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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없이... 그래서... 장본 목사 2024-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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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없이... 그래서...

 

성령강림후 첫째주일

도시·농어촌선교주일

20240526

 

이사야 52:1-3

1 너 시온아, 깨어라, 깨어라! 힘을 내어라. 거룩한 성 예루살렘아, 아름다운 옷을 입어라. 이제 다시는 할례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가 너에게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2 예루살렘아, 먼지를 털고 일어나서 보좌에 앉아라. 포로된 딸 시온아, 너의 목에서 사슬을 풀어 내어라.

3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값없이 팔려 갔으니, 돈을 내지 않고 속량될 것이다.”

 

고린도전서 9:13-18

13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고, 제단을 맡아보는 사람은 제단 제물을 나누어 가진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14 이와 같이 주님께서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일로 살아가라고 지시하셨습니다.

15 그러나 나는 이런 권리를 조금도 행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또 나에게 그렇게 하여 달라고 이 말을 쓰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하느니, 차라리 내가 죽는 편이 낫겠습니다. 아무도 나의 이 자랑거리를 헛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해야만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17 내가 자진해서 이 일을 하면 삯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마지못해서 하면, 직무를 따라 한 것입니다.

18 그리하면 내가 받을 삯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을 전하는 데에 따르는 나의 권리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그 사실입니다.

 

누가복음 10:1-12

1 이 일이 있은 뒤에, 주님께서는 다른 일흔[] 사람을 세우셔서, 친히 가려고 하시는 모든 고을과 모든 곳으로 둘씩 [둘씩] 앞서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적다.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

3 가거라,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

4 전대도 자루도 신도 가지고 가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아라.

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집에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6 거기에 평화를 바라는 사람이 있으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사람에게 내릴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7 너희는 한 집에 머물러 있으면서, 거기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자기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이 집 저 집 옮겨 다니지 말아라.

8 어느 고을에 들어가든지, 사람들이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에게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9 그리고 거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주며 하나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하고 그들에게 말하여라.

10 그러나 어느 고을에 들어가든지, 사람들이 너희를 영접하지 않거든, 그 고을 거리로 나가서 말하기를,

11 ‘우리 발에 묻은 너희 고을의 먼지를 너희에게 떨어버린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아라하여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날에는 소돔이 그 고을보다 더 견디기 쉬울 것이다.”

 

 

0. 은진교회 교우들과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께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시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값없이... 그래서...”에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거예요. 우리가 값없이받은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 ‘그래서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이야기할 거랍니다.

 

우리가 주일세대통합예배를 마치면 어린이-청소년 여러분과 제가 예배당 문에 나란히 서서 성도님들과 인사하지요? 목사님이 장담컨대 어린이-청소년이 예배 후 온 교우들이 나가는 곳에 서서 인사하는 교회는 아마 우리 교회밖에 없을 거예요. 왜 우리 교회는 어린이-청소년들이 목회자와 나란히 서서 온 교우와 인사하는 것일까요?

 

인사할 때 악수하죠? 여러분의 눈에는 할아버지시고, 할머니시고, 엄마 같고, 아빠 같고, 이모 같고, 삼촌 같은 분들인데 모두 여러분과 일일이 악수하고 인사하지요. 그러면서 여러분에게 한마디씩 건넵니다.

 

그새 많이 컷네”, “더 예뻐지고 멋있어졌는데”, “무럭무럭 자라요~”, “반가워~”, “고마워~”...... 교우들께서 이런 말씀해 주시죠? 이걸 기독교적 언어로, 예배적 언어로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바로 <축복>이라고 한답니다. 여러분에게 복을 빌어주는 거예요.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에게 복을 빌어주는 이유. 하나님의 사람으로 커가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축복해 주시는 거랍니다. 그런데... 값없이 해 주시는 축복이에요.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해 주시는 축복인 거죠. 여러분은 주일마다 그 복을 나누어 받는 사람들이랍니다.

 

온 교우가 여러분에게 값없이 복을 빌어 주는 이유, 바로 어른들도 값없이 하나님의 복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에요. 값없이 받았으니까 여러분에게도 값없이 돌려주는 거랍니다.

 

그럼,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값없이 나누어 받은 복을 여러분 주위의 사람들에게 똑같이 전하는 거죠. 하나만 얘기할게요. 친구들을 편견없이 대하고, 친구들 이야기를 잘 들어주세요. 나도 받았으니 돌려주는 거예요. 간절히 원하기는 값없이 받은 온 교우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를 값없이 돌려줄 수 있는 우리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1.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삽니다. 자본주의를 정의할 수 있는 개념은 많습니다. 그중 하나, 자본주의는 시장이 중심이 된다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과거 전통적인 방식으로 자본주의를 정의할 때 자본주의가 곧 시장경쟁체제라고 개념화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시장경제체제. 시장, 여러분이 다 아는 시장입니다. 콩나물 팔고, 고기 사고, 생선 사는 시장 말입니다. 요즘엔 온라인 시장까지 생겼지요. 경쟁체제. 겨루어 이기는 사람이 왕이라는 말입니다. 시장에서 많이 파는 사람은 돈을 많이 버니 그 사람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으뜸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본주의 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점이 있습니다. ‘바겐세일’, ‘초특가 할인판매’, ‘1+1 즉 하나사면 하나 공짜’, ‘선착순 100명에게 50% 할인등등의 행사입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어서 그렇지 이런 행사는 자본주의 시장경쟁체제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행사를 하는 이유, ‘여러분, 좋은 물건 싸게 가져가세요~’ 이런 의도가 아닙니다. 이유는 단 하나, 많이 팔기 위해서입니다. 많이 팔아야 이윤이 많이 남고 이윤이 많이 남아야 내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싸게 구입했다고, 거저나 다름없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시장경쟁체제에서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값없이 샀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 주변에서 그런 것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오늘 그 하나밖에 없는 값없이 받을 수 있는 무엇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1. 오늘 구약 말씀은 망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사야 521절과 2절은 일곱 개의 명령어를 백성에게 전합니다. 확인합니다. 1, 2절입니다.

 

1 너 시온아, 깨어라, 깨어라! 힘을 내어라. 거룩한 성 예루살렘아, 아름다운 옷을 입어라. 이제 다시는 할례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가 너에게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2 예루살렘아, 먼지를 털고 일어나서 보좌에 앉아라. 포로된 딸 시온아, 너의 목에서 사슬을 풀어 내어라.

 

명령어만 나열해 봅니다. 깨어라, 힘내라, (옷을) 입어라, (먼지를) 털어라, 일어나라, 앉아라, 풀어내라. 이사야서에서 유난히 많이 나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들어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이지요.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가 왜 망했는지 듣고,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듣고, 어떻게 앞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실지를 들으라 하십니다. 이사야는 그런 책입니다.

 

그런데 그 명령어가 바뀝니다. 듣는 것이 아니라, “깨어라, 힘내라, (옷을) 입어라, (먼지를) 털어라, 일어나라, 앉아라, 풀어내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7개의 명령어는 모두 어떤 행동을 뜻하고 있습니다. 듣는 것은 이제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제는 행동해야 할 때라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여태껏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과연 이렇게 될 수 있을까?’ 하면서 가능성을 재고 있었다면, 이젠 그때가 지나갔다는 말씀이지요. 이제는 하나님의 명령에 이스라엘 백성이, 사람이, 모든 인간이 행동으로 응답할 때라는 말씀입니다. 행동은 실제로 살아내는 것이죠. 그 근거가 3절에 나옵니다.

 

3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값없이 팔려 갔으니, 돈을 내지 않고 속량될 것이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멸망을 종으로 팔려 갔다고 비유합니다. 그런데 종을 파는 대가를 받지 않았습니다. 값없이 팔려 갔다는 말이 그런 의미입니다. 그러니 종에서 풀려날 때도 값없이 풀려날 것입니다.

 

일곱 개의 명령어를 잘 지켜내면, 값없이 새로운 세상이 시작될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우리는 깨어 있으면 되고, 힘을 내면 되고, 먼지를 털어낸 아름다운 옷을 입으면 되고, 주저앉아 좌절할 때 일어나면 되고, 막힌 것을 풀어내고 주님 보여주신 자리에 앉으면 됩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처럼 돈 주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값없이 주시는 주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값없이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의 첫 번째 이름,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서신서의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평생 사역을 하며 넘어야 할 산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예수의 직계 제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었지요. 즉 예수님 살아생전 예수님과 함께 다니던 제자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나 다른 열 제자는 예수님의 직계 제자였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다니던 사람들이었지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제자들은 담대히 스승의 가르침을 전합니다. 위기도 있었지만, 성령을 약속하신 스승의 약속을 믿고 복음 전파의 길을 갔지요. 복음을 믿게 된 사람들은 제자들의 말을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면 그 제자들이 예수와 같이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달랐습니다. 예수를 실제로 만난 적도 없고 그에게 세례를 받지도 못했지요. 오히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들이는 일도 했었네요. 이런 바울이 예수의 가르침을 전하니 사람들은 쉽게 믿지 못합니다. 아주 쉽게 말해서 당신이 뭔데요? 사도라도 되는 겁니까?’라며 따지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거죠.

 

그래서 자신에게 사도권이 없다고 말하는 다른 사람의 말에 바울은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반박합니다. 그 결과가 평생을 이어 진행한 세 번의 전도여행이 되었지요. 바울이 설령 예수의 직계 제자가 아니더라도 난 평생을 깨어서, 힘을 내어, 전신갑주를 입고, 세상의 먼지를 털어내며, 일어나 복음을 전한 것이지요.

 

바울에게 있어 복음을 전하는 일은 대가를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로 믿는 사람을 박해하던 삶에서 반대로 전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핍박하던 삶에서 핍박받는 삶으로 변했지요. 하여 내가 복음을 전하는 일이 이제는 해야만 하는 일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평생을 산 사람이 바로 바울입니다. 그의 말씀입니다. 1617절입니다.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해야만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17 내가 자진해서 이 일을 하면 삯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마지못해서 하면, 직무를 따라 한 것입니다.

 

저는 제가 교회에서 했던 일 중, 후회하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전도상을 어린이들에게 준 적이 있었는데, 그걸 지금은 굉장히 후회합니다. 왜냐고요? 16절에 나오잖아요. 복음을 전하는 일이 자랑거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건 믿는 사람으로서 해야만 하는 일이거든요. 그런데 할 일 했다고 상도 주고, 사진도 찍고 그랬을 것 아니에요? 지금 생각하면 참 낯 뜨거운 과거입니다.

 

제가 목사입니다. 저는 목사여서 여러분에게 설교를 하고, 예배를 인도하며, 심방을 하고, 성경공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목사이기에 설교의 권한이 있고, 축도의 권한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목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목사 이전에 저는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나의 구원자로 고백하는 신앙인으로서 먼저 이 모든 일을 한다고 여기며 삽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내가 깨어, 일어나, 믿음의 옷을 입고 살아가는 것이, 즉 목회하는 것이 내 직업이 목사니까 마지못해 하는 일이 아니라고요. 내가 예수님을 알고 있는 한, 예수님이 나의 그리스도인 이상, 거저 해야 하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18절입니다.

 

18 그리하면 내가 받을 삯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을 전하는 데에 따르는 나의 권리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그 사실입니다.

 

은진교회 교우 여러분. 전도하라고 하면 부담되지요? 전도의 의미가 왜곡되서 그렇습니다. 이렇게 바꿔서 말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신앙인이시죠? 그렇다면 내가 알고 있는 복음은 나만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에 전하며 살아가야 하는 겁니다. 왜냐고요? 내가 값없이 받았으니, 값없이 돌려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값없이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의 두 번째 이름, “복음임을 기억하고 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3. 복음서의 말씀입니다. 누가복음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복음 전파를 위해 여러 사람을 전도자로 파송하는 장면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여러 교회에서 길거리 전도를 할 때, 혹은 그 일을 맡게 된 교우들을 파송할 때 드리는 예배의 단골 구절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자세히 서술하고 있기에 그런 말씀으로 꽤 적합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이 전도방법론을 제시하고 있지만은 않습니다. 둘씩 가고, 당신들이 가는 곳이 이리가 득실거리는 곳이기에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돈도 자루도 신도 신지 않을 정도로 오직 믿음만을 가지고 성령을 의지하며 세상으로 나가십시오.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말씀에 무엇을 전할 것인지가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전 구약과 서신서의 말씀에서 우리가 값없이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의 두 가지 이름을 알았다면, 그것을 받아 우리도 값없이 전할 내용이 오늘 복음서에 나온다는 말씀입니다. 5절입니다.

 

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집에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먼저 평화를 빌어 주십시오. 주님의 평화를 비는 것이 먼저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용건은 그 다음입니다. 우리가 설교 시간 첫머리에 늘 평화의 인사를 하는 이유입니다. 성찬식 시작과 끝을 평화의 인사로 하는 이유입니다. 평화를 비는 이유가 6절에 나옵니다.

 

6 거기에 평화를 바라는 사람이 있으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사람에게 내릴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먼저 평화를 비는 이유, 우리가 그 말을 하고 평화를 비는 상대가 있다면 그 평화가 상대방에게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화를 바라는 이가 없더라도 그 평화는 나에게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이유는 상대방의 평화를 이루어달라는 기도이며, 바램인 것이죠.

 

7절에서는 또 방법론을 말씀하시네요. 여기저기 옮겨 다니지 말고, 한 집에 머물러 주는 것을 먹어라, 8절 영접하는 대로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호의를 내 생각으로 거절하지 말라는 중요한 지침이 들어있기도 합니다. 빵을 내왔는데 저 밀가루 먹으면 뱃살 나오니까 야채 같은 거 없습니까?’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말씀, 무엇을 전할지 그 내용이 나옵니다. 9, 10, 11절 세 절입니다.

 

9 그리고 거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주며 하나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하고 그들에게 말하여라.

10 그러나 어느 고을에 들어가든지, 사람들이 너희를 영접하지 않거든, 그 고을 거리로 나가서 말하기를,

11 ‘우리 발에 묻은 너희 고을의 먼지를 너희에게 떨어버린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아라하여라.

 

하나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이것이 우리가 전할 복음의 내용입니다. 9절은 영접한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하라 합니다. 그런데 10절에서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전하는 말씀은 똑같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놀랍지 않습니까? 믿으려 하는 사람과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해야 할 말이 같다는 사실입니다.

 

4. 오늘 우리는 구약의 말씀에서 우리가 값없이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의 첫 번째 이름, “하나님의 은혜임을 배웠습니다.

 

서신서를 통해서는 우리가 값없이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의 두 번째 이름, “복음임을 사도 바울을 통해 배웠고, 값없이 받았으니 값없이 전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복음서를 통해서는 우리가 값없이 전할 그 내용이 바로 평화를 빈다는 간구와 하나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 성령강림 이후에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 바울, 그리고 수많은 전도자가 예수님의 가르침 전했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목숨이 다할 때까지 누군가의 평화를 빌었고,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했습니다. 그 성령의 도우심이 우리에게까지 미쳐 지금 우리도 함께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은진교회 성도 여러분. 신앙은 여러분의 안식처가 되고 쉼도 될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은 관념이 아니고 실재입니다. 생각을 넘어 행동입니다. 우리가 믿을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언가를 해야 할지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것은 값없이 받은 은혜를, 복음을 우리도 값없이 평화를 빌며 나누어 드리는 일입니다. 이것이 전도이고, 이것이 선교입니다. 그리고 이 선교의 대장정을 이끌어 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를 도우시는 분, 성령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우리의 삶 가운데 평화를 이루며, 타인의 평화를 빌어주며, 그래서!!! 우리가 받은 복음을 우리도 전하는 값없이 사는 삶을 이루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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