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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역사를 향하여(feat. 꽃들에게 희망을) / 창조절 첫째주일 / 교회창립주일 장본 목사 202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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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역사를 향하여 / feat. 꽃들에게 희망을

 

창조절 첫째주일

교회창립기념주일

20240901

 

시편 3413-20

13 네 혀로 악한 말을 하지 말며, 네 입술로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

14 악한 일은 피하고, 선한 일만 하여라. 평화를 찾기까지, 있는 힘을 다하여라.

15 주님의 눈은 의로운 사람을 살피시며, 주님의 귀는 그들이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신다.

16 주님의 얼굴은 악한 일을 하는 자를 노려보시며, 그들에 대한 기억을 이 땅에서 지워 버리신다.

17 의인이 부르짖으면 주님께서 반드시 들어 주시고, 그 모든 재난에서 반드시 건져 주신다.

18 주님은, 마음 상한 사람에게 가까이 계시고, 낙심한 사람을 구원해 주신다.

19 의로운 사람에게는 고난이 많지만, 주님께서는 그 모든 고난에서 그를 건져 주신다.

20 뼈마디 하나하나 모두 지켜 주시니, 어느 것 하나도 부러지지 않는다.

 

로마서 5:1-5

1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2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에 [믿음으로] 나아오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될 소망을 품고 자랑을 합니다.

3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을 자랑합니다. 우리가 알기로, 환난은 인내력을 낳고,

4 인내력은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5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우리 마음 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0. 은진교회 교우들과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께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시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입니다. 애벌레가 있어요. 호랑 애벌레입니다. 호랑 애벌레는 열심히 이파리를 먹으며 무럭무럭 자랍니다. 문득 궁금합니다. “먹는 것 말고 다른 삶이 있을 거야.”

 

그렇게 고민하던 호랑 애벌레는 애벌레 친구들로 세워진 기둥을 발견합니다. 모두 꼭대기로 올라가려 애씁니다. 거기에 무언가 있을거라 생각한 호랑 애벌레도 그 벌레 기둥 대열에 올라탑니다. 기를 쓰고 갑니다. 올라가던 중에 노랑 애벌레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노랑 애벌레가 너무 좋아서 둘은 땅으로 내려옵니다. 그러다 호랑 애벌레는 올라가다가 내려온 그 기둥 생각이 또 납니다. 그래서 노랑 애벌레를 두고 다시 그 기둥으로 가지요. 노랑 애벌레는 큰 상처를 받고 방황합니다.

 

방황하던 노랑 애벌레, 어느 날 문득 고치를 만들고 있는 애벌레를 만나 이런 말을 듣습니다. “나는 나비가 되려고 해요.” “나비? 나비가 뭐에요?” 노랑 애벌레가 묻습니다. “나비는 당신이 되어야 할 그것이에요.”

 

노랑 애벌레는 낯선 애벌레의 조언을 따라 고치를 만들고, 번데기가 되어 노랑나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호랑 애벌레가 있는 곳으로 날아갑니다. 그 시간 호랑 애벌레는 벌레 기둥 맨 위에 도착해서 아무것도 없는 것을 발견하고는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자기 눈앞에 나타난 노랑나비를 본 호랑 애벌레는 그 나비가 자신이 사랑했던 노랑 애벌레였음을 알아차립니다. 하지만 노랑나비는 애벌레의 언어를 잊어버렸나 봐요. 호랑 애벌레를 보고는 그저 날개짓만 합니다. 호랑 애벌레는 노랑나비의 날개짓을 알아듣습니다.

 

그리고 땅으로 다시 내려와 스스로 고치를 만들고 번데기가 되어 호랑나비가 되었습니다. 다시 그 둘은 함께 날아다녔다는 이야기입니다. 유명한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의 줄거리입니다.

 

어린이-청소년 여러분. 나비는 애벌레를 거쳐 번데기가 되어야 태어나는 존재입니다. 수많은 변화를 겪어 아름다운 나비로 태어나는 것이죠. 간절히 원하기는 어린이-청소년의 시기에 많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노랑나비 친구처럼 여러분의 삶을 진심으로 지지하는 주변 사람의 기도와 응원으로 여러분은 멋진 신앙인으로 커 갈 것입니다.

 

그 과정에 조금은 실망하고 절망하는 때도 있을 거예요. 괜찮아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주변 사람들의 지지가 늘 끊임없이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은진교회 창립 47주년을 감사하는 예배입니다. 지난 47년간, 우리 교회를 지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모두 하나님께 감사의 박수를 올려드립시다.

 

47년 전, 은진교회를 설립하며 만든 열 개의 설립이념이 있습니다. 작년 창립주일에는 마지막 열 번째를 소개해 드렸는데요. 오늘은 그중 아홉 번째 설립이념을 여러분에게 소개하려고 합니다. 제가 그대로 읽어드리겠습니다.

 

<아홉째, 은진교회는 화해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평화의 직무를 이행토록 노력한다. 전쟁, 이념분쟁, 인종차별, 빈부격차를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시키며 평화의 집이 되기를 노력한다.>

 

우리 교회 설립이념을 만들었을 때부터 신앙생활을 해 오신 교우들이 아직 이 자리에 계십니다. 1979년 은진교회 최초의 제직회를 구성하였는데 그때 최정석 장로님, 고충자 권사님, 김춘자 권사님, 박정자 권사님이 집사 직분을 받으셨습니다. 지금 함께 예배드리는 세 분 모두 기억하실까요? 우리 김정숙 권사님은 1980년에 집사 직분을 받으셨더라고요. 박순심 권사님은 1989년에, 박영자 권사님은 1994년에, 나연희 권사님은 2005년에 집사가 되셨습니다. 이 시간 교회를 대표하여 긴 시간 신앙의 여정에 함께 해 주신 교우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교회가, 은진교회가 화해자의 사명을 감당하기로 시작한 교회입니다. 전쟁과 이념 분쟁, 차별과 빈부격차를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시키고자 노력하는 교회가 되기로 하였다고요. 그렇게 47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은진교회 목사로서 우리 교회가 가진 열 가지 설립이념을 창립기념주일마다 한가지씩 여러분에게 상기하려고 합니다. 왜냐면 지금 읽어봐도 그 이념이 교회와 사회에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어쩌면 오늘의 시대에 더 절실하게 필요한 가치인 거죠. 그래서 상기하는 데만 그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초창기 설립이념이 현재에도 가능하도록, 지금 이 땅에 다시 펼쳐가라는 주님의 메시지로 삼고 그 가능성을 새롭게 제시하고자 합니다.

 

제가 잘나서 그것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47년 전 사회와 2024년의 사회가 너무 달라졌기에 설립이념의 해석을 통해 47년 전 이 교회의 세운 뜻을 오늘의 뜻으로 세워나가기 위함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47년 전 교회 창립의 감동을 다시금 회복하여 은진교회가 새롭게 시작하는 오늘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 구약의 말씀입니다. 제 부모님은 일제 강점기 시절 소학교를 다니시던 분들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잠자리에서 두 분이 일본어로 소곤소곤 대화합니다. 아침에 묻지요. ‘엄마, 아빠랑 일본말로 무슨 얘기했어?’ ‘. 비밀이야기’. 그때 제 나이 10살 때였으니, 부모님께서 50세가 넘으셨지요. 그때까지 부모님은 일본어를 하셨습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두 분은 해방 이후 일본어를 공부한 적이 없거든요. 소학교 때 배운 것이 전부였습니다. 조기교육의 결과입니다. 1939년부터 일제는 한반도에 대한 한국어 말살정책을 시작합니다. 모든 학교에서 교육은 일본어로만 가능했습니다.

 

일본은 치밀하게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했습니다. 1910년에는 통치권을 빼앗고, 1920년대에는 식량 수탈하고, 자원 수탈하고, 1930년대는 자기네 황제를 숭배하는 황민화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렇게 통치권-경제권-삶의 방식을 순차적으로 앗아간 후, 1939년부터 한국어를 쓰지 못하게 했습니다.

 

자기 나라 말을 못하는 사람은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헷갈립니다. 그걸 제일 마지막에 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1939년부터 45년까지 6년 배운 일본어로 부모님께서는 이후 40년 동안 일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게 되었다고요. 무섭지 않습니까?

 

그 지긋지긋한 식민지 생활에서 벗어난 것이 3주 전 815일입니다. 광복절이 왜 중요한지 아십니까? 오늘 나의 정체성을 있게 해 준 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를 갖게 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역사인식이라고 합니다.

 

시편 3415절부터 18절은 그 옛날 일제 강점기 시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했던 근거가 되는 말씀입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수많은 기독교인이 독립운동을 했지요. 왜요? 이런 믿음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 식민지 통치에서 해방시키신 분, 그래서 그들이 나는 이스라엘 사람이야!’라고 말할 수 있게 하신 분임을 믿었다는 말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일제 식민지에서도 우리를 해방시켜 주실 것이고, ‘나는 일본사람이 아니라 조선사람이야!’라고 말하게끔 인도하실 것이야! 그러니... 15!

 

첫째, 주의 눈은 의로운 사람을 살피시며, 주의 귀는 식민지 살이에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신다고 믿었기에,

둘째 16, 주의 얼굴은 악한 일을 하는 자를 노려보시며, 그들의 대한 기억을 이 땅에서 지워 버리신다고 믿었기에.

셋째 17, 의인이 부르짖으면 주께서 반드시 들어 주시고, 그 모든 재난에서 반드시 건져 주신다고 믿었기에.

마지막 18, 주님은, 마음 상한 사람에게 가까이 계시고, 낙심한 사람을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믿었기에 일본에 저항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역사인식입니다.

 

역사인식이 중요합니다. 지나온 시간을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중요하다고요. 왜요? 그 역사인식이 지금의 나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에 대한 역사인식이 왜곡되어 있으면, 현재의 나도 구불구불한 인생이 됩니다.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모른 체 말입니다.

 

1977년 은진교회 설립이념의 역사인식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아홉째, 은진교회는 화해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평화의 직무를 이행토록 노력한다. 전쟁, 이념분쟁, 인종차별, 빈부격차를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시키며 평화의 집이 되기를 노력한다.>

 

평화의 직무라 했습니다. 화해자라 했습니다. 화해자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화해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살아온 역사에 관한 정확한 인식이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무엇을 위한 평화인지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평화와 화해를 이룬다는 말은 이 땅의 역사가 평화롭지 못한 아픈 역사였음을, 화해를 이룰 수밖에 없는 굴곡의 역사임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곳에서는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화해자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평화의 직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땅의 역사인식을 바로 세우는데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 무엇을 회개할 것인지, 무엇을 바로 잡을 것인지가 보입니다.

 

이미 아홉 번째 이념에서 우리는 다 고백하였습니다. 이 세상이 전쟁으로 고통받은 땅임을, 분단으로 아픔을 겪고 있음을, 수많은 차별이 존재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고백이 은진교회의 역사인식이라는 말입니다.

 

47년 만에 다시 꺼내 본 우리 교회 설립이념.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교회의 모습은 전쟁을 반대하고, 분단의 아픔을 끝내기 위해 기도하며, 세상의 수많은 차별의 벽을 허물어가는 과정이어야 함을 다시기억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3. 서신서의 말씀입니다. 오늘 로마서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한 새로운 삶에 관한 말씀입니다. 로마서 51절입니다.

 

1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4장까지 믿음에 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예로 들면서 아브라함이 의롭다 인정받은 것은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은 그의 믿음 때문이라 전하지요. 하여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과 평화를 누린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 함을 받은 우리는 이렇게 됩니다. 2절입니다.

 

2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에 믿음으로 나아오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될 소망을 품고 자랑을 합니다.

 

믿는 사람은 소망을 품는 사랑입니다. 그 소망으로 인해 고난을 받을 수도 있어요. 그걸 환난이라 합니다. 소망을 품는 중에 당한 환난은 믿는 사람에게는 자랑거리가 됩니다. 왜냐면 소망 가운데 겪는 어려움으로 인내할 수 있게 되고, 그 인내함으로 그 사람은 단단해진 인격을 가지게 될 것이며, 그 인격이야말로 다가올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희망은 하하호호웃는 가운데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일을 참고 견디는 과정에서 가지게 된 단련된 인격 안에서 생겨납니다. 하여 그 희망은 다시는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죠. 내가 처한 상황 때문에 실망하지 않는 것이죠.

 

환경운동가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호랑 애벌레와 노랑 애벌레의 생애를 통해,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과정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을 쓴 책이지요. 너무나 유명해서 많이 읽어보셨을 겁니다.

 

애벌레는 애벌레로 죽어서는 안 되는 존재입니다. 애벌레는 나비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존재입니다. 나비가 되기 위해 미친 듯이애벌레 시절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창조의 법칙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만약 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할 경우, 여러분은 그것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각자 되고 싶은 꿈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 미친 듯이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어 주십시오. 그 길에 환난이 있어도 묵묵히 가십시오. 그 환난이 인내함을 갖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내가 쌓이고 쌓이면 여러분은 품격있는 인격을 갖춘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인격을 갖춘 신앙인이 될 때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희망을 볼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은진교회도, 은진공동체도 희망의 교회, 희망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교회는 교회다워야 합니다. 장로는 장로다워야 합니다. 권사는 권사다워야 합니다. 집사는 집사다워야 하고 목사는 목사다워야 합니다. 성도는 성도다워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나비가 되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어떤 이유로 애벌레로 남아있을 수도 있고, 번데기에서 나비가 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비가 되지 못한 이유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아무 생각없이 된 나비보다 더 잘 살았노라고, 환난 가운데 잘 견뎌냈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입니다. 5절입니다.

 

5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우리 마음 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4. 마흔일곱 살입니다. 우리 교회 나이말입니다. 여러분 나이 마흔일곱 살에 어떤 생각을 품고 살아가셨습니까? 여러분 나이 마흔일곱이 되었을 때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 것 같습니까?

 

지나온 시간이든, 다가올 시간이든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지나온 시간이 아쉽고 안타깝거든 앞으로의 시간에 희망을 품고 살아가면 됩니다. 다가올 시간이라면 지금 앞이 보이지 않아 깜깜하더라도 역시 희망을 품으면 됩니다.

 

중요한 것, ‘역사인식입니다. 어떤 생각을 품고 살아가느냐! 하나님께서 나를, 우리를 인도하여 주신다는 믿음입니다. 그 옛날 독립운동가들이 품었던 마음 말입니다.

 

더 중요한 것,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 그 어떤 시련에도 우리는 인내할 수 있고, 단단해진 인격을 가진 신앙인이 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 한복판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습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우리 모두 신앙인의 역사인식을 가지고 화해자의 사명을 잊지 않고 새로운 48년을 열어가는 은진교회의 자랑스러운 신앙인이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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