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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타나심... 지혜와 말씀, 그리고 그리스도 | 장 본 목사 | 2026-02-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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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상의 사이즈와 화질은 500kbps, 중간화질입니다. 영상은 업로드 시 설정할 수 있습니다. . 나타나심... 지혜와 말씀, 그리고 그리스도 주현절 넷째주일 해외선교주일 20260201 잠언 8:12-36 12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분별력을 가지고 있다. 13 주님을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다. 나는 교만과 오만, 악한 행실과 거짓된 입을 미워한다. 14 내게는 지략과 건전한 지혜가 있으며, 명철과 능력이 있다. 15 내 도움으로 왕들이 통치하며, 고관들도 올바른 법령을 내린다. 16 내 도움으로 지도자들이 바르게 다스리고, 고관들 곧 공의로 재판하는 자들도 올바른 판결을 내린다. 17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며, 나를 간절히 찾는 사람을 만나 준다. 18 부귀와 영화도 내게 있으며, 든든한 재물과 의도 내게 있다. 19 내가 맺어 주는 열매는 금이나 순금보다 좋고, 내가 거두어 주는 소출은 순은보다 좋다. 20 나는 의로운 길을 걸으며, 공의로운 길 한가운데를 걷는다. 21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재물을 주어서, 그의 금고가 가득 차게 하여 줄 것이다. 22 주님께서 일을 시작하시던 그 태초에, 주님께서 모든 것을 지으시기 전에, 이미 주님께서는 나를 데리고 계셨다. 23 영원 전, 아득한 그 옛날, 땅도 생기기 전에, 나는 이미 세움을 받았다. 24 아직 깊은 바다가 생기기도 전에, 물이 가득한 샘이 생기기도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났다. 25 아직 산의 기초가 생기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났다. 26 주님께서 아직 땅도 들도 만들지 않으시고, 세상의 첫 흙덩이도 만들지 않으신 때이다. 27 주님께서 하늘을 제자리에 두시며, 깊은 바다 둘레에 경계선을 그으실 때에도, 내가 거기에 있었다. 28 주님께서 구름 떠도는 창공을 저 위 높이 달아매시고, 깊은 샘물을 솟구치게 하셨을 때에, 29 바다의 경계를 정하시고, 물이 그분의 명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고, 땅의 기초를 세우셨을 때에, 30 나는 그분 곁에서 창조의 명공이 되어, 날마다 그분을 즐겁게 하여 드리고, 나 또한 그분 앞에서 늘 기뻐하였다. 31 그분이 지으신 땅을 즐거워하며, 그분이 지으신 사람들을 내 기쁨으로 삼았다. 32 그러므로 아이들아, 이제 내 말을 들어라. 내 길을 따르는 사람이 복이 있다. 33 내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고, 그것을 무시하지 말아라. 34 날마다 나의 문을 지켜 보며, 내 문설주 곁에 지키고 서서, 내 말을 듣는 사람은 복이 있다. 35 나를 얻는 사람은 생명을 얻고, 주님께로부터 은총을 받을 것이다. 36 그러나 나를 놓치는 사람은 자기 생명을 해치는 사람이며,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죽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골로새서 1:15-20 15 그 아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16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왕권이나 주권이나 권력이나 권세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17 그분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18 그분은 교회라는 몸의 머리이십니다. 그는 근원이시며,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이는 그분이 만물 가운데서 으뜸이 되시기 위함입니다. 19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안에 모든 충만함을 머무르게 하시기를 기뻐하시고, 20 그분의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루셔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다, 자기와 기꺼이 화해시켰습니다. 요한복음 1:1-5 1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2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그가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 창조된 것은 4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1. 은진교회 교우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교우 여러분에게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국어 문법 하나를 소개해 드리려고 해요. 여러분 ‘토끼와 거북이’라는 동화 다 아시죠? 둘이 달리기 시합을 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거북이가 이긴다는 이야기요. 그 이야기를 보면 토끼가 거북이한테 말하죠. 거북이는 토끼한테 대답하고요. 주변의 동물들은 누군가를 응원하죠. 그런데 이게 사실은 말이 안 되죠. 토끼가 어떻게 거북이한테 말 하나요? 동화에서만 가능한 일이잖아요. 이렇게 여러 동물을 마치 사람처럼 표현해서 말도 하고, 대화도 하고 그렇게 이야기를 만들었잖아요. 이걸 국어 문법에서는 ‘의인법(擬人法)’이라고 말해요. 동물이나 식물, 무생물, 추상적인 단어 등 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인 것처럼 표현하는 거죠. 그걸 의인법이라고 한답니다. 설교 시간에 웬 의인법 설명을 할까요? 오늘 구약 말씀이 바로 의인법을 쓰고 있어서 그래요. 오늘 잠언 8장 12절 위에 소제목이 있어요. 뭐라고 써있는지 함께 볼까요? “지혜가 하는 말”이라고 써 있죠. 지혜가 말을 어떻게 해요? 지혜라는 단어는 추상적 단어거든요. 그런데 말한다고 사람처럼 표현했잖아요. 그래서 의인법이 쓰인 거라고 말하는 겁니다. 오늘 잠언의 말씀은 지혜가 우리에게 하는 말이라는 거죠. 목사님이 간단하게 잠언의 말씀을 정리해 볼게요. 오늘 지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답니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새한글 성경의 표현으로 요약해 드립니다. 나는, 나 지혜는 지식과 분별력을 가지고 있어. 주님을 경외,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야. 왕들도 나를 가지고 백성들을 다스리지.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해. 나 지혜를 찾으려는 사람들은 나를 찾을 수 있지. 나로 인한 열매는 금이나 은보다 더 좋아. 왜냐고?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셨거든. 난 까마득한 옛날부터 있었단다. 내 말을 듣는다면 너희들에게 복이 있을 거야. 내가 가르쳐 준 대로 길을 가면 지혜롭게 되고, 복 있을거야.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오늘 지혜가 사람처럼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 멋진 신앙인으로 서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지혜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이어갑니다. 여러분은 ‘지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다 아는 단어인 것 같은 데 막상 설명하려니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에게는 지혜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제 아내 이름이 지혜라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 또한 지혜라는 단어를 설명하려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어렵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이렇게 풀고 있습니다. 지혜: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 꽤 추상적인 설명입니다. 사물의 이치는 뭐며, 그것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것은 무엇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혜에 대해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이유도 사실은 지혜라는 단어가 보기보다 어려운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날부터 지혜에 관해 깊은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쌓으면 지혜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무 블록 10개가 있어요. 아이들이 나무 블록을 쌓습니다. 아홉 개를 쌓고 마지막 열 번째 블록을 올리는 데 성공하면, 아이들은 소리 지릅니다. ‘와! 다 쌓았다!’ 딱 그겁니다. 지혜도 무언가를 쌓고, 쌓고, 또 쌓다 보면 언젠가 어떠한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 무엇이 바로 ‘지식’이었습니다. 지식을 쌓아서 지혜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지식이란 또 무엇일까요? 지식은 ‘어떤 대상에 대하여 배우거나 실천을 통하여 알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를 뜻합니다. 아주 쉽게 말해 ‘어떤 대상에 대해 알고 있는 내용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사물에 대해서, 어떤 사회 현상에 대해서 알고 있는 내용이 많으면 많을수록, 쌓이면 쌓일수록 지혜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공부했습니다. 공부에 공부를 더 합니다. 수학도 공부하고, 철학도 공부하고, 신학도 공부해야 했습니다. 고대 서양 학자들이 여러 학문에 박학다식했던 이유, 바로 지식이 지혜에 이르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우리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을 일컬어 ‘저 사람 참 지혜로운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이유가 그래서입니다. 그런데 지혜에 관한 사전적 설명에서 하나가 빠져 있습니다. ‘정신적인 능력’이라는 것인데요. 이것은 지식이라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아는 것 많은 사람,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경우를 우리는 수 없이 경험합니다. 지식만 있고 지혜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고대 서양의 학자를 ‘현인(賢人)’이라 불렀지요. 어질 현 자에 사람 인 자를 쓴 것입니다. 어질다는 것은 지혜의 정신적인 능력을 중요하게 보았다는 증거입니다. 동양에서도 가장 중요한 네 개의 덕목으로 ‘인·의·지·예’를 꼽고 거기에 당당히 지혜가 들어있는 것만으로도 지혜의 정신적인 능력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이렇게 지혜에 관해 공부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혜의 정신적인 능력에 대해 명확하게 밝혀주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결국, 이런 질문에 도달하게 되었어요. 지혜라는 단어를 이렇게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는, 지혜라는 것이 사람의 영역을 벗어난 것이어서가 아닐까? 즉 지혜는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지요. 그리고 놀랍게도 오늘 잠언의 말씀은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확인시켜 줍니다. 오늘 읽은 잠언 8장에서 지혜는 스스로 1인칭 주인공이 되어 말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읽어보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눈으로 따라 오십니다. 22절 지혜는 주님께서 일을 시작하시던 태초에, 모든 것을 지으시기 전부터 가지고 계신 것이고, 23절 영원 전부터, 아득한 옛날부터, 땅도 생기기 전에 세움을 받은 것이며, 24절 바다도 샘도 생기기 전에 이미 태어나 있었고, 25절 산과 언덕이 생기기 전에도, 26절 땅도 만들지 않으신 때에도 있었다고 말합니다. 뭐가요? 지혜가요. 30절로 넘어가면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합니다. 나 지혜가 날마다 하나님을 즐겁게 해 드렸고, 나 또한 그분 앞에서 늘 기뻐했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읽고 저는 확신했습니다. 지혜라는 것! 감히 사람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구나. 동서양의 수많은 학자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던 지혜의 본질이 이것이구나. 특별히 하나님을 믿으며, 주현절 넷째주일 온세대예배를 드리는 우리 은진교회 교우들에게 이 지혜라는 것은 정녕 하나님께 속해 있는 것이로구나! 그래서 우리는 매일매일 기도할 때, ‘하나님! 우리에게 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는구나. 은진교회 교우 여러분! 지혜는 내가 아닌,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신앙인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주님의 지혜를 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속한 지혜는 과연 무엇이란 말입니까? 오늘의 복음서 요한복음의 말씀으로 두 번째 여행을 떠납니다. 3. 요한복음 1장 1절과 2절입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2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잠언 8장의 지혜에 대한 말씀을 읽고 요한복음 1장 1, 2절을 읽었습니다. 뭔가 감이 오지 않으십니까? 과장해서 좀 충격적이지 않나요? 요한복음을 수도 없이 읽어보았지만, 1장 1절부터 감동을 받은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지혜란 무엇입니까?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명확하게 요한복음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일하시기 전부터 가지고 계셨던 지혜! 그 예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세움을 받았던 지혜!! 바다도 샘도 생기기 전에 있었던 지혜!!! 산이, 언덕이 생기기 전에도, 땅도, 들도, 세상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도 있었다는 그 지혜는!!!!...... 바로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인 것입니다. 그 말씀이 하나님을 통해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바로 4절 마지막에 나오는 단어 “빛”입니다. 빛은 어둠의 반대가 아닙니다. 어둠 다음에 오는 것이 빛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빛이 오면 어둠은 그저 사라집니다. 빛 때문에 없어지는 존재, 그것이 바로 어둠입니다. 그래서 5절에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 교우와 대화하다 보면 이렇게 말하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목사님. 요즘요. 말씀이 자꾸 저를 찔러요. 요즘요. 말씀만 읽으면, 어쩜 그리 저한테만 하시는 말씀 같은지 모르겠어요.’ 아마 비슷한 경험 모두 가지고 계실 겁니다. 이런 생각이 들고 있다면 지금 내 마음의 상태가, 그 당시 내 마음의 상태가 빛 보다는 어둠이 많은 상태라고 진단하시면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자! 말씀이 빛이라고 말씀드렸지요. 우리가 숨 쉴 때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듯 빛이 있을 때 그 존재를 모르는 것이 빛입니다. 이 예배당 지금 무척 밝아요.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보고 매 주일 '와! 밝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주일온세대예배 때 예배당은 늘 이렇게 밝았기 때문입니다. 빛의 존재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것이죠. 그런데 이 중에서 절반의 조명만 꺼져도 우리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어? 오늘 왜 이렇게 어둡지?’ 바로 그겁니다. 말씀이 빛으로 우리를 비추시는데 그것을 평소에는 모르고 지내다가 내 마음이, 내 삶이, 내 믿음이 조금 흔들리고 어두워지면, 비로소 어둠이 확 느껴지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전과 똑같이 비추던 말씀의 빛이 너무 어둡게 느껴지는 겁니다. 달라진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말씀의 빛은 늘 나를 비추고 있었는데 말이죠. 나입니다. 내 마음이 변하니 똑같이 비추던 그 빛이 다르게 느껴지더라는 거죠. 여러분 건강검진 다 받으시죠? 전날 금식하고 다음 날 종일 검사를 받잖아요. 우리가 건강검진 받으려면 최소한 한 끼 금식하고, 많은 시간을 들이고 때로 비싼 검진료까지 내야 합니다. 그런데 신앙의 검진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말씀이 자꾸 나를 찌른다고 생각하거나 현재 내 신앙의 모습, 믿음의 모습이 조금 어두워졌다고 책망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느끼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스스로 나의 상태를 진단할 수 있도록 주신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다시 나의 마음을, 내 삶과 믿음을 밝히면 하면 되는 겁니다. 은진교회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 속한 지혜, 말씀이 비춰주는 빛으로 늘 밝음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빛의 자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4. 이제 하나가 남았습니다. 그렇다면 빛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서신서의 말씀, 골로새서로 마지막 여행을 떠납니다. 골로새서 1장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골로새 공동체의 성도들에게 예수님을 증언하는 장면입니다. 15절에서 바울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라고 전합니다. 그리고 17절, 마치 우리가 앞서 읽은 잠언과 요한복음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는데요. 함께 읽습니다. 17 그분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우리가 읽었던 지혜에 대한 잠언의 말씀과 요한복음의 말씀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구약과 복음서를 통전적으로 이어내는 이런 말씀을 할 수 있었을까요? 잠언에서 만난 지혜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었을 뿐입니다. 비로소 요한복음에서 만난 지혜, 그것이 바로 말씀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그저 하늘에 속한 것이지요. 하지만 이제 그 지혜가, 그 말씀이, 빛으로 이 세상에 밝히 드러났으니 그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늘에 속했던 지혜가 이천 년을 넘어 우리에게 도달했으니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고백하는 것이 바로 오늘 바울의 말씀인 것이죠. 그 예수님은 어떻게 오셨을까요? 18절입니다. 18 그분은 교회라는 몸의 머리이십니다. 그는 근원이시며,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이는 그분이 만물 가운데서 으뜸이 되시기 위함입니다. 그분은 은진교회의 머리로 오셨습니다. 그분만이 근원이십니다.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밝은 빛이 되시는 분입니다. 사도 바울. 그가 위대한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드라마처럼 극적인 인생역전을 이룬 인물이어서가 아닙니다. 기적을 체험해서가 아니에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던 사람에서 예수를 전하는 사람으로 변해서도 아닙니다. 그렇게 예수를 전하게 된 사람들 이 세상에 바울 말고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바울이 위대한 단 하나의 이유! 빛을 보고, 죽을 때까지 빛으로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빛을 보았던 사람들은 아주 많았습니다. 얼마나 많았으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출판된 책이 바로 성경이겠습니까? 그러나 전 세계에 하나님의 세상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말은 빛을 본 사람은 많은데 빛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당연히 빛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요? 골로새서 1장 20절,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마지막 말씀입니다. 20 그 분의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루셔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다, 자기와 기꺼이 화해시켰습니다. 하나님에게 속한 지혜의 실체. 오늘의 결론입니다. 저를 따라 하십니다. “다 자기와 기꺼이 화해시켰습니다.” 여러분! 지혜롭게 되고 싶으십니까? 그래서 지금도 여러 가지 지식을 쌓고 계십니까? 자녀들이 지혜롭게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래서 죽도록 공부시키십니까? 지혜는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했다는 말, 내가 하나님 안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그 지혜는 구경조차 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하나님 안에 들어간다는 말, 늘 나를 비추시는 말씀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인정한다는 말,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뜻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 그분으로 말미암아 나와 하나님이, 나와 내 가족이, 나와 이 세상이 평화를 이룬다는 뜻입니다. 지혜롭게 되고 싶으시거든 말씀 안에 늘 밝음으로 사시고, 그 밝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평화를 이루십시오. 말씀이 떠난 지혜는 나를 어둠으로 끌고 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떠난 지혜는 이 세상을 좇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평화를 이루지 않는 지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마저 부인하게 합니다. 내가 정말 지혜롭게 되고 싶으시거든, 내 자녀들이 진정 지혜로운 자녀가 되기를 원하시거든 하나님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십시오. 나를 비추는 말씀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매인 것이 있으면 화해하시고, 우리 은진 교우들과 화목하시고, 매인 것이 있으면 또 화해하시고, 내 직장 동료와, 옆집 아저씨와, 시장에서 야채파는 아주머니와 화목하십시오. 그것이 믿는 우리가 지혜롭게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은진교회 교우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 빛으로 비춰주시는 말씀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평화를 이루는 저와 여러분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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