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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움켜쥔 손을 펼치세요 / 주현절 여섯째주일 / 설주일 | 장 본 목사 | 2026-02-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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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상의 사이즈와 화질은 500kbps, 중간화질입니다. 영상은 업로드 시 설정할 수 있습니다. . 움켜쥔 손을 펼치세요. 주현절 여섯째주일 설주일 20260215 출애굽기 19:1-6 1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뒤 셋째 달 초하룻날, 바로 그 날 그들은 시내 광야에 이르렀다. 2 그들은 르비딤을 떠나서, 시내 광야에 이르러, 광야에다 장막을 쳤다. 이스라엘이 그 곳 산 아래에 장막을 친 다음에, 3 모세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 가니, 주님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너는 야곱 가문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일러주어라. 4 ‘너희는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한 일을 보았고, 또 어미독수리가 그 날개로 새끼를 업어 나르듯이,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나에게로 데려온 것도 보았다. 5 이제 너희가 정말로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서 나의 보물이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다 나의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선택한 백성이 되고, 6 너희의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주어라.” 베드로전서 2:4-10 4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그는 사람에게는 버림을 받으셨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은 살아 있는 귀한 돌입니다. 5 살아 있는 돌과 같은 존재로서 여러분도 집 짓는 데 사용되어 신령한 집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십니다. 6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보아라, 내가 골라낸 귀한 모퉁이 돌 하나를 시온에 둔다. 그를 믿는 사람은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7 그러므로 이 돌은 믿는 사람들인 여러분에게는 귀한 것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집 짓는 자들이 버렸으나,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돌”이요, 8 또한 “걸리는 돌과 넘어지게 하는 바위”입니다. 그들이 걸려서 넘어지는 것은 말씀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그렇게 되도록 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9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10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자비를 입지 못한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자비를 입은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16:13-20 13 예수께서 빌립보의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예레미야나 예언자들 가운데에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15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 17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시몬 바요나야, 너는 복이 있다. 너에게 이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시다. 18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내가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20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엄명하시기를, 자기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1. 은진교회 교우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교우 여러분에게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여러분과 서신서의 말씀을 함께 보면서 여러분이 누구인지 보여드리겠습니다. 신약 359쪽, 베드로전서 2장 4절을 펼쳐보세요. 오늘처럼 성경을 보는 것을 어려운 말로 ‘강독(講讀)’ 또는 ‘강해(講解)’라고 해요. 읽으면서 푼다, 읽으면서 해석한다, 뭐 이런 말이거든요. 원래 이런 성경공부는 오래전 많이 했던 방식인데, 오늘은 어린어-청소년 여러분과 옛날 방식으로 함께 공부해 보려고 합니다. 자! 베드로전서 2장 4절입니다. 성경을 쭉 읽으면서 갈 거니까, 성경에 눈을 떼지 마시고 귀로는 저의 이야기를 듣는 겁니다. 이제 시작합니다. 4절 함께 읽습니다. 4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그는 사람에게는 버림을 받으셨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은 살아 있는 귀한 돌입니다. 사람에게 버림받은 그는 예수님이예요, 하지만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고 말하죠. 살아 있는 귀한 돌이래요. 그런데 5절을 보면 “여러분”도 그렇다고 말하죠. 우리도 살아있는 돌이라고요. 쓰임새 있는 사람이라고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요. 그런데 이것을 잊으면 안 돼요! 바로 5절 중간, “예수 그리스도로 말이맘아”라는 대목이에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4절의 첫 문장, “주님께 나아온 사람”은 그런 사람이라는 거죠. 6절부터는 다른 성경 말씀을 인용해서 부연 설명하고 있어요. 매우 논리적이죠. 6절과 8절은 이사야서에서 인용한 말씀이고요, 7절은 시편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인용해서 돌 하나의 중요함을 뒷받침하고 있는 거예요. 다시 말해요. 그 돌은 여러분, 바로 우리란 말이죠. 6절에서 8절까지의 말씀을 풀면, 어떤 돌이 있는데 그 돌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셨다고 믿는다면 어느 집이든 집을 받치는 소중한 모퉁이 돌이 될 것이고, 믿지 않는다면 그저 모퉁이에 튀어나와 있으니까 사람들이 오가며 넘어지는 돌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죠. 즉 그 돌을 보는 사람들의 믿음에 따라 그 돌이 소중한 돌로, 불필요한 돌로 바뀐다는 거예요. 그 돌이 예수님 같은 존재라고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믿으면 예수님은 나의 굳건한 받침돌이 되어주시고, 믿지 않는다면 불필요한 그저 튀어나온 돌로 느껴진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이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이미 드러나 있는 거죠. 그런 사람 이렇게 된답니다. 마지막 10절입니다. 10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자비를 입지 못한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자비를 입은 사람입니다. 어린이-청소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기억하고 살아가는 신앙인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참 공교로운 일이 있어요. 오늘 복음서의 말씀, 작년 10월 첫 주, 한가위감사주일에 말씀으로 나눈 본문과 같거든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두 개의 명절, 추석과 설을 앞두고 같은 본문의 말씀을 받은 거죠. 그때는 새한글성경 본문으로 복음서의 말씀을 살폈습니다. 한가위를 앞두고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지내야 할지 말씀드렸었죠. 그래서 오늘은 같은 본문이어도 신학적인 맥락에서 말씀을 다시 살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몇 개의 열쇠를 가지고 계십니까? 사실 요즘은 디지털 키가 일반화되어 있어서 별로 없을 수도 있겠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열쇠든 번호든 가장 소중한 열쇠는 무엇입니까? 열쇠란 ‘자물쇠를 여는 쇠붙이’를 말합니다. 열쇠의 본질은 자물쇠, 곧 잠긴 것을 여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열쇠로 여는 그 무엇은 내 것, 내 소유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그래서일까요? 사람들은 열쇠에 집착하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내 집 열쇠 하나 갖기 위해 평생을 다 바쳐 돈만 벌기도 합니다. 어떤 열쇠를 몇 개 가지고 있느냐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기도 하죠. 그래서 무슨 일에건 내가 키를 쥐려고 합니다. 이렇듯 열쇠는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인생에 꼭 필요한 물건이 되어 버렸습니다. 오늘 복음서 말씀에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도시가 등장합니다. 먼저 이 도시에 대해 조금 알 필요가 있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 마치 사람 이름 같습니다. 사람 이름이 맞습니다. 두 사람의 이름입니다. 한 명은 가이사이고 다른 한 명은 빌립입니다. 빌립은 이전 이스라엘 지역을 통치하던 헤롯 대왕의 아들 중 한 명입니다. 헤롯 대왕이 죽고 나서 그의 아들들이 이스라엘 지역을 분할하여 통치하게 되었죠. 그래서 빌립이 로마 황제의 이름인 가이사와 자신의 이름 빌립을 따서 만든 도시가 바로 가이사랴 빌립보입니다. 황제의 이름을 붙였다는 것, 이것은 황제에게 바쳐진 도시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빌립은 흰 대리석으로 신전을 만들어 로마 황제에게 이 도시를 바칩니다. 이렇게 태어난 도시 가이사랴 빌립보. 온갖 이방신들이 즐비했던 곳. 이곳에 예수님과 열두제자가 잠시 머물게 됩니다. 갈릴리 지역에서 수없이 많은 기적을 행하신 다음이었지요. 역사적으로 추론해 보면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한 지 2년 6개월쯤 지났을 때였습니다. 이 말은 6개월 후면 예수님의 죽음이 다가온다는 말도 되겠네요. 어찌 되었든 그런 시간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을 뒤로 하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갈릴리 호수의 북쪽 지역 가이사랴 빌립보에 도착하셨습니다. 3. 그런데 놀랍게도 이 타락의 도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가 하늘나라 열쇠를 받습니다. 개역 성경에는 천국 열쇠라고 하죠. 진짜로 받았을까 의심하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만, 정말 받았습니다. 확인합니다. 마태복음 16장 19절입니다. 19 내가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하늘나라 열쇠를 정말로 받았습니다. 베드로의 기분이 어땠을까요? 정말 행복했을 겁니다. 예수님을 모신지 2년 반 만에 아마 이런 기분 처음이었을 겁니다. 하늘나라 열쇠를 받은 것만 해도 좋은데, 사상 최고의 축복도 덤으로 받습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는 것이 바로 그 축복입니다. 여기에서 매고 푸는 것이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을 올바로 해석할 수 있는 권한을 뜻합니다. 곧 베드로에게 예수님의 가르침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진 것이지요. 하늘나라 열쇠만 해도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은데 더 큰 선물까지 받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궁금증을 가져야 하는 부분이 하나 있어요. 어떻게 베드로가 하늘나라 열쇠와 가르침에 대한 권세까지 받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16절입니다.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이 고백 덕분에 하늘나라 열쇠를 받았습니다. 그 유명한 그리스도 고백, 여러분 수십 번 보았고, 수십 번 외웠던 바로 그 말씀입니다. 혹시 여기 계신 교우 여러분 중에 하늘나라 열쇠를 받고 싶으신 분 계십니까? 그렇다면 지금 읽은 베드로의 대답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왜냐면 그 대답이 하늘나라 열쇠를 받게 한 정답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사실, 그렇다고 그저 머리로만 기억하지 마시고 이 고백을 나의 진정한 삶의 고백으로 만들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십자가의 죽음을 예감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내가 누구냐?’ 제자들이 대답하죠. ‘더러는 세례 요한이라,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예레미야라 하던데요?’, 예수님이 다시 묻습니다. ‘아니 사람들의 말 말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너희에게 나는 누구냐?’ 순간 모두가 조용해졌습니다. 제자들이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고 있을 때 베드로가 나선 겁니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 이것이 정답입니다. 세상의 황제에게 바치기 위해 이름지은 도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말입니다. 진짜 왕, 우리가 따를 분은 예수님이라고 외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 대답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나 사이에 인격적인 관계, 곧 직접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겁니다. 누가 대신 답해주는 것으로는 정답이 될 수 없습니다. 지하철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고 외치는 사람들, 어떨 땐 우리가 봐도 좀 그럴 때 있잖아요. 왜 그런지 아십니까? 옆 사람이 대신 말해 주기 때문입니다. ‘주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래요~’라고 옆에 사람이 대신 말해 주는 것은 정답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주님과 나 사이에 일대일의 관계가 성립되어야만 정답으로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래서 기독교는 인격적인 종교입니다. 주님과 인격적인 만남 없이는 기독교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런 인격적인 관계없이는 하늘나라 열쇠를 받을 수도 없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만났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하여 하늘나라 열쇠를 받았습니다. 교우 여러분. 내 집 열쇠나 현관 비밀번호는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맡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 열쇠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은 주님께서 믿어주시는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그 신앙고백을 통해 주님께 신뢰를 얻었습니다. 그 후로 베드로는 하늘나라 청지기가 됩니다. 베드로가 열면 천국이 열렸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만난 사람들은 베드로가 열어주는 문으로 하늘나라에 들어갔습니다. 오순절에는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던 삼천여 명이 그 나라를 만났습니다. 백부장 고넬료가 베드로를 만나 하늘나라에 들어갑니다. 하늘나라. 천국. 국어사전에서는 천국을 이렇게 풉니다. 하나님이, 영으로 지배하는 은총과 축복의 나라라고요. 우리는 주님을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거룩한 무리, 즉 성도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라 불리는 우리는 하늘나라 열쇠를 받은 천국의 청지기입니다. 그런데 천국은 은총과 축복의 나라래요. 그러니까 우리가 입을 열면 은총과 축복의 말이 쏟아집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면 은총과 축복이 쏟아집니다. 우리가 모임을 열면 그 가운데 은총과 축복이 충만합니다. 한마디로 하늘나라가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왜 내가 열면 지옥이 열리나? 왜 내가 입을 열면 은총과 축복의 말이 아니라 불만과 짜증만 나오는가? 왜 내 마음은 지옥인가?’ 대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하늘나라 열쇠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하지만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베드로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하늘나라 열쇠를 받아놓고도 천국을 열지 못했습니다. 급기야는 열쇠를 받은 그다음 장면부터 예수님께 혼납니다. 오늘 본문은 아니지만, 이어나오는 23절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이라고 말씀합니다. 왜요? 주님과 만남이 흐트러졌기 때문입니다.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향한 내 고백이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나의 신뢰 관계가 깨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 손엔 지금도 하늘나라 열쇠가 들려있다는 사실입니다. 4. 오늘 구약의 말씀은 그 유명한 시내산에서 맺은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출애굽한 지 3개월 만에 모세와 백성들은 시내산, 시내 광야에 도착합니다. 시내 광야는 출애굽의 첫 번째 목적지였습니다.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계시와 언약 체결 장소에 드디어 백성들이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하죠. 많은 일이 있었지요. 이집트를 나오기까지는요. 나오는 것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열 가지 재앙 끝에 나옵니다. 나오면 뭐합니까? 쫓아오는데요. 하나님의 기적으로 위기를 넘깁니다. 그랬더니 배고프다고 징징, 목마르다고 징징댑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바위에서 물이 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시내 광야, 시내산에 왔다고요. 누가 한 일입니까? 모세가요? 백성들이 힘을 합쳐 이겨냈나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그분이 이끄셨습니다. 시내산에 도착했다는 말, 이제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닫고 인정할 때가 되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백성들과 언약을 맺습니다. 이제부터 그 언약의 핵심 세 절을 함께 읽습니다. 출애굽기 19장 4-6절입니다. 4 ‘너희는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한 일을 보았고, 또 어미독수리가 그 날개로 새끼를 업어 나르듯이,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나에게로 데려온 것도 보았다. 5 이제 너희가 정말로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서 나의 보물이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다 나의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선택한 백성이 되고, 6 너희의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주어라.” 서신서의 말씀에서 본 단어가 나오네요. 제사장요. 제사장 나라가 될 거래요. 서신서에서는 모두가 제사장이 된다고 했잖아요. 그 근거가 시내산 언약에서 시작된 겁니다. 하나님 나라가 될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래서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열쇠를 손에 주시지 않았나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요. 역시 손에 열쇠는 들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결국 자기 손에 쥔 것이 열쇠인 줄도 모르고 살다가 혼쭐이 났잖아요. 금송아지도 만들고 그랬잖아요. 이것만 기억해서 그래요. 하나님이 우리를, 나를 선택하셨다는 말만 기억한 거죠. 그 선택에 따르는 삶은 나 몰라라 했던 거죠. 베드로가 하늘나라 열쇠를 받았어도 사탄이 된 것, 주님과 인격적 관계가 흐트러졌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똑같은 의미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열쇠는 내 의지로 가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또 기억하십시오! 그 열쇠는 내 손에, 하나님께서 쥐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5. 은진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 손에 하늘나라 열쇠가 이미 쥐어져 있다면 어쩌시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그리스도로 고백했다면 여러분 손에는 이미 하늘나라 열쇠는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 그 열쇠 움켜쥐고 있어서 그것이 천국 열쇠임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거죠. 그 손을 펼쳐야 합니다. 손을 펼친다는 말,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을 기억한다는 말입니다. 기억만 하지 않고 삶에서 하나님이 꿈꾸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간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2026년 설주일에 우리의 손으로 실천하는 것이 바로 천국 열쇠 움켜쥔 손을 펼치는 길입니다. 내일부터 설 명절이 시작합니다. 움켜쥐면 보이지 않습니다. 가족, 친지 앞에서 움켜쥐고 있으면 싸우자는 말밖에 되지 않아요. 펼치면 들어 있는 것은 하늘나라 열쇠입니다. 여러분 살아가는 모든 세상에서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움켜쥔 손, 하늘나라 열쇠 움켜쥔 손을 펼쳐 열쇠를 잡고, 그 문을 여십시다. 그렇게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우리의 삶에서 펼쳐 나갑시다. 그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천국을 살아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 넉넉한 마음과 배려로 행복한 명절 보내시고, 움켜쥔 손 펼치며 하늘나라의 복을 삶에서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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