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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현(主顯), 빛이 비취었다 / 주현절 첫째주일 | 장 본 목사 | 2026-01-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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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상의 사이즈와 화질은 500kbps, 중간화질입니다. 영상은 업로드 시 설정할 수 있습니다. . 주현(主顯), 빛이 비치었다. 주현절 첫째주일 20260111 마태복음 4:12-22 12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다고 하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돌아가셨다. 13 그리고 그는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역 바닷가에 있는 가버나움으로 가서 사셨다. 14 이것은 예언자 이사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는 것이었다. 15 “스불론과 납달리 땅, 요단 강 건너편, 바다로 가는 길목, 이방 사람들의 갈릴리, 16 어둠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그늘진 죽음의 땅에 앉은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었다.” 17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18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걸어가시다가, 두 형제,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와 형제간인 안드레가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나는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겠다.” 20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21 거기에서 조금 더 가시다가, 예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셨다. 그들은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셨다. 22 그들은 곧 배와 자기들의 아버지를 놓아두고, 예수를 따라갔다. 1. 은진교회 교우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교우 여러분에게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오늘은 주현절 성찬식이 있는 관계로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과 여러분을 위한 말씀을 합하여 전해 드립니다. 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오늘은 지난 주간 일어나 지금까지도 세계적인 이슈를 만들고 있는 사건으로 말씀 마당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어젯밤 자고 있는데, 우리나라보다 훨씬 국방력이 센 미국이나, 러시아 같은 나라의 최정예 부대가 헬기를 타고 서울 곳곳을 폭격하고, 경호부대 80명을 사살한 후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과 영부인을 체포해 갔다고 가정해 봅시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들 것 같나요? 상상이 가질 않죠? 왜냐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훨씬 높잖아요. 요즘 같은 세상에 한 나라의 대통령을 다른 나라 군대가 잡아갈 순 없잖아요. 국가 간 상호불가침 조약 같은 것 다 있잖아요. 상상이 가지 않는 이유는 일어날 확률이 0에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대통령과 영부인을 그렇게 잡아갔습니다. 그 작전에는 미국의 최정예 부대를 투입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세요? 저는 국제정세 전문가가 아닙니다. 저는 목사예요. 그런데 목사가 주일예배 설교에서 왜 미국과 베네수엘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일을 벌인 나라의 국교가 기독교이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의 수없이 많은 선교사에 의해 우리나라가 복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 기독교는, 우리가 아는 복음은 ‘사랑’하라고 배웠습니다. ‘용서’하라고 배웠습니다. ‘하나님 사랑-이웃 사랑’이라고 알고 있어요. 형편 어렵지만 그래도 도우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나라 법칙’이라고 배웠습니다. 성경에 다른 나라에 폭탄을 떨어뜨리고, 상대국가의 지도자를 체포해도 된다는 구절은 없습니다. 똑바로 하지 않으면 더한 보복을 할 것이라 협박하라는 내용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 일을 기독교가 국교인 나라가 벌였습니다. 화나지 않으세요? 내 일 아니지만, 걱정되지 않나요? 우리도 기독교인 아니던가요? 이런 상황에서 오늘 교회는, 은진교회는 주현절 첫째주일 어떤 메시지로 주일온세대 말씀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요? 오늘 말씀은 한 인간으로서, 한 기독교인으로서, 한 목사로서 고민하고 묵상하면서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2.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광야에서 받은 시험 이야기와 연결되는 대목입니다. 복음서에 따르면,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이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시던 그 무렵에, 체포되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늘 요주의 인물이었지요. 유대교의 입장에서 보면 종교 지도자들을 비판하고 질책하니 골칫거리이고,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의 입장에서 보면 서민들을 선동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하니 이 또한 위험한 존재였습니다. 그런 요한을 체포했으니 지배국의 입장에서는, 골칫거리를 제거했다고 좋아했을 터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배국인 로마제국과 힘있던 유대교 종교자도자의 생각일 뿐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마태복음 4장 12절입니다. 12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다고 하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돌아가셨다. 요한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이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이 말은, 갈릴리라는 변방에서부터 이제 다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얘깁니다. 그동안 요한이 활동하던, 이스라엘의 중심부를 넘어 주변부 갈릴리에서까지 예수님으로 인해 새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13절을 보면 예수님은 고향인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역 바닷가의 가버나움으로 가셨습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북서쪽에 있는 도시입니다. 어부들의 마을이지만 다메섹에서 가이사랴를 거쳐, 이집트에 이르는 해상 무역의 통로이기도 했습니다. 무역의 통로이기에 돈이 많이 오가는 법이지요. 그러니 세관도 있었고 로마의 수비대도 주둔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부들과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신 곳이 바로 그곳이고, ‘이렇게 큰 믿음을 본 적이 없다’ 칭찬하셨던 백부장이 있던 곳도 이곳 갈릴리의 가버나움입니다. 경제활동이 활발했고 돈이 많은 지역이었습니다. 그만큼 그곳은 행복한 지역이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서민들은 헤롯에게 막대한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군인들의 횡포 또한 심했습니다. 16절의 표현대로, 그곳은 “그늘진 죽음의 땅”이었습니다. 해상무역으로 화려하고 부유한, 갈릴리 지방 그러나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어둠에 앉은 이들처럼 어둡고 아팠습니다. 그곳에 예수님이 가셨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확인합니다. 16절입니다. 16 어둠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그늘진 죽음의 땅에 앉은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었다. 빛을 보았고, 빛이 비치었습니다. 어두움과 그늘진 죽음의 땅 그곳에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지금 어떤 상황일까요? 한 해를 시작하는 오늘입니다. 우리의 마음에도, 지구 반대편 갈등을 겪는 그들의 마음에도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새로운 역사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3. 예수님이 가버나움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선포의 내용은 간단명료합니다. 17절입니다. 17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회개. 많이 말씀드렸지요? 돌이키는 것입니다. 마음 뉘우칠 뿐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사단, 악마가 말하는 욕심에 따라 살던 삶을 하나님의 뜻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살던 삶을 주변과 이웃을 돌아보는 삶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나의 가능성에 의지해서 살던 마음을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에 의지하여 살기로 다짐하는 것입니다. 힘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은 이리 말합니다. 예수가 2026년에 태어나지 않았으니,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침공하는 것에 대해 뭐라고 말할지 모른다고요.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에게 늘 강하게 질책하시던 예수를 보고는 고작 서른세 살밖에 살지 않은 청년이어서 그렇다고, 젊어서 그렇다고 말합니다. 예수는 취업이라는 것을 해 보지 않았으니 요즘 젊은 사람들의 심정을 모를 것이라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 기준으로 예수를 바라보고, 평가합니다. 회개가 무슨 소용인지요? 그래 봐야 못된 사람들은 변하지 않던데요? 그래서 우리도 악마가 되는 것이 해답일까요? 예수님의 회개하라는 외침은 이어 나오는 하나님 나라와 함께 읽어야 합니다. 기독교인이어서 회개하라는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이 성도고, 집사고, 권사고, 장로이고, 목사여서 회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를 해야, 마음을 돌이켜야, 마음을 돌이켜 새로운 삶을 살아야, 그래야만!!! 하늘 나라, 하나님 나라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17절에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십니다. 하늘 나라, 곧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저 멀리 있는 어떤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누어지는 곳, 하나님의 가르침이 지켜지고, 하나님의 뜻이 우선되는 삶을 말합니다.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이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돌이켜야 그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는 언제 오느냐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뭐라고 답하셨을까요? 찾아봅니다. 누가복음 17장 20, 21절(신약 120쪽)입니다. 20 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물으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을 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21 또 ‘보아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말할 수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 씨앗들입니다. 씨앗의 역할은 땅에 뿌려져서 새싹을 내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무한 반복합니다. 씨앗은 자신의 모습을 버려야 새싹이 됩니다. 씨앗의 숙명이기도 합니다. 세상을 보면 좋은 결실이, 쉽게 맺는 것 같지만은 않습니다. 때론 싹이 나지 않을 수도 있고, 많은 사람은 결실만 바라봅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우리는 씨앗이기에 또 희망이 있습니다. 계속해서 뿌려져서 새싹을 내고 거두고, 또 뿌려지고 거두고... 그렇게 주님의 뜻 따라 살다보면, 그 나라의 완성은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4. 행여 예수님 뜻 따라 살아가는 일, 회개하는 일, 돌이키는 일이 부담스럽고 어렵게 느껴지실 때가 있다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던 장면을 떠올리십시오. 그리고 따랐던 그들을 생각해 주십시오. 제자들은 가버나움 근처의 어부들이었습니다. 아무리 물고기를 많이 잡아도 가난을 면하지 못했던 사람들,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을 가장 예민하게 경험할 수밖에 없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첫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물을 버려둔 채로, 가족을 남겨두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자리를 두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그 옛날 아브람도 떠났지요. 엘리사도 그랬습니다. 참 희한하게도 떠나야 하나님 나라가 보입니다. 잘 이해하셔야 해요. 하시던 일들 다 그만두라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라 산다는 건, 일상의 수많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받아들이는 헌신이요, 믿음이라는 말씀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모습을 볼게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무엇을 버렸나요? 익숙했던 내 모습 중에 무엇을 부정하고, 비워냈을까요? 이 땅에서 직업이란 삶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직업이, 우리에게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면 그런 마음을 버리자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직업인에서 신앙인으로, 삶을 바꿔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직업인으로서 우리는 성과를 중요시합니다. 내가 중심부에 서 있어야 하고 주변 사람들이 내 업적을 알아주어야 합니다. 어부는 많은 물고기를, 음악가는 많은 저작권 수입을, 사업가는 많은 이윤을, 정치인은 높은 권력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이것이 직업인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신앙을 따라 사는 사람은 눈앞의 물고기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릅니다. 어부는 사람을 낚고, 음악가는 사람을 살리는 음악을 만들며, 사업가는 사람을 남기고, 정치인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국민들을 높입니다. 신앙인은 그저 그렇게 살면 되는 겁니다. 우리가 서 있는 그곳에서 직업인이 아닌, 신앙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안전하고 익숙해서, 편안한 나를 떠나 변방에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신 주님과 함께 낯설지만 소중한,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기 원합니다.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의 길이 힘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길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힘의 논리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아니 적용할 수 없습니다. 그건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평화를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 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미움과 폭력보다 강하고, 빛이 어둠을 이긴다는 진리는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신뢰할만한 분명한 복음의 말씀입니다. 여기 있는 우리가 다시 열리는, 하나님 나라의 희망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주현절 첫째주일. 새롭게 시작하는 한 주간, 신앙인으로서 그리스도의 제자 된 삶을 살아가는 모두가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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