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증오'보다 강한 것은 '사랑'입니다 / 주현절 다섯째주일 | 장 본 목사 | 2026-02-08 | |||
|
|||||
|
본 영상의 사이즈와 화질은 500kbps, 중간화질입니다. 영상은 업로드 시 설정할 수 있습니다. . ‘증오’보다 강한 것은 ‘사랑’입니다! 주현절 다섯째주일 신학교육주일 20260208 아모스 9:7-15 7 “이스라엘 자손아, 나에게는 너희가 에티오피아 사람들과 똑같다. 나 주가 하는 말이다. 내가 이스라엘을 이집트 땅에서, 블레셋 족속을 크레테에서, 시리아 족속을 기르에서, 이끌어 내지 않았느냐? 8 나 주 하나님이 죄 지은 이 나라 이스라엘을 지켜 보고 있다. 이 나라를 내가 땅 위에서 멸하겠다. 그러나 야곱의 집안을 모두 다 멸하지는 않겠다.”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9 “똑똑히 들어라. 내가 이제 명령을 내린다. 곡식을 체질하여서, 돌멩이를 하나도 남김없이 골라 내듯이, 세계 만민 가운데서, 이스라엘 집안을 체질하겠다. 10 나의 백성 가운데서 ‘재앙이 우리에게 덮치지도 않고, 가까이 오지도 않는다’ 하고 말하는 죄인은 모두 칼에 찔려 죽을 것이다.” 11 “그 날이 오면, 내가 무너진 다윗의 초막을 일으키고, 그 터진 울타리를 고치면서 그 허물어진 것들을 일으켜 세워서, 그 집을 옛날과 같이 다시 지어 놓겠다. 12 그래서 에돔 족속 가운데서 남은 자들과, 나에게 속해 있던 모든 족속을, 이스라엘 백성이 차지하게 하겠다.” 이것은 이 일을 이루실 주님의 말씀이다. 13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그 때가 되면, 농부는 곡식을 거두고서, 곧바로 땅을 갈아야 하고, 씨를 뿌리고서, 곧바로 포도를 밟아야 할 것이다. 산마다 단 포도주가 흘러 나와서 모든 언덕에 흘러 넘칠 것이다. 14 내가, 사로잡힌 내 백성 이스라엘을 데려오겠다. 그들이 허물어진 성읍들을 다시 세워, 그 안에서 살면서 포도원을 가꾸어서 그들이 짠 포도주를 마시며, 과수원을 만들어서 그들이 가꾼 과일을 먹을 것이다. 15 내가 이 백성을 그들이 살아갈 땅에 심어서, 내가 그들에게 준 이 땅에서 다시는 뿌리가 뽑히지 않게 하겠다.” 주 너의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로마서 8:12-17 12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빚을 지고 사는 사람들이지만, 육신에 빚을 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육신을 따라 살아야 할 존재가 아닙니다. 13 여러분이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14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15 여러분은 또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16 바로 그 때에 그 성령이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십니다. 17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고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입니다. 마가복음 3:20-30 20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들어서, 예수의 일행은 음식을 먹을 겨를도 없었다. 21 예수의 가족들이,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서, 그를 붙잡으러 나섰다. 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은, 예수가 바알세불이 들렸다고 하고, 또 그가 귀신의 두목의 힘을 빌어서 귀신을 쫓아낸다고도 하였다. 23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을 불러 놓고,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이 어떻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24 한 나라가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그 나라는 버틸 수 없다. 25 또 한 가정이 갈라져서 싸우면, 그 가정은 버티지 못할 것이다. 26 사탄이 스스로에게 반란을 일으켜서 갈라지면, 버틸 수 없고, 끝장이 난다. 27 먼저 힘센 사람을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세간을 털어 갈 수 없다.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어 갈 것이다. 28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하는 어떤 비방도 용서를 받을 것이다. 29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인다.” 30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그는 악한 귀신이 들렸다” 하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1. 은진교회 교우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교우 여러분에게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최근 어느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서 우승한 요리사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려고 합니다. ‘흑백요리사’라는 프로그램 들어본 적 있죠? ‘백수저’라고 표현하는 우리나라에서 인지도 높은 20명의 요리사와 ‘흑수저’라고 표현하는 전국 각지에서 요리하는 80명의 요리사가 요리 경연을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여기에서 우승한 요리사가 있습니다. 프로그램 중 요리사들이 팀을 이뤄 경연할 때가 있었어요. 그때 이 요리사가 이렇게 말하죠. ‘싸우지 말자. 지면 다 탈락이다. 사이좋게 지내자.’ 서바이벌 요리 경연대회 였거든요. 지면 바로 탈락인 거죠. 그런데 요리를 하는 과정에서 팀 안에 약간의 신경전이 벌어진 거예요. 그 팀은 이미 자신의 요리에는 자신이 있었던 백수저팀이었거든요. ‘싸우지 말자. 지면 다 탈락이다. 사이좋게 지내자.’ 그래요. 지면 내일이 없는 상황이니까 이기기 위해서 한 말이죠. 그런데 이 요리사는 지는 이유를 싸움에서 발견하네요. 사이좋게 지내지 않으면 그 결과는 탈락이라는 거죠. 여러분 어렸을 때, 꽤 많이 들어본 말이 있습니다. ‘친구랑 싸우지 마!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야 해!’ 부모님께 엄청 많이 들어본 이야기죠? 왜 부모님은 이런 말을 여러분에게 많이 했을까요? 싸우면, 사이좋게 지내지 않으면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주먹으로 싸우면 다칠 수도 있어요. 어른이 돼서 주먹으로 싸우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무조건 경찰서 가야 합니다. 좋은 일은 아니잖아요. 싸우지 않더라도 사이좋게 지내지 않으면, 상대방을 만날 때마다 내 마음이 좋지 않아요. 이런 걸 어른들 말로 감정을 소비한다고 해요. 쓸데없는 일에 내 감정을 쓰게 된다는 말이죠. 오늘 복음서의 말씀에 이런 대목이 있어요. 24 한 나라가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그 나라는 버틸 수 없다. 25 또 한 가정이 갈라져서 싸우면, 그 가정은 버티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이 말씀은 이어 나오는 예수님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예시로 쓰인 부분이긴 해요. 하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부분을 말씀해 주고 있죠. 나라든, 가정이든 싸우면 버티지 못하고 끝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싸움의 주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증오’입니다. 그럼 싸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쉽진 않아요. 하지만 답은 명확하답니다. 바로 ‘사랑’하면 싸우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증오’보다 강한 것은 ‘사랑’이 되는 겁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은진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증오’보다 강한 것은 ‘사랑’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오늘 설교는 빵점짜리 설교입니다. 제목만 보면 그렇습니다. 맞는 말이긴 하나, 제목이 너무 선동적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제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수여하는 가장 권위있는 상이 있어요. 그래미상이라고 합니다. 영화계의 아카데미상이라고 보면 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그래미 시상식에서 3관왕을 받은 어느 음악가가 수상 소감으로 한 말입니다. 그 사람이 푸에르토리코 출신입니다. 지금 미국에서 이민자들에 대한 막무가내식 수사로 많은 시민이 거리로 나와 시위하고 있지요. ICE라 불리는 이민단속국 요원들에 의해 현장에서 총살된 시민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어요. 어떤 에콰도르 출신 다섯 살 어린이는 단속국 요원들에게 붙잡혀 구금됐지요. 다섯 살이요. 공포에 질린 어린이의 사진이 미국 전역에 보도되고 미국 시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결국 12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지요. 이런 상식을 벗어난 정부의 이민자 단속에 현재 대중음악에서 가장 사랑받는 뮤지션이 시상식에서 한 말이 바로 <‘증오’보다 강한 것은 ‘사랑’>입니다. 이런 말도 했습니다. ‘우리는 야만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짐승이 아닙니다. 우리는 외계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입니다.’ 말 못 하는 동물이 사람에게 하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말입니다. 왜 사람이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요? 이민단속국 요원들은 총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찰에 버금가는 권한도 부여받았어요. 이민자들은 몸 밖에 없지요. 다른 나라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것 쉽지 않아요.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만 봐도 상상이 가잖아요. 같은 사람인데, 총과 다른 사람을 체포하고 발포해도 된다는 권한을 받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에게 그런 권한을 준 최고의 권력을 지닌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모두 사람인데, 사람이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란 어떤 모습일까요?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자기 자신에게만 몰두하던 사람이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 있음을 기뻐하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일이죠. 높은 담을 쌓아서, 계급을 나누던 곳이 평평해져서 만남과 소통이 이루어지며 당신의 기쁨이, 곧 진정한 나의 기쁨이 되어 살아가는 세상, 그곳이 하나님 나라가 펼쳐지고 있는 세상입니다. 또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일이죠. 그리고 우리는 그런 세상이 삶에서 가능함을 증언하라고 보냄 받은 사람들입니다. 3. 구약의 시대, 이런 일로 부름 받은 이들이 바로 예언자였습니다. 예언자 아모스는 북왕국 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여로보암 2세 통치기는 세계사적으로 이스라엘의 새로운 전성기라 하던 때입니다. 바깥으로는 그들에게 압력을 주던 나라들이 쇠퇴하고 있었습니다. 북쪽의 아람은 무너지고 있었고 아시리아는 아직 강대국으로 부상하기 전입니다. 이 틈을 타서 이스라엘은 국력을 튼튼히 다졌습니다. 눈치껏 무역도 잘해서, 국가가 부유해졌고 영토도 확장했습니다. 그런데 나라가 잘살게 되면 국민이 행복해야 할 텐데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축적된 부가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왕을 비롯한 지도층이 부를 독차지합니다. 그들이 누리는 부가 얼마나 과했는지를 성경은 전합니다.
부자들은 비싼 상아 침대 위에서 하루가 멀다고 향연을 벌입니다. 겨울 별장과 여름 별장을 따로 두고는 겨울에는 따뜻한 겨울 별장에서, 여름에는 시원한 여름 별장에서 지냈습니다. 값비싼 향유를 몸에 바르고 호화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이들은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습니다. 신발 한 켤레 값에 가족이 종으로 팔려갑니다. 재판하는데 돈이 없어서, 늘 억울한 처사를 당합니다.
세계사가, 북이스라엘 제2의 전성기라 말하는 그 시대는 빈부의 격차가 이렇게 심각했습니다. 돈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그저 거추장스러운 액세서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역사 속, 국가는 전성기였을지 몰라도 그곳에 살아가는 대다수 국민에게는 잔인하고 힘든 시대였습니다. 역시 사람이 사람에게 하던 일들이었습니다. 4. 그렇다고, 하나님의 이름이 사라졌던 건 아니에요. 신전에서 제사와 종교 행위는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화려한 예배, 모여드는 사람들, 절기마다 제사도 진행되었지요. 하지만 진심이 사라진 그 모습은 오히려 하나님의 화를 돋우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제사는,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었고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는 그들의 종교의식은 신앙적 자아도취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자기 힘에 취한 사람들이요. 그런 시대에 아모스가 전한, 유명한 선포의 말씀이 있습니다. 아모스 5장 24절을 제가 읽어드립니다. 24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대표적인 성품을 꼽으라면 그것은 ‘공의와 사랑’입니다. 예언자 아모스가 살아가던 시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무엇보다 절실한 때였습니다. 어찌 이리 오늘과 똑같은 모습인지요. 하나님은 아모스를 통해 회개하라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목이 터져라 외쳤습니다. 하지만 이미 누릴 것 다 누리고, 부족한 게 없는 그들은 그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아모스는 결국, 회개 없는 그 땅에 ‘성전이 붕괴 되는 날’이 오리라 경고합니다.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어도 모자랄 판에, 경고라니요? 베델의 제사장 아마샤는 아모스를 내란 선동 죄로 고발했습니다. 그리고 아모스를 찾아가 말하지요. “여기를 떠나서 남 유다 땅에나 가서 예언으로, 밥벌이나 하여라.” 밥벌이. 말 그대로, 신앙이 ‘밥벌이’가 되어버린 시대였습니다. 타락한 신앙인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이에 아모스는 굴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을 전합니다. 아모스 9장 9절입니다. 9 똑똑히 들어라. 내가 이제 명령을 내린다. 곡식을 체질하여서, 돌멩이를 하나도 남김없이 골라 내듯이, 세계 만민 가운데서, 이스라엘 집안을 체질하겠다. 교우 여러분! 우리가 새해를 맞이하였는데 여전히 불안 속에 서 있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희망하는데 경제적인 어려움도 크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다른 나라에서 들리는 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데 점점 소외감과 고립감이 심해지는 듯합니다.
그 와중에 사회, 정치적으로도 시끄러움의 연속이지요. 계속되는 대립이 우리를 지치게 하기도 합니다. 새해가 맞는지 해가 바뀌었다고, 달라진 게 있기는 한 지 우리의 각오가 무색해지는 건 아닌지 싶습니다. 5.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었습니다. 심판은 곧 구원과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아모스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소망을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의 희망이 끝나는 곳에서 하나님의 희망이 시작됩니다. 인생의 끝이라 할 죽음 앞에서 즉,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모든 이가 살아날 희망, 구원의 길이 열렸던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부터 성경을 함께 읽으며 확인합니다. 먼저 11절입니다. 11 그 날이 오면, 내가 무너진 다윗의 초막을 일으키고, 그 터진 울타리를 고치면서 그 허물어진 것들을 일으켜 세워서, 그 집을 옛날과 같이 다시 지어 놓겠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성소가 무너지고 각 성읍이 황폐하게 되겠지만,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세우시고, 회복하리라 하십니다. 12절입니다. 12 “그래서 에돔 족속 가운데서 남은 자들과, 나에게 속해 있던 모든 족속을, 이스라엘 백성이 차지하게 하겠다.” 이것은 이 일을 이루실 주님의 말씀이다. 스스로 오만하던 에돔과 같은, 이스라엘의 주변국들도 하나님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될 것입니다. 14절과 15절입니다. 14 “내가, 사로잡힌 내 백성 이스라엘을 데려오겠다. 그들이 허물어진 성읍들을 다시 세워, 그 안에서 살면서 포도원을 가꾸어서 그들이 짠 포도주를 마시며, 과수원을 만들어서 그들이 가꾼 과일을 먹을 것이다. 15 내가 이 백성을 그들이 살아갈 땅에 심어서, 내가 그들에게 준 이 땅에서 다시는 뿌리가 뽑히지 않게 하겠다.” 주 너의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그들에게 새 출발을 허락하시겠다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흔히 생각하기로, 하나님이 임하시는 세상은 무언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단들은 자신들의 본부를 무슨 왕궁처럼 으리으리하게 짓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회복하시는 세상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바로 사람들의 당연한 일상이 회복되는 자리입니다. 일상의 회복, 공의로운 시대, 정직한 땀이 행복이 되는 자리, 그래서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그 자리가 하나님이 회복하시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그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의 삶에서 회복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6. 오늘 서신서의 말씀,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선포합니다. 자녀라면 상속자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아주 중요해요. 로마서 8장 17절입니다. 17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고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입니다. 두 번째 문장 앞부분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고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그때 우리는 상속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고난받으라니 싫으시죠? 역으로 말씀드리면 이 말입니다. 예수님처럼 사랑하며 살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요. 예수님처럼 사람을 나누지 않고 사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요. 예수님처럼 이민자들, 외국인 노동자들, 다섯 살 짜리 어린이, 힘없는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대한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입니다. 증오는 힘 가진 사람들에게, 총 가진 사람들에게, 자기 권력을 으스대며 타인에게 주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표하는 것일 뿐, 우리는 사람이니까 사람 예수가 우리 사람에게 대하신 것처럼 사랑하며 살아가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증오보다 강한 것은 사랑이 될 수 있는 겁니다. 7. 은진교회 교우 여러분. 2026년이 시작하기는 했지만, 현실적으로 별 소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까? 가정의 어려움, 경제적인 곤란함, 사람과의 관계 등 산적한 일들 앞에서 여전히 가쁜 숨 몰아쉬고 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정말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생각하는 그 순간, 무너진 장막과 허물어진 것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가장 절망스러운 시대에 아모스를 통해 주셨던 회복의 소망은 지금 우리에게 끊임없이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음성인 것을 기억하기 소망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사랑하며 살아가셨던 삶을 우리에게 투영하기 바랍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이끄는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새로운 세상과 그 세상을 십자가를 지며 살아가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다. 사람이 사람을 공포에 떨게 하는 세상,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를 조롱하는 세상. 이에 대한 증오는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우리는 다시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십시다. 증오보다 강한 사랑 안고 하나님 나라 꿈꾸는 저와 여러분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