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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가 죄인이 되다 장본 목사 202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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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가 죄인이 되다.

 

사순절 다섯째주일

20240317

 

레위기 16:1-10, 20-22

1 아론의 두 아들이 주님 앞에 가까이 갔다가 죽은 일이 있다. 그들이 그렇게 죽은 뒤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 다음은 그 때에 주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이다.

너는 너의 형 아론에게 '죽지 않으려거든, 보통 때에는 휘장 안쪽 거룩한 곳 곧 법궤를 덮은 덮개 앞으로 나아가지 말라'고 일러라. 내가 구름에 휩싸여 있다가 그 덮개 위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3 아론이 거룩한 곳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에는 다음과 같이 하여야 한다. 소 떼 가운데서 수송아지 한 마리를 골라서 속죄제물로, 숫양 한 마리를 번제물로 바쳐야 한다.

4 그는 모시로 만든 거룩한 속옷을 입고, 그 안에는 맨살에다 모시로 만든 홑옷을 입어야 한다. 모시로 만든 띠를 띠고 모시로 만든 관을 써야 한다. 이것들이 모여서 거룩한 옷 한 벌이 된다. 그는 먼저 물로 몸을 씻고 나서, 그 다음에 이 옷들을 입어야 한다.

5 그런 다음에야, 그는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이 속죄제물로 바치는 숫염소 두 마리와 번제물로 바치는 숫양 한 마리를 받을 수 있다.

6 아론은 자신을 속하는 속죄제물로 수소를 바쳐, 자기와 자기 집안의 죄를 속하여야 한다.

7 또한 그는 숫염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회막 어귀에, 주 앞에 세워 놓고,

8 그 숫염소 두 마리를 놓고서 제비를 뽑아서, 주에게 바칠 염소와 아사셀에게 바칠 염소를 결정하여야 한다.

9 아론은 주의 몫으로 뽑힌 숫염소를 끌어다가 속죄제물로 바치고,

10 아사셀의 몫으로 뽑힌 숫염소는 산 채로 주 앞에 세워 두었다가, 속죄제물을 삼아, 빈 들에 있는 아사셀에게 보내야 한다.”

 

20 이렇게 하여, 아론은 성소와 회막과 제단을 성결하게 하는 예식을 마치게 된다. 다음에 아론은 살려 둔 숫염소를 끌고 와서,

21 살아 있는 그 숫염소의 머리 위에 두 손을 얹고, 이스라엘 자손이 저지른 온갖 악행과 온갖 반역 행위와 온갖 죄를 다 자백하고 나서, 그 모든 죄를 그 숫염소의 머리에 씌운다. 그런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사람의 손에 맡겨, 그 숫염소를 빈 들로 내보내야 한다.

22 그 숫염소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갖 죄를 짊어지고 황무지로 나간다. 이렇게 아론은 그 숫염소를 빈 들로 내보낸다.

 

히브리서 9:11-15

11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일어난 좋은 일을 주관하시는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손으로 만들지 않은 장막, 다시 말하면,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은 더 크고 더 완전한 장막을 통과하여

12 단 한 번에 지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는 염소나 송아지의 피로써가 아니라, 자기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13 염소나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더러워진 사람들에게 뿌려도, 그 육체가 깨끗하여져서, 그들이 거룩하게 되거든,

14 하물며 영원한 성령을 힘입어 자기 몸을 흠 없는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야말로, 더욱더 우리들의 양심을 깨끗하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죽은 행실에서 떠나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않겠습니까?

15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재자이십니다. 그는 첫 번째 언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에서 사람들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로 하여금 약속된 영원한 유업을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47-53

47 그래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공의회를 소집하여 말하였다. “이 사람이 표징을 많이 행하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48 이 사람을 그대로 두면 모두 그를 믿게 될 것이요, 그렇게 되면 로마 사람들이 와서 우리의 땅과 민족을 약탈할 것입니다.”

49 그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아무것도 모르오.

50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민족 전체가 망하지 않는 것이, 당신들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소.”

51 이 말은, 가야바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 해의 대제사장으로서, 예수가 민족을 위하여 죽으실 것을 예언한 것이니,

52 민족을 위할 뿐만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자녀를 한데 모아서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

53 그들은 그 날로부터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였다.

 

 

은진교회 교우들과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께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시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어린이-청소년 설교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구약시대에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제사에 대해서 여러분에게 이야기를 전하려고 해요.

 

만약, 여러분이 부모님께 뭐 잘못한 게 있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요? ‘엄마 아빠, 미안해. 잘못했어. 용서해줘. 다시는 안 그럴게.’ 보통 이렇게 이야기하죠. 그러면 부모님께서는 알았어. 다신 그러지 마. 괜찮아. 그만하면 됐어.’ 그러죠.

 

학교에서 친구하고 갈등이 있었어요. 제일 좋은 방법은 서로 대화로 사과하는 일이죠. 서진아 아까 이래저래 미안해. 괜찮아 린. 나도 미안해.

 

이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대화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하면 잘 넘어갑니다. 이런 과정을 잘 겪으면 더 훌륭한 사람이 되어 가고요. 그런데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서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독특한 방식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었답니다.

 

그걸 속죄제사라고 해요. ‘하나님, 나의 죄를 용서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거죠. 그런데 그걸 말로만 한 것이 아니고요.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에게 속죄의 제물을 가져다주고, 자신의 죄를 말하면 제사장은 그 사람 대신 그 제물을 하나님께 바치는 의식을 진행했답니다. 이게 속죄제에요.

 

속죄의 제물로는 수송아지도 드리고, 숫염소도 드리고 했었대요. 그렇게 속죄제를 드리면 하나님 앞에서 나는 죄가 없는 사람이 되어서 그제야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릴 수 있게 되었답니다. 이 의식이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의식이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죽음에 이른 예수라는 분을 만나게 되었어요. 예수님이 한 일이라고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당시 세상에 그대로 실천한 것뿐이었어요. 그런데 당시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의 모함으로 죽음에 이르게 된 거죠.

 

그래서 사람들은 이 예수님의 삶을 되짚어보기 시작했답니다. 그랬더니 그분의 말씀으로 인해 내 삶이 새롭게 된 거에요.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보니 내 삶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희망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된 거죠.

 

그래서 사람들은 ! 저 예수야말로 우리 삶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죽으셨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죠. ‘나를 대신해 죽으셔서 나를 이렇게 새 힘으로 살게 하셨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죠. 그러면서 예수님을 구원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답니다. 구원자를 다른 말로는 그리스도라고 해요.

 

우리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을 구약시대의 여러 속죄제물 대신 우리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라고 믿는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그 발걸음에 같이 걸어가는 거에요. 그 발걸음을 40일 동안 확인하는 절기가 바로 사순절이랍니다. 오늘이 마지막 사순절 다섯째주일인데요. 예수님을 조금 더 생각하고, 조금 더 기억하는 우리 어린이-청소년 여러분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0.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교우 여러분의 학창 시절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를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누군가 잘못을 저질렀어요. 우리 그럴 때 선생님께서 어떻게 하셨지요? 주로 때렸지요. 넌 친구와 싸웠으니까 손바닥 다섯 대 맞아. 넌 이런 잘못을 했으니까 엉덩이 두 대 맞아. 이렇게요. 그땐 많이 맞았습니다.

 

왜 맞았을까요? 그래요. 무언가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잘못한 대가를 매로 받은 거죠. 지금이야 학교에서의 매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만,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참 많이 맞고 다녔습니다. 매를 맞으면 아팠습니다. 당연하죠. 그런데 마음 한편은 후련하기도 했습니다. 왜냐면 잘못한 대가를 치렀다는 생각이 들어서지요.

 

맞았으니까 괜찮아. 안 맞았으면 오히려 찝찝했을 거야. 많이 맞아본 사람들이 하는 자기 위안의 방식이었지요. 잘못한 일에 관한 반성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매 맞고 해결하는 폭력적인 방법이 있고요. 대화로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게 하는 비폭력적 방법도 있습니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죄를 씻어내는 특이한 방식이 있습니다. 속죄제의, 속죄제사를 드리는 거죠. 내 잘못 대신 다른 제물을 자기가 믿는 신에게 바치는 것. 이것은 세상의 거의 모든 종교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속죄 방식입니다. 특별히 고대로 넘어갈수록 이런 속죄제의는 매우 엄격하게 진행되었지요.

 

1. 오늘 구약의 말씀 레위기에서는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의 속죄예식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에서 나와, 광야를 떠돌다 정착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에게 어떻게 예배할 것인지 그것을 누가, 어떻게 집례하고 인도할 것인지 자세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그 첫 번째 역할을 맡았던 것은 모세의 형 아론과 그의 자식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론의 두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은 다른 불을 하나님께 드린 일이 있었지요. 하나님께 예배할 때 드리는 불은 꺼지지 않는 번제단의 불이어야 했는데, 나답과 아비후는 자신들이 켠 불을 지폈거든요. 이 일로 아론의 두 아들은 죽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론을 백성들의 첫 제사장으로 기름부어 주셨습니다. 제사장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방식대로 예배와 제사를 드려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 가문은 그것을 위해 함께 하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나답과 아비후의 불 사건을 범죄라고 전합니다.

 

제사장 가문에서 일어난 이 불미스러운 일을 덮고 갈 수는 없었습니다. 제사장은 제사장대로의 속죄의식이 필요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는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는 일과는 별개로 말이죠. 그 속죄제, 속죄일에 대한 규례가 오늘 레위기의 말씀입니다.

 

방법은 대략 두 가지입니다. 수송아지와 숫염소을 준비합니다. 먼저 수송아지를 아론 자신과 자기 집안의 죄를 먼저 사하기 위해 속죄 제물로 드립니다. 숫양 한 마리는 번제물로 드립니다. 이제 백성들의 제물을 받을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다음 숫염소 두 마리를 준비합니다. 염소는 백성의 죄를 속할 제물이지요. 제비를 뽑아 한 마리는 속죄 제물로 바치고, 다른 한 마리는 광야로 보내게 됩니다. 이렇게 속죄예식은 마치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레위기 161절로 10절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구약 말씀이 20절부터 22절까지 또 있네요. 숫염소 두 마리 중 광야로 보내는 염소에 대한 설명을 따로 합니다. 21, 22절입니다.

 

21 살아 있는 그 숫염소의 머리 위에 두 손을 얹고, 이스라엘 자손이 저지른 온갖 악행과 온갖 반역 행위와 온갖 죄를 다 자백하고 나서, 그 모든 죄를 그 숫염소의 머리에 씌운다. 그런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사람의 손에 맡겨, 그 숫염소를 빈 들로 내보내야 한다.

22 그 숫염소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갖 죄를 짊어지고 황무지로 나간다. 이렇게 아론은 그 숫염소를 빈 들로 내보낸다.

 

두 마리의 숫염소 중 살려 보내는 염소에 대한 의식이지요. 백성의 죄를 염소에게 말하고 빈 들로 내 보단다 합니다. 그 염소는 이제 보통 염소가 아니라, 백성의 죄를 멀리 떠나보낼 속죄 제물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죽이지 않고 떠나보냅니다. 백성들은 이 장면을 눈으로 보며, 자신의 죄가 속죄받았다고 여겼습니다.

매 맞고 죄값 치루던 우리 어릴 적 모습보다는 비폭력적으로 보입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의 속죄의식은 이런 과정이었습니다.

 

2. 히브리서는 우리가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서신이라고 알고 있는 책입니다. 하지만 다른 서신서처럼 어떤 공동체에 보냈는지, 개인에게 보냈는지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누가 저자인지 오늘까지도 논란이 많은 책입니다. 그 유명한 마르틴 루터조차 히브리서를 신약성서의 외경이라 할 정도로 평가한 책이었으니까요.

 

하지만 히브리서가 신약 정경의 하나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서신서의 신학적 가치가 너무나도 훌륭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지목하여 보내지는 않았지만, 당시 공동체에서 신앙이 흔들리는 이들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 교우 중, 지치고 힘든 분이 계십니까? 자신있게 권해 드립니다. 히브리서를 읽으십시오. 거기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명쾌한 해석이 나오니까 말입니다.

 

오늘 히브리서 본문 9장은 앞선 레위기의 속죄 제사를 그대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삶이 과거 속죄 제사를 완성하고 있음을 신학적으로 해석하고 있지요. 11, 12절입니다.

 

11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일어난 좋은 일을 주관하시는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손으로 만들지 않은 장막, 다시 말하면,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은 더 크고 더 완전한 장막을 통과하여

12 단 한 번에 지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는 염소나 송아지의 피로써가 아니라, 자기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이미 일어난 좋은 일을 주관하시는 대제사장으로 오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시어 메시아로 오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손으로 만든 장막, 세속적인 성소를 지나쳐 하나님 나라에 단번에 이르셨다고 성경은 전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이 그 옛날 속죄 제물이었던 염소나 송아지의 피가 아닌, 예수 자신이 우리를 위한 제물이 되셨다고 전합니다.

 

속죄제의 제물을 하나님께 바치면, 바치는 사람의 죄는 모두 사해진다고 유대인들은 믿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삶을 본받아 살기로 작정한 이들입니다. 이들의 삶은 유대인들보다 더 높은 신앙의 경지에 있지 않았을까요? 사람 예수를 통해 내가 섬길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확인합니다. 13절과 14절입니다.

 

13 염소나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더러워진 사람들에게 뿌려도, 그 육체가 깨끗하여져서, 그들이 거룩하게 되거든,

14 하물며 영원한 성령을 힘입어 자기 몸을 흠 없는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야말로, 더욱더 우리들의 양심을 깨끗하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죽은 행실에서 떠나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않겠습니까?

 

은진 교우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이 세상의 중재자이십니다.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왜곡되지 않도록 만드는 가교역할을 하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메시아라 부르는 겁니다. 구원자라 부르는 겁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되어 주시는 겁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그 옛날 하나님의 역사를 이 땅에서 이루신 분이 그리스도 예수임을 기억하며 이 사순절을 마무리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3. 시간은 흘러흘러 예수님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 시간은 유대교의 많은 예배와 제의를 바꿔놓았습니다. 제사장 가문을 따로 두어 엄격하게 하나님을 예배하게 했던 그 옛날 이스라엘의 전통은 예수의 시대에서 사두개파와 바리새파 사람들의 권력 투쟁의 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진정 예배하기 위한 제의의 정신은 예수의 시대, 이기적인 율법주의자들에 의해 권력을 탐하는 자리, 부를 은닉하는 자리로 변질해 버렸습니다.

 

돈 없는 사람은 염소는커녕 비둘기 한 마리도 사지 못해 아무도 몰래 동전 한 닢 성전 모퉁이에 올려둘 수밖에 없었고,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저들과 다르다고 잘난 척하는 사람들에 의해 세상은 하나님과 멀어져 갔습니다.

 

이런 세상에 나타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동전 한 닢을 헌금하는 과부를 보듬은 분이 예수였고, 권력과 부에 눈먼 종교지도자들을 질책하신 분이 바로 예수였습니다. 가난한 자, 억압받는 자의 삶을 회복시켜 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서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기적을 일으킨 이후 상황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말도 안 되는 기적 앞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이 사건을 전하게 되지요. 바리새파 사람들의 두려움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복음서 요한복음 1148절입니다.

 

48 이 사람을 그대로 두면 모두 그를 믿게 될 것이요, 그렇게 되면 로마 사람들이 와서 우리의 땅과 민족을 약탈할 것입니다.

 

공의회를 소집합니다. 이 회의는 당시 최고 종교회의입니다. 로마제국의 묵인 아래 열 수 있는 최고권위의 회의입니다. 공의회에서 예수와 관련한 일을 다루었다는 사실은 당시 예수를 따르던 무리가 유대교를 위협할 만큼 커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 로마제국과 유대교는 공생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으나 종교적인 자율권을 유대교에 내어 준 것이지요. 그러니 유대의 종교지도자는 정치적 상황에 상관없이 부족할 것이 없었습니다. 이러는 와중에 예수와 그를 따르는 무리가 나타납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자신들의 기득권이 무너질까 걱정되었지요. 그래서 모두 예수를 믿게 되면 로마가 우리도 약탈할 것이라 말하게 된 겁니다.

 

그런데 제사장 중의 우두머리인 대제사장 가야바가 뜻밖의 말을 합니다. 50절입니다.

 

50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민족 전체가 망하지 않는 것이, 당신들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소.

 

가야바는 예수의 등장과 그를 따르는 무리가 바리새인 당신들의 기득권에 오히려 득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예수가 모든 민족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메시아의 예언이 되고 만 것이지요. 가야바의 대수롭지 않은 말이 예수의 길이 곧 희망의 길이요, 구원의 길임을 드러내게 된 것입니다. 확인합니다. 51절과 52절입니다.

 

51 이 말은, 가야바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 해의 대제사장으로서, 예수가 민족을 위하여 죽으실 것을 예언한 것이니,

52 민족을 위할 뿐만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자녀를 한데 모아서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

 

결국, 53절에서 그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게 되지요. 이 공의회에서 예수의 체포령이 떨어지게 됩니다. 가난한 자의 구원이, 억눌린 자의 회복이 더는 가질 것이 없어 풍족한 이들에 의해 내란음모, 쿠데타의 원흉으로 몰리는 장면이지요. 이렇게 예수님의 발걸음은 사순절 다섯째주일, 구원자와 죄인 두 갈래 길에 놓이게 됩니다.

 

4. 은진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은 사순절 다섯째주일입니다.

 

사순절 첫째주일, 우리는 지금이야말로 은혜의 때요, 구원의 날이기에 어제의 찌꺼기는 어제로 묻고, 내일의 염려는 내일 맡기고, 오늘 하루를 주님의 은혜에 동참해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순절 둘째주일, 우리는 한 마리 양의 처지를 기억하며, 이 땅에 차별받고 소외당하는 이를 위한 발걸음을 내딛어달라고 말씀드렸지요.

 

사순절 셋째주일, 둘째 아들 돌아왔다고 신경질 부리지 말고, 이 모든 일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삶에 대한 회복의 관점으로 이 사순절을 살아달라 말씀드렸습니다.

 

사순절 넷째주일, 못난이 되지 말고 우리에게 숨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삶을 기억하며 오감을 다해 예수님과 동행하여 잘난이가 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사순절 다섯째주일. 주님께서 우리를 위한 단 한 번의 제물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하나님과 우리의 연결 고리가 되어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어 주심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해 체포령을 받게 된 그 예수님도 만났습니다. 구원자가 되신 예수와 죄인이 되버린 예수가 우리 눈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구원자시고, 나의 그리스도이시고, 이 교회의 주님이십니다. 다섯 주의 사순절 동안 우리는 예수님의 여러 모습을 말씀을 통해 만났습니다. 이제 그 예수님을 기억하며, 우리 삶에서 그를 통해 나타나는 주님의 역사에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예수님은 체포령이 떨어졌지만, 그 사역으로 인해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예수와 동행하는 길임을 기억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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