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형상을 입읍시다 / 부활주일 | 장 본 목사 | 2025-04-20 | |||
|
|||||
본 영상의 사이즈와 화질은 500kbps, 중간화질입니다. 영상은 업로드 시 설정할 수 있습니다. . 그분의 형상을 입읍시다! 부활주일 장애인주일 20250420 고린도전서 15:42-49 42 죽은 사람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을 것으로 심는데, 썩지 않을 것으로 살아납니다. 43 비천한 것으로 심는데, 영광스러운 것으로 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심는데, 강한 것으로 살아납니다. 44 자연적인 몸으로 심는데, 신령한 몸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적인 몸이 있으면, 신령한 몸도 있습니다. 45 성경에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고 기록한 바와 같이,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시는 영이 되셨습니다. 46 그러나 신령한 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자연적인 것이 먼저요, 그 다음이 신령한 것입니다.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므로 흙으로 되어 있지만,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났습니다. 48 흙으로 빚은 그 사람과 같이, 흙으로 되어 있는 사람들이 그러하고, 하늘에 속한 그분과 같이,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 그러합니다. 49 흙으로 빚은 그 사람의 형상을 우리가 입은 것과 같이, 우리는 또한 하늘에 속한 그분의 형상을 입을 것입니다. 0. 은진교회 교우들과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께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시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오늘은 부활주일 성찬식이 있는 관계로 짧지만 굵직한 부활절 메시지를 전해 드립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과 여러분을 위한 말씀을 합하여 전합니다. 어린이-청소년 여러분도 오늘 설교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오래전, 친구 목사님에게 동화 한 편을 들은 적이 있어요. 오래된 동화라 무슨 책인지, 제목이 뭔지도 잘 모르겠는데 이야기는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에게 동화 한 편 들려드립니다. 한 어린이가 있었어요. 이름을 은진이라고 합시다. 은진이는 작은 텃밭이 있는 집에서 엄마랑 살고 있습니다. 봄이 왔네요. 엄마는 바쁘게 토마토도 심고, 오이도 심고, 감자도 심습니다. 은진이는 엄마가 왜 그런 일을 하는지 잘 몰라요. 봄에 씨앗을 심어야 열매를 맺는다는 걸 아직 모르거든요. 엄마에게 묻습니다. “엄마, 감자는 왜 심는 거야?” “응... 그래야 나중에 엄청 많은 감자가 뿌리에 열리거든.” “어떻게 그렇게 돼?” “음... 그건 봄이 땅에다 힘을 주기 때문이야.” 무슨 생각이 났는지 은진이는 집 뒷산으로 달려갑니다. 거기엔 작년에 돌아가신 아빠의 무덤이 있었거든요. 봄이 땅에 힘을 준다기에 아빠도 살아날 수 있을지 모르겠단 생각이 든거지요. ‘아빠가 살아났을지도 몰라.’ 아빠가 살아났을 리 없지요. 무덤에는 봄이니 파릇파릇 잔디 만에 올라왔습니다. 시무룩해졌던 은진이, 갑자기 또 집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는 안방으로 갑니다. 안방엔 액자에 담긴 아빠의 사진이 있었지요. 그 액자를 들고 텃밭으로 가서 소중하게, 신중하게 액자를 절반 즈음 땅에 심습니다. 그리고는 혼자 흐뭇해합니다. 잠시 다른 일을 보던 엄마가 그 액자를 발견합니다. 엄마는 자신이 딸에게 한 말을 떠올리고는 밭에 묻힌 남편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그리고는 이내 액자를 꺼내 흙을 털어냅니다. 은진이가 이 장면을 봅니다. “엄마! 아빠 사진 내가 심은 거야. 봄이 땅에 힘을 준다며. 그럼 감자도 다시 살아난다며...” 엄마는 잠시 고민합니다. 그리고는 은진이를 꼭 껴안고 말합니다. “은진아. 봄은 죽은 걸 살리는 게 아니란다. 심은 씨앗들은 죽은 것들이 아니야. 그런데 괜찮아. 봄은 아빠는 못 살려도 봄마다 아빠 생각이 나게 해서, 은진이를 아빠처럼 커가게 할 거야. 아빠보다 더 멋진 사람으로 은진이가 커 갈 거야.” 은진이는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마음 한편에 이유 모를 따스함이 느껴졌습니다.
1. 은진이가 우리와 같이 오늘 부활주일예배를 같이 드렸다면, 저는 확신하건대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겁니다. 여러분은 부활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계십니까? 오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3년의 길면 긴, 짧다면 짧은 공생애 삶을 마치고,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에 관한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은 이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동참한 우리, 죽음 이후 영원한 생명과 부활을 믿고, 그날을 소망하며 사는 것. 이것이 부활에 관한 우리의 신앙고백이지요. 그런데 이 고백이 매우 신학적이죠. 교리적입니다. 신앙을 글로 표현했다는 말이에요. 우리 삶의 자리로 부활의 의미를 가져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이없는 산불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부활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나라엔 ‘4월의 눈물’을 흘린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들에게 부활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 사회, 10년 동안 두 명의 대통령이 탄핵되었습니다. 이 나라에 부활은 어떤 의미일까요? 오늘 예배드리는 은진의 모든 교우에게 부활은 어떤 의미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그분의 형상을 입읍시다!” 첫째, ‘과거와의 단절’입니다. 단절해야 하는 과거는 잘못된 과거, 잘못된 역사입니다. 지나온 삶, 사건, 여러 일을 잘 살펴서 돌아보고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다시는 그것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부활의 의미입니다. 잘못한 사실을 다시 드러내려 하는 일은 망령을 되살리는 일이 될 테니까요. 둘째, 부활은 ‘과거에 대한 이어짐’입니다. ‘전승’이라고도 하지요. 동화에 나온 은진이가 마지막 이유 모를 따스함이 마음에 생겼던 건, 아빠의 죽음이 은진이의 마음에 새로운 무언가로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가슴 아팠던 일 맞지요. 아빠가 죽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죽음이 은진이가 살아갈 새 삶에 힘이 됩니다. 신기하지요. 부활입니다. 지난 사건, 역사를 통해 오늘까지도 그리고 다가올 세상에도 이어가야 할 부분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1960년의 4·19 혁명을 통해 민주화에 대한 이어짐이 있었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건의 아픔을 통해서는 안전한 세상에 대한 이어짐이 생겨났지요. 대통령 탄핵의 어지러운 상황에서는 무엇이 국민을 위한 일인가에 대한 전승이 생겨난다는 말입니다. 이것도 부활입니다. 셋째, 부활은 “그분의 형상을 입는 것”입니다. 오늘 서신서 말씀 마지막 절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49절입니다. 49 흙으로 빚은 그 사람의 형상을 우리가 입은 것과 같이, 우리는 또한 하늘에 속한 그분의 형상을 입을 것입니다. 우리가 흙으로 빚은 그 사람의 형상을 입었다고 전합니다. 아담을 뜻하지요. 하나님께서 진흙으로 빚어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신 존재. 그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라는 말입니다. 결국, 그 존재는 아담이래,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해 타락해 버렸지요. 역시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 모습으로는 구원의 대열에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18절 뒷부분, “하늘에 속한 그분의 형상을 입으라” 권면합니다. 하나님처럼 될 순 없어요. 우리는 그분이 만든 창조물이니까요. 그래서 그분의 형상을 입으라고요. 하나님처럼 될 순 없지만, 예수님처럼 될 순 없지만, 예수가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 우리에게 다가오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모습, 삶의 형상을 따라갈 순 있다고요. 어제까지 환호하던 모든 사람이 외면했지만, 그래도 기회가 있다고요.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고 다시 따라 일어서면 된다고요. 그게 부활이라고요. 그것이 우리 은진교회 교우 여러분에게 오늘, 다시 주시는 부활의 메시지입니다. 그렇게 사는 삶, 확인합니다. 42절과 43절입니다. 42 죽은 사람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을 것으로 심는데, 썩지 않을 것으로 살아납니다. 43 비천한 것으로 심는데, 영광스러운 것으로 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심는데, 강한 것으로 살아납니다. 3. 동화에 나온 은진이에게 아빠는 썩지 않을 것으로 살아납니다. 그걸 느꼈을 겁니다. 어리지만 말이죠. 그래서 오늘같이 예배를 드렸다면 부활의 의미를 가장 잘 이해했을 거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은진교회 교우 여러분.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주님은 부활하셔야 합니다. 썩지 않을 것으로 살아나야 합니다. 영광스러운 것으로 살아나야 합니다. 강한 것으로 살아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그분의 형상을 입읍시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새기고 또 새깁시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향해 또 일어서십시다. 그렇게 부활의 길을 우리도 함께 걸으십시다. 그분의 형상을 입어, 지치지 않는 신앙인, 그러면서 섬기는 신앙인, 주님을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신앙인으로 서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