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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 성령강림후 아홉째주일 장본 목사 2024-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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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성령강림후 아홉째주일

20240721

 

열왕기상 17:8-16

8 주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다.

9 "이제 너는, 시돈에 있는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에서 지내도록 하여라. 내가 그 곳에 있는 한 과부에게 명하여서, 네게 먹을 것을 주도록 일러두었다."

10 엘리야는 곧 일어나서, 사르밧으로 갔다. 그가 성문 안으로 들어설 때에, 마침 한 과부가 땔감을 줍고 있었다. 엘리야가 그 여인을 불러서 말하였다. "마실 물을 한 그릇만 좀 떠다 주십시오."

11 그 여인이 물을 가지러 가려고 하니, 엘리야가 다시 여인을 불러서 말하였다. "먹을 것도 조금 가져다 주시면 좋겠습니다."

12 그 여인이 말하였다. "어른께서 섬기시는 주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저에게는 빵 한 조각도 없습니다. 다만, 뒤주에 밀가루가 한 줌 정도, 그리고 병에 기름이 몇 방울 남아 있을 뿐입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지금 땔감을 줍고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가서, 저와 제 아들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것을 모두 먹으려고 합니다."

13 엘리야가 그 여인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방금 말한 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음식을 만들어서, 우선 나에게 먼저 가지고 오십시오. 그 뒤에 그대와, 아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도록 하십시오.

14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비를 내려 주실 때까지, 그 뒤주의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5 그 여인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다. 과연 그 여인과 엘리야와 그 여인의 식구가 여러 날 동안 먹었지만,

16 뒤주의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의 기름도 마르지 않았다. 주님께서 엘리야를 시켜서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되었다.

 

사도행전 6:1-7

1 이 시기에 제자들이 점점 불어났다. 그런데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이 히브리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에게 불평을 터뜨렸다. 그것은 자기네 과부들이 날마다 구호 음식을 나누어 받는 일에 소홀히 여김을 받기 때문이었다.

2 그래서 열두 사도가 제자들을 모두 불러놓고 말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은 제쳐놓고서 음식 베푸는 일에 힘쓰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3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신망이 있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여러분 가운데서 뽑으십시오. 그러면 그들에게 이 일을 맡기고,

4 우리는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겠습니다."

5 모든 사람이 이 말을 좋게 받아들여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인 스데반과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안디옥 출신의 이방 사람으로서 유대교에 개종한 사람인 니골라를 뽑아서,

6 사도들 앞에 세웠다. 사도들은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였다.

7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퍼져 나가서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의 수가 부쩍 늘어가고, 제사장들 가운데서도 이 믿음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가복음 6:30-34

30 사도들이 예수께로 몰려와서,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일을 다 그에게 보고하였다.

31 그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따로 외딴 곳으로 와서, 좀 쉬어라." 거기에는 오고가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32 그래서 그들은 배를 타고, 따로 외딴 곳으로 떠나갔다.

33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것을 보고, 그들인 줄 알고, 여러 마을에서 발걸음을 재촉하여 그 곳으로 함께 달려가서, 그들보다 먼저 그 곳에 이르렀다.

34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이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으므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여러 가지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0. 은진교회 교우들과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께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시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먼저!>입니다.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 먼저 생각해야 할 것에 대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어린이-청소년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먼저 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1학년. 뭐니뭐니 해도 지금은 학교생활이 가장 먼저겠지요? 매일 주 5일을 가니까 말이에요. 아마 주변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지금은 학생이니까, 가장 먼저 학교생활이 중요한 일이 되겠죠.

 

그럼 그다음에는요?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과의 관계일 수도 있겠고, 집에 돌아와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일이 중요하겠네요.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과 관계가 중요하게 됩니다.

 

그럼 이렇게 목사님이 물어볼게요. 여러분의 신앙은요? 여러분의 믿음은요? 라고요.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여러분의 삶 속에 몇 번째가 되나요?

 

우리는 주일에만 교회 오죠. 예배드리는 시간 1시간, 밥 먹은 시간 대략 20분 남짓, 길어도 교회에 있는 시간은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이 사이이지요. 이렇게 보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시간은 학교에 가거나, 부모님과 같이 있거나, 친구들과 같이 지내는 시간에 비해 아주 짧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라면, 두 시간 남짓 되는 시간으로도 가장 먼저 해야 할 것과 생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신앙인은 가장 먼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 알아야 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배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배움으로 인해 여러분의 일상 즉, 학교생활, 가정생활, 친구와의 관계를 멋지게 만들어 가야 하는 거라고요.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여러분에게 원하는 것이랍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보살피신 것처럼 여러분이 친구를 보살피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부모님과 사람들을 사랑하고, 예수님께서 목숨을 바쳐서 이 세상을 열심히 사셨듯, 우리도 학교에서 열심히 지내는 것. 그럴 때, 우리 삶에는 24시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게 되는 것이죠.

 

간절히 원하기는 은진의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이 하고 싶은 것 많지만, 먼저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1.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721일입니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과 장마는 우리의 삶도 무덥고 습하게 합니다. 우리나라 휴가철은 거의 여름에 집중되어 있지요. 그 이유가 있습니다. 이런 무더위에는 잠시나마 휴식을 취해야만,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게 되기 때문이지요.

 

신앙인의 삶 가운데도 무더위와 장마는 찾아옵니다. 그래서 때론 서늘한 그늘을 찾아 쉬고 싶을 때도 있지요. 하지만 우리는 매주 교회에 모여 예배드리며 세 본문 말씀을 받습니다. 어쩌면 신앙인의 휴가란, 매주 주시는 말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오늘도 우리는 지난 한 주의 일상을 뒤로하고 예배하고 있습니다. 달력에 주일이 맨 앞에 나와 있는 것은 한 주의 마무리가 일요일이 아니라, 한 주의 시작이 주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교우 여러분에게 한 주를 시작하는 새 힘주시는 주님의 능력이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2. 오늘 구약의 말씀은 열왕기상입니다. 오늘 본문은 북이스라엘 아합왕 때, 그 지역에서 일어난 엘리야의 이야기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아합왕은 이전의 어떤 왕보다도 더한 악행을 일삼았습니다. 이방 민족인 시돈의 왕과 외교를 맺기 위해, 그의 딸, 이세벨과 결혼했지요. 게다가 바알을 섬기고 예배했으며, 사마리아에 바알의 제단까지 세웁니다. 우상을 섬기지 말라던, 이방 민족과 혼인하지 말라던 하나님의 명령을 모두 어긴 왕이 아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합에게 엘리야를 보내어 수년 동안 그 땅에 가뭄이 들 것이라 171절에서 경고하게 하십니다. 이 일로 엘리야는 아합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숨게 하십니다. 숨어있는 엘리야에게 주시는 말씀이 오늘 구약의 말씀이지요. 열왕기상 179절입니다.

 

9 이제 너는, 시돈에 있는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에서 지내도록 하여라. 내가 그 곳에 있는 한 과부에게 명하여서, 네게 먹을 것을 주도록 일러두었다.

 

시돈에 있는 사르밧으로 가라 명하십니다. 그리고는 한 과부에게 엘리야가 먹을 것을 주도록 이르셨다 말씀합니다. 시돈은 아합왕의 아내 이세벨의 고향입니다. 그리고 그곳은 바알 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알의 중심으로 엘리야를 보내신 것이지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엘리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사르밧으로 가서 한 과부를 만납니다. 먼저 물을 한 잔 청합니다. 그 청에 과부가 응하려 하자 먹을 것도 조금 가져다 달라 합니다.

 

과부는 가난했습니다. 게다가 오랜 가뭄으로 그 가난은 극에 달했지요. 딱 한 끼 먹을 밀가루 한 줌과 기름 몇 방울이 남아 있는 전부였습니다. 얼마나 상황이 극에 달했으면, 12절에서 그 재료로 죽기 전에 아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려 한다고 대답합니다. 손대접 하고 싶지만, 가진 것이 없기에 엘리야의 청에 대해 그렇게 말한 것이죠.

 

엘리야는 그 딱한 말을 전해 듣고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하나님께 들은 이야기를 과부에게 전해줍니다. 음식을 만들되 먼저 나에게 가져다 달라고, 그리고 그대와 아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라고 말이죠. 여인은 분명 한 번 먹을 것밖에는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엘리야에게 가져다주면, 여인은 아들과 굶어야만 합니다.

 

이해되지 않는 이 상황에서 엘리야는 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14절입니다.

 

14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비를 내려 주실 때까지, 그 뒤주의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5절 첫 문장 그 여인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다했습니다. 아마도 14절과 15절 사이에 쓰여있지 않은 여인의 고뇌가 있었을 것입니다. 빵을 만들면서도 이 빵을 저 사람에게 주면, 내 아들은 굶어 죽을 텐데라는 생각, 수도 없이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인은 누군지도 모르는 이의 청을 들어주기로 합니다. 그 결과가 16절입니다.

 

16 뒤주의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의 기름도 마르지 않았다. 주님께서 엘리야를 시켜서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되었다.

 

과부는 이방 민족이었습니다. 그것도 바알의 중심지에 사는 여인요. 아무도 들여다 봐주지 않는 밑바닥 인생이 그의 인생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주님의 은혜를 입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이스라엘이라는 경계를 넘는 사건입니다. 그것도 죄를 일삼는 왕비의 고향에서 말이죠.

 

은진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죄악이 가득한 곳에도 펼쳐집니다. 이방인의 삶 가운데서도 펼쳐집니다. , 조건이 있습니다. 엘리야의 말대로 행해야 합니다. 즉 주님의 말씀대로 살 때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가운데 펼쳐집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이렇게, 바알의 중심지 한가운데서도 여전히 펼쳐지고 있더라는 사실이지요.

 

현실이 지옥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삶의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일어난 후 초대공동체가 생겨났습니다. 그들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자신의 소유를 함께 나누며 공동 소유 생활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사도들의 삶은 복음이었고 능력이었습니다. 여러 기적이 일어났고 믿는 사람은 많아졌지요. 그런데 그 공동체에 처음으로 갈등이 생겨납니다. 오늘 서신서, 사도행전 61절입니다.

 

1 이 시기에 제자들이 점점 불어났다. 그런데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이 히브리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에게 불평을 터뜨렸다. 그것은 자기네 과부들이 날마다 구호 음식을 나누어 받는 일에 소홀히 여김을 받기 때문이었다.

 

초대공동체 구성원은 유대인이 절대다수였습니다. 그런데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이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밖에서 생활하다가 초대공동체의 일원이 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흩어져 있다 돌아온 사람들이라 하여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라고도 말합니다.

 

히브리 말을 하는 유대인은 쉽게 말해 예루살렘 토박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초대공동체의 갈등은 바로 토착민과 이주민의 갈등이었던 것이죠. 여기에서도 과부라는 존재는 사회적 보호망에서 벗어난 사람들입니다. 가장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 세상이 돌봐 주지 않는 사람들이었지요. 그래서 초대공동체는 과부에 대해 매일 구호 음식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참 좋은 일을 한 것이죠.

 

하지만 팔이 안으로 굽어서일까요? 토착민 과부와 이주민 과부에게 음식을 나누어 줌에 있어서 차별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것에 불만을 가진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인 즉, 이주민 유대인들이 공개적으로 불평하게 된 것이지요.

 

열두 사도는 고민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일어난 첫 번째 갈등이었거든요. 열두 사도는 갈등의 원인을 자신들이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에서 찾았습니다. 2절부터 4절입니다.

 

2 그래서 열두 사도가 제자들을 모두 불러놓고 말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은 제쳐놓고서 음식 베푸는 일에 힘쓰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3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신망이 있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여러분 가운데서 뽑으십시오. 그러면 그들에게 이 일을 맡기고,

4 우리는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겠습니다."

 

구제가 중요했습니다. 주변부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하루의 양식이 없으면 굶어야 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구제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열두 사도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공동체에서 7명을 뽑아 세웁니다. 그들에게 구제하는 일을 맡기고, 사도들은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겠다고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그렇게 갈등은 일단락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과부들에게 베푼 구제라는 단어가 그리스어로 디아코니아입니다. 들어보셨지요? 그런데 4절에서 사도들이 말씀을 섬기는 일이라고 할 때, ‘섬긴다에 쓰인 단어도 디아코니아입니다. 같은 섬김이고, 같은 디아코니아입니다. 성경만 보면, 말씀을 섬기는 일이 더 중요한 것처럼 나옵니다. 하지만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 베푸는 것도 섬김이고 디아코니아라는 말씀입니다.

 

둘 중 무엇이 중요한 것이 아닌, 둘 다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7명을 선출해서 사람을 섬기는 일을 하게 하고, 사도들은 말씀을 섬기는 일을 하게 된 것이죠. 둘 다 중요하고 둘 다 해내야만 하는 것이 바로 공동체인 것입니다.

 

은진 교우 여러분. 우리의 섬김은 두 방향의 섬김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로 말씀을 섬기는 일, 이것은 내가 신앙인으로 주변에 내 신앙을 서로 이야기하고 같이 전하는 일입니다. 아주 중요합니다. 다른 방향은 우리 주변의 어려운 이들을 돌보는 일입니다. 이것도 중요한 섬김입니다. 이 두 방향성으로 건강한 신앙인의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3. 복음서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명을 제자로 삼으시고 둘씩 짝지어 귀신을 억누르는 권능을 주시고는 파송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세상을 향해 회개하라 선포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대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장면이 오늘 복음서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많은 귀신을 쫓아냈고, 많은 병자를 고쳐주었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자 제자들 주변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지요. ‘나도 고쳐주세요. 저도 아픕니다.’ 이런 사람들에 둘러싸인 제자들은 식사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많이 힘들고 지친 모습이었던 모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31절입니다.

31 그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따로 외딴 곳으로 와서, 좀 쉬어라." 거기에는 오고가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쉴 새 없이, 식사할 겨를도 없이 사역한 제자들에게 쉼을 허락하신 예수님.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가는데, 여러 마을에서 모인 사람들은 그 배를 눈으로 쫓아가며 그들이 내릴 곳으로 먼저 달려가 있었으니까요. 쉬려야 쉴 수 없는 사역의 연속이었지요.

 

배에서 내린 예수님은 구름같은 무리를 보시고 이렇게 말씀합니다. 34절입니다.

 

34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이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으므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여러 가지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사역함에 있어 현대 직장인의 법칙인 ‘9 to 6’, ‘9시 출근, 6시 퇴근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냐면 그 외 시간에도 치유가 필요하고,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주변부에 몰려있는 사람들이 넘쳐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은 34절에서 전하는 대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신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다. 측은히 여기다. 연민의 마음을 품다. 이런 뜻이지요. 배를 눈으로 보며 육지를 뛰며, 걸으며 따라온 사람들. 그들은 모두 세상에서 치유가 필요했던 사람들이었던 거죠.

 

그런데 성서는 마지막에 이렇게 전합니다. “여러 가지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고요. 그들을 치유했다고 전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었다고 전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전합니다.

 

많은 필요가 있었던 무리에게 예수님은 너의 필요가 무엇이냐?’고 묻지 않으십니다. 먼저 가르치셨습니다. 무엇을 가르치셨을까요? 복음이었을 겁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이었을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었을 겁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기독교 신앙이 나의 바라는 것만을 하나님께 고하는 신앙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내 바람을 채우는 수단으로 소비되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기 전부터 내가 먼저 말하는 신앙이 되어 버렸습니다. 내 말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하나님 떠난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모두 순서가 잘못되어 나타난 현상입니다.

 

먼저 배워야지요. 하나님께서 누구신지, 어떤 분인지, 세상에 대한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지요. 그다음에, 내가 하나님께 바라는 바를 말할 수 있겠지요. 적어도 하나님의 뜻과 부합한 여러 일을 말할 수 있게 되겠지요. 방향성의 문제이지요. 배우지 않으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성을 모르지요.

 

예수님께서 수많은 바람을 가지고 온 사람들에게 하신 일은 먼저 가르치신 일임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 말과 행동의 방향성도 생겨나기 때문이죠.

 

4. 오늘 복음서에 바로 이어 나오는 말씀은 그 유명한 오병이어의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고 나신 후에 무리를 먹이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입니다. 하지만 먹는 것도 중요한 무리였기에 말씀을 가르치시고는 그다음에 먹이십니다.

 

엘리야를 만난 과부는 삶의 포기 앞에 놓여 있던 사람입니다. 과부는 한 끼 남은 빵마저 달라는 이상한 사람 앞에 아마도 내 삶은 왜 이리 지지리 궁상이냐며 생각했을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먼저 주님의 말씀을 따릅니다. 그랬더니 기적이 일어납니다.

 

초대공동체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섬기는 일인데 그 일 가운데 갈등이 생깁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그 일마저 또 다른 섬김으로 해결합니다. 바로 말씀을 섬기는 일로 사람을 구제하는 일을 완성합니다. 말씀,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주님의 가르침이 먼저입니다.

 

은진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가운데 있다 배웠습니다. 이 은진 공동체가 하나님의 나라임을 결단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곧 주님의 가르침이 먼저입니다. 주님이 보여주신 주님의 정신이 먼저입니다. 그것이 나 개인, 우리 공동체, 이 세상이 나아갈 방향성인 거죠. 그리고 같이 먹는 겁니다. 그래야 그 식탁이, 그 섬김이 말씀을 현재에 이루는 성찬이 됩니다.

 

사랑하는 이숙재 권사님께서 그동안 우리의 점심만찬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요즘 몸이 좀 편찮으셔서, 이번 주부터 우리 여신도회에서 함께 점심만찬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한나여신도회에서 마지못해하는 일 아닙니다. 그동안 우리가 말씀을 들으며 배우니, 우리의 방향성을 그리 설정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성찬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매주 성찬을 나누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바쁩니다. 밥 짓고, 설거지하고, 주일성서학당 준비하려면 바쁩니다. 그래서 나이에 상관없이, 성별에 상관없이 모두 상을 닦고, 설거지하고 함께 돕습니다. 이것도 우리가 먼저 말씀을 들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씀을 섬기는 일에 있고, 그 말씀을 듣고 서로를 섬기는 손길에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신앙공동체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발견하고, 거기에서 말씀을 배우며, 서로를 섬기면서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또 한걸음 내딛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여기가 하나님의 나라임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은진의 모든 교우 여러분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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