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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형상대로... '살다' 장본 목사 202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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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원 파일에 문제가 있어 이번 주 말씀은 설교문으로 대신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다

 

부활절 일곱째주일

어버이주일

5·18민주화운동기념주일

20240512

 

창세기 5:1-2

1 아담의 역사는 이러하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

2 하나님은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그들을 창조하시던 날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고 하셨다.

 

에베소서 6:1-4

1 자녀 된 이 여러분, 주 안에서 여러분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옳은 일입니다.

2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계명은, 약속이 딸려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

3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하신 약속입니다.

4 또 아버지 된 이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

 

마태복음 7:7-12

7 "구하여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그리하면 너희가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8 구하는 사람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사람마다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9 너희 가운데서 아들이 빵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으며,

10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해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12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다.“

 

 

 

0. 은진교회 교우들과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께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시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이에요. 지난주 어린이-청소년주일에 관한 말씀을 받았으니, 오늘은 어버이주일에 관한 말씀을 받을 차례입니다. 오늘은 서신서의 말씀을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에게 전합니다.

 

오늘 에베소서 말씀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자녀들이 부모님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전하고 있어요. 우리 모두 에베소서 61-3절을 함께 읽습니다.

 

1 자녀 된 이 여러분, 주 안에서 여러분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옳은 일입니다.

2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계명은, 약속이 딸려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

3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하신 약속입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어린이-청소년 여러분. 여러분의 부모님에게 순종하세요. 순종은 윗사람의 뜻에 순순히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어요. ‘주 안에서입니다.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 1절을 다른 성경에서는 이렇게 전한답니다. “자녀된 사람들은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라고요.

 

부모님의 뜻에 따르는 것은 도덕이나 윤리 교과서에 나오니까 그러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 부모에게 순종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들에게 주신 계명이었거든요.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 거에요? 그렇게 물으면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어요. ‘. 그래야 합니다.’라고요. 중요한 건 부모님이 어떤 말씀을 하시냐는 거죠. 그건 잠시 후 목사님이 어른들을 위한 설교에서 또 전할 거랍니다.

 

그런 부모님의 말씀이라면, 여러분은 부모님께 순종해야 해요. 그게 하나님을 따르고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도 순종하게 하는 길이라고 성서는 전하고 있답니다. 어린이-청소년 여러분. 간절히 원하기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부모님도 사랑하고 부모님 뜻에 잘 따르는 믿음의 사람으로 커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모두 부모님을 기억합니다. 부모는 나를 낳아주신 분이지요. 여든이 넘은 교우도, 12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이도 부모를 기억합니다. 부모가 살아계시거나 돌아가시거나가 다를 뿐, 우리 모두에게는 부모가 존재합니다.

 

부모에 대한 기억은 나의 존재 방식을 만들어냅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어떤 분이시고, 어떻게 영향을 받아 지금의 가 존재하고 있습니까? 제 이야기를 좀 들려드리겠습니다.

 

제 부모님 중, 아버지는 목사셨습니다. 그리고 중고등학교의 선생님이셨습니다. 어머니 역시 선생님이셨지요. 한 분은 1928년생, 한 분은 1933년생이셨으니 꽤 오래전 분이시지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6.25한국전쟁을 20대에 겪은 세대가 목사이고 교사였으니 나름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사신 분들이라 하겠습니다.

 

아버지는 참 엄하셨습니다. 그 엄격함이 숨이 막힐 지경이었지요. 자식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면, 무조건 서울로 유학을 보내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초등학교를 포함한 학창시절, 부모님과 함께 산 시간보다는 따로 자취 생활을 한 시간이 훨씬 깁니다.

 

어머니는 선택적으로 엄하신 분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참 따뜻한 분이셨는데, 특정한 상황에서는 매우 엄한 분이었습니다. 밥상 앞에서라든지, 학교생활이라든지, 친구 관계라든지 이런 부분에서는 사람됨을 참 많이 강조하신 분이었지요.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장본이라는 사람은 지금 이런 사람이 되어있습니다. 저는 제가 그리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꽤 피곤하게 사는 사람이거든요. 어머니의 예민함을 그대로 물려받아서인지 예의 없거나 버르장머리 없는 꼴은 못 봅니다.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정의롭지 못함을 두고 보지 못합니다.

 

요즘 드는 생각입니다. 내 부모님이 내 나이 때, 꽤 많은 생각을 하면서 사셨겠구나 하는 마음입니다. 요즘 제 생각이 꽤 많거든요.

 

지난주, 한 아이는 부모의 존재 이유라 했습니다. 저의 존재 이유가 되어 주신 부모님은 저를 이런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의 존재 이유인 부모에 관한 이야기를 드립니다.

 

2. 오늘 구약성서 창세기 5장의 말씀은 창세기 1장의 인간 창조 이야기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어봅니다.

 

1 아담의 역사는 이러하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

2 하나님은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그들을 창조하시던 날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고 하셨다.

 

부모는 남자와 여자입니다. 성서는 남자와 여자의 이름을 사람이라 했다고 전합니다. 성서를 통해 보는 사람이라는 존재는 첫째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이, 둘째 남자와 여자, 셋째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존재입니다.

 

둘째, 셋째는 따로 설명할 필요 없이 이해 가능합니다. 그런데 첫째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의미는 우리가 잘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면 이 부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존재 이유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것이 다른 창조물과 구별되는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사람이 모든 창조물보다 우월한 존재라고 말하지요. 그 근거로 창세기 128절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생육하고,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말씀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렇게만 말하자면 큰 오류가 생겨납니다. 사람과 다른 창조물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이 쓰인 것이지요. 그렇게 사람이 다른 창조물을 다스리고 정복한 결과를 우리는 지금 세계 곳곳의 기후 이변에서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결국, 사람이 다른 창조물보다 우월한 존재가 아니었음이 증명된 것이지요.

 

그렇다면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성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쉽게 설명하면 사람은 하나님으로 부여받은 책임성을 가진 존재라는 말입니다. 어디에 대한 책임성일까요? 바로 다른 모든 창조물에 대한 책임입니다.

 

모든 창조물 중,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은, 사람을 제외한 모든 창조물에 대해 그들이 잘 살아가도록 돌보는 임무가 주어졌다는 사실이지요. 땅도, 바다도, 나무도, 모든 동물도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사람의 의무이며, 책임이 됩니다. 그 사람은 남자와 여자입니다. 그 사람이 여러분의 부모님이고 부모된 여러분입니다.

 

그래서 부모라는 존재는 의무와 책임이 동시에 있는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은진교회 교우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부모가 되어 주시고, 어른이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서신서의 말씀은 사도 바울의 에베소서입니다. 본문 1-3절은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으로 풀어드렸기에 이 시간에는 4절 말씀을 중심으로 보겠습니다. 에베소서 64절입니다.

 

4 또 아버지 된 이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

 

4절은 아버지에게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의 시대가 부계중심 사회였기에 바울은 아버지의 이름만 올려둡니다. 원래 본문은 분명 부모가 아닌 아버지에게만 전하는 말씀입니다. 당시는 자녀 교육의 책임을 아버지가 지는 사회였으니까요.

 

하지만 2024년 에베소서를 읽는 우리는 이 아버지를 확장하여 아버지와 어머니로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면 오늘날 자녀 교육은 아버지 혼자서 하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오히려 어머니의 역할이 더 커졌지요.

 

그렇게 아버지를 부모로 읽게 되면 4절은 이렇게 됩니다. “또 부모된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가부장제 사회인 대한민국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지요. 자녀가 부모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배웠으니까요. 그런데 분명 성서는 반대로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어떻게 하면 부모가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을까요? 그 해답은 바로 공정함에 있습니다. 자녀가 몇이든 그 자녀를 공정하게 양육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노여움의 시작이 섭섭함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내 자녀에게 섭섭함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아들이든 딸이든, 첫째든 막내든 대함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이것이 오냐, 오냐식의 양육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를 공정하게 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하나 더 있으니 그것이 바로 부모의 절도있는 태도입니다.

 

4절 뒷부분,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기 위해 바로 부모의 절도있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공동번역개정판에서는 이 부분을 주님의 정신으로 교육하고 훈계하며 잘 기르십시오라고 전합니다.

 

주님의 정신이 무엇일까요?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던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었던가요? 우리가 그것을 섬김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누구든지 나에게 오라시던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던가요? 차별없이, 평등하게 모두를 대했던 모습이 주님의 정신이 아닐까요? 우리가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지 않았던가요?

 

예수님께서 욕하며 때리면서 가르치시던가요? 아니지요. 예수님의 교육방식은 자신을 낮추며, 상대를 사랑하며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던 모습이지 않습니까?

 

부모이신 여러분, 어른이신 여러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어버이주일 우리에게 주시는 서신서의 말씀은 우리의 자녀를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며, 차별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억하는 신앙 안에서 잘 기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아닌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는 없을지언정,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주님의 정신으로 대하면 됩니다. 그런 부모가, 어른이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복음서의 말씀에서는 우리가 부모의 존재 방식, 어른의 존재 방식이 어때야 하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어버이된 여러분, 빵 달라는 자녀에게 돌 주신 적 있으십니까? 생선 먹고 싶다는데 뱀 잡아 주신 적 있으십니까? 그래요. 너무 힘겹게 살아서 돈 없어 풍족히 먹이지 못한 적은 있을 수 있지요. 그런데 빵 달라는데 돌을 주고, 생선 달라는데 뱀 주는 부모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부모란 존재가 얼마나 큰 존재인지 11절에 나옵니다. 11절입니다.

 

11 너희가 악해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앞부분, 너희가 악해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줘야 한다는 것은 안다고 전합니다. 부모가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자기 자녀에게는 좋은 것을 준다는 말입니다. 악한 부모도 자기 자녀에게는 그리 한다는 거죠. 자녀의 존재란 부모에게 이런 겁니다.

 

하물며 하나님께 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지 않겠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부모이신 여러분, 어른이신 여러분,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주실 것입니다. 찾으십시오. 찾게 될 것입니다. 문을 두드리십시오. 그리하면 열어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잊지 마십시오. 마지막 12절입니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다.”

 

12절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를 제시합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적용됨은 물론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황금률이라고 말하는 거죠. 부모의 존재 방식, 어른의 존재 방식이 바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이런 부모가 되어 주시기를, 어른이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어버이는 부모입니다. 어른입니다. 우리는 어른다워야 한다’, ‘부모다워야 한다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성서가 전하는 어른다운, 부모다운 길은 우리가 사는 가부장제 사회와는 다름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부모를 이룹니다. 그 사람이 어른이 됩니다. 부모는 자녀들을, 어른은 주변 사람들을 공정함으로 주님의 가르침 안에서 양육하고 대해야 합니다. 그 핵심은 사랑과 섬김, 지지와 차별하지 않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의 의무와 책임인 것이지요.

 

저도 부모인지라 딸에게 대접받고 싶습니다. 그래서 딸을 늘 대접하며 삽니다. 자기 자녀를 대접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도 대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부모님들이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변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어떤 이는 사람 안 변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이상, 우리는 이 말에 격렬하게 저항해야 합니다. 왜냐면 복음이라는 것이 주님의 정신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우리의 변화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사랑하는 은진교회 교우 여러분. 특별히 부모된 여러분. 어른이신 여러분. 오늘 말씀대로 자녀를 양육했다면 정말 잘하신 겁니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을 대했다면 정말 잘하신 겁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처럼 양육하지 못했다면 이젠 우리가 용기를 내서 변화할 차례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변화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신앙인임을 잊지 마시고, 우리의 자녀와 우리의 다음세대가 더 멋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힘써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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