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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새 일을 시작하십니다. / 주현절 셋째주일 장 본 목사 2026-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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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새 일을 시작하십니다.

 

주현절 셋째주일 20260125

 

이사야 43:18-21

18 너희는 지나간 일을 기억하려고 하지 말며, 옛일을 생각하지 말아라.

19 내가 이제 새 일을 하려고 한다. 이 일이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내가 광야에 길을 내겠으며, 사막에 강을 내겠다.

20 들짐승들도 나를 공경할 것이다. 이리와 타조도 나를 찬양할 것이다. 내가 택한 내 백성에게 물을 마시게 하려고, 광야에 물을 대고, 사막에 강을 내었기 때문이다.

21 이 백성은, 나를 위하라고 내가 지은 백성이다. 그들이 나를 찬양할 것이다.

 

사도행전 16:25-34

25 한밤쯤 되어서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죄수들이 듣고 있었다.

26 그 때에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서, 감옥의 터전이 흔들렸다. 그리고 곧 문이 모두 열리고, 모든 죄수의 수갑이며 차꼬가 풀렸다.

27 간수가 잠에서 깨어서,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는, 죄수들이 달아난 줄로 알고, 검을 빼어서 자결하려고 하였다.

28 그 때에 바울이 큰소리로 그대는 스스로 몸을 해치지 마시오. 우리가 모두 그대로 있소하고 외쳤다.

29 간수는 등불을 달라고 해서, 들고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면서,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다.

30 그리고 그들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서 물었다. “두 분 사도님,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31 그들이 대답하였다. “주 예수를 믿으시오. 그리하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32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간수와 그의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들려주었다.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는 그들을 데려다가, 상처를 씻어 주었다. 그리고 그와 온 가족이 그 자리에서 세례를 받았다.

34 간수는 그들을 자기 집으로 데려다가 음식을 대접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을 온 가족과 함께 기뻐하였다.

 

마태복음 9:9-13

9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그는 일어나서, 예수를 따라갔다.

10 예수께서 집에서 음식을 드시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자리를 같이 하였다.

11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예수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당신네 선생은 세리와 죄인과 어울려서 음식을 드시오?”

12 예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서 말씀하셨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자비요, 희생제물이 아니다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1. 은진교회 교우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교우 여러분에게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입니다. 여러분 새해 마음먹은 일들 있지요? 생각한 대로 잘 되고 있나요? 혹시 어려운 점은 없어요? 작심삼일이 된 일들 있을까요?

 

새해 요맘때쯤 되면, 작심삼일이라는 단어가 꼭 등장합니다. 새해부터는 다이어트를 할 거야. 오늘 125. 다이어트가 뭐였지? 라고 말한다면 그게 작심삼일이죠.

 

사실은 목사님도 지금보다 젊었을 땐, 매해 작심삼일이 있었답니다. 성경 열심히 읽어야지 해놓고 창세기만 열댓 번 읽었네요. 책도 열심히 읽어야지 해놓고 어느새 책은 베개가 되어있네요.

 

그래서 목사님은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 냈답니다. 새해 목표를 세우지 않는 것으로요. 그랬더니 작심삼일 될 일이 없는 거예요. 정말 기가 막힌 방법이지 않아요? 목표를 세우지 않으니까, 후회할 일도 없는 거죠.

 

그렇다고 될 대로 되라 하면서 사는 건 아니랍니다. 새해 목표를 세우지는 않지만, 대신 목사님이 생각하는 건 따로 있어요. 그건 바로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자.’랍니다. 그리고 밤에 자잖아요. 저는 자면서 그런 생각해요. ‘하루를 잘 산 저요, 이젠 죽습니다라고요. 아침에 눈이 떠지잖아요. 그럼 다시 태어난 거예요. 또 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요. 잠들면서 또 죽어요. 다음 날 다시 태어나요.

 

~ 이렇게 생각하니까요. 작심삼일 할 시간이 없어요. 좋은 방법이지 않나요? 목사님이 그렇게 생각하게 한 성경말씀이 있답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이에요. 모두 찾아 읽어 봅니다. 이사야 4318절입니다.

 

18 너희는 지나간 일을 기억하려고 하지 말며, 옛일을 생각하지 말아라.

 

지나간 일을 기억하려고 하지 말래요. 옛일을 생각하지 말랍니다. 그런데요. 이거 불가능해요. 사람은 기억의 존재거든요. 절대로 지난 일을 잊을 수 없어요. 오늘의 말씀은 과거의 기억에 질질 끌려다니지 말라는 말씀이거든요.

 

그래서 목사님은 나름대로 나만의 방법을 생각해 낸 거예요. 어떻게 하면 과거의 기억에 얽매이지 않을까? 끌려다니지 않을까? 그 결과,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기로 한 거랍니다.

 

어린이-청소년 여러분. 여러분도 과거의 기억 다 가지고 있죠? 그 중엔 좋은 기억 있어요. 그건 간직하세요. 나쁜 기억도 있을 거예요. 그 기억 잊기가 참 어렵죠. 그럴 땐, ‘오늘을 열심히 살면 된다고 목사님이 그랬어.’라는 말을 떠올리면서 살아보세요.

 

지난 기억에서 꽤 벗어날 수 있답니다. 하나님께서는 새 일을 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지난 일은 기억하지 말라고요. 그 새 일은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신앙인에게 열려 있는 길이랍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그 하나님의 새 일마다 참여하게 되는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이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1.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여러분도 작심삼일에 해당하는 일들이 있을까요? 여러분은 성인이니까,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시나요? 왜 사람들은 그렇게 작심삼일하는 일이 많을까요?

 

기억나서 그래요. 과거의 기억이요. 사람을 흥분시키는 탄수화물의 포만감, 지방의 식감이 자꾸 기억나면 다이어트는 실패하게 되죠. 운동 선수가 경기에서 넘어져서 결과를 망쳐버렸어요. 다음 경기 그 순간 넘어진 기억이 나면 똑같은 결과가 생깁니다. 기억나서 그래요. 과거의 기억이요.

 

사람들은 그러죠. 마음 단디하고, 새 마음으로 다시 일어서면 된다고요. 마음가짐의 문제라고 하죠. 그런데 말이 쉽지, 어디 그게 쉽게 되던가요? 성경 봅니다. 아까 읽었던 다음 구절 이사야 4319-21, 세 절입니다.

 

19 내가 이제 새 일을 하려고 한다. 이 일이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내가 광야에 길을 내겠으며, 사막에 강을 내겠다.

20 들짐승들도 나를 공경할 것이다. 이리와 타조도 나를 찬양할 것이다. 내가 택한 내 백성에게 물을 마시게 하려고, 광야에 물을 대고, 사막에 강을 내었기 때문이다.

21 이 백성은, 나를 위하라고 내가 지은 백성이다. 그들이 나를 찬양할 것이다.

이것은 분명 희망의 말씀입니다. 다가올 날이 기대되고, 미래가 보장된 것 같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참 예쁘고 칭찬받을 만한 일들만 한 백성들에게 하신 축복의 말씀 같습니다. 선택받은 사람들에게 말이죠.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이어서 나오는 22-24절입니다.

 

22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않았다. 이스라엘아, 너는 오히려 나에게 싫증을 느낀다.

23 너는 나에게 양의 번제물을 가져 오지 않았고, 제물을 바쳐서 나를 높이지도 않았다. 내가 예물 때문에 너를 수고롭게 하지도 않았고, 유향 때문에 너를 괴롭게 하지도 않았다.

24 너는 나에게 바칠 향도 사지 않았으며, 제물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하게 하지도 않았다. 도리어 너는 너의 죄로 나를 수고롭게 하였으며, 너의 악함으로 나를 괴롭혔다.

 

19절에서 21절까지 읽은 희망의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은 이쁜 짓만 골라서 하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괴롭게 생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어떠한 예배와 봉헌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죄로 하나님을 괴롭게 했습니다. 말을 안들어도 이렇게 안들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는 쥐뿔만큼도 듣지 않는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이라는 거죠. 성경 조금 더 보겠습니다. 25절부터 28절입니다.

 

25 그러나 나는 네 죄를 용서하는 하나님이다. 내가 너를 용서한 것은 너 때문이 아니다. 나의 거룩한 이름을 속되게 하지 않으려고 그렇게 한 것일 뿐이다. 내가 더 이상 너의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

26 나에게 상기시키고 싶은 일이 있느냐? 함께 판가름을 하여 보자. 네가 옳다는 것을 나에게 증명하여 보여라.

27 너의 첫 조상부터 나에게 죄를 지었고, 너의 지도자들도 나를 반역하였다.

28 그래서 내가 성소의 지도자들을 속되게 하였으며, 야곱이 진멸을 받게 버려 두었고, 이스라엘이 비방거리가 되게 버려 두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따지고 계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머리 끝까지 화가 나신 겁니다. 28절 마지막 한마디, “이스라엘이 비방거리가 되게 버려 두었다이것으로 모든 것은 끝났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화가 머리끝까지 난 하나님께서 새 일을 하려 하십니다. 언제요? 회개한 후에요? 아닙니다. 돌이킨 후에요? 그것도 아닙니다. 너희들이 썩어 빠져있었던 그 때에 새 일을 시작하십니다.

 

나 하나님이, 너희들이 진멸하고 비방거리가 되게 그냥 두었지만, 그래도! 새 일을 하겠다 라는 겁니다. 그리고 주신 말씀이 18절 이하란 말입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신 하나님께서,

18, 너희는 지나간 일을 기억하려고 하지 말며, 옛일을 생각하지 말고,

19, 이제 내가 새 일을 하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겁니다.

 

이렇게 오늘의 본문을 보니 우리는 18절에서 말하는 지나간 일”, “옛일이 무엇인지 알 듯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나간 일은 그저 내가 옛날에 했던 일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부르지 않았던 일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괴롭게 만들었던 그런 일들을 뜻합니다.

 

그런 일들은 생각하거나 떠올리지 말라 이겁니다. 반어법을 적용해 볼까요? 그렇다면 이런 일들은 기억하라 이겁니다. 내가 하나님을 불렀을 때의 그 감동을 기억하라 이겁니다. 내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했던 그 옛날 일들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열심히 살았던 과거의 삶은 기억하라 이겁니다.

 

나 하나님이 너희가 그 옛날에 나에 대해 애틋한 마음이 들었을 때의 그 마음으로 오늘, 새 일을 할 테니, 이제부터 나타낼 것이니, 지금부터 나타낼 것이니, 이제 너희들이 나를 잘 바라보고 따라오라 말씀하고 계신 겁니다.

 

저 말고 창세기만 주야장천 읽은 분 계십니까? 원하는 목표가 있는데 자꾸 목표가 멀어지는 분들 있습니까? 나에게 후회가 되는 옛 기억들은 떠올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면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서 새 일을 하려고 움직이시기 때문입니다.

 

아직 1월입니다. 새 일을 계획하시는 하나님의 품에 안겨,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은진 교우 여러분 되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서신서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 있는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무슨 일 때문에요? 이게 좀 납득이 가지 않는 이유예요. 설명이 필요합니다.

 

빌립보는 최초의 유럽 선교지입니다. 소아시아, 지금의 튀르키예 지역을 벗어난 다른 대륙입니다. 빌립보를 잘 모르겠다면, 루디아는 다 아시죠? 자주색 옷감을 팔던 상인 말입니다. 루디아가 살던 곳이 빌립보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낯선 땅에서 복음이 전파되니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래서 바울은 루디아의 집에 좀 더 머물면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동할 때마다 마주치는 사람이 있었어요. 귀신 들린 채, 점을 쳐서 돈을 버는 여인입니다. 이 사람은 누군가의 종이었고, 점을 쳐서 번 돈은 주인의 수입이 되었지요. 신통력이 있었던지 주인에게 큰돈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게다가 이 사람은, 바울과 그 일행을 통해 일하시는 그리스도를 알아봅니다. 다시 말하면, 귀신이 주님을 알아봅니다. 그래서 바울 일행을 만날 때마다 큰소리로 외쳤답니다. “여러분,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여러분에게 구원의 길을 전하고 있습니다(16:17).”라고요.

 

이런 일이 반복되자 바울은 이 여인을 치유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 여인에게서 귀신을 쫓아냅니다. 여종은 이제 더는 귀신 들린 사람이 아닙니다. 건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감사하고 축하할 일이지요.

 

하지만 그 종의 주인은 돈벌이 수단이 없어졌다는 사실에 분노합니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를 잡아, 경찰서에 데려가서는 그럴싸한 혐의를 만들어 고발해 버립니다. 혐의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영업방해 혐의입니다. 이들은 유대인인데, 이곳 유럽의 빌립보에 와서는 자신들의 영업을 방해하고 도시를 소란하게 했다는 거죠. 둘째, 허위사실유포 혐의입니다. 로마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부당한 풍속, 이상한 신을 선전하고 있다는 혐의죠.

 

한마디로 바울과 실라는 로마 시민들을 선동하는, 매우 위험한 자들이라는 것이 죄목입니다. 이에 경찰들은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질을 하고는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오늘 본문이 시작합니다.

 

새 일이 시작됩니다. 감옥에서요. 기적이 일어납니다. 지진이 일어나고, 감옥문이 열리고, 매인 족쇄가 풀립니다. 간수는 바울과 실라가 도망간 줄 알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합니다. 감옥에 있던 바울이 다급히 말립니다. 간수는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립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묻지요. 사도행전 1630절입니다.

 

30 그리고 그들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서 물었다. “두 분 사도님,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여기에서 그 유명이 대답이 나옵니다. 개역성경으로 말씀드리면 여러분 다 아십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간수는 믿었고, 세례를 받았고, 바울과 실라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고, 음식도 대접합니다. 온가족이 다 믿게 되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 빌립보 감옥에서의 기적 같은 사건은 처음부터 바울이 계획한 경로가 아니었습니다. 소아시아 선교를 만류하셨던 성령과 꿈속에서 본 마케도니아 사람의 초대, 첫 유럽의 선교지 빌립보에서 만난 동역자 루디아와 귀신에 들려 점치던 종과 만남, 매 맞고 수감된 일, 지진, 그리고 간수 가족의 믿음까지...

 

단 하나도 바울이 계획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주어진 길에서 믿음을 놓지 않았을 뿐이고, 그 모든 순간에 하나님은 세밀하게 하나님의 일을 하고 계셨던 겁니다.

 

 

3. 오늘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세리 마태에게 자신을 따라오라 하시고는 다른 세리들과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합니다. 그 자리엔 죄인들도 있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며 예수의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아니 따졌습니다.

무엇 때문에 당신네 선생은 세금업자들과 죄인들과 어울려 음식을 먹는가?’라고요.

 

예수님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가서 배우세요. 내가 바라는 것은 한결같은 사랑이지, 희생제물이 아닙니다. 난 그들, 죄인들을 부르러 왔지, 당신네들 의인을 부르러 오지 않았으니까요.”

 

새 일은 지금도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하나님의 새 일이 영업방해와 허위사실유포로 들립니다. 누군가에게는 죄인들과 그저 어울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내 이익에 눈멀어있고, 내가 종교적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한, 하나님의 새 일은 보이지 않습니다. 과거의 기억에 얽매야 있는 한, 하나님의 새 일은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실천적 삶의 모습 또한 보이지 않습니다.

 

살다 보면 캄캄한 어둠이 찾아와 우리의 사방을 감쌀 때가 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 원하지 않는 사회적 흐름이 우리 삶을 좌우할 때가 있습니다. 어찌할 바 몰라 당황스럽고 때론 두렵기도 합니다.

 

중요한 사실은 그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오늘도 새 일을 도모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속한 자리가 어디인지 우리의 정체성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어디로 이끄시든지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막막한 중에 부르는 찬양은 힘이 있습니다. 어둠 중에 드리는 기도도 반드시 힘이 있습니다. 이 확고한 믿음으로 새로 주시는 주현절 셋째 주간, 일상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살아가는, 오늘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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