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말씀선포

  • 홈 >
  • 예배와 말씀 >
  • 이 주의 말씀선포
이 주의 말씀선포
반복성의 일상을 넘어 / 성령강림후 열넷째주일 장본 목사 2024-08-25
  • 추천 2
  • 댓글 0
  • 조회 43

http://eunjin.onmam.com/bbs/bbsView/101/6431684

본 영상의 사이즈와 화질은 500kbps, 중간화질입니다. 영상은 업로드 시 설정할 수 있습니다.

.

반복성의 일상을 넘어...

 

성령강림후 열넷째주일

20240825

 

열왕기하 5:1-14

1 시리아 왕의 군사령관 나아만 장군은, 왕이 아끼는 큰 인물이고, 존경받는 사람이었다. 주님께서 그를 시켜 시리아에 구원을 베풀어 주신 일이 있었다. 나아만은 강한 용사였는데, 그만 나병에 걸리고 말았다.

2 시리아가 군대를 일으켜서 이스라엘 땅에 쳐들어갔을 때에, 그 곳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잡아 온 적이 있었다. 그 소녀는 나아만의 아내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3 그 소녀가 여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 어른께서 사마리아에 있는 한 예언자를 만나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분이라면 어른의 나병을 고치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4 이 말을 들은 나아만은 시리아 왕에게 나아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온 한 소녀가 한 말을 보고하였다.

5 시리아 왕은 기꺼이 허락하였다.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편지를 써 보내겠으니, 가 보도록 하시오."

나아만은 은 열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옷 열 벌을 가지고 가서,

6 왕의 편지를 이스라엘 왕에게 전하였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내가 이 편지와 함께 나의 신하 나아만을 귀하에게 보냅니다. 부디 그의 나병을 고쳐 주시기 바랍니다."

7 이스라엘 왕은 그 편지를 읽고 낙담하여, 자기의 옷을 찢으며, 주위를 둘러보고 말하였다.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신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이렇게 사람을 보내어 나병을 고쳐 달라고 하니 될 말인가? 이것은 분명, 공연히 트집을 잡아 싸울 기회를 찾으려는 것이니, 자세히들 알아보도록 하시오."

8 이스라엘 왕이 낙담하여 옷을 찢었다는 소식을,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듣고,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였다. "어찌하여 옷을 찢으셨습니까? 그 사람을 나에게 보내 주십시오. 이스라엘에 예언자가 있음을 그에게 알려 주겠습니다."

9 나아만은 군마와 병거를 거느리고 와서, 엘리사의 집 문 앞에 멈추어 섰다.

10 엘리사는 사환을 시켜서 나아만에게, 요단 강으로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면, 장군의 몸이 다시 깨끗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11 나아만은 이 말을 듣고 화가 나서 발길을 돌렸다. "적어도, 엘리사가 직접 나와서 정중히 나를 맞이하고, 주 그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상처 위에 직접 안수하여, 나병을 고쳐 주어야 도리가 아닌가?

12 다마스쿠스에 있는 아마나 강이나 바르발 강이, 이스라엘에 있는 강물보다 좋지 않다는 말이냐? 강에서 씻으려면, 거기에서 씻으면 될 것 아닌가? 우리 나라의 강물에서는 씻기지 않기라도 한다는 말이냐?" 하고 불평하였다. 그렇게 불평을 하고 나서, 나아만은 발길을 돌이켜, 분을 참지 못하며 떠나갔다.

13 그러나 부하들이 그에게 가까이 와서 말하였다. "장군님, 그 예언자가 이보다 더한 일을 하라고 하였다면,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다만 몸이나 씻으시라는데, 그러면 깨끗해진다는데, 그것쯤 못할 까닭이 어디에 있습니까?"

14 그리하여 나아만은 하나님의 사람이 시킨 대로, 요단 강으로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었다. 그러자 그의 살결이 어린 아이의 살결처럼 새 살로 돌아와, 깨끗하게 나았다.

 

야고보서 5:13-20

13 여러분 가운데 고난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송하십시오.

14 여러분 가운데 병든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십시오. 그리고 그 장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십시오.

15 믿음으로 간절히 드리는 기도는 병든 사람을 낫게 할 것이니,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죄를 지은 것이 있으면,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여러분은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낫게 될 것입니다. 의인이 간절히 비는 기도는 큰 효력을 냅니다.

17 엘리야는 우리와 같은 본성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비가 오지 않도록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니, 삼 년 육 개월 동안이나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으며,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내리고, 땅은 그 열매를 맺었습니다.

19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서 진리를 떠나 그릇된 길을 가는 사람이 있을 때에, 누구든지 그를 돌아서게 하는 사람은

20 이 사실을 알아두십시오. 죄인을 그릇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사람은 그 죄인의 영혼을 죽음에서 구할 것이고, 또 많은 죄를 덮어줄 것입니다.

 

마가복음 5:1-12

1 그들은 바다 건너편 거라사 사람들의 지역으로 갔다.

2 예수께서 배에서 내리시니, 곧 악한 귀신 들린 사람 하나가 무덤 사이에서 나와서, 예수와 만났다.

3 그는 무덤 사이에서 사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묶어 둘 수 없었다.

4 여러 번 쇠고랑과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쇠고랑도 부수었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 없었다.

5 그는 밤낮 무덤 사이나 산 속에서 살면서, 소리를 질러 대고, 돌로 제 몸에 상처를 내곤 하였다.

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엎드려서

7 큰소리로 외쳤다. "더 없이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두고 애원합니다.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8 그것은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악한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명하셨기 때문이다.

9 예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대답하였다. "군대입니다. 우리의 수가 많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10 그리고는, 자기들을 그 지역에서 내쫓지 말아 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였다.

11 마침 그 곳 산기슭에 놓아 기르는 큰 돼지 떼가 있었다.

12 귀신들이 예수께 간청하였다. "우리를 돼지들에게로 보내셔서, 그것들 속으로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0. 은진교회 교우들과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께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시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목사님 MBTI 이야기를 들려줄게요. 목사님은 INFJ에요. 성격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건 말이 되진 않지만, 오늘만 한마디로 해 볼게요. INFJ. 완벽주의자래요. 좋아 보이죠? 아니에요. 주변 사람이 피곤해요.

 

왜 피곤한지 알아요? 목사님 쓰는 물건은 늘 그 자리에 있어야 해요. 시계는 꼭 화면이 팔목 안쪽으로 오게 차야 해요. 열쇠는 꼭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넣고요. 그리고 이건, 목사님하고 같이 사는 분도 모르는 얘기인데 여러분에게만 해 줄게요. 목사님은 주일에만 신는 양말이 있어요. 그 양말이 한 켤레만 남아 있으면, 토요일에는 안 신어요. 그래서 피곤해요.

 

그런 걸... 루틴이라고도 말해요. 반복되는 일상. 그런데 장점도 있어요. 루틴대로 하면 뭔가 잘 될 것 같고,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이왕 사는 거 마음 편하게 살면 좋잖아요?

 

그런데 단점도 있어요. 루틴이 많아지면, 반복되는 일상이 많아지면, 그 사람은 잘 변하지 않아요. 그게 굳어져요. 그래서 목사님은 오늘. 그 양말을 신고 오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렇지 않아요.

 

어린이-청소년 여러분. 우리는 신앙인이에요. 신앙인은 주일마다 교회에 와서 예배드려요. 이것도 루틴이라면 루틴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중요한 게 있답니다. 신앙은 루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에요. 반복되는 일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요. 신앙인은 늘 변화하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랍니다. 왜냐면 신앙인으로 사는 기준이 예수님의 가르침이기 때문이에요.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늘 변해야 한답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우리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이 생활 속에 긍정적인 루틴을 지켜가며, 말씀을 통해 늘 변화하는 신앙인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1.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신기한 일이 있습니다. 여기 모인 우리, 10대부터 80대까지 한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기도는 박시온 학생이 드렸지요. 우리 교회 주일예배가 세대통합예배이기 때문입니다.

 

제일 나이 어린 사람은 초등학교 5학년 열두 살입니다. 가장 연세가 많으신 분은 여든을 훌쩍 넘기셨습니다. 어떤 분은 직장 생활을 하시고, 어떤 분은 자영업을 하시고, 어떤 분은 인생의 모든 일을 마치고 노년의 삶을 살고 계십니다. 공부하고 있는 학생도 있습니다.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공통분모를 찾기가 참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이죠. 이것 자체가 신기하지 않으세요? ‘우리는 왜, 주일 이 시간 은진교회라는 곳에 함께 모여 있는 것일까요?’

 

개념 하나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반복성의 일상(routineness of life)’이라는 개념입니다. 이 개념은 제가 학위논문을 쓸 때, 우리가 반복하는 신앙생활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개념입니다.

 

저는 주일 아침에 일어나서 깔끔한 옷을 입고,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공동식사를 하고, 서로 대화하고 집에 돌아가는 그 모든 과정을 일주일에 한 번 반복하는 일상이라고 정의했었거든요. 사실 논문에서는 약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했더랍니다.

 

그런데 우리 주일의 모습이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부정적으로 표현했다고요. 목사가 말이죠. 왜 그랬을까요?

 

신앙인은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배를 통해, 신앙생활을 통해 내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죠. 신앙인으로 사는데 변화가 없다면, 내 삶을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왜냐면 예수의 가르침으로 살아가는 것이 신앙인의 삶인데, 이전의 삶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신앙인으로 사는데, 변화가 없어요. 맨날 갈등을 일으켜요. 성경에 자랑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는데 교회에서 늘 자기 자랑만 해요. 내 자식 자랑만 해요. 교회 자랑만 해요. 예수님은 죽으라고 사랑하라 말씀하시는데 죽으라고 벽을 세워요. 그 벽으로 가난한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 소수자들을 넘어오지 못하게 해요. 예수님은 다 내게로 오라 말씀하셨는데 말이죠.

 

그런데 더 가관은 뭔지 아세요? 타인을 정죄하면서 그게 성경에서 말 한대로 하는 거래요. 그러면서 변하지 않는 내 신앙을 자랑스러워해요. 또 자랑해요. 그런 사람 반복성의 일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거라고 제가 개념을 만들었어요.

 

서두의 질문을 다시 한 번 드립니다. ‘우리는 왜, 주일 이 시간 은진교회에 함께 모여 있는 것일까요?’

 

2. 구약의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은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의 이야기입니다. 나아만은 훌륭한 장수였지만 심한 피부병으로 고통당하고 있었지요. 그 집에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에서 끌려온 한 소녀는 그에게 이스라엘의 예언자, 엘리사를 소개합니다. 열왕기하 53절입니다.

 

3 그 소녀가 여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 어른께서 사마리아에 있는 한 예언자를 만나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분이라면 어른의 나병을 고치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나아만은 예우를 갖추어 이스라엘을 방문하면서 엘리사의 집 앞에 섭니다. 엘리사는 자신의 사환에게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으면 나을 것이라고 대신 전하게 합니다. 집 앞까지 왔는데 얼굴도 비치지 않고 사환에게 말을 전했다는 사실에 화가 난 나아만은 그냥 떠나려 했지만, 부하들의 충언으로 요단강에 몸을 씻습니다. 그리고 나음을 받습니다.

 

많은 등장인물이 있지만 두 사람을 주목하고자 합니다. 나아만과 그에게 엘리사를 찾아가라 권했던, 이스라엘 출신 소녀입니다.

 

이스라엘 소녀는 포로입니다. 노예지요. 나아만 아내의 시중을 드는 종입니다. 그런데 참 당당하다 못해, 당돌하기까지 합니다. 병을 앓고 있는 주인에게 사마리아에 있는 한 예언자를 만나보세요. 당신을 고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이 소녀는 예언자를 알고 있었습니다. 소위 용하다는 것을요. 하지만 이 소녀가 단순히 예언자가 병을 잘 고치는 사람이기에 권한 건 아닙니다. 예언자 엘리사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기에 추천한 겁니다. 소녀가 바라보았던 것, 엘리사라는 사람이 아닌 그를 예언자로 세우신 하나님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종의 말쯤은 무시할 법도 하죠. 그런데 나아만은 놀랍게도 자기 상관인 시리아 왕에게 말해서 예언자를 만나고 오겠노라 청합니다. 그리고 왕은 여러 선물을 챙겨서 보냅니다. 왕도 아끼는 사람 나아만, 꽤 능력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엘리사를 만나고 나아만은 마음이 상합니다. 엘리사가 버선발로 영접하기는커녕 사환을 시켜 문 앞에서 처방전을 읽도록 했기 때문이지요. 확인합니다. 11절입니다.

 

11 나아만은 이 말을 듣고 화가 나서 발길을 돌렸다. "적어도, 엘리사가 직접 나와서 정중히 나를 맞이하고, 주 그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상처 위에 직접 안수하여, 나병을 고쳐 주어야 도리가 아닌가?

 

고국의 왕도, 자기를 아껴서 재물을 챙겨 보낸 나아만이었습니다. 이런 대접 받아본 적 없었지요. 그의 마음속에는 적어도 제사장 정도에게는 정중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나, 직접 안수 정도는 받을 수 있는 내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감히 나를 어떻게...’ ! 나말이야!...... ‘로 가득 차 있습니다. 꼭 우리 모습 같습니다. 이 정도 대접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말입니다.

 

어린 소녀는, 종의 신분에도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을 전합니다. 반면 한 나라의 군사령관은 수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그 어린 종마저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습니다. 그에게는 지금 분노가 가득합니다. 무엇의 차이일까요? 한 사람에게는 하나님 외에 아무것도 없는데, 다른 한 사람은 하나님만 없고 다 있습니다. 그 차이입니다.

 

다행히 나아만에게는 직언을 하는 충신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요단강에 몸 씻는 일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안 하십니까? 더 거창한 일이면 했을 거면서 깨끗해진다는데, 그거 좀 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교우 여러분. 그럴듯한 일은 감수하겠는데 당연하고 소소해 보이는 것, 그래서 오히려 순종하지 않고 믿음 생활에서 놓쳐 버리는 것들이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시다.

 

우리 안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내가 신앙인으로 서기 위해서는 마음 둘 곳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그것을 흔히, 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 권력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세상을 살기 위해 필요할 만한 것인진 몰라도 신앙인으로 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바로 하나님입니다. 노예 소녀에게는 있었고 다 가진 나아만에게는 없었던 하나님, 곧 하나님에 대한 믿음, 신앙이 그것임을 기억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오늘은 복음서를 먼저 봅니다. 복음서의 말씀은 이 진리를 확인시켜 줍니다.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시는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인 12절까지에는 치유 장면이 포함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조금 다르게 풀어드립니다.

 

아무도 어쩔 수 없는 귀신 들린 사람이 있습니다. 쇠사슬로 묶어도 잡아놓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쉽게 말해 마주치면 도망가야 하는 사람입니다. 미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들어보십시오. 마가복음 57절입니다

 

7 큰소리로 외쳤다. "더 없이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두고 애원합니다.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예수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야? 귀찮게 하지 말고 날 좀 내버려 둬!! 날 괴롭히지 마!!!!!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입니다. 길 가다가, 도움의 손길 좀 줄라치면 이러는 사람들 있지요. ‘당신이 뭔데!! 냅둬!! 냅두라고!!’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사람을 마주치면 어떻게 합니까? 피하는 게 상책이지요.

 

그런데 우리 예수님, 그 한 영혼 살려보시려고 이미 귀신아 물러가라 명하셨습니다. 대화도 없이, 그 미친 사람에게는 물어보지도 않고 이미 고치고자 하셨습니다. 그런 주님에게 그 사람은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야!. 좀 내버려 둬!! 난 익숙한 대로 이렇게 살 테니 나를 괴롭히지 마!!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 사람이 어쩌면 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온갖 것들에 마음 빼앗겨 그냥 적당히 이렇게 머물며 살겠다 말하는, 본문의 이 거라사 광인이 어쩌면 우리의 모습일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우리를 새 사람으로 살게 하시려고 내 안에 계시는데, 우리는 계속 제발, 적당히, 이 정도 선에서 내버려 두라고 버티고 있다는 말입니다. 9절입니다.

 

9 예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대답하였다. "군대입니다. 우리의 수가 많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마음속에 가득 찬 그것들을 군대라고 부릅니다. 군대는 한 사람이 아닙니다. 너무 많아서 군대라 불렀답니다. 내 안에, 우리 안에 예수님조차 못 보게 만드는 이런 군대들이 가득하지는 않습니까? 그것들이 자리하고 있는 한, 그것들을 비워내지 않는 한, 어떻게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반문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목사님! 세상 좀 살려면, 그런 것쯤은 가지고 있어야 해요.’ 맞습니다. 그런 것쯤 가지고 있어야 살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돈 좀 가지고 있고 어느 정도 값나가는 차, 집 정도는 있어야 하고 이왕 가진 거, 지위나 직책도 좀 있었으면 좋겠고. 귀신 들린 사람조차 하나 아닌 군대, 그리 많은 것을 마음에 두며 살아가는데 하물며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내가 신앙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길, 단 하나의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야고보서로 마지막 말씀여행을 떠납니다.

 

4. 야고보서 513절입니다.

13 여러분 가운데 고난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송하십시오.

 

여러분! 힘드십니까? 기도하십시오. 즐거우십니까? 그러면 기쁘게 찬송하십시오. 그 길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액면가 그대로 믿자는 뜻입니다. 고난! 남 탓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고 기도하라 하십니다. 즐거움! 뻐기지 말고, 난 체하지 말고 그저 하나님께 찬송하십시오.

 

결론이 너무 허무하다고요? 아니오. 그것이 진리입니다. 기도하되 하나님께 하십시오. 찬송하되 하나님을 찬송하십시오. 아프거든, 함께 손 붙잡고 기도요청 하십시오. 어느 목사가 용하대. 어느 장로가 용하다고 부탁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하는 겁니다. 하나님!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신앙인으로 서는 길입니다.

 

단순하지만 너무나 명확한 결론입니다. 하나님만을 붙잡고 살아가는 신앙의 여정, 그러면 이렇게 됩니다. 15절과 16절입니다.

 

15 믿음으로 간절히 드리는 기도는 병든 사람을 낫게 할 것이니,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죄를 지은 것이 있으면,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여러분은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낫게 될 것입니다. 의인이 간절히 비는 기도는 큰 효력을 냅니다.

 

하나님께서 일으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신앙의 여정, 그러면 16, 우리가 낫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품고 사는 의인의 기도는 큰 역사를 나타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사실이 있어요. 19절과 20절입니다.

 

19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서 진리를 떠나 그릇된 길을 가는 사람이 있을 때에, 누구든지 그를 돌아서게 하는 사람은

20 이 사실을 알아두십시오. 죄인을 그릇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사람은 그 죄인의 영혼을 죽음에서 구할 것이고, 또 많은 죄를 덮어줄 것입니다.

 

세상에서 그릇된 길을 가는 사람들,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십시오. 나아만처럼 되 보겠다고, 세상에서 인정 좀 받아보겠다고, 그렇게 돌고 돌면서, 공허함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야고보 시대에도 많았던 모양입니다. 그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라 하십니다.

당신의 환대와 사랑이 한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게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환대와 사랑이 저들의 죄를 사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덮어주어 새로운 하나님의 사람으로 안내할 수 있음을 기억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5. 우리는 반복성의 일상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주일 아침 일어나 교회와서 예배드리고, 식사하고 대화하고 돌아가는 것이, 루틴이 되어서는 안 된단 말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신앙인으로 서가야 합니다.

 

그 시작은 하나님을 기억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신앙인이 서야 할 마지막 지점은 예수님 따라 사는 것으로 끝나야 합니다. 잠시 내 안에 군대들이 들어와도, 나아만처럼 이것저것 가진 것 많아도, 하나님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고난 중에는,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쁠 때는, 하나님을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아픔 중에는, 서로의 하나님을 신뢰하며 중보기도 하기를 바랍니다. 방황하는 이들을 하나님께로 돌이켜 사랑을 베풀기 바랍니다.

 

이 믿음의 삶을 살아, 반복성의 일상을 넘어 날마다 변화하는 신앙인으로 서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새 역사를 향하여(feat. 꽃들에게 희망을) / 창조절 첫째주일 / 교회창립주일 사진 장본 목사 2024.09.01 2 37
다음글 믿음과 구원과 따름은... / 성령강림후 열셋째주일 사진 장본 목사 2024.08.18 2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