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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구원과 따름은... / 성령강림후 열셋째주일 장본 목사 2024-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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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구원과 따름은...

성령강림후 열셋째주일

20240818

 

이사야 40:27-31

27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불평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불만을 토로하느냐?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나의 사정을 모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 주시지 않는다"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는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며, 지칠 줄을 모르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29 피곤한 사람에게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30 비록 젊은이들이 피곤하여 지치고, 장정들이 맥없이 비틀거려도,

31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이사야 42:14-17

14 "내가 오랫동안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참았으나, 이제는 내가 숨이 차서 헐떡이는, 해산하는 여인과 같이 부르짖겠다.

15 내가 큰 산과 작은 산을 황폐하게 하고, 그 초목들을 모두 시들게 하겠다. 강들을 사막으로 만들겠고, 호수를 말리겠다.

16 눈 먼 나의 백성을 내가 인도할 것인데, 그들이 한 번도 다니지 못한 길로 인도하겠다. 내가 그들 앞에 서서, 암흑을 광명으로 바꾸고, 거친 곳을 평탄하게 만들겠다. 이것은 내가 하는 약속이다. 반드시 지키겠다."

17 깎아 만든 우상을 믿는 자와, 부어 만든 우상을 보고 '우리의 신들이십니다' 하고 말하는 자들은, 크게 수치를 당하고 물러갈 것이다.

 

마가복음 10:46-52

46 그들은 여리고에 갔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큰 무리와 함께 여리고를 떠나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 가에 앉아 있다가

47 나사렛 사람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외치며 말하기 시작하였다.

48 그래서 많은 사람이 조용히 하라고 그를 꾸짖었으나, 그는 더욱더 큰소리로 외쳤다. "다윗의 자손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49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눈먼 사람을 불러서 그에게 말하였다. "용기를 내어 일어나시오. 예수께서 당신을 부르시오."

50 그는 자기의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서 예수께로 왔다.

51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바라느냐?" 그 눈먼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다시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5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러자 그 눈먼 사람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가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섰다.

 

 

0. 은진교회 교우들과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께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시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몸이 허약한 체질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부모님께서는 여러분의 건강을 위해 늘 걱정하겠지요. 그러다가 몸에 좋다는 보약을 지어왔어요. 이 약만 먹으면 건강해진다고 해요. 그래서 부모님은 보약을 먹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약이 써요. 그래서 먹기가 힘든 거예요. 몸은 건강해지고 싶은데, 보약은 써서 먹기가 싫은 거죠. 부모님은 분명 보약을 먹으면 건강해진다고 했거든요. 고민이 됩니다. 건강해지고는 싶고, 약을 먹자니 너무 쓰고... 그렇게 고민하다가 하루가 지납니다. 이틀이 지납니다. 일주일 지나요. 결국 보약을 못 먹었어요.

 

여러분이 이 친구라면 건강해 질 수 있을까요? 아니죠. 나를 위해 지어오신 약이니까 부모님 말씀은 믿을 수 있는데, 쓰니까 못 먹겠어요. 부모님 말씀은 믿겠는데, 먹는 건 싫은 거죠. 그러면 건강해질 수 없는 거죠.

 

믿는 것과 믿는 대로 행동하는 건 다르다는 걸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었던 거에요. 부모님 말씀을 믿지 못해서 약을 안 먹은 게 아니잖아요. 말씀은 믿었는데 내가 먹지 못한 거죠.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요.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라고 고백해요. 여기 있는 사람들 다 그렇게 말해요. 그걸 믿음이라고 하죠. 믿음을 가진 사람은 믿음대로 살아야 해요. 믿음대로 산다는 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걸 뜻해요. 그걸 따름이라고 해요.

 

그런데 따름이라는 것이 보약을 먹는 것과 비슷해요. 믿는데, 막상 실천하자니 어려운 거예요. 중요한 건 믿는 사람은 따름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거에요. 오늘 복음서에 나오는 바디매오 이야기도 한번 잘 들어보세요. 간절히 원하기는 사랑하는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이 믿는다면, 따르는 신앙인으로 커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1.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나라의 그리스도인은 대략 20만 명 정도였습니다. 그 시절 전체 인구가 천만 명 정도였으니까, 전체 인구의 2% 정도가 그리스도인, 기독교인이었던 거죠.

 

그런데 잘 아실 겁니다.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민족대표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을요. 일제강점기 시절 기독교는 나라와 민족을 향한 많은 일을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존경은 말할 것도 없었지요.

 

작년 9, 목회데이터연구소에서 ‘2023 한국인의 종교생활과 신앙의식 조사보고서를 발표합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15%가 기독교인이라고 합니다. 한때 25%에 이를 것이라던 때가 있었지요. 지금 우리나라의 인구는 5,175만 명입니다. 이 중 15%가 기독교인이니 반올림하여 780만 명이 기독교인이라는 말입니다.

 

한때 기독교인이 1,500만 명이니, 2,000만 명이니 하는 때가 있었지요. 하지만 코로나 이후 기독교인의 현주소는 780만 명입니다. 20만 명 대 780만 명. 양으로는 엄청나게 부흥했습니다. 그럼 질적으로는 어떨까요? 지금 기독교에 대해,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부정적이라는 사실은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다 아실 겁니다.

 

그 옛날 2% 그리스도인과 오늘 15%의 그리스도인에게는 무슨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요? 그 옛날 교회와 오늘의 교회가 무엇이 다르기에 이런 차이가 나게 되었을까요? 오늘은 구약과 복음서의 말씀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망합니다. 포로로 끌려간 지 30년이 지나고, 어느덧 포로 1세대들이 세상을 떠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도 해방과 독립은 오지 않습니다. 그런 와중에 바벨론의 금과 은으로 만든 거대한 신상을 보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외칩니다. ‘맞아! 저 신들이 우리 하나님보다 더 힘센 신이야.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 진 거야. 완전히 졌어.’

 

그렇게 세월이 흘러 포로로 끌려간 지 70년이 자났습니다. 여전히 포로 생활의 연속입니다. 바벨론 황제와 힘센 장수들의 여전한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이젠 저렇게 멋진 황제와 힘센 장수들에게 완전히 항복하고 여기서 이렇게 살자. 이제 하나님은 포기하자.’ 그렇게 자존심 강했던 이스라엘 백성이 신앙적으로, 영적으로 완전히 항복하기 직전입니다. 그때 이사야서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백성이 포기하려는 시점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사야 4027절의 말씀입니다.

 

27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불평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불만을 토로하느냐?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나의 사정을 모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 주시지 않는다" 하느냐?

 

두 이름을 부릅니다. “야곱아그리고 이스라엘아여기서 부르는 이름, 야곱과 이스라엘은 한 사람을 가리키는 다른 두 이름입니다. 뒤에는 자기를 잡으려는 삼촌이 따라오고 있고, 앞에는 스스로 배신하고 도망쳤던 형이 기다리고 있고, 왼쪽엔 높은 산이요 오른쪽엔 깊은 강이니, 말 그대로 사면초가입니다.

 

우리네 인간적인 계산으로는 더는 갈 곳이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야곱은 하늘을 향해 솟아오릅니다. 천사를 붙들고 씨름하면서 말이지요. 그렇게 천사와 밤새 싸워 얻은 이름, 그것이 이스라엘입니다. 발뒤꿈치 같은 인생, 남 속여먹던 인생에서 축복받은 인생, 곧 이스라엘로 거듭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렇게 부르는 것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이봐! 우린 특별한 사이잖아! 너 나랑 씨름해서 이겼잖아. 그렇게 어려움을 극복했잖아! 그래서 이스라엘이 됐잖아! 그런데 왜 포기하려는 게야? 왜 여기서 주저앉으려는 게야? 왜 한눈파는 게야? 왜 자꾸 비교하는 게야? 비록 몸은 포로지만 너희는 하나님의 사람, 이스라엘이잖아.’

 

교우 여러분. 힘든 인생을 살아가십니까? 내 삶이 힘겹다고 생각하십니까? 교회를 다니지만 하나님은 없어!’를 외치며 사십니까? 왜 나를 버려두시냐고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십니까? 아니 ''이야말로 자본주의 사회의 진짜 하나님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돈 따라 사는 쪽이 낫겠다는 생각이 자꾸 드십니까?

 

아니오!!! 오늘 그렇게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아! 알면서 왜 그래? 다 들었으면서 왜 그래? 당신과 난 특별한 사이잖아! 장 목사와 하나님은 특별한 사이잖아! 우리 은진 교우들과 하나님은 특별한 사이잖아! 우리 그렇게 같이 살아왔잖아! 28, 왜 알지 못해요? 왜 듣지 못해요? 당신들이 믿는 분, 창조주 하나님이시잖아요. 29절 그 분은 힘을 주시는 분, 기력을 주시는 분이잖아요, 소망만 품으면 새 힘을 주시는 분, 그 분을 우리가 믿고 있잖아요. 알면서 왜 그러는 거예요. 정말!’

 

참았던 하나님께서 또 말씀하십니다. 한 장 넘어 이사야 4216절입니다.

 

16 눈 먼 나의 백성을 내가 인도할 것인데, 그들이 한 번도 다니지 못한 길로 인도하겠다. 내가 그들 앞에 서서, 암흑을 광명으로 바꾸고, 거친 곳을 평탄하게 만들겠다. 이것은 내가 하는 약속이다. 반드시 지키겠다.

 

16절의 핵심, 단어로만 말씀드립니다. 인도하며... 광명이 되게 하며... 평탄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내가 하는 약속이다.

 

어디로 인도하실까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새로운 길, 백성들이 한 번도 다니지 않았던 길로 인도하십니다. 어떤 광명일까요? 눈먼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빛이 바로 그것입니다. 무엇을 평탄하게 하실까요? 굽은 곳, 거친 곳을 평탄하게 합니다. 누구에게 하신 약속일까요? 바로 은진 교우 여러분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정말 집중하고 집중해서 봐야 할 것이 있어요. 야곱이, 이스라엘이 우리가 알지 못했던 길이 있었고, 보지 못했고, 굽은 길을 살았고, 버림받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17절입니다.

 

17 깎아 만든 우상을 믿는 자와, 부어 만든 우상을 보고 '우리의 신들이십니다' 하고 말하는 자들은, 크게 수치를 당하고 물러갈 것이다.

 

우상. 1 나무, , 쇠붙이, 흙 따위로 만든 신의 형상이나 사람의 형상을 뜻합니다. 2 신처럼 숭배의 대상이 되는 물건이나 사람을 뜻합니다. 3 하나님 이외에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신의 형상을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눈에 보이는 우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우상들이 또 있습니다. 아니 우상이 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것들. , 지위, 명예, 권력 그리고 나 중심주의 등이 그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가치들을 하나님 안에서 추구할 때 우리의 삶은 아름다워집니다. 그런데 그러한 가치를 왜곡할 때 그것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우상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돈만 좇아 살아가고, 지위나 명예, 권력에 눈이 멀어 살아갑니다.

 

우상이 이스라엘을 멸망하게 했습니다. 우상이 우리의 눈을 멀게 합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린 대로 세상은 기독교에 대해, 교회에 대해 손가락질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세상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자복해야 합니다.

 

세상이 하나님을 욕하고, 교회를 욕하는 이유가 우리가 불상 세워놓고 절하지는 않지만, 그런 눈에 보이는 우상을 섬기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 보이지 않는 우상을 섬기고 있지는 않은지, 깊이 묵상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눈에 보이는 우상은 그리 무섭지 않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우상은 내 마음부터 병들게 하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병든 신앙인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우상을 우리 스스로 벗어냅시다. 그리하여 인도하시며, 광명이 되게 하시고, 곧게 하시고, 버리지 아니하시리라는 주님의 선포를 새롭게 기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소원이 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사람입니다. 소원이었던 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 덕분에 소원을 이룬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바디매오. 디매오의 아들이며 앞을 보지 못하는 거지였습니다. 구걸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인생의 아픔을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게다가 앞까지 보지 못하니 그 인생, 바닥을 사는 인생이 분명합니다. 여리고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나사렛 예수가 왔다는 말에 무작정 소리를 지릅니다. 47,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어지간히 소리를 질렀던 모양입니다. 시각장애인인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알고 있었을 정도니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도 모였을 겁니다. 사람들이 바디매오를 꾸짖습니다. 48절 조용히 하라고요. 시끄럽다는 말입니다. 너 말고도 예수님 만날 사람 많다는 뜻입니다. 너 같은 걸인에 장애인은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입니다. 바디매오, 그렇게 바닥을 사는 인생이었습니다.

 

지르는 소리가 남달랐나 봅니다. 예수님께서 그 소리를 듣고 바디매오를 부르십니다. “용기를 내어 일어나시오라는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가 부러운 듯 들립니다. 꿈인가 했지요. 겉옷까지 내팽개치고 무작정 일어나 어느 쪽에 계신지도 모르는 예수님을 향합니다. 예수께서 물으십니다. 51절입니다.

 

51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바라느냐?" 그 눈먼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다시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뭔가 이상한 전조 현상이나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았습니다. 주변에 없던 바람 확 일어나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뿌옇다가 서서히 눈에 보이는 그런 장면이 나타날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단 한마디로 기적이 일어납니다. 52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시각장애인에 걸인이었던 바디매오는 그렇게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바디매오의 눈뜸을 통해 믿음을 강요받았습니다. 예수님만 만나면 모든 것 해결된다고 배웠습니다. 예수님만 붙들라고 배웠습니다. 다 맞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믿음인지, 그 믿음으로 구원받은 이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많이 배우거나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어떤 믿음이었을까요?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는 믿음입니다. 가진 것 옷 한 벌밖에 없는데, 그분이 부르시니 그마저 팽개치고 달려가는 믿음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가진 것 다 버리고 교회 일에, 선교지에 달려가라는 뜻 아닙니다. 부르실 때 !”라고 바로 대답하고 달려가라는 말입니다.

 

바디매오가 가진 것 없는 처지에 장애인이라고 생각조차 없었던 사람은 아닙니다. 그도 충분히 고민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라는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할 수 있을까?’ 충분히 의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디매오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예수님에게 갔습니다.

 

그 믿음을 말하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은 가족도 있고, 집도 있고, 먹을 것도 있지요. 지위 높은 이도 있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최소한 바디매오보다 가진 것이 많으면 많았지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로 달려나가는 믿음을 가진 이들은 별로 없습니다. 그저 바디매오를 보고 부러워하는 사람만이 있습니다. 소리를 지르는 바디매오에게 시끄럽다고, 조용히 하라고 말하는 사람만이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 구원받은 이후입니다. 바디매오는 보게 되어 예수를 따랐습니다. 바로 그 길에서 따랐습니다. 교우 여러분. 믿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구원을 받으셨습니까? 그 길로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믿음구원따름이 하나가 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3.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한국인의 종교생활과 신앙의식 조사 보고서에는 개신교인의 연령별 비율이 나옵니다. 20대는 11%로 조사되었습니다. 가장 낮은 비율입니다. MZ세대라고 하지요. 지금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에 대해 MZ세대의 탈종교화 현상이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추세로 가면 10년 후 개신교인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0% 미만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그런데 그들을 보며 그 옛날 망한 이스라엘의 2세대, 3세대가 생각이 나고, 눈먼 걸인 바디매오가 생각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간곡히 부탁합니다. 우리는 다시 이스라엘 1세대들이 흘린 눈물을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눈먼 바디매오의 주변에서 그의 눈 뜸을 보고 그저 부러워하거나 시기하는 구경꾼이 돼서는 안 됩니다.

 

그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지금 우리의 신앙과 믿음, 우리의 교회를 돌아다봐야 합니다. 우리가 타인을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구분 짓지는 않았는지, 타인에게 나의 믿음과 신앙의 방식을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타인에게 그들의 삶을 듣기 이전에 내가 살아온 길만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살펴야만 합니다.

 

앞서 말한 세 가지를 살피지 못한 것이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종교를 믿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들 잘못이 아니라, 믿고 있는 우리의 잘못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멸망해 있는 이스라엘을 향해 선언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인도하며, 광명이 되게 하고, 평탄케 할 것이고,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 그 은혜를 받은 우리가 해야 할 일, 이미 구원을 받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신앙을 다시 돌아보고, 다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보이지 않는 우상을 떨쳐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일입니다.

 

오래도록 해왔다고 과거만 말하지 마십시다. ‘현재, ‘앞으로도 죽도록 하겠다고 고백하는 신앙인이 되십시다. 예수님은 죽을 때까지 그리하셨잖아요. 그리고 그 길 따름이 진정한 하나님 나라에 거하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힘겹게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사람과 그래도 예수만이 희망이고, 하나님만이 진리임을 고백하며 살아가는 은진교회 성도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인도하심과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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