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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구원의 경계에 서서 / 창조절 여섯째주일 장본 목사 202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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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구원의 경계에 서서

 

창조절 여섯째주일

재일동포선교주일 / 군선교주일

20241006

 

창세기 8:13-22

13 노아가 육백한 살 되는 해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 땅 위에서 물이 다 말랐다. 노아가 방주 뚜껑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니, 땅바닥이 말라 있었다.

14 둘째 달, 곧 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다 말랐다.

15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16 "너는 아내와 아들들과 며느리들을 데리고 방주에서 나가거라.

17 네가 데리고 있는, 살과 피를 지닌 모든 생물들, 곧 새와 집짐승과 땅 위에서 기어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데리고 나가거라. 그래서 그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게 하여라."

18 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을 데리고 나왔다.

19 모든 짐승, 모든 길짐승, 모든 새,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것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바깥으로 나왔다.

20 노아는 주님 앞에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집짐승과 정결한 새들 가운데서 제물을 골라서, 제단 위에 번제물로 바쳤다.

21 주님께서 그 향기를 맡으시고서, 마음 속으로 다짐하셨다. "다시는 사람이 악하다고 하여서, 땅을 저주하지는 않겠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기 마련이다. 다시는 이번에 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없애지는 않겠다.

22 땅이 있는 한,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아니할 것이다."

 

골로새서 3:12-17

12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랑 받는 거룩한 사람답게, 동정심과 친절함과 겸손함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을 옷 입듯이 입으십시오.

13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납하여 주고, 서로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는 띠입니다.

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이 평화를 누리도록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여러분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살아 있게 하십시오. 온갖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권고하십시오. 감사한 마음으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여러분의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십시오.

17 그리고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에게서 힘을 얻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누가복음 17:11-19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다가 나병환자 열 사람을 만나셨다. 그들은 멀찍이 멈추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 선생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예수께서는 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그런데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런데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자기의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되돌아와서,

16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런데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

18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되돌아온 사람은, 이 이방 사람 한 명밖에 없느냐?"

19 그런 다음에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0. 은진교회 교우들과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께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시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동안 선물 많이 받아봤지요?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받은 선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 3개를 마음속으로 생각해 보세요. 교우 여러분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10초 드립니다.

 

! 다 생각하셨지요? ! 기억에 남는 선물 하나만 큰 소리로 말해 줄 수 있겠어요? 시온! 역시 말해 줄 수 있나요?

 

그럼 다음 문제. 여러분이 받은 선물 중에서 누가 주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선물을 한 번 떠올려 보세요. 분명히 선물을 받았는데, 누가 주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선물 말이에요. 교우 여러분도 생각해 보세요.

 

아마 누가 주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선물이 생각보다 많을 겁니다. 분명히 누군가에게 받았는데, 선물만 기억나고 준 사람이 기억이 나지 않아요. 이게 사람이에요. 다 기억할 것 같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라고요. 목사님도 선물만 기억나는 거 매우 많아요. 누구에게 받았는지 기억이 안 나요. 그게 사람이라고요.

 

그래서 지난주에 “Remember me”라는 제목으로 우리가 말씀을 받았잖아요. 믿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수 없다고요. 믿는 것은 하나님을 기억하는 거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선물 준 사람을 다 기억하지 못하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도 우리는 쉽게 잊어버리게 된답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우리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은 기억력이 좋은 때를 살고 있으니까, 하나님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기억이 여러분이 어른이 돼서도 잊히지 않는 선물이 될 것입니다.

 

 

1.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선물이야기, 마저 하겠습니다. 제가 누가 줬는지 그 기억을 참 못해요. 또 기억 못 하는 것이 있어요. 뭘 사줬는지도 기억을 못 해요. “이 옷을 누가 사줬지?” 했는데, 사실은 옆에 있는 사람이 사준 거래요. 제 말을 듣고는 한마디 합니다. “으이구...”, “이거 누가 사줬는지 알아?”라고 저에게 묻습니다. “응 아무개가 사줬나?” 또 한마디 합니다. “으이구...”

 

사람의 기억은 한계가 있습니다. 나이 먹을수록 어릴 적 기억은 점점 사라집니다. 사람이어서 그렇습니다. 어제 들은 것도 잊어버립니다. 아파서 그런 게 아니에요. 사람이어서 그런 겁니다. 그런데 이 기억의 오류에서 참 많은 일이 일어납니다.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을 오래 기억한다거나, 기억해야 할 것만 골라서 잊어버릴 때 말이죠.

 

세상이 옛날과 달라져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나이를 묻거나, 결혼 여부 또는 자녀 유무를 묻거나, 학력을 묻거나 하는 건 요즘은 금기사항입니다. 회사 면접 때도 묻지 않아요. 그런데 새교우가 오면 대뜸 이렇게 물어요. ‘나이가 어떻게 돼요?’ 우리 교회가 연대 북문 쪽에 있어서 그런지 청년처럼 보이면 이렇게 묻지요. ‘연대 다녀요?’ 사람을 만나면 이런 것들을 물었던 기억이, 의례 그렇게 말하게 합니다. 기억을 고쳐야 하는데 말이죠.

 

왜 나이를 묻는 것이 요즘 금기사항일까요? 나이를 근거로 차별하는 세상이기 때문이에요. 결혼 여부나 자녀 유무를 묻는 것이 왜 금기사항일까요? 결혼 여부로, 자녀 유무로 차별하는 세상이기 때문이죠. 학교나 학벌을 묻는 것이 왜 금기사항이냐면 학벌로 차별하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의례 물었던 것을 오늘날 묻지 않는 이유는 그 물음이 상대방을, 타인을 차별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에요.

 

그 차별의 대가를 치룬 사람들의 이야기가 구약의 말씀에서 나옵니다.

 

2. 오늘 창세기 말씀은 하나님께서 40일간 비로 세상을 심판하시고, 이제 비가 말라 방주에 있던 노아와 그 가족, 방주에 실었던 모든 생명이 다시 땅으로 나오는 장면입니다. 물로 세상을 쓸어버렸다고요. 전부요. 노아의 방주만 빼고요. 왜요? 그 이전의 세상이, 차별이 가득한 세상이었기 때문이에요.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하신 이유를 창세기 65절에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뿐이었기 때문이라고 전합니다. 죄악이라고요. 그 죄악을 만드는 것이 바로 차별에서 시작한다고요.

 

차별이, 차별하는 마음이 인간이 사는 세상을 악하게 만드는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확인했잖아요. 우리의 말 한마디가 그 차별의 시작이었음을 말이죠. ‘저는 차별하려고 물은 게 아닌데요? 그저 궁금했을 뿐이라고요.’ 이렇게 말할 수 있지요.

 

그런데 그 궁금함이 인간적인 삶의 사고방식이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너 어느 학교 나왔니?’, ‘너 결혼 했니?’, ‘애는 있니?’, ‘너 몇 살이야?’라고 묻지 않으시잖아요. 그저 궁금하지 않아 하면 되는 거죠. 내가 궁금해서 던진 한마디가 이 사람, 저 사람의 질문이 되고, 사회 집단의 질문이 되면서 그 질문을 받은 사람은 차별의 대상이 되고 마는 거죠.

 

이런 차별의 기재는 너무나 많아요. 인종, 지역, 성별, 신체의 장애 등등요. 홍수 이전의 세상이 그랬다고요. ‘너는 우리랑 다르니까 저기 가서 살아!’, ‘당신은 우리와 다르니 나가세요!’, ‘저 사람은 우리와 다른 것 같아요. 우리끼리만 얘기해요.’ 그런 세상이 홍수 이전의 세상이었다고요. 하나님께서 죄악뿐이라고 여긴 세상요.

 

그래서 의로운 한 사람을 살리셨습니다. 그게 노아에요. 그 가족을 모두 살리셨습니다. 모든 생명도 한 쌍씩 살리셨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홍수로 덮으셨습니다. 그리고 홍수가 그치고 땅이 말라 방주에 타고 있던 모두가 뭍으로 나옵니다. 확인합니다. 16, 17절입니다.

 

16 "너는 아내와 아들들과 며느리들을 데리고 방주에서 나가거라.

17 네가 데리고 있는, 살과 피를 지닌 모든 생물들, 곧 새와 집짐승과 땅 위에서 기어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데리고 나가거라. 그래서 그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게 하여라."

 

17절 마지막,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게 하여라어디서 많이 본 말씀 아닙니까?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다시 반복합니다. 이렇게, 다시,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똑같은 명령에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노아는 어떻게 했을까요? 20절입니다.

 

20 노아는 주님 앞에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집짐승과 정결한 새들 가운데서 제물을 골라서, 제단 위에 번제물로 바쳤다.

 

노아는 자신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 구원받았음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감사의 제사를 드립니다. 감사예배를 드렸다고요. 이것이 하나님을 기억하는 사람의 행동이란 말입니다.

 

은진 교우 여러분. 우리가 차별 없는 세상에서 살아야지요. 적어도 시온이와 린이에게 그런 세상 물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요. 우리가 할 일만 기억하면 됩니다. 우리는 신앙인이니, 우리는 어떤 때에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로 서 있으면 되는 겁니다. 그것을 세상 젊은이들과 어린이-청소년들이 보고 배우게 하는 겁니다.

 

궁금함을 내려놓고, 내가 신앙인이라는 것만 기억하십시다. 내가 하나님만을 기억하는 성도 되시기를, 그래서 우리는 늘 감사로 예배하는 신앙인임을 보여주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오늘도 복음서의 말씀을 먼저 봅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여정 가운데 벌어진 일을 상당히 긴 지면을 할애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951절부터 시작된 이 여정은 오늘 본문 17장에도 이어집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 중에 예수님이 하신 일은 제자들을 교육하는 일이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요구되는 것들,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붙잡아야 할 삶의 원리, 그리고 이웃 사랑을 위한 실천 등 거의 모든 가르침이 담겨 있지요.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바로 사마리아 사람이 신앙의 모범으로 등장한다는 것이죠. 10장에는, 강도 만난 사람을 구해준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사마리아 출신의 나병환자가 믿음의 본으로 등장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사마리아 사람들은, 식민지 시대에 이방인과의 혼인으로 혈통의 순수성을 지키지 못했다 하여 유대인들에게 천대받았습니다. 상종 못 할 사람으로 여겨졌고 오죽하면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땅을 피해, 먼 길을 돌아서 다닐 정도였습니다. 그런 사마리아 사람들을, 신앙의 모범으로 내세우는 것은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거의 모욕처럼 느껴졌을 법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거침이 없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거대한 편견이 무너지지 않는 한 참 신앙의 깊이를 깨달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정 사람들을 정결한 사람과 부정한 사람으로 가르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주님은 아셨습니다.

 

인종, 출신 지역과 학교, 경제력, 성별, 또 신체의 장애 여부 등 경계를 가르는 것들로 인해, 예수님 시대의 세상도 이미 조각나 있습니다. 차이를 존중하기보다 별것 아닌 차이를, 차별의 근거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그 경계에 서서 오늘 말씀을 전하십니다. 11절입니다.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다.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갔다 전합니다. 경계입니다. 사마리아와 갈릴리의 경계에서 이 사건이 벌어집니다. 역사가 시작됩니다. 12절과 13절입니다.

 

12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다가 나병환자 열 사람을 만나셨다. 그들은 멀찍이 멈추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 선생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만났다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만난 것 같지 않아요. 나병환자 열 사람은 멀찍이 멈추어 서서 소리를 지를 뿐이었거든요. 멀찍이 떨어진 채 예수를 부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바로 그들의 경계였습니다. 왜냐면 나병환자였기 때문이지요.

 

당시 나병에 걸리면 얼굴을 가리고 나는 불결하다라고 외치며 다녀야 했습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피해가지요. 스스로, 사람들에게 나는 불결하다고 외쳐야 하는 사람들. 예수가 지나가도 그 곁에 올 수 없는 사람들. 수없이 많은 차별을 받아야만 했던 사람들. 그들이 외칩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우리의 처지를 돌보아 주십시오.”

 

예수님은 세상의 지극한 아픔과 거리를 두지 않으시는 분인데, 세상은 그들의 아픔조차 멀리 서서 절규하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들에게 단 한마디를 하십니다. 14절입니다.

 

14 예수께서는 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그런데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라는 것은 나병이 나았음을 확인받으라는 겁니다. 그래야 이제는 사람들과 멀찍이 서지 않아도 되니까요. 나았다는 확인을 받으라는 것이죠. 병이 나으라고 기도한 것도 아닙니다. 가서, 몸을 보이라 하십니다. 모든 것이 생략되어 있어요. 왜냐고요? 그들이 차별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만큼 시급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요. 여기서 말씀이 끝나지 않습니다. 낫기는 했는데, 단 한 사람만이 예수에게 돌아옵니다. 감사 인사하려고요. 누구였을까요? 16절입니다.

 

16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런데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사마리아 사람. 유대인은 상종도 하지 않는 사람. 나병이 나았어도 사람 취급 못 받는 사람. 나병이라는 차별에서 기적을 체험했어도 아직 차별의 한 복판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만 돌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17, 아홉은 어디로 갔냐고요. 이제 그 사마리아 한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19절입니다.

 

19 그런 다음에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나병이라는 고통 앞에서, 똑같이 주님을 찾던 그들이 두 부류로 나뉘는 대목입니다. 제 길로 나아감과 주님께로 돌아섬이 이들을 갈라놓았습니다. 아홉 사람은, 나음 입은 자신에게 집중했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그것을 허락하신 분께 주목하고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선물을 받으면 기뻐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선물 준 사람을 잊어버립니다. 문제가 닥칠 때마다 하나님을 찾지만 해결되면,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의 믿음을 위해, 우리의 영혼을 위해, 수고하고 피 흘리신 사랑에 감격하며 감사했던 순간이 언제였을까요? 신앙생활에서 누리는 것들이, 당연한 것들이 되어, 기억하지 않아야 할 것만 기억하며 십자가를 향한 감사를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사마리아 사람은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와 주님 앞에 감사했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서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는 이제 육신의 병만 나은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구원받았다는 것은 삶의 이유를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의미합니다. 복음서는 여기까지 풀어드립니다.

 

4. 서신서의 말씀은 오늘, 말씀 그대로 받겠습니다. 서신서는 공동체에 주시는 말씀이지요. 하여 우리 은진 공동체가 삶의 이유를 아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를 이루기 위하여, 모든 차별을 물로 쓸어버리신 하나님 앞에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 공동체임을 알기 위하여 오늘 서신서의 말씀은 우리 모두 한목소리로 받겠습니다.

 

골로새서 3:12-17입니다. 천천히, 기억하며, 한목소리로 읽습니다.

 

12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랑 받는 거룩한 사람답게, 동정심과 친절함과 겸손함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을 옷 입듯이 입으십시오.

13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납하여 주고, 서로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는 띠입니다.

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이 평화를 누리도록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여러분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살아 있게 하십시오. 온갖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권고하십시오. 감사한 마음으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여러분의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십시오.

17 그리고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에게서 힘을 얻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은진교회 성도 여러분.

말씀대로 살아 차별없는 교회를 이루고, 차별없는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신앙인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그래서 현실과 구원에 경계에 서서 구원의 길을 선택하는 우리가 되기를,

늘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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