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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 창조절 여덟째주일 / 은진 평화의 날 장본 목사 202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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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이루는사람은 복이 있다!

 

창조절 여덟째주일

은진 평화의 날

20241020

 

마태복음 5:9

9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

 

 

0. 은진교회 교우들과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께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시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은 예쁜 동요 하나를 같이 부르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아주 쉬운 동요이지만, 이 동요에는 참 많은 의미가 담겨 있어요. 아마 이어지는 어른들을 위한 설교까지 듣게 된다면, 그 의미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과 함께 부를 노래는 <꽃은 참 예쁘다>입니다.

 

 

 

사람들은 꽃을 보고, 모두 예쁘다고 말합니다. 꽃을 보면서 흉측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어요. 다만 자기가 좋아하는 꽃이 다를 뿐이지요. 우리 교회 화단에 핀 꽃들을 집에 가면서 꼭 둘러보고 가세요. 다 다른 꽃이지만, 모두 예쁜 꽃이랍니다.

 

목사님은 그 꽃을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꽃 한 송가 모두 예쁜데... 그래서 사람도 다 소중한 존재인데...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이쁘지 않다고, 소중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간절히 원하기는 우리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은 하나님의 모습으로 지어진 사람을 보면서도 꽃처럼 모두 소중한 존재라고 말하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1.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창조절 여덟째주일이며, 우리 교회가 선포한 은진 평화의 날입니다. 은진 평화의 날이 어떤 날인지 모르는 교우 여러분을 위해 작년 은진 평화의 날에 드렸던 말씀으로 다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은진 평화의 날은 남북 간 정치적, 이념적, 군사적 대결 구도를 해소하고, 남북 간 인적-물적 교류와 평화협력을 위해 교회가 할 수 있는 평화운동을 도모하고자 선포한 날입니다. 그래서 화목, 평안, 평화, 완전, 구원을 의미하는 단어, ‘샬롬을 써서 은진 샬롬의 날, 평화의 날로 선포하게 되었지요. 우리 교회가 네 살이 되던 1980년부터 매해 10월 셋째주일을 은진 평화의 날로 지켜왔습니다.

 

이날은 은진교회를 다녔었던 모든 분을 한 자리에 초대해 축제를 벌이는 날이었습니다. 중요한 점은 축제보다는 평화에 집중했다는 사실입니다. ‘평화가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주일예배 때는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받고, 오후에는 평화에 대한 특강을 온 교우가 함께 들었습니다.

 

제가 작년에 부임하고 지난 역사를 살펴보니, 2006년 제27회 은진 평화의 날을 마지막으로 기록되어 있는 역사가 없었습니다. 최정석 장로님께서 저에게 손으로 써서 주신 은진교회 30년사에 따르면, ‘행사가 거듭될수록 의례적, 형식적 행사로 변해 가고, 제정 당시의 각오와 다짐, 사명과 소명의식이 퇴색되어가고 있지 않은가에 대한 우려가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매년 정례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형식적으로 변해 가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그 일을 행사로 인식하기 때문이지요. 일 년에 한 번 치러야 하는 연례행사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매년 돌아오는 예배력 절기가 있습니다. 부활절, 감사절, 성탄절 등이지요. 우리는 이러한 절기를 행사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 절기는 매년 돌아오지만, 우리에게 늘 새로운 의미의 절기로 다가옵니다. 무엇이 달라서 그런 것일까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처음 의미를 잊지 않으면 되는 것이지요. 부활절에는 예수의 부활이 나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매년 말씀을 통해 배웁니다. 감사절, 성탄절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절기에 맞는 의미를 잊지 않기 위해 함께 말씀을 받으니까요.

 

교회의 많은 일이, 행사가 되는 이유는 그 의미를 잊거나, 퇴색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작년 은진 평화의 날을 지키면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행사가 아닌 이 날의 의미를 다시 새기도록 은진 평화의 날을 다시 지켜가겠노라고요. 아마 기억하실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1980년 그 옛날, 평화운동을 도모하고자 선포했던 그 정신이야말로 2024년 오늘, 대한민국 교회와 사회에 정말 필요한 의미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행사를 하기보다 말씀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평화에 관한 말씀이자 더불어, 평화에 관한 강연입니다. 두 가지 의미로 말씀을 준비했음을 미리 밝힙니다.

 

작년 은진 평화의 날 무렵에는 당시 대통령실이 힘에 의한 평화가 진짜 평화라는 공식논평을 냈었지요. 그래서 당시 함께 예배드렸던 시온, , 서진이가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로 힘에 의한 평화는 진짜 평화가 아니라고 우리에게 증명해 주었습니다.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평화교육을 우리가 어린이-청소년들로부터 배웠던 기억이 나네요.

 

오늘도 우리는 은진 평화의 날로 모였습니다. 하여 세상에서 들을 수 없는 평화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나누는 평화에 관한 이야기로 우리 삶이 주님이 내려주신 평화로, 우리 삶을 신앙인의 삶으로 이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2. 첫 번째 이야기를 드립니다. 대한민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태어났습니다. 작가 한강 님입니다. 노벨상 심사위원회가 한글로 작가의 책을 읽지는 않았을 터입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글로 쓴 소설을 영어로 혹은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한 책을 읽었을 것입니다. 다 아시잖아요. 한글의 세밀한 표현력을 외국어로 바꾸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요. 게다가 소설이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노벨상을 심사하는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 작가에 대해 이렇게 평가합니다. “역사적 상처에 직면하고 인간 삶의 취약성을 노출시키는 한강의 시적 산문이라고요. 그러면서 대표작 몇 권을 나열합니다. 책 제목입니다. <작별하지 않는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사건을 다룬 소설입니다. <채식주의자>는 특정한 음식에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에 관한 깊은 성찰을 쓴 소설입니다. <소년이 온다>5.18광주민주화운동에서 계엄군에 총에 맞아 죽은 어느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 책입니다.

 

세 권의 책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책에 나오는 주인공이 평화와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겪은 현실 또한 평화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지요. 많은 이들이 특별히 제주 4.3사건‘5.18광주민주화운동을 숨기려 했습니다. 누구였냐면 국가공권력이 그래왔습니다. 지옥과 같았던 살상의 현장을 아무 일도 없었던 평화로움으로 포장하려 했습니다.

 

이제는 다 압니다. 제주 4.3사건에서 권력을 쥐고 있던 자들이 시민들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광주에서 군사정권이 시민들을 향해 어떤 짓을 했는지 다 압니다. 정확하게 아는 것이 이것 하나입니다. 적어도 그날 제주에서는, 광주에서는 평화롭지 않았다는 사실을요.

 

한강 작가가 다루는 주제는 깊은 슬픔에 빠져있는 사람들의 현재였습니다. 그것을 그저 담담하게 그만이 가진 특유의 문체로 표현하지요. 그래서였을까요? 한강 작가는 2016, 당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렸던 분입니다. 숨기고 싶은 과거를 자꾸 들추어내는 것으로 밉보였나 봅니다.

 

은진 평화의 날이 선포된 해가 198010월입니다. 광주에서 시민들이 군인들의 총과 칼에 죽어간 해가 1980518일입니다. 수많은 시민이 총에 맞아 죽어갈 때, 우리 교회는 평화의 날을 선포했습니다. 참 아이러니한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소설 <소년이 온다>의 실제 주인공이었던 문재학 군은 1980년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문 군은 5.18 당시 전남도청에서 사상자들을 돌보는 일을 했습니다. 527일 새벽 계엄군의 진압 작전으로 도청 건물 2층에서 총에 맞아 사망합니다. 문 군의 어머니 김길자 여사의 말입니다.

 

작가가 소설을 쓰겠다고 왔는데, ‘왜 소설가가 재학이 이야기를 물어본다냐했더랍니다. 그러면서 나는 재학이를 잊지 않으려고, 세상이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살아왔다면서 평생 내가 못해낸 일을 소설가 한 분이 좋은 글로 세계에 알렸다고 말했습니다.

 

한강 작가가 왜 노벨문학상을 받았을까요? 심사야 한림원이 했겠지만, 저는 평화롭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평화이루지 못한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전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 이야기를 소설로 본 사람들은 우리가 왜 평화를 이루어야 하는지분명히 알았을 테니까요.

 

교우 여러분. 평화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지옥과 같았던 살상의 현장에서 그들의 피를 수분 삼아 싹 틔운 씨앗의 열매가 바로 평화입니다. 신앙적으로 풀어드리자면, 우리 삶의 여러 상황 가운데, 우리 눈물을 수분 삼아 싹 틔운 믿음이라는 신앙의 열매가 바로 평화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평화는 바람불면 부러지는 가지이고, 떨어지는 꽃잎일 수 있습니다. 평화롭다가도 바람불면 눈물의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여 우리가 그 평화를 누리기 위해 가지에 막대기도 묶어주고 바람막이도 되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평화는 이렇게 우리 모두가 노력해서 이루어가고, 또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3.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2024년 현재 우리 교회가 위치한 연희동 인구는 만팔천여 명입니다. 이 인구 중 절반이 넘는 만 명이 열흘 사이 죽었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겠습니까? 상상이 가지 않지요. 그 만 명의 목숨이 실제로 그렇게 죽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죽은 레바논 국민의 수입니다.

 

수십 년 동안 내전이나 전쟁으로 죽은 사람의 합이 아니고 근 3주 동안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으로 죽은 사람들의 숫자입니다. 열흘 전에는 학교에 포탄이 떨어져 30여 명의 학생이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당당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적들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제가 구약성경을 풀어드릴 때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말하는 그 이스라엘입니다. 그 옛날 하나님께서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신 그 이스라엘입니다. 다윗과 솔로몬 왕정 번영의 시대를 누린 그 이스라엘이란 말입니다.

 

혼란스럽습니다. 과연 현재의 그들은 누구일까? 현재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인가? 아니 그게 아니라면 내가 모르는 하나님이라는 신이 또 있다는 것인가? 도대체 이것이 무엇일까? 혼란스럽기 그지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마태복음 59절입니다.

9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현재는 평화가 아니에요. 평화를 이루는 사람. 평화의 아침을 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그 사람은 복이 있다고요. 그런 사람 하나님이 자기의 자녀라 부르신답니다. 주변 사람들이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 자녀라 말씀하신다고요. 누구를요? 평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을요.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무고한 시민들이 죽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평화는 무엇일까요? 답은 자명합니다. 포탄이 떨어지지 않는 세상이 바로 평화입니다. 이스라엘이 말하는 평화도 있기는 합니다. 우리를 공격하는 세력이 사라지는 때가 바로 평화이지요. 그러기 위해 그들은 수없이 많은 무고한 생명을 죽게 합니다.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평화는 없습니다. ‘저 인간이 어디 나가서 콱 죽어버리면 좋겠어!고 해도 정작 그 사람 죽으면 힘 빠지는 것이 인간입니다.

 

분명한 것은 평화는 만들어진 집에 안전하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집을 짓는 과정이라는 사실입니다. 만들어가는 것이라고요. 그 과정을 통해 평화가 완성되는 것이지, 평화라는 것이 어떤 목표처럼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 과정에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4. 저는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몇 년 전 휴양지에서 읽었습니다. 소설에, 고기를 못 먹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책을 읽은 날 저녁 식사가 숯불에 돼지목살을 구워 먹어야 했었는데, 읽었던 소설 덕분인지,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그날 돼지고기 냄새가 매우 역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한 사람의 내면을 가감 없이 써 내려간 소설이지요.

 

한강 작가는 평화를 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평화롭지 못한 세상과 그 세상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했을 뿐입니다. 시간이 된다면 한강 작가의 책을 읽어보세요. 문체가요. 너무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데 아파요. 가슴을 후벼팝니다. 그래서 때론 눈물이 납니다.

 

작가가 한 일은 그들의 눈물을 독자에게 전했을 뿐입니다.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은 여러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 이런 생각들 많지 않았을까요? 다시는 제주 4.3같은 역사는 없어야 할 것 같아. 광주민주화운동 같은 일은 다시는 벌어지지 않아야 해. ! 무언가를 먹지 못한다는 것이 그저 굶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구나... 이런 생각들요.

 

그런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그들의 손에 의해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그들이 평화의 아침을 여는 이들이 되지 않을까요?

 

은진교회 성도 여러분. 평화는 완성품이 아니에요. 그래서 돈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드는 과정에 참여해야 그 의미를 알 수 있고 깨닫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매년 우리가 은진 평화의 날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서 나오는 겁니다. 아직 이 땅에는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구 반대편 이스라엘이 벌이고 있는 일은 평화가 아니에요. 제주 4.3 같은 5.18광주민주화운동보다 더 악한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죽이면서 평화를 만들 수는 없어요. 여기에서 교회가 가야 할 길이 나옵니다.

 

분명합니다. 과거에 대해 처절하게 성찰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앞으로 걸어갈 길이 보이거든요. 그리고는 함께 만들어가야 합니다. 평화를요. 그런 사람 복이 있다고요. 하나님께서 내 자녀라고 불러주신다고요.

 

간절히 원하기는 2024년 은진 평화의 날, 평화는 이루어가는 것임을 기억하고, 우리 모든 교우가 평화의 아침을 여는 사람들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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