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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하나님, 공동체, 세상과 나 장본 목사 202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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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하나님, 공동체, 세상과 나

 

창조절 일곱째주일

20241013

 

창세기 9:1-7

1 하나님이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2 땅에 사는 모든 짐승과, 공중에 나는 모든 새와,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것과, 바다에 사는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할 것이다. 내가 이것들을 다 너희 손에 맡긴다.

3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이 너희의 먹거리가 될 것이다. 내가 전에 푸른 채소를 너희에게 먹거리로 준 것 같이, 내가 이것들도 다 너희에게 준다.

4 그러나 고기를 먹을 때에, 피가 있는 채로 먹지는 말아라. 피에는 생명이 있다.

5 생명이 있는 피를 흘리게 하는 자는, 내가 반드시 보복하겠다. 그것이 짐승이면, 어떤 짐승이든지, 그것에게도 보복하겠다. 사람이 같은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면, 그에게도 보복하겠다.

6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니, 누구든지 사람을 죽인 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

7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거기에서 번성하여라."

 

베드로전서 4:7-11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삼가 조심하여 기도하십시오.

8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 줍니다.

9 불평 없이 서로 따뜻하게 대접하십시오.

10 각 사람은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관리인으로서 서로 봉사하십시오.

11 말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답게 하고, 봉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봉사하는 사람답게 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이 모든 일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습니다. 아멘.

 

마태복음 25:14-30

14 "또 하늘 나라는 이런 사정과 같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서, 자기의 재산을 그들에게 맡겼다.

15 그는 각 사람의 능력을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고, 또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고,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

16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곧 가서, 그것으로 장사를 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다.

17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그와 같이 하여, 두 달란트를 더 벌었다.

18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돈을 숨겼다.

19 오랜 뒤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20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말하기를 '주인님, 주인께서 다섯 달란트를 내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였다.

21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

22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다가와서 '주인님, 주인님께서 두 달란트를 내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

24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가와서 말하였다. '주인님, 나는, 주인이 굳은 분이시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줄로 알고,

25 무서워하여 물러가서, 그 달란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에 그 돈이 있으니, 받으십시오.'

26 그러자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다.

27 그렇다면, 너는 내 돈을 돈놀이 하는 사람에게 맡겼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내가 와서,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받았을 것이다.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29 가진 사람에게는 더 주어서 넘치게 하고, 갖지 못한 사람에게서는 있는 것마저 빼앗을 것이다.

30 이 쓸모 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아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일이 있을 것이다.'“

 

 

0. 은진교회 교우들과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께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시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성경 말씀이 아닌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잘 들어보세요. 교우 여러분에게는 오늘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이 여러분을 위한 말씀의 서론이라고 생각하시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단어 들어봤어요? ‘오만 가지이렇게 사용합니다. ‘아니 오만 가지 장난감을 이렇게 늘어놓으면 어떡해?’ 이렇게 문장으로 표현해 보니까 어떤 뜻일지 느낌이 오죠?

 

오만 가지매우 종류가 많은 여러 가지라는 뜻입니다. 수없이 많은, 이런 의미가 되겠네요. 이렇게도 사용합니다. ‘저 사람은 오만 가지 생각을 하면서 사는 것 같아.’ 이렇게요. 그런데 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사람은 하루에 정말 약 오만 가지의 생각을 한다고 해요.

 

어린이-청소년 여러분도 하루에 오만 가지 생각하지 않아요? 여러분도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하루에 하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그 생각과 함께 감정이 생겨납니다. 꼴보기 싫은 친구 생각하면 미움이라는 감정이 생겨나고, 집에서 플레이스테이션 할 생각하면 희망이라는 감정이 생기고, 주일에 교회에 올 생각하면 오늘은 어떤 찬양을 할까? 어떤 설교를 들을까? ‘궁금함이라는 감정이 생기죠.

 

그런데요. 사람들은 이런 감정을 대체로 숨기면서 삽니다. 누군가 내게 잘못을 저질러도 싫은 내색하지 않고 괜찮아라고 말할 때가 많지요. 속으로는 괜찮지 않은데도 그렇게 말하곤 합니다. 그 사람이 무안해할까 봐, 혹은 자신이 속 좁은 사람으로 보일까 봐 그럴지도 모르지요.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있어요. 사람이라는 존재는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조절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죠. ‘관계를 떠나면 우리의 삶은 설명할 수가 없는 거죠. 세상은 혼자서 살 수 있는 곳이 아니거든요.

 

우리는 신앙인이죠. 신앙인은 또 하나의 관계가 있어요.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과 관계로 맺어진 우리를 신앙인이라고 한답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하나님과의 관계로, 이웃과 관계를 만들어가는 사람입니다. 세상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죠. 이 말은 모든 관계의 중심에, 하나님과 예수님을 모신다는 뜻입니다. 친구들, 부모님, 선생님, 교회 어른들... 여러분에게는 가족, 직장, 동료, 친구, 지역 주민들... 이들과의 모든 관계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가르침이 중심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우리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이 맺어가는 모든 관계 속에, 여러분이 생각하는 오만 가지 생각 속에 늘 하나님이 자리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1.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서론으로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을 드렸으니, 이제 세 본문을 통해 관계라는 맥락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약의 말씀은 지난주 말씀과 이어집니다. 죄악이 가득한 세상, 차별이 가득한 세상을 보시고 후회하신 하나님, 물로 세상을 쓸어버리시고 오직 단 한 사람 노아만 살리셨지요.

 

노아만 살렸던 것은 아니었지요. 그 가족과 함께 세상의 모든 생명 한 쌍도 살려두셨습니다. 노아는 마른 땅에 나아와 가장 먼저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렸지요. 그 이후 본문이 오늘 구약 말씀입니다.

 

창세기 91-7절까지의 말씀은 노아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1절과 7절에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 하지만 첫 선택으로 그들은 선악과를 따먹었고, 하나님께서 주신 첫 말씀부터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같은 명령을 하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그런데 하나님께서도 이전과는 뭔가 달라야겠다고 생각하셨을까요? 조금 다른 말씀을 주십니다. 2절입니다.

 

2 땅에 사는 모든 짐승과, 공중에 나는 모든 새와,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것과, 바다에 사는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할 것이다. 내가 이것들을 다 너희 손에 맡긴다.

 

모든 생명이 너희 사람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할 것이라고 합니다. 두렵고 무서운 존재라 하니 사람이 모든 생명에게 긴장 관계를 부여하는 우월한 지위에 있는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마치 사람이 모든 생물의 생명을 관장할 수 있는 것처럼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한마디를 덧붙여 너희 손에 맡긴다.”라고 하십니다.

 

직장에서 상사가 직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개 대리님. 이 업무 대리님께 맡길게요.” 이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그 일에 관해서는 당신이 책임을 가지고 열심히 해 달라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하나님도 모든 생명을 우리에게 그렇게 맡기셨습니다. 책임지라고요. 그러면서 선물같은 말씀을 또 주시죠. 3절입니다.

 

3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이 너희의 먹거리가 될 것이다. 내가 전에 푸른 채소를 너희에게 먹거리로 준 것 같이, 내가 이것들도 다 너희에게 준다.

 

이제는 채소와 더불어 생명을 먹을 수 있도록 허락하십니다. 사람 입장에서는 선물이지요. 세상을 책임지라는 명령과 함께 그들을 먹거리로 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단 한 가지만 빼고요.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 먹지 말라고 했던 것처럼요. 확인합니다. 4절과 6, 두 절입니다.

 

4 그러나 고기를 먹을 때에, 피가 있는 채로 먹지는 말아라. 피에는 생명이 있다.

6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니, 누구든지 사람을 죽인 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생명은 하나님의 숨이 깃든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불어 넣으셨던 숨 말입니다.

 

그래. 다 먹을 수 있어. 다 가질 수 있어. 그런데 함부로 죽이지는 마. 내가 숨을 불어넣은 존재야. 다 할 수 있는데 난 너희 손에 세상을 맡겼을 뿐이야. 그러니 세상에 대해 책임도 져야 해. 잊지마. 그렇게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널리 퍼져 번성하며 살아.’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도 다 먹을 수 있어요. 다 할 수 있어요. 그런데 하나만 기억해 주세요. 그렇게 살아도 책임질 수 있겠어? 이 질문에 ! 하나님! 걱정 마세요. 하나님께서 맡기셨으니 제가 책임지고 이 세상 잘 살겠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서신서의 말씀입니다. 오늘 베드로전서는 창세기 말씀에 관한 심화 과정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맡긴다.’ 하신 그 말의 의미를 공동체에서, 교회에서 어떻게 실천할지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7절부터 9절입니다.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삼가 조심하여 기도하십시오.

8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 줍니다.

9 불평 없이 서로 따뜻하게 대접하십시오.

 

풀어드리지 않아도 되지요?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맡긴다.’ 하신 그 말의 뜻. 첫째 정신 차리세요. 둘째 기도하세요. 셋째 사랑하세요. 넷째 불평하지 마세요. 다섯째 서로 따뜻하게 대접하세요. 이게 전부입니다. 공동체는, 교회는 이러면 된다고요. 정신 차리고 기도하면 사랑하게 되어 있어요. 사랑하면 불평할 수가 없어요. 그러면 서로 대접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이 지금 은진교회에서 느끼고 있는 것들이잖아요.

 

서신서의 말씀과 창세기 말씀이 너무 연관성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십니까? 확인시켜드립니다. 10절입니다.

 

10 각 사람은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관리인으로서 서로 봉사하십시오.

 

제 말이 아닌 것 확인하셨지요?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관리인이 바로 공동체를 이룬 여러분이라고요. 그렇게 서로 봉사하시라고요. 봉사의 방법도 알려주세요. 11,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답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봉사하는 사람답게 하라고요.

 

우리 식사하고 설거지하고 상 닦잖아요. 요즘 이희윤 성도님, 윤정애 성도님, 장린 어린이가 많이 닦아주세요. 우리 어디 가서 상 안 닦잖아요. 교회니까 하는 거잖아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봉사하는 사람답게라는 말의 의미가 그런 겁니다. 공동체는 작은 일이라도 이렇게 기꺼운 마음으로 서로 섬기는 봉사로 세워져 가는 겁니다.

 

너희에게 맡긴다.” 하셨습니다. 기도하시고 사랑만 하십니다. 불평하지 말고 서로 대접하십시다. 세상에 나가서도 이렇게 사십니다. 이것이 세상을 우리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뜻임을 기억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3. 복음서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은 종말에 대한 교훈에서 이어진 비유입니다.

종말에 관해 세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어요. 첫째 주님이 다시 오실 날, 그때가 언제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는 것이고, 둘째 하지만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신다는 것이며, 셋째 오시는 그분은 마지막 날, 우리 삶에 대해 결산하신다는 겁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겠다 약속하신 후, 사람들은 자꾸 그날이 언제인가?’에만 관심해 왔습니다. 주님이 언제 오실까? 주님이 곧 오신다고 하면 지금 내가 다니는 직장, 소유한 재산들 다 필요 없어질 테니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살아보자하는 생각이, 초대 공동체에도 있었습니다.

 

오늘 달란트의 비유는 주님 다시 오실 그날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신앙인의 태도에 대해 말씀합니다. 우리가 30절까지 말씀을 읽었지만 사실 25장은 전체 이야기를 하나의 메시지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25장 전체를 다시 오실 주님을 만날 준비를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해야 하는가?’라는 관점을 가지고 봐야 한다는 뜻이지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에게 자기 재산을 맡깁니다. 세 사람에게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나지요.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것으로 장사해서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두 달란트를 더 남겼어요. 반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가서 땅을 파고 그 돈을 감추어 두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합니다. 상반되는 두 개의 평가가 나오지요.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악하고 게으른 종아.’ 이렇게 말입니다.

 

 

3-1. 여러분은 이 말씀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사실 저는 청년 때에 이 말씀이 참 불편했습니다. 예수님도 이윤을 많이 남긴 사람, 소위 성공한 사람을 칭찬하신다는 말인가? 그러니 우리도 우리가 받은 달란트로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얘긴가? 그렇다면, 세상이 요구하는 성공과 좋은 결과, 그것과 복음이 다를 바가 무엇인가? 참 마음이 불편했지요.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무엇을 잘했을까요?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잘 감당했다는 뜻입니다. 맡겨진 일이 무엇인데요? 비유에서는 다섯 달란트로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으니 잘했으리라 짐작하지만, 우리는 뒤에 나오는 이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35절과 36절입니다.

 

35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어 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할 것이다.

 

그 종이 주어진 삶에서 특별한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작은 한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돌보고, 베풀었다는 겁니다. 일상을 잘 살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요구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고요. 다섯 달란트가 열 달란트가 된 것은 그저 결과이고요.

 

자기 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하지도 않으셨고, 큰일을 행해야 한다고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다만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를 최선을 다해 살피고, 서로 나누고, 돌보며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웃과의 관계에서, 우리 일상에서, 그렇게 살피고, 따뜻하게 대접하며, 기도하며, 사랑하며 살라는 겁니다.

 

예수는 자본주의 기업가가 아니에요. 달란트 비유의 칭찬은 그 결과를 배나 남긴 업적을 치하함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윤을 남긴 결과에 대한 칭찬이기보다는 그것을 가지고, 일상을 잘 살아낸 신실함에 대한 칭찬입니다. 삶의 결과가 아닌 삶의 태도, 삶의 과정을 말하는 것이죠.

 

착하고 신실한 종은 주인의 마음을 헤아려 나도 그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따라야 할 주인이신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죠. 바로 사랑입니다. 일상에서의 신실한 신앙인의 자세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다른 종은 어땠을까요? 이렇게 말합니다. 24, 25절입니다.

 

24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가와서 말하였다. '주인님, 나는, 주인이 굳은 분이시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줄로 알고,

25 무서워하여 물러가서, 그 달란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에 그 돈이 있으니, 받으십시오.'

 

한 마디로 줄이면 나는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입니다.

 

여기 이 종은, 주인이 실망할까 봐 아무것도 안 했다고 말합니다. 주인님이 기준이 높은 분, 경거망동을 싫어하는 분, 최선을 요구하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분이기에 혹시 실패하면 주인이 실망할까 두려워서 땅에 숨겨 놓았을 뿐이지요. 솔직히 이 종의 마음도 이해 못 할 것은 아닙니다.

 

세상 살아가는 일, 참 녹록하지 않지요. 매일 야근에 직장에서 열심히 일했는데 동료가 그 업적을 가로챕니다. 최선을 다했는데, 엄한 사람에게 오해를 삽니다. 때론 어이없는 차별을 받기도 합니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 참 두렵지요. 행여 가지고 있던 한 달란트마저도 잘못될까 두렵고, 주인에게 인정받지 못할까 봐 이 종은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시도도, 노력도, 수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42절과 43절을 읽습니다.

 

42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고,

43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지 않았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병들어 있을 때나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이런 의미라고요. 일상에서 누구에게도 사랑을 베풀지 않았다고요. 종에게 주시는 말씀이지요. 그래서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된 것입니다. 주인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것이지요.

 

 

4. 예수님은 이 비유를 제자들에게 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릴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면 승천하시겠지요. 더는 제자들 곁에 머물 수가 없습니다.

 

이후 공동체와 제자들 앞에 다가올 환난을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앞으로 고난이 닥쳐올 것인데, 제자들 너희는 시련과 고난 앞에,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런 삶을 살지 말라는 겁니다. 때론 좋은 마음으로 수고하고도 손해를 볼 때도 있겠지만, 세상은 이윤도 없이 이게 무어냐고 질책하겠지만, 그것마저도 일상을 사랑으로 살아주지 않겠냐는 예수님의 말씀인 겁니다.

 

결과가 기대에 좀 못 미치면 어떻습니까? 우리와 결산하시는 주님은, 우리 마음의 중심을 알아보시고 마지막 날, 그 중심을 보고 결산하실 테니까요.

 

은진교회 성도 여러분.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세상 하지만 두려움에 위축되어, 움츠러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주신 일상, 한 달란트가 있습니까? 그저 소망을 안고 흔들림 없이 나아가십시오. 힘써 사랑하며, 섬기며 한 걸음, 한 걸음 일상에서 제자의 삶을 살아가 주십시오. 분명히 다시 오실 그 주님을 믿으면서 말입니다.

 

창조절 일곱째주일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사랑을 쏟으시며 다시 만날 날 준비하라 하시는 예수님을 묵상하는 한 주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분을 보내주신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맡긴다.” 하신 참뜻을 일주일의 삶으로 살아주시기를 소망합니다.

 

하여 우리가 하나님과 나, 공동체와 나, 그리고 세상과 나의 관계를 말씀으로 새롭게 세워가기 바랍니다. 주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우리 삶을, 끝까지 신실하게 사랑으로 채워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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