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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역사를 주님의 역사로... / 사순절 넷째주일 / 제주4.3기념주일 장본 목사 2025-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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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역사를 주님의 역사로...

사순절 넷째주일

총회순교자기념주일

제주4·3기념주일

20250330

 

이사야 30:8-9, 15

8 이제 너는 가서, 유다 백성이 어떤 백성인지를 백성 앞에 있는 서판에 새기고, 책에 기록하여서, 오고오는 날에 영원한 증거가 되게 하여라.

9 이 백성은 반역하는 백성이요, 거짓말을 하는 자손으로서, 주님의 율법은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 자손이다.

 

15 ,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회개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야 구원을 받을 것이며,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요한계시록 3:1-6

1 사데 교회의 심부름꾼에게 이렇게 써 보내어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분이 말씀하신다.

나는 네 행위를 안다. 너는 살아 있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것이다.

2 깨어나라. 그리고 아직 남아 있지만 막 죽어 가는 자들을 굳건하게 하여라. 나는 네 행위가 나의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3 그러므로 네가 그 가르침을 어떻게 받고 어떻게 들었는지를 되새겨서, 굳게 지키고, 회개하여라. 만일 네가 깨어 있지 않으면 내가 도둑같이 올 것인데, 어느 때에 내가 네게 올지를 너는 알지 못한다.

4 그러나 사데에는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 몇이 있다. 그들은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닐 것인데, 그들은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5 이기는 사람은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인데, 나는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버리지 않을 것이며, 내 아버지 앞과 아버지의 천사들 앞에서 그의 이름을 시인할 것이다.

6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마태복음 23:13-33

13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늘 나라의 문을 닫기 때문이다. 너희는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 (14절 없음)

15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개종자 한 사람을 만들려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하나가 생기면, 그를 너희보다 배나 더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16 “눈 먼 인도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말하기를 누구든지 성전을 두고 맹세하면 아무래도 좋으나, 누구든지 성전의 금을 두고 맹세하면 지켜야 한다고 한다.

17 어리석고 눈 먼 자들아! 어느 것이 더 중하냐?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18 또 너희는 말하기를 누구든지 제단을 두고 맹세하면 아무래도 좋으나, 누구든지 그 제단 위에 놓여 있는 제물을 두고 맹세하면 지켜야 한다고 한다.

19 눈 먼 자들아! 어느 것이 더 중하냐? 제물이냐? 그 제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20 제단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요,

21 성전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성전과 그 안에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22 또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와 그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23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와 같은 율법의 더 중요한 요소들은 버렸다. 그것들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했지만, 이것들도 마땅히 행해야 했다.

24 눈 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삼키는구나!”

25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

26 눈 먼 바리새파 사람들아! 먼저 잔 안을 깨끗이 하여라. 그리하면 그 겉도 깨끗하게 될 것이다.”

27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회칠한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그것은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의롭게 보이지만, 속에는 위선과 불법이 가득하다.”

29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기념비를 꾸민다.

30 그러면서, ‘우리가 조상의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피 흘리게 하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31 이렇게 하여, 너희는 예언자들을 죽인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한다.

32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 조상의 분량을 마저 채워라.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심판을 피하겠느냐?”

 

 

0. 은진교회 교우들과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께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시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역사 이야기를 해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은 우리 교단이 정한 <제주4·3기념주일>이랍니다. 여러분 사회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죠. 그런데요. 이 사건이 역사 교과서에 수록된 것이 불과 2015, 그러니까 10년밖에 되지 않은 거죠.

 

제주4·31947년에 일어난 일이에요. 4·3194843일을 의미하고요. 1954년이 되어서야 비로써 끝난 제주도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역사적 사실이랍니다. 1919313·1만세운동, 1945815일 해방, 19506256·25한국전쟁. 모두 역사 교과서에 실렸는데, 제주4·3은 겨우 10년 전에야 교과서에 실렸답니다.

 

이 사건에 대해 자세히 말할 수는 없어요. 너무 많은 설명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세 본문의 말씀과 연결되는 부분만 이야기할 거랍니다.

 

이 사건으로 제주도민 14,000명 이상이 죽었어요. 군인과 경찰은 합해서 320명이 죽었습니다. 사망한 제주도민 중, 79%가 군인, 경찰, 서북청년단 등으로 구성된 토벌대에게 죽었어요. 희생자 중 21%, 2,800명 정도는 여성이었고요, 15%15세 이하 어린이와 청소년, 60대 이상 사람들이었어요.

 

이 사건은 6.25한국전쟁을 제외한 단일 사건으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낳은 사건이랍니다. 그동안 역사책에 수록되지 못한 이유는 당시 제주도에 계엄령을 내려서 무고한 사람을 죽게 결정한 사람이 당시 이 나라의 대통령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동안 국가가 숨겨 온 거예요. 지금도 제주도를 가면 절대 묻지 말아야 할 사건이 어르신들께 그날의 일을 묻는 거랍니다. 그런데 10년 전에 드디어 역사책에 수록되었네요. 솔직히 숨기고 싶은 사건은 맞거든요.

 

역사책에 어떤 사건이 수록된다는 건, 이런 의미에요. ‘이런 일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 나라의 역사에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끔 기억하겠습니다.’ 그렇기에 좋은 일만 역사책에 쓰는 것이 아닙니다. 비참한 역사를 있는 그대로 써 놔야 우리는 앞으로 그러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습니다. 그러려고 역사책에 이런 사건, 저런 사건들을 기록해 두는 거지요.

 

은진교회 어린이-청소년 여러분. 역사 공부 열심히 하세요. 그럼 정말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어요. 그런데 하나 더, 성경에 나오는 역사 이야기도 기억하세요. 왜냐면 수없이 못난 역사가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거든요. 그걸 보면서 신앙인으로 제대로 사는 법을 배우거든요.

 

역사 위에서 정의로운 어린이-청소년이 되고, 하나님의 역사 위에서 공의로운 신앙인이 되는 여러분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1. 설교 시간에 역사 이야기를 하면 꼭 이런 질문을 하셔서, 제가 미리 질문하고 답하며 여러분을 위한 말씀을 시작합니다.

 

우리나라 역사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 아닌가요?’

맞습니다. 성경에 우리나라 역사 이야기는 나오지 않지요. 그래서 이 귀한 설교 시간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이 나라가 나아갈 길을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찬란한 것만 기록하지 않습니다. 좋은 것만 기록하지 않아요. 좋은 것만 기록한 세계 여러 역사가 있습니다. 공통점이 있어요. 모두 절대 권력자에 의한 독재의 역사였습니다. 절대 권력에 복종하지 않는 사건은 수록하지 않는 거예요. 그건 왜곡된 역사이지요.

 

이사야서를 보세요. 8절입니다.

 

8 이제 너는 가서, 유다 백성이 어떤 백성인지를 백성 앞에 있는 서판에 새기고, 책에 기록하여서, 오고오는 날에 영원한 증거가 되게 하여라.

 

서판에 새기고, 책에 기록하랍니다. 그래서 영원한 증거가 되게 하라 하십니다. 무엇을, 어떻게 기록할까요? 9절입니다.

 

9 이 백성은 반역하는 백성이요, 거짓말을 하는 자손으로서, 주님의 율법은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 자손이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유다 백성에게 말이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라고요. 기록하는데 이들은 반역한 백성이다, 거짓말하는 자손이다, 내 말은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 자손이라고 적으라 하십니다.

 

이거 누워서 침 뱉는 일 아닌가요? 유다는 주님의 백성이잖아요? 하나님께서 직접 선택하신 민족이잖아요? 그런데 저리 적으라 하십니다. 왜 주님은 그러셨을까요?

 

창피함을 주기 위해서였을까요? 경고하기 위해서였을까요? 이 중요한 역사책에 이런 치부를 드러나게 하셨을까요?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역사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제대로 된 역사인식을 갖게 하려고 쓴 겁니다. 지금 하나님의 역사를 읽고 있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전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아픔의 역사도, 능욕의 역사도 써 두는 겁니다.

 

은진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반역하는 사람들 되지 말라고요. 거짓말하는 사람들 되지 말자고요. 주님의 율법은 지켜내는 사람들이 되자고요. 그게 신앙인이라고요. 이 말씀을 주시기 위해, 저런 치부까지도 성경에 기록해 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에게도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십니다. 확인합니다. 15절입니다.

 

15 ,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회개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야 구원을 받을 것이며,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사순절 기간, 또 나오는 단어입니다. ‘회개’. 마음을 돌이키는 일. 삶의 방향전환을 이루는 일. 올해 사순절에는 이 회개라는 단어가 거의 매주 등장하고 있어요. 회개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고요. 회개할 것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유다 백성들이었어요. 예수님 시대에 율법학자들이였고, 바리새파 사람들이었어요. 그리되지 말라고요. 여러분은요.

 

부끄러운 역사를 통해 우리는 희망의 역사를 써 내려갈 이유를 찾습니다. 지난 역사를 통해 미래의 역사를 써 내려갈 수 있습니다. 역사를 통해 마음을 돌이켜 주님께 향하고, 주님을 신뢰하는 신앙인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서신서의 말씀입니다. 오늘 계시록의 말씀은 사데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절 하반절 나는부터 2절까지 읽습니다.

 

1b 나는 네 행위를 안다. 너는 살아 있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것이다.

2 깨어나라. 그리고 아직 남아 있지만 막 죽어 가는 자들을 굳건하게 하여라. 나는 네 행위가 나의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계시록에도 잘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을 전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데교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보여주십니다. 이름만 살아있고, 사실은 죽어 있다고 말합니다. 교회가요. 공동체가 말입니다.

 

사데교회는 역사적으로 이단으로 인한 갈등은 없었다고 전해지지요. 황제숭배를 거역한다고 받았던 정치적 탄압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름만 살아있고 죽은 공동체라 말씀합니다. 무엇이 사데교회를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무사안일주의 때문이었습니다. 무사안일. 모든 일에 말썽 없이 무난하게 지내려는 소극적인 태도나 경향을 뜻합니다. 요즘 말로 치자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은혜롭게 넘어갑시다. 모든 것을 은혜로 받읍시다.’

 

은혜롭게 모든 일을 넘어가면 좋지요. 그런데 이 말이 주는 결정적인 함정이 있습니다. 교인들을 수동적 신앙인으로 만듭니다. 교회의 어려움이나 갈등이 있을 때조차, ‘은혜라는 이름으로 갈등을 덮으려 합니다. 나쁜 일도 좋은 일로 둔갑시키려 합니다.

 

그래서 앉아서 예배만 드리면 나는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거룩한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아 세상에 대해 어떠한 일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신앙의 무사안일주의란 그런 겁니다.

 

공동체가 너무 힘들 땐, 예배조차 드리는 것이 어렵습니다. 힘듭니다. 은혜가 되지 않지요. 하지만 묵묵히 말씀을 들으며, 그 안에서 작은 일 하나씩 해나가겠다는 생각을 할 때, 그 공동체는 서서히 살아납니다. 그리고 교회의 시선을 교회 밖으로 둘 수 있게 됩니다.

 

다른 예를 들지 않겠습니다. 오늘로 제가 부임한 지, 2년이 되었습니다. 2년 전을 떠올려 보세요. 이 강단 위에 서 있는 저를 바라보는 여러분의 시선을 저는 기억합니다. 두려움의 시선, 의심의 눈길, 평생 누군가 앞에서 말하는 게 업이어서 그런지 저는 그런 시선을 매우 예민하게 느낍니다.

 

2년 만에, 그 시선을 거두어 주셔서 교우 여러분께 참 감사합니다. 그 시선을 그동안 살피지 못했던 교회 여러 곳을 바라보고, 이젠 교회 밖으로도 둘 수 있게 됨을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것이 살아있는 공동체, 살아있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무엇이 달라졌는데 이렇게 우리 교회가 바뀌었을까요? 3절입니다.

 

3 그러므로 네가 그 가르침을 어떻게 받고 어떻게 들었는지를 되새겨서, 굳게 지키고, 회개하여라. 만일 네가 깨어 있지 않으면 내가 도둑같이 올 것인데, 어느 때에 내가 네게 올지를 너는 알지 못한다.

 

첫 해, 여러분은 저에게 개별적으로 회개한다는 말씀을 많이 해 주셨습니다. 저한테 잘못을 비는 게 아니었어요. 하나님께 회개한다고요. 공동체가, 교회가 어려움을 당한 것에 대해 여러분은 저에게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저 예배의 회복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우리는 매주 세 본문 말씀을 받았습니다. 아침마다 성경을 읽으며 기도했고, 모자란 부분은 성서학당을 통해 함께 배워갔습니다. 그 결과입니다. 은진교회가, 살아있는 공동체가 될 수 있었던 이유 말입니다.

 

4절에 사데교회에도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는 사람 몇이 있다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로 2년 전 남아주셔서, 그리고 2년 동안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중요한 것, 힘듦을 겪었기에 어떻게 하면 선할 길로 갈 것인지, 어떻게 해야 은혜 안에 거하는 공동체가 될 것인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가 살아있다는 것은 무사안일주의에 빠져서 은혜만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려는 적극적인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역사에 쓰인 사데교회가 아닌, 앞으로 주님의 역사를 써 내려갈 은진교회를 함께 만들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3. 복음서의 말씀입니다. 무섭습니다. 너희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일곱 번이나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 말입니다. 좋은 말도 두 번 하면 잔소리라는데, 싫은 소리를 일곱 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이 부분을 예수님의 일곱 개의 화 선언이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7)은 완전 수입니다. 괜히 마태는 예수님의 화를 일곱 개로 나누어 서술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정적 의미가 일곱 번이 된다는 것은 그 말을 듣는 대상은 이미 썩어질 대로 썩은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확인합니다. 눈으로 성경을 따라오세요.

 

13절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 너희는 하늘 나라의 문을 닫는 사람들이다.

15절 너희는 새로이 믿고, 개종한 사람들을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는 사람들.

16절 너희는 맹세에 대해 잘못 가르치는 사람들.

23절 너희는 재물의 십일조만 드리고 하나님의 정의, 자비, 신의는 버린 사람들.

25절 너희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

27절 그 속이 위선으로 가득 찬 사람들.

29절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 너희는 조상의 죄를 반복하는 사람들.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하셨습니다. 어린이를 쓰다듬고 축복해 주시던 그분, 과부를 살리신 그분, 예수가 하신 말씀입니다. 그 좋은 예수님께서 독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말 죽이고 싶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까지 말씀하셨어야 했을까요?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셨는지를 기억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의 길은 저렇게 살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저렇게 살면 저들의 미래가 어찌 될지 예견하고 계신 겁니다. ‘이 사람들아! 그렇게 살면 멸망밖에는 없다고...’

 

제발 돌이키라고 말씀하고 계신 겁니다.

 

 

4. 사순절 넷째주일과 제주4·3기념주일을 맞아 우리는 두 역사에 대해 배웠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 이스라엘의 역사.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둘 다 동일해야 합니다. 잘한 것은 따라하고, 이어지게 하면 됩니다. 잘못한 것은 반복하지 않으면 됩니다.

 

중요한 사실은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흥망성쇄를 반복하는 것이 역사라고도 말합니다. 우리의 삶도, 우리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살아있기 위해서는 교회에 말씀대로 살아가는 성도가 존재해야 합니다. 신앙인이 살아있기 위해서는 일상성을 반복하는 믿음이 아닌, 매 순간 고백하며 결단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자주 돌이키십시다. 그리고 주시는 말씀대로 흔들리지 않고 걸어가십시다. 그렇게 주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그래서 새로운 주님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저와 여러분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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