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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부활에 이르는 길 장본 목사 2024-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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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부활에 이르는 길

 

종려주일

20240324

 

빌립보서 3:1-11

1 끝으로,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주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내가 같은 말을 되풀이해서 쓰는 것이 나에게는 번거롭지도 않고, 여러분에게는 안전합니다.

2 개들을 조심하십시오. 악한 일꾼들을 조심하십시오. 살을 잘라내는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을 조심하십시오.

3 하나님의 영으로 예배하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하며, 육신을 의지하지 않는 우리들이야말로, 참으로 할례 받은 사람입니다.

4 하기야, 나는 육신에도 신뢰를 둘 만합니다. 다른 어떤 사람이 육신에 신뢰를 둘 만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합니다.

5 나는 난 지 여드레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도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 사람 가운데서도 히브리 사람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파 사람이요,

6 열성으로는 교회를 박해한 사람이요, 율법의 의로는 흠 잡힐 데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7 그러나 나는 내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8 그뿐만 아니라,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얻고,

9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나는 율법에서 생기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에게서 오는 의를 얻으려고 합니다.

10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11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

 

마가복음 11:1-10 / 신약 70

1 그들이 예루살렘 가까이에, 곧 올리브 산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둘을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거라. 거기에 들어가서 보면, 아직 아무도 탄 적이 없는 새끼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을 것이다. 그것을 풀어서 끌고 오너라.

3 어느 누가 '왜 이러는 거요?' 하고 물으면 '주님께서 쓰시려고 하십니다. 쓰시고 나면, 지체없이 이리로 돌려보내실 것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4 그들은 가서, 새끼 나귀가 바깥 길 쪽으로 나 있는 문에 매여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풀었다.

5 거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몇 사람이 그들에게 물었다. "새끼 나귀를 풀다니, 무슨 짓이오?"

6 제자들은 예수께서 일러주신 대로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가만히 있었다.

7 제자들이 그 새끼 나귀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등에 걸쳐놓으니, 예수께서 그 위에 올라 타셨다.

8 많은 사람이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다 폈으며, 다른 사람들은 들에서 잎 많은 생나무 가지들을 꺾어다가 길에다 깔았다.

9 그리고 앞에 서서 가는 사람들과 뒤따르는 사람들이 외쳤다. "호산나!" "복되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10 "복되다!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더 없이 높은 곳에서, 호산나!"

 

 

 

은진교회 교우들과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께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시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오늘 설교는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에게는 복음서를 전해드리고, 여러분에게는 빌립보서의 본문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어린이-청소년 설교는 평소보다 좀 길어요. 그래도 집중해서 들어보세요. 다른 분들도 오늘은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부터 집중해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 은진교회 교우 여러분에게 말씀의 은혜가 차고 넘치시기를 소망합니다.

 

*어린이-청소년 설교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아까 말한 대로 종려주일이에요. 우리는 어제까지 사순절의 34일을 지켜왔습니다. 사순절이 시작된 218일 주일에 여러분에게 알려준 대로 오늘은 주일이어서 사순절에서는 빠지고, 이제 내일부터 월화수목금토 6일이 남은 거에요.

 

사순절을 6일 남긴 주일을 종려주일이라고 해요. 종려주일은 예수님의 부활 전 예루살렘의 입성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할까요? 그건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에 대해 좀 알면 금방 해답이 나온답니다.

 

예루살렘이라는 도시는 지금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서울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도 많고, 가장 번화한 도시잖아요. 병원, 학교 등의 시설도 다른 도시에 비하면 월등히 많죠. 수도이기 때문에 그래요. 한 나라의 중심도시, 그것을 우리는 수도라고 하지요.

 

예루살렘이 당시 그런 역할을 하던 도시였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지금보다 이천 년 전 시대니까, 차도 없고 높은 건물도 없는 시대였지요. 당시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던 것은 종교였어요. 그중에서도 유대교였지요. 예루살렘은 유대교의 중심이었답니다. 가장 크고, 중요했던 회당이 예루살렘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일 년에 한 번씩 예루살렘에 모여 예배드리고, 기도했지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다는 것은 당시 유대교의 중심, 심장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해요. 그리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죠.

 

이미 예수님은 슈퍼스타가 되어있으셨어요. 다른 지역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힘없는 사람들, 약자들을 많이 보살펴 주셨거든요. 그래서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체포령을 내려 두었지요. 그런데 그들이 있는 곳, 예루살렘으로 스스로 가셨다고요.

 

그런데 예수님이 어떻게 가셨는지 아세요? 요즘 다니는 차 중에서 벤츠 정도면 꽤 좋은 차지요? 예수님께서 벤츠타고 뒷자리에서 열어주는 문을 통해 내리셨을까요? 아니요. 어린이-청소년 여러분. 마가복음 117절을 찾아서 한목소리 읽어줄래요? 세 명 밖에 안되니까, 큰 소리로 함께 읽어 주세요.

 

7 제자들이 그 새끼 나귀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등에 걸쳐놓으니, 예수께서 그 위에 올라 타셨다.

 

뭐 타고 오셨어요? 그래요. 새끼 나귀. 낙타도 아니고, 말도 아니고, 벤츠 자동차는 더더군다나 아닌, 탈 것 가운데 가장 여린 동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셨어요. 이는 예수님이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는 것을 상징하지요. 당시 백성들의 슈퍼스타였는데 말이죠.

 

사람들은 8절 자기 겉옷을 길에다 폈어요. 나귀가 밟고 지나갈 건데 말이죠. 많은 생나무 잎을 꺾어 길에다 깔았어요. 그리고는 예수님을 뒤따라가며 외쳤지요. 우리 모두 함께 읽어 봅니다. 9절과 10절입니다.

 

9 그리고 앞에 서서 가는 사람들과 뒤따르는 사람들이 외쳤다. "호산나!" "복되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10 "복되다!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더 없이 높은 곳에서, 호산나!“

 

호산나라는 단어는 지금 구원해 주세요.’라는 뜻이에요.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이미 예수님을 구원자라고 생각한 거죠. 하지만 가진 것 없는 이들이었기에 자신들의 옷을 벗어 길을 만들고, 주변의 나뭇잎을 깔아 예수님께서 가실 레드카펫을 만들어 드린 거죠.

 

사람들이 환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예수님을 환대한 거에요. 그 나뭇잎, 가지가 종려나무 가지와 잎이었다고 그날을 종려주일이라고 한답니다.

 

어린이-청소년 여러분. 예수님은 초라해 보이지만, 최고의 환대를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이 말은 사람들의 눈에 예수님이 진정한 구원자, 메시아, 그리스도였음을 보여주는 거에요.

 

간절히 부탁합니다. 여러분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어려운 사람에게, 외국인에게 환대하라고 배우죠? 목사님은 여러분의 마음에 예수님을 환대하는 마음이 가득하기를 정말 바랄께요. 그 마음이 있으면, 여러분은 정말 누구나 진정으로 환대할 수 있거든요. 오늘 종려주일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에게 예수님을 환대하는 마음이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0.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이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리는 날이지요. 다른 유대인들도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향한다는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지난주 예수님은 공의회에서 체포령이 내려진 상황이었지요. 그들은 유월절을 맞아 유대인인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올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향한다는 것은 스스로 고난 속으로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으로 향한다는 말의 또 다른 의미가 있어요.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모인다는 뜻입니다. 거의 모든 유대인이요. 모든 일을 뒤로 제쳐두고, 오직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예루살렘으로 모인다는 뜻이지요. 유월절은 유대교의 가장 큰 절기였으니까요.

 

모두 하나님을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모입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나서부터 본격적인 고난을 받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온 민족이 모이는 그때부터 고난이 시작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내일부터 고난주간을 지키게 됩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며 그 의미를 내 삶에 녹여내기 위함이지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신 것 자체가 고난받을 일은 아니었습니다. 누구나 그 무렵에는 예루살렘으로 모였기 때문이지요.

 

도대체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어떤 일을 하셨기에 죽음에 이르는 고난을 받으셨을까요? 나귀 타고 오신 예수님의 이후 삶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내일, 월요일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말이 정화지 성전을 뒤집어 놓으시죠. 화요일, 감람산에서 복음을 전하시죠. 수요일, 그 유명한 가룟 유다에게 배신당하십니다. 목요일,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성찬을 베푸십니다. 금요일, 십자가에 달려 죽으십니다. 무덤에 갇힌 토요일을 지나 부활을 맞이하십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오늘은 종려주일, 내일부터 고난주간, 다가오는 주일은 부활주일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중에 일 년에 한 번씩 겪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요. 그런데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저는 사순절, 종려주일, 고난주간, 부활절을 지내며 올해에는 어떤 방법으로 주님께서 나에게 부활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실까를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부활에 이를 수 있을까요? 부활에 이르는 길은 무엇일까요?

 

1. 오늘 말씀 빌립보서 3장에는 부활에 이르는 길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 선생님은 이미 부활의 삶을 살고 있는 중입니다. 이미 사울이라는 사람에서 바울이라는 사람으로 부활하셨지요. 이 정도면 부활이라 부르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해도 다 수긍할 수 있을 겁니다. 개과천선도 이 정도일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러니 바울 선생님이 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곧 부활의 메시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이야기합니다. 2절입니다.

 

2 개들을 조심하십시오. 악한 일꾼들을 조심하십시오. 살을 잘라내는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을 조심하십시오.

 

개조심하라 합니다. 개는 누구일까요? 악한 일꾼들, 악을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자기의 몸을 상해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 상징적으로 표현했지만 나 할례받았다고 너도 할례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왜 이 사람들이 문제였을까요? 그리고 이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 사람들이었을까요?

 

사도 바울이 말하는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빌립보 교회 안에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 빌립보 공동체 안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들로 인해 빌립보 공동체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고, 바울이 분노했으면 공동체 안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라는 표현까지 사용했을까요? 조금 건너가서 18절을 함께 읽습니다.

 

18 내가 여러분에게 여러 번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18절 뒷부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사람들즉 빌립보 교회 안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빌립보 공동체는 바울이 세운 공동체에요. 그런데 그의 신실한 믿음과 신앙을 져버리고 율법적인 잣대만을 가지고, 나는 할례를 받았으니 의로운 사람이고, 나는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었으니 의로운 사람이고, 너는 할례도 받지 않고 이 자리에 있으니, 너는 믿을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외치는 이들이 공동체 안에 생겼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바울조차도 부인하면서 빌립보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있었지요. 누가요?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이 말입니다. 그들을 신학적인 표현으로 유대교 그리스도인이라고도 부르고, 영지주의적 자유주의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런데 이런 어려운 말 말고요, 공동체 안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었고, 그들을 향해 바울은 ''라는 험한 표현까지 써가며 논쟁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 바울이 사울로 살다가 회심하면서 오직 성령으로 하나님께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만을 선포하며 세운 공동체가 바로 이 빌립보 교회인데, 그것을 분열시키는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바울은 분노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바울은 서슴없이 선포합니다. 3절입니다.

 

3 하나님의 영으로 예배하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하며, 육신을 의지하지 않는 우리들이야말로, 참으로 할례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들이야 말로, 참으로 할례 받은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너희만 할례를 받았는지 아느냐? 아니 우리도 할례를 받았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예로 들어 말합니다. 너희들이 인정하지 않는 내가 바로 너희들보다 육체적으로 보면 더 신뢰할 만한 사람, 믿을 만한 사람이다 라고요. 5절과 6절 확인하고 갑니다.

 

5 나는 난 지 여드레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도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 사람 가운데서도 히브리 사람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파 사람이요,

6 열성으로는 교회를 박해한 사람이요, 율법의 의로는 흠 잡힐 데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은 이가 나 바울이고, 나는 이스라엘 민족이고 베냐민 지파고 히브리 사람이고 바리새파 사람이다! 나 바울? 그래 내가 선포하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을 죽이기까지 했다. 율법으로만 따져 볼까? 나보다 잘난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래!! 이렇게 악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따져 묻습니다.

 

교우 여러분! 여기 계신 분 중에 신앙적으로 내가 바울보다 잘났다고 생각하시는 분 있습니까? 이 장 목사 말이라면 때론 안 믿어도 바울 선생님 말씀이라면 믿을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 바울 선생님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보다 율법으로나, 족보로나 잘난 사람 있느냐고요.

 

2. 오늘 설교 제목 종려주일, 부활에 이르는 길입니다. 이제부터 조금 집중하시고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7절로 9절입니다. 또박또박 큰소리로 부활에 이르는 길을 함께 찾아보십시다.

 

7 [그러나] 나는 내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8 그뿐만 아니라,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얻고,

9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나는 율법에서 생기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에게서 오는 의를 얻으려고 합니다.

 

천천히 풀어드릴게요. 꼭 기억하세요. 나는 내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예수님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내 지식, 내 태생, 내 가문, 내 능력 그 모든 것이 말이죠. 그게 어떤 능력인데요. 세상 그 어떤 사람들보다 육체적으로 신뢰할 만한 스펙이었죠. 나보다 잘난 사람이 별로 없었으니까요.

 

그뿐만 아니네요.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기 때문에,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생각하게 됐어요. 나는 그리스도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어서, 내가 가지고 있던 그 모든 것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나를 둘러싼 그 엄청난 스펙들이 다 쓰레기래요.

 

우리 같았으면 어깨에 잔뜩 힘주고 다니지 않았을까요? 내가 어느 대학 나왔어. 내가 어디 출신이야. 우리 가문이 옛날에 양반이었대 등등... 그런데 바울은 그 스펙들을 다 쓰레기로 여겼대요. 왜요? 예수님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잃었기 때문이래요.

 

왜 바울이 대단한지 아십니까? 우리는 때로 그런 스펙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잖아요? 그러면서 겸손한 척하면서 살아가잖아요. 그 모든 것을 예수님 때문에 쓰레기로 여긴 사도 바울. 하나님 앞에서 겸손함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하지만 바울이 가진 모든 것이 쓰레기가 되어 바울의 인생이 끝난 게 아니에요. 바울은 대신에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요.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을 받으려면 나 스스로부터 나오는 의가 아니라, 내 지식에서 나오는 의가 아니라, 내 믿음의 경륜과 경험에서 오는 지식이 아니라, 즉 내 스펙에서 나오는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에게서 오는 의를 얻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제 말이 아닙니다. 8절 뒷부분 나는부터 9절까지 함께 읽습니다.

 

8 나는 그리스도를 얻고,

9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나는 율법에서 생기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에게서 오는 의를 얻으려고 합니다.

 

제가 이 말씀으로 고꾸라진 사람입니다. 바울 선생님이 말하는 가 꼭 저라고 생각되었어요. 왜인지 아세요? 저요. 신학교, 신학대학원 다 수석 졸업했거든요. 다른 공부는 몰라도 신학 공부는 진짜 열심히 했거든요. 그래서 주변에서 좀 똑똑하다고 후배들 어리버리하면요. “니들이 이래서 목회자가 되겠어?”라고 말하면서 반 죽여놨거든요.

 

저요. 목사랍시고요. 한 때, “왜 우리 교인들은 이 정도 수준 밖에 안 되? 왜 맨날 예배 시간에도 지각하고, 오면 떠들고, 기도하러 안 오고 그래?” 이런 생각해 본 적 있었거든요. 나 스스로부터 나오는 의 때문에, 내가 가진 것으로 인해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마음 때문에, 내 주변의 사람들을 내내 치면서 살았거든요. 그런데요. 그게 아니라고요. 내 안에서 나오는 의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하나님에게 오는 의를 얻어야 하고 그 의로 살아야 한다고요.

 

은진교회 성도 여러분! 바울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개는 저 하나로 족합니다. 오늘 사도 바울을 만나 이 말씀을 함께 받는 여러분은 믿음으로부터 나오는 의로 거듭나서 은진 공동체와 이 세상을 살려내는 이들이 되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지막 결론으로 부활에 이르는 방법을 바울 선생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10절과 11절 우리 함께 읽으며 마음에 새기십니다.

 

10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11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부탁합니다. 내일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한 주간의 삶을 통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는 삶을 찾아가는 한 주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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