘어 현재 진행형이 될 수 있고, 오늘의 기억이 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런 기억을 하는 사람들의 삶은 세상 여러 가지 것들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자기중심이 잡혀 있는 사람이거든요. 믿음에 대한 확고한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확인합니다. 9절입니다.

 

9 여러 가지 이상한 교훈에 끌려 다니지 마십시오. 음식 규정을 지키는 것으로 마음이 튼튼해지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튼튼해지는 것이 좋습니다. 음식 규정에 매여서 사는 사람들은 유익을 얻지 못했습니다.

 

고기 먹는다고 먹지 않는다고, 포도주 마신다고 마시지 않는다고 믿음이 튼튼해지는 것 아닙니다. 믿음에는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안 먹는 것이 갈등이 된다면 안 먹어도 된다고 말하면 될 일입니다. 서로를 보듬어 주는 마음,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섬김입니다. 그 은혜가 우리 마음을 튼튼하게 합니다.

 

은진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 삶에 영향력을 끼친 믿음의 지도자를 꼭 기억하십시오. 그게 목사든, 부모든, 학교 선생이든, 옆집 사람이든... 내 믿음을 갖게 했던 이를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그들이 전했던 예수님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는 그 기억으로 서로 보듬으십시오. 이렇게 은혜 안에 거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성찬식 중 제정의 말씀을 인도자가 선포합니다.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빵을 들어서 축사를 드리신 다음에, 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다. 이것을 행할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라

 

제일 마지막 문장, “나를 기억하여라성찬식의 핵심 중의 핵심. 성찬신학의 정수가 바로 나를 기억하라라는 말씀입니다. 에 대한 말씀이 오늘 복음서 말씀입니다. 가 누구인지 예수님께서 스스로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7절입니다.

 

7 예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랍니다. 9절도 읽습니다.

 

9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얻고, 드나들면서 꼴을 얻을 것이다.

 

나는 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라는 문을 통해 들어오면 구원을 얻게 됩니다. 아주 쉬운 비유이지요. 문 옆에는 벽이 있을 겁니다. 벽을 넘어오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우리는 그런 사람을 도둑이라 부르고 강도라고 부릅니다. 그런 사람을 지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라는 문은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줍니다. 활력을 줍니다.

 

성찬식에서 나를 기억하라는 말은 예수가 구원자임을, 생명 주시는 분임을 기억하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에 또 다른 가 있습니다. 11절입니다.

 

11 나는 선한 목자이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나는 목자입니다. 제대로 된 목자라면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나의 모든 것보다 중요한 양일테니까요. 양들이 위험에 처했는데, 구하지 않고 양을 버리는 목자라면 그건 목자가 아니라 사기꾼입니다. 나만 살면 되니까요. 14절입니다.

 

14 나는 선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또 나는 목자랍니다. 그 목자는 양을 기억하는 목자입니다. 양들도 목자를 기억합니다. 너무나도 당당하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이리 당당하실 수 있을까요? 고작 30대 초반의 청년일 텐데 말입니다. 15절입니다.

 

15 그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린다.

 

당신들의 목자가 나 예수입니다. 여러분의 목자가 예수입니다. 그런데 나의 목자는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이 당당하신 이유는 자신을 알고 계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내 아버지가 하나님이라는 예수의 기억은,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받을 고난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지난주 이스라엘 자손의 무식하고 무모하리만큼 순전한 믿음이 예수에게도 있습니다. 그 믿음의 실체가 무엇일까요? 17절입니다.

 

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그것은 내가 목숨을 다시 얻으려고 내 목숨을 기꺼이 버리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것. 그것은 내 삶의 모든 부정적인 것까지도 심지어 죽음까지도 극복하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지요. 여러분은 무엇을 기억하십니까? 제발 부탁합니다. 예수님을 기억해 주십시오.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그 기억이 여러분에게 소망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이후에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이 분열하기 시작합니다. 왜냐면 내가 누구냐는 예수님의 말씀은 곧,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미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메시아를 기대하던 유대인들이 동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중요한 사실은 예수에 대해 그가 메시아임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목자이고, 문이십니다. 그는 예수입니다.

 

3. 10년 전 세월호 사건에 대해 여러분은 오늘, 무엇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 사건이 시발점이 되어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탄핵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국민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지도자의 결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것이죠. 성경에서 그 옛날 이스라엘의 왕들이 겪은 일처럼 말입니다.

 

은진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기억하며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는가는 참 중요합니다. 기억하는 그것이 그 사람의 삶의 내용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픈 기억만 내 마음에 가시 선인장처럼 뿌리를 굳게 내리게 해야 할까요? 좋은 기억만 가지고 현재의 내 모습을 한탄만 해야 할까요?

 

좋은 기억이란, 현재를 의미있게 살고 미래에 대한 소망을 주는 기억이어야 합니다. 그 처절했던 제주4·34·19혁명과 세월호의 기억조차도 미래에 대한 소망의 단서를 주는 기억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그리 기억하도록 애써야만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이 땅의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그럼과 동시에 우리는 신앙인, 그리스도인이죠. 그리스도인의 기억이란 믿음의 지도자를 기억하고, 그들의 믿음을 따르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기억하는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세상의 소망을 품어내는 믿음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절 셋째주일입니다. 우리의 기억 중 나를 붙잡는 기억은 버려버리고, 나를 소망으로 이끌었던, 그리고 내 생명이 있게 한 기억을 되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기억은 예수님이 나를, 우리를, 은진교회를, 이 세상을 이끄시는 목자이고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문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위로하시고 회복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그리고 과거, 이 땅에서 일어난 4월의 아픔으로 목숨을 잃은 모든 이들과 그 가족들에게 소망으로 기억되는 예수 그리스도, 그를 소망으로 이끄신 하나님이 모두의 삶을 주장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살아있는 자(나)의 부활에 관한 묵상 / 부활절 다섯째주일 사진 장본 목사 2024.04.28 0 23
다음글 참 부활 / 부활절 둘째주일 사진 장본 목사 2024.04.09 1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