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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有明)... 이름있는 사람들 / 부활절 넷째주일 / 어버이주일 장본 2025-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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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有名)... 이름 있는 사람들

 

부활절 넷째주일

어버이주일

20250511

 

출애굽기 1:15-22

15 한편 이집트 왕은 십브라와 부아라고 하는 히브리 산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16 “너희는 히브리 여인이 아이 낳는 것을 도와줄 때에, 잘 살펴서, 낳은 아기가 아들이거든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 두어라.”

17 그러나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으므로, 이집트 왕이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하지 않고, 남자 아이들을 살려 두었다.

18 이집트 왕이 산파들을 불러들여, 그들을 꾸짖었다. “어찌하여 일을 이렇게 하였느냐? 어찌하여 남자 아이들을 살려 두었느냐?”

19 산파들이 바로에게 대답하였다. “히브리 여인들은 이집트 여인들과 같지 않습니다. 그들은 기운이 좋아서,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도 전에 아기를 낳아 버립니다.”

20 그래서 하나님이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으며, 이스라엘 백성은 크게 불어났고, 매우 강해졌다.

21 하나님은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의 집안을 번성하게 하셨다.

22 마침내 바로는 모든 백성에게 명령을 내렸다. “갓 태어난 히브리 남자 아이는 모두 강물에 던지고, 여자 아이들만 살려 두어라.”

 

출애굽기 32:32-33

32 그러나 이제 주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시려면, 주님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저의 이름을 지워 주십시오.

33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에게 죄를 지으면, 나는 오직 그 사람만을 나의 책에서 지운다.”

 

고린도전서 3:9 / 새한글성경

9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가꾸신 밭이며, 하나님이 세우신 건물입니다.

 

 

0. 은진교회 교우들과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께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시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입니다. 여러분 작명소라는 곳 아세요? 작명소. 만들 작 자에 이름 명 자, 곳 소 자를 써서 작명소입니다. 이름을 만들어 주는 곳이에요. 좋은 이름을 만들어 주는 대신에 돈을 받습니다.

 

아마 여러분 이름은 대부분 부모님께서 지어주셨을 겁니다. 보통 이름에는 한자가 많이 들어가거든요. 그래서 한자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작명소를 찾아서 내 자식의 좋은 이름을 지어주려고 했답니다. 옛날엔 많았는데, 요즘은 많이 없어졌지요.

 

왜 사람들은 작명소에 가서 돈을 주면서까지 이름을 지었을까요? 좋은 이름을 지어야 좋은 인생으로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 말고는 없어요. 내가 낳은 자식인데 좋은 이름을 지어주어야 그 이름값대로 살아간다고 믿었던 거죠.

 

그래서 때론 어려운 한자도 있어요. 예를 들어 장 린이라고 하면 그냥 장 린하면 이름이 예쁘잖아요? 그런데 그 린 자를 한자로 쓰려면 꽤 어렵습니다. 여기 계신 분 중, 이웃 린()자를 쓸 수 있는 분은 손으로 한 번 써 보세요. 꽤 어려운 한자입니다.

 

그냥 한글로 하면 예쁜 이름 장 린인데, 한자로 쓰면 베풀 장 자에 이웃 린 자가 됩니다. 이웃에게 베풀며 살라는 의미로 그리 이름을 지었지요. 어라? 한자로 이름을 푸니 이름 뜻이 나오네요. 그래서 옛날 어르신들이 작명소에 많이 갔던 겁니다.

 

한자 이름이 아니라고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에요. 성경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이나 지명의 이름을 따서 짓는 이름도 많지요. 모두 이름의 뜻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 영어 유치원부터 다니지요. 유치원에 가면 모두 영어 이름을 하나씩 만듭니다. 그런데 그 이름은 이상하게 의미가 없어요. 내 한글 이름 말고 나를 부르는 영어 닉네임일 뿐인 거죠.

 

이름은 중요해요. 왜냐면 내 이름의 뜻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그 이름을 지은 부모님의 뜻을 잊지 않는 사람이거든요. 내 이름이 성경에 나오는 이름이라면, 성경에서 말하는 의미를 잊지 않거든요.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삶을 더 열심히 살아갈 가능성이 크답니다.

 

어린이-청소년 여러분. 여러분의 이름 뜻을 꼭 기억하면서 살아가세요. 그러면 그 이름대로 여러분의 인생이 그려질 테니까요. 그것은 부모님의 바람임과 동시에 여러분을 멋진 삶으로 이끌어 줄 안내자가 되어 줄 겁니다.

 

그렇게 이름 뜻대로 살아, 하나님의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기록되는 복을 받아 누리는 어린이-청소년 여러분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말씀을 풀어드리기 전에 두 가지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첫 번째 이야기. 제가 전도사 시절이었을 때 어느 신학 세미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세미나에는 교단을 망라한 500여 명의 현직 목회자들이 참가하였습니다. 참석자 명단을 보니 대부분 목사님이었고, 저를 포함한 열 명 정도만 전도사였습니다.

 

500명 중 10여 명만 전도사이다 보니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목사라고 생각하며 지내게 되었답니다. 저 또한 제 의도와는 상관없이 여기저기에서 장 본 목사로 불리며 생활하게 되었죠.

 

그런데 제 이름 아시다시피 흔한 이름이 아니지 않습니까? 눈에 잘 띄고 한 번 듣게 되면 쉽게 잊히지 않는 이름이지요. 몇몇 목사님들께서 제 이름표를 지나치며 보셨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둘째 날 이후로 제가 묵고 있는 방으로 계속 전화가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아닌 저의 형님이신 장 빈 목사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제 이름을 보신 분들이 제 이름을 장 빈 목사로 잘 못 본 모양입니다.

 

제가 형님과 덩치도 비슷하고 생긴 것도 좀 닮았어요. 그러니 장 빈 목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얼핏 비슷하게 생긴 것도 같고 하니 장 빈 목사가 세미나에 참석했다고 생각한 거죠. 졸지에 저는 장 빈 목사가 되었지요. 몇 통의 전화도 받고 심지어 찾아오신 분까지 있었습니다. 그렇게 몇 번에 걸친 해프닝, 저를 장 빈 목사라고 오해하는 일은 제 이름표를 다시 보여 드리면서 해결되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제가 어린이부 전도사 시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주일에 어린이들에게 종이를 나누어 주고 자신의 이름을 한글과 영어 그리고 한문으로 각각 써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 뜻을 알고 있는 어린이는 써보라고 했지요.

 

결과는 이랬습니다. 한글로 자신의 이름을 쓴 어린이는 100%였습니다. 초등학생이니 당연하지요. 영어로 자신의 이름을 쓴 어린이는? 놀랍게도 그것도 100%였습니다. 제가 좀 놀랐습니다. 왜냐면 제가 초등학교 때에는 영어 알파벳도 몰랐거든요. 세 번째 한자로 이름 쓰기에서는 어땠을까요? 결과는 조금 충격적이었습니다. 10%만이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 쓸 줄 알았던 것이죠.

 

저는 아버지께 혼나가면서 초등학교 1학년 때 제 이름을 한자로 쓰는 법을 배웠거든요. 그리고 마지막 문제! 자신의 이름 뜻을 아느냐는 질문에는 한자로 이름을 쓸 줄 아는 어린이들만이 자신의 이름 뜻을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땐 25년 전이라 모든 어린이의 이름이 한자 이름이었습니다.

 

제가 두 가지 이야기를 했는데요. 모두 이름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이름은 우리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려줍니다. 우리가 이름이 없다면 상대방에 대해 이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를 설명한다고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저 그 사람 있잖아~ 은진교회 목사고, 얼굴 좀 까맣고, 머리는 짧은 편이고, 배도 살짝 나온 사람. 그 사람 기타 잘 치던데... 그리고 가만히 있으면 인상이 좀 무서워.’

 

여러분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옆에 계신 교우에게 자신을 소개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뭐라고 설명하시겠습니까?

 

어떻게 설명하든지 분명한 것은 나를 소개하는 말이 내 이름 두 자, 석 자보다 길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름 석 자만 이야기하면 될 것을 즉, ‘저는 장 본입니다라고 말하면 될 것을 이름을 말하지 않음으로 정말 나에 대해 소개하는 것이 어려워진다는 말씀입니다.

 

앞에서 드린 두 가지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사람들이 저를 장 빈 목사라고 잘못 알았습니다. 이름을 잘 못 안 것이지요. 그랬더니 그 결과가 저에게 먼저 다가와 인사를 하시더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름표를 보여 드리며 목사님! 저는 장 본 전도사입니다라고 했더니 당황하시면서 아유 미안해요. 이름이 비슷해서 내가 착각했네요.’하면서 돌아가셨습니다.

 

그 세미나에서 만났던 분들 모두 제가 일일이 찾아가서 인사드려야 할 목사님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제 이름을 장 빈 목사라고 알고 있으니까 저한테 오셔서 인사를 하시더란 거죠. 이름을 잘 못 아니까 행동이 바뀌게 되는 거죠.

 

두 번째 이야기에서 어린이들에게 한글, 영어, 한문 그리고 이름의 뜻을 써 보라고 했던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리 이름의 뜻을 만들어 내는 것은 대부분 한자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였지요. 요즘은 한글 이름도 뜻이 아름다운 이름이 많지만, 아직도 이름의 뜻은 한자어가 훨씬 많이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뜻을 알 수 없는 한글, 영어 이름은 다 쓸 줄 알면서도 내 이름이 어떤 뜻인지 알려주는 한자는 제대로 쓸 줄 모른다는 거죠. 그래서 이름 뜻을 알고 그 이름 뜻대로 살아가기를 기도하자는 것이 그날 설교의 내용이었습니다. 오늘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이기도 했고요.

 

 

2. 성경에서는 이 이름에 대해서 무엇이라 말씀할까요? 우리는 믿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이름 대로 살아가야 할까요? 어버이주일인 오늘 이름에 대해 함께 고민해 봅니다. 출애굽기 115절입니다.

 

15 한편 이집트 왕은 십브라와 부아라고 하는 히브리 산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두 부류의 등장인물이 나옵니다. 하나는 이집트 왕이고 다른 하나는 두 명의 히브리 산파입니다. 고대 이집트의 왕은 곧 신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사람, 아니 제일 높은 신이 바로 이집트의 왕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산파는 왕에 비하면 정말 보잘것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계급으로 놓고 본다면 맨 꼭대기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의 차이입니다. 그런 왕과 산파가 출애굽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하위 계층인 산파의 이름은 나와 있는데 이집트 왕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 하나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바로라고 말하고, 때로는 파라오라고 말하는 것이 왕의 이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바로와 파라오는 같은 말인데 이집트의 왕을 가리키는 칭호입니다. 우리가 흔히 왕이라고 부르는 단어가 고대 이집트 말로는 바로요 파라오라는 거죠.

 

출애굽기 어디를 봐도 이집트 왕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즉 왕은 왕인데, 이름없는 무명의 왕이라는 거죠. 이에 비해 산파는 다릅니다. 아주 미천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분명히 그 산파들의 이름이 15절에 나옵니다. 십브라와 부아입니다.

 

여기서 이런 궁금증이 생깁니다. 성경을 기록할 때에 정말 왕의 이름을 몰라서 못 적고 산파들의 이름만 알아서 적었을까? 상식적으로 보잘것없는 산파들의 이름은 모른다 쳐도 왕의 이름은 알고 있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공교롭게도 출애굽기에서는 십브라와 부아만 이름이 있는 유명인사로 쓰여 있습니다.

 

제가 유명인사라는 말씀을 드렸는데요. 우리는 유명하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있을 유에 이름 명 자를 써서 유명(有名)입니다. 말 그대로 풀면 이름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유명한 사람입니다. 반대로 무명은 이름이 없는 사람입니다.

 

출애굽기 1장에서는 이상하게도 이집트의 그 위대한 왕을 무명한 존재로, 보잘것없는 산파인 십브라와 부아를 유명한 존재로 쓰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3. 그 이유가 21절에 나옵니다.

 

21 하나님은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의 집안을 번성하게 하셨다.

 

산파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 이집트 왕에 대해서는 이렇게 전합니다. 16절입니다.

 

16 너희는 히브리 여인이 아이 낳는 것을 도와줄 때에, 잘 살펴서, 낳은 아기가 아들이거든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 두어라.

 

히브리 여인이 애를 낳을 때 살펴보고, 남자아이면 다 죽이고 여자아이면 살려둬라. 어떻게 왕이란 자가 이런 명령을 내릴 수가 있을까요? 덕으로 백성을 다스려도 모자를 판에 아이를 죽이다니요? 이집트의 왕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같은 민족인 히브리 산파들이 그럴 수 없지요. 그래서 산파들이 이렇게 행동합니다. 17절과 18절입니다.

 

17 그러나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으므로, 이집트 왕이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하지 않고, 남자 아이들을 살려 두었다.

18 이집트 왕이 산파들을 불러들여, 그들을 꾸짖었다. "어찌하여 일을 이렇게 하였느냐? 어찌하여 남자 아이들을 살려 두었느냐?"

 

17절을 잘 보셔야 합니다. 산파들이 이집트 왕의 명령을 어긴 건 왕이 무서워서가 아니었습니다. 십브라와 부아가 두려워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왕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고 추궁하기 시작합니다. 왜 남자 아이들을 살려 두었느냐고 말이죠.

 

교우 여러분. ‘하나님을 두려워하십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면 그 사람은 천국 가고도 남습니다. 구원받고도 남습니다. 왜냐고요? 하나님이 두려워 내 삶을 하나님을 생각하며 주님을 향해 조율할 줄 알게 되거든요.

 

그런데 하나님을 만만하게 보고, ‘하나님은 모르실 거야생각하면요. 그 사람의 삶은 뒤에 가서 딴짓하는 삶이 돼버리거든요. 은진교회 교우 여러분!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그런데요. 이렇게 물으시는 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뭐 이름 몇 자 성경에 안 나왔다고 그게 하나님이 선택을 하시고 안 하신 거라고 어떻게 말합니까? 요즘은 이름 밝히기를 꺼리는 익명의 시대인데요. 닉네임을 더 많이 쓰지 않습니까?

 

그래요. 이름을 밝히기 싫어하는 시대에 우리는 오늘 읽은 출애굽기의 말씀이 몸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만큼은 우리의 이름을 밝혀야만 한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두 번째 구약의 말씀 출애굽기 3232절입니다.

 

32 그러나 이제 주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시려면, 주님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저의 이름을 지워 주십시오.

 

모세가 히브리 백성을 데리고 이집트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지켜주셨고, 홍해의 기적을 통해 살리셨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고기 며칠 못 먹었다고 노예였던 자신들을 풀어준 하나님을 원망하며, 종살이할 땐 고기 쪼가리라도 먹었다고, 고기 달라고 떼썼지요. 그들에게 하나님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물이 없다고 다시 이집트로 가자는 그 못돼먹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바위에서 물이 솟는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시내산에 이르러서는 구체적인 행동지침도 주셨지요. 우리가 잘 아는 십계명입니다.

 

아니 그 정도했으면 철 좀들만 한데, 하나님께서 그 정도로 지켜주셨으면 믿고 따를 만도 한데, 도무지 백성들은 철이 안 듭니다. 자신들의 지도자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오랫동안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씨름하고 있는데, 그들은 금송아지 만들어 거기에다 대고 절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기가 막힐 일입니다.

 

그 백성을 뒤로하고, 모세가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는 기도가 우리가 읽는 3232절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시려면, 주님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저의 이름을 지워 주십시오.”

 

제발 백성의 죄를 용서해 주세요. 만약 된다면 제 이름을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지워 주시는 대신에 저 백성을 살려 주세요. 무엇을 지웁니까? 이름을 지웁니다. 우리는 죽어서도 하나님 앞에 이름은 남길 수 있는 겁니다. 육체는 죽고, 육체는 죽어 썩지만 이름만은 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책에서까지 그 이름마저 지워진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름을 당당하게 밝혀야만 하는 이유가 하나님 앞에서는 절대로 우리의 이름이 지워져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33절입니다.

 

33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에게 죄를 지으면, 나는 오직 그 사람만을 나의 책에서 지운다.”

 

모세가 먼저 생각해서 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그 이름을 지우신다고 하십니다. 무섭지 않으세요? 두렵지 않으십니까?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하는 겁니다. 우리 이름이 드러나기 싫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만큼은 우리의 이름은 드러나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살 수 있는 겁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을 공경하시고 더불어 두려워하면서 하나님께서 쓰신 책, 생명책에 이름을 남기는 유명한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여기에는 부모이신 교우도 있고, 부모를 둔 교우도 있습니다. 반려동물을 자식 이상으로 애정으로 돌보는 분도 계십니다. 모든 교우 여러분에게 고합니다.

 

출애굽기 1장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한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가?’를 전하고 있습니다. 20,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내 백성을 번성하게 하고 강하게 해 주십니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섬겼던 일로 말미암아 이 민족이 번성하고 강해집니다.

 

앞에서 말하는 내가는 저이기도 하고, 여기 계신 여러분 한분 한분이기도 합니다. 나 하나 때문에 우리 민족이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나 하나 덕분에 공동체가 사는 것입니다. 교회를 공동체라고 하지요.

 

달리 말하면 나 하나 바로 서면 우리 공동체가 은혜를 누리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같이 사는 거죠. 같이 살아가는 운명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그런데 더 나아가, 나 하나 덕분에 민족이 은혜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 더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은 21, 내 민족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집을 번성하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에게 돌아오고, 내 가정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유명함의 평가는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그래서 당시 이집트의 왕이라 할지라도 그가 신 중에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이집트 왕의 이름을 기록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이집트 왕은 그저 무명의 존재였던 것이죠.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도 초라했던 히브리 산파들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유명하다고 인정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이름을 십브라와 부아라고 2025년을 사는 우리에게도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조심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유명해지기는 하되 내가 유명해지는 평가는 오직 주님께만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집트 왕이 무엇이 부족했겠습니까? 왕족이었으니 얼마나 많은 과외공부를 시켰겠고, 백성에게 얼마나 유명한 존재였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평가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평가는 오직 한가지 기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있습니다. 산파들이 유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은진교회 성도 여러분! 세상의 평가에 귀가 솔깃하시죠?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목사인 저도 어떨 때는 이 세상의 평가에 귀가 솔깃해집니다. 인간이어서 그럴 수밖에 없는 모양입니다. 그럴 때마다, 세상의 평가에 귀가 솔깃해질 때마다 이 말씀을 기억해주십시오. 주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주시는 말씀 고린도전서 39절입니다. 제가 새한글 성경으로 읽어드립니다.

 

9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가꾸신 밭이며, 하나님이 세우신 건물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나로 인해 가정이 크게 되고, 우리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나로 인해 민족이 강하게 돼서 하나님의 책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으로 남는 신앙의 유명인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되어 주시기를, 그런 어버이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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