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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세상, 평화 / 성령강림후 열두째주일 / 평화통일주일 장본 목사 2024-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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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세상, 평화

 

성령강림후 열두째주일

평화통일주일

20240811

 

야고보서 3:13-18

13 여러분 가운데서 지혜 있고 이해력이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러한 사람은 착한 행동을 하여 그의 행실을 나타내 보이십시오. 그 일은 지혜에서 오는 온유함으로 행하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14 여러분의 마음 속에 지독한 시기심과 경쟁심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고, 진리를 거슬러 속이지 마십시오.

15 이러한 지혜는 위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땅에 속한 것이고, 육신에 속한 것이고, 악마에게 속한 것입니다.

16 시기심과 경쟁심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온갖 악한 행위가 있습니다.

17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우선 순결하고, 다음으로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18 정의의 열매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평화를 위하여 그 씨를 뿌려서 거두어들이는 열매입니다.

 

 

0. 은진교회 교우들과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께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시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오늘은 성령강림후 열두째주일이며, 교단이 정한 평화통일주일입니다. 평화통일주일은 매해 815일 바로 직전에 있는 주일입니다. 광복절을 기념하여 평화통일주일을 지키는 것이죠.

 

통일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이제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교단,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아직 평화통일의 염원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아직까지 매주 월요일마다 평화통일 월요기도회가 열린다는 것을 아는 분은 많지 않으실 겁니다. 그 횟수가 336회를 넘었으니 오래전부터 시작한 기도회라는 것도 알 수 있지요.

 

오늘 말씀은 평화통일주일에 맞춰 전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통일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할 것이고,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평화에 관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그 중심에 노래 한 곡이 있습니다. 오늘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은 바로 이 노래입니다. 함께 노래합니다.

 

진정한 예배가 숨쉬는 교회, 주님이 주인되시는 교회,

믿음의 기도가 쌓이는 교회, 최고의 찬양을 드리는 교회,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교회, 성도의 사랑이 넘치는 교회,

섬김과 헌신이 기쁨이 되어 열매맺는 아름다운 교회,

주님의 마음을 닮아서 이웃을 사랑하는 교회,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빛 되신 주님 전하는 교회,

사랑의 불꽃이 활짝 피어나 날마다 사랑에 빠지는 교회,

주께서 사랑하는 우리 은진교회가 이런 교회 되게 하소서.

 

공교롭게도 십계명을 연상하듯 열 개의 주제로 만들어진 가사입니다. 아마 세상 모든 교회가 이 열 가지를 잘하고 있다면 아마도 교회는 모든 사람에게 존경받았을 겁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모든 것을 잘 해내는 교회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교회라는 이유로 교회가 가야만 하는 길이 있습니다. 나 혼자 그 길이 싫다 해도 교회이기 때문에 가야 하는 길이 있다는 것이죠. 어쩌면 우리가 불렀던 이런 교회 되게 하소서라는 노래는 우리에게 교회가 가야 할 길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이 노래 가사처럼 진정한 예배가 숨 쉬고, 주님이 주인되시고, 기도가 쌓이고, 최고의 찬양을 드리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스물일곱 권의 신약성경 중에 별난 취급을 받는 책이 하나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다양한 관점에 따라 논란이 있는 책이 있다는 거죠. 바로 야고보서입니다. 야고보서는 예부터 많은 신학자로부터 신약 스물일곱 권 중 가장 인정받지 못한 서신서입니다. 그 유명한 루터조차도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비판했으니까요.

 

야고보서를 보면 다른 서신서를 읽을 때와는 무척 다른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서신서의 목적이 다른 서신서들과 확연히 다름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같은 신약성경인데 다른 책들과 이런 차이가 날까요?

 

먼저 형식적인 차이입니다. 야고보서는 총 다섯 장 108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중 절반인 54절이 명령형 문장으로 되어 있지요. 명령형은 무엇을 해라!’ 이런 문장이지요. 말씀 중 절반이 명령형으로 되어 있으니까 강력한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야고보서를 읽을 때 낯선 느낌을 받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두 번째는 내용의 차이입니다. 여러분, 야고보서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이 유명한 구절 하나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야고보서라는 편지를 기억하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이죠.

 

실천하는 믿음. 이것이 야고보서를 특별한 서신서로 만든 내용의 차이입니다. 다른 서신들, 특히 많은 바울 서신이 믿음을 강조했지요. 그런데 그 믿음 가운데서 행함이 없다면 죽은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야고보서는 자연히 낯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야고보서에 이러한 비판적 시각만 있다고 생각하시면 오산입니다. 바로 오늘 읽은 말씀에 우리 은진교회가 앞으로 가야 할 숙제가 있기 때문이죠. 확인합니다. 야고보서 313절입니다.

 

13 여러분 가운데서 지혜 있고 이해력이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러한 사람은 착한 행동을 하여 그의 행실을 나타내 보이십시오. 그 일은 지혜에서 오는 온유함으로 행하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물어보겠습니다. 이 시간 예배드리는 여러분 중에, 지혜 있고 이해력이 있는 분은 누구입니까? 그러한 분이 있다면, 착한 행동을 하십시오. 혹시 지혜 있고 이해력이 있다고 자부하는 분들 계십니까? 지혜있는 사람은 내가 지혜가 있다 자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지혜와 이해력은 착한 행실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럴 때 나에게 드러나는 것이 온유함입니다. 믿는 사람들이라면 그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은진교회가, 우리가 부른 노래 가사처럼 되기 위한 첫걸음. 함께 따라 합니다. ‘착한 행실을 하십시다.’ 이어지는 14절입니다.

 

14 여러분의 마음 속에 지독한 시기심과 경쟁심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고, 진리를 거슬러 속이지 마십시오.

 

풀어드립니다. 사람사는 세상인지라 시기도 있고 다툼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런데 그런 마음이 들 때는, 지독한 시기심과 경쟁심이 있을 때는 자랑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왜 그럴까요? 16절로 넘어갑니다.

 

16 시기심과 경쟁심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온갖 악한 행위가 있습니다.

 

내 마음에 시기심이 가득할 때, 경쟁심이 가득한 순간에는 혼란과 악한 행위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이 평온할 때는 모든 사람이 다 사랑스러워 보이다가도 누군가를 시기하는 마음이 생길 때는, 상대방을 해코지하려는 마음이 든다는 것이죠.

 

그러니 시기심과 경쟁심이 내 안에 불타오를 때 자랑하게 되는 일은 14절 마지막,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여기에서 우리 교회가 가야 하는 두 번째 길이 있으니, 따라 하십니다. ‘자랑하지 마십시오!’

 

! 두 가지입니다. 첫째 지혜가 있거든 착한 행실을 하라! 둘째 시기심과 경쟁심이 있거든 자랑하지 말라! 그런데 이것을 잘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좀 아는 거 있다고 겸손하기는커녕 잘난체합니다. 시기심이 가득 한 얼굴로 다른 사람을 헐뜯습니다. 그러한 행동이 무엇인지 야고보서에서 확실하게 전해줍니다. 15절입니다.

 

15 이러한 지혜는 위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땅에 속한 것이고, 육신에 속한 것이고, 악마에게 속한 것입니다.

 

이러한 지혜, 잘난체하는 지혜, 남을 시기하는 것, 거짓말하는 것들은 위에서 온 것이 아니다. 하늘에서 온 것이 아니다. 땅의 것이고, 육신에 속한 것이고, 악마에게 속한 것이라고 아주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합니다. 교회는 하늘의 것을 취하면 됩니다. 성도는 하늘의 것을 따르면 됩니다. 그렇다면 야고보서가 말하는 하늘로부터 온 것, 정확하게 위로부터 온 지혜는 과연 무엇일까요? 17절입니다. 중요합니다.

 

17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우선 순결하고, 다음으로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은진 교우 여러분! 우리가 앞으로 꿈꿔야 할 것이 어떤 모습인지 아십니까? 순결하고, 평화롭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우리는 위에서 오는 지혜를 받은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위에서 오는 지혜의 열매가 순결, 평화, 친절, 온순, 자비, 선한 열매가 풍성한 것이고 편견과 위선이 없는 것이죠. 진부하다고요? 다 아신다고요? 그런데 이것을 교회가 못해서 세상의 비난을 받는다면 어쩌시겠습니까?

 

마지막 하나 남았습니다. 위로부터 온 지혜로 가득한 사람들이 모여 이루게 되는 열매입니다. 마지막 18절입니다.

 

18 정의의 열매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평화를 위하여 그 씨를 뿌려서 거두어들이는 열매입니다.

 

교회가 궁극에 이루어야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정의의 열매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평화를 위해 씨를 심어 거두는 열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하늘가족이 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평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 이제까지 교회가 이뤄야 하는, 교회가 따라야 하는 길에 대해 말씀을 통해 배웠습니다. 결론은 평화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평화로운데, 세상이 평화롭지 못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서 말하는 세상이란 남과 북이 갈려져 있는 우리나라를 뜻합니다. 우리나라는 1945년 해방되면서 남과 북이 갈라졌습니다. 일본에게 해방되었는데 강대국에 의해 분단되었습니다. 분단된 한 민족 두 체제는 전쟁까지 벌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휴전 상태로 있습니다.

 

분단이 끝난 것이 아니라, 전쟁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에 왜 지역 갈등이 생겨났는지 아십니까? 지독한 학연, 지연, 혈연이 아직도 지배하는 세상인지 아십니까? 왜 이리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가 되었는지 아십니까? 빈부의 격차, 성차별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왜 심한지 아십니까?

 

바로 분단 때문입니다. 남과 북이 장벽을 치고 있으니, 그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이 벽을 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내 가족, 내 사람, 내 학교, 내 고향...... 이 모든 것이 벽을 치는 행위입니다. 그러니 평화를 이룰 수가 없지요. 평화는 물과 같아서 벽을 세우면 흐를 수가 없거든요.

 

3. 벽을 허물어야 평화가 흐릅니다. 벽을 허물어야 내 옆 사람의 마음이 내게 흐를 수 있습니다. 벽을 허물어야 타인이 있는 모습 그대로 보입니다.

 

진정한 예배가 숨 쉬고, 주님이 주인되시고, 믿음의 기도가 쌓이고, 최고의 찬양을 드리며, 말씀이 살아 움직이고, 사랑이 넘치고, 섬김과 헌신이 기쁨이 되어 열매 맺고, 이웃을 사랑하고, 주님을 전하며, 날마다 사랑에 빠지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오늘 우리가 받은 말씀은 바로 벽을 허물라는 명령입니다. 그것이 위에서 오는 지혜로 살아가는 길입니다.

 

교회에서는 벽을 허물라 하면서, 세상의 벽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우리가 오늘 한 주라도 평화통일주일로 세대통합예배를 드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예배를 드리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우리는, 곳곳에 세워진 벽을 향해 민감한 신앙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가족 사이에, 이웃과의 관계에, 혹은 사회의 제도들 속에 세워진 벽들 앞에서, 책임 있는 신앙을 삶에 기꺼이 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은진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매주 신앙인으로 사는 길을 말씀을 통해 배웁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가야 할 길을 배웠습니다. 모두 같습니다. 벽을 허무는 일입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로 말이죠. 그 결과는 바로 평화입니다. 여러분 개인의 삶과, 우리 은진교회와, 여러분이 발 딛고 사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평화가 흐를 수 있기를, 이를 위해 나를 둘러싼 벽을 허무는 용기를 가진 신앙인의 삶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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