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해결하리라 믿었다 / 부활절 일곱째주일 / 환경주일 | 장 본 목사 | 2025-06-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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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상의 사이즈와 화질은 500kbps, 중간화질입니다. 영상은 업로드 시 설정할 수 있습니다. . 누군가 해결하리라 믿었다 부활절 일곱째주일 환경주일 20250601 미가 6:8 8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에베소서 5:1, 8-9 1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8 여러분이 전에는 어둠이었으나, 지금은 주님 안에서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사십시오. 9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와 진실에 있습니다. 마태복음 5:13-16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짠 맛을 되찾게 하겠느냐? 짠 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데도 쓸 데가 없으므로, 바깥에 내버려서 사람들이 짓밟을 뿐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세운 마을은 숨길 수 없다. 15 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다 내려놓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다 놓아둔다. 그래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친다. 16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0. 은진교회 교우들과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께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시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말씀을 전하기 전에 예배당 전등을 다 끄고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예배당 전등을 다 꺼주시겠어요? 예배당 전등을 다 끄니까 어떤 느낌이에요? 캄캄하지요. 불이 켜졌을 때와는 느낌이 다르죠.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오긴 하지만, 어두컴컴한 건 사실이네요. 오늘은 한국교회가 함께 지켜나가는 <환경주일>이에요. 6월 5일이 ‘세계 환경의 날’이고요. 교회는 6월의 첫 주일을 환경주일로 지킨답니다. 지난 겨울, 기억하세요? 유난히 눈이 많이 왔지요? 눈이 너무 와서 우리 교회 대예배실에서도 총 여섯 군데서 물이 떨어졌답니다. 그래서 올해는 비만 오면 목사님 마음이 조마조마해요. 기상청이 지난 1월에 대한 기후특성을 발표한 기사가 있어요. 그걸 보면 평균기온은 예년보다 0.7도 높았대요. 강수량도 32%나 적었답니다. 그런데 눈이 온 날은 9.7일로 평년보다 3.5일이나 많았다고 해요. 눈이 쌓인 양을 적설량이라고 하거든요? 적설량은 14.5cm로 평년보다 4cm나 많았다고 합니다. 눈이 많이 오면 괜히 신나죠? 뽀득뽀득 눈 밟는 것도 신나고, 눈사람도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기상학자들은 별로 즐거워하지 않는 답니다. 왜냐면 겨울철 큰 눈이 내리는 것, 봄철의 대형 산불이 일어나는 것 모두 우리나라가 위치한 아시아 지역의 기후가 요동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거든요. 겨울은 추워야 해요. 그래야 겨울인 거죠. 여름은 더워야 하고요. 봄과 가을은 말 그대로 봄 같고, 가을 같아야 해요. 그런데 겨울이 따뜻해지면, 그해 봄은 봄 같지가 않고요, 여름은 아주 더워질 가능성이 높아요. 가을은 온데간데없이 긴 여름 끝에 겨울이 바로 찾아오지요. 이 모든 이유가 바닷물 온도가 높아져서 그런다고 하죠? 왜 바닷물 온도가 높아질까요? 지구의 온도가 높아지니까요. 남극과 북극의 얼음은 지금도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녹아내리고 있거든요. 우리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은 이런 기후 위기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오늘 복음서 말씀에서는 선언합니다. 마태복음 3장 14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요. 빛이 되라고 말씀하지 않으세요. 이미 여러분은 빛입니다. 빛은 어때요? 밝죠. 그래서 어둠을 밝히죠. 빛의 사명이에요. 어둠을 밝히는 것. 그 어두움은 캄캄한 상태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세상의 어둠을 의미하기도 한답니다. 기후 위기에 처해 어둠의 그림자가 처해 있는 상황, 사회적으로 혼란하여 앞이 보이지 않는 그런 캄캄한 상황도 의미해요. 빛의 사명은 어둠을 밝히는 거라 했잖아요.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이 그 일을 해야 한다고요. 간단해요. 쓰레기는 재활용 구분해서 쓰레기통에 버리세요. 학교에서 급식 먹을 때 되도록 남기지 말고 다 드세요. 여러분이 입는 옷, 되도록 오래 입으세요. 신발도 마찬가지고요. 그렇게 살아가면 여러분은 빛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이제 전등을 모두 켜 주시겠어요? 보세요. 빛은 위에서 비춰야 모두가 밝아져요. 여러분 발밑에 불을 켜 봐야 발만 보이거든요. 환경을 생각한다는 일은 내가 저 위에서 밝혀 주는 등불이 되겠다는 걸 의미한답니다. 빛나는 전등처럼, 여러분이 환경을 사랑하며 아끼는 행동으로 그렇게 세상을 밝히 비추는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이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1.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세계 곳곳에 불이 나지요. 캘리포니아, 그리스, 호주... 산불이 나면 일주일, 한 달씩 불타지요. 우리조차도 다른 나라 일인데 걱정스럽죠. 그런데 우리나라도 이제 그런 산불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3월 말 경상 지역 곳곳에서 났던 산불 기억하시나요? 의성, 안동, 산청, 영양, 영덕까지 어마어마한 산불이 났었지요. 우리 특별헌금도 드렸잖아요. 그런 상황을 보면 우리 이렇게 표현합니다. ‘재앙’이라고요. 그런데 그 재앙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더 큰불이 나면 났지, 줄어들지 않을 겁니다. 왜냐고요? 현실이라니까요. 기후 위기의 현실 말입니다. 산불,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 태풍, 토네이도 등은 예방한다고 대처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 지난주 옥탑 방수 공사 했잖아요. 예방한 거잖아요. 그런데 시간당 30mm 이상의 집중호우가 연희동에 내리면 소용없습니다. 그 정도 비면 멀쩡한 건물에도 비가 샐 정도의 양이거든요. 우리가 집중호우를 예방할 수는 없잖아요. 오는 비를 어떻게 막나요? 『찬란한 멸종』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2150년 기후 위기로 멸종한 인류의 역사를 홀로 남게 된 AI가 뒤돌아보는 내용입니다. 이런 대목이 있어요. 읽어드립니다.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충분한 기술이 있었다. 그들이 멸종하기 130년 전에도 기후변화를 막는 데 필요한 기술의 95%가 있었으며, 이 기술을 사회에 적용하는 데 충분한 돈도 있었다. 또 많은 사람이 에너지 전환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절실하지는 않았다. 누군가 해결하리라 믿었다.’ 그래서 인류가 멸망했다고 책에서는 전합니다. 절실하지 않아서요. 누군가 대신 해결하리라 믿어서요. 솔직하게 기후 위기, 환경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절실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해요. ‘그래서요? 어쩌라고요? 지금 먹고 살기가 더 힘들어요.’ 그래서 더 많은 일회용 쓰레기를 버리고, 기후 위기임을 알면서도 ‘괜찮을 거야’라는 생각에 살아갑니다. 그 사이 지구의 온도는 더 높아가고, 폭설은 늘어나고 일어나지 않던 산불은 더 커져만 갑니다. 우리가 오늘 하루라도 환경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2. 오늘 서신서의 말씀을 보세요. 복음서만 여러분을 빛이라고 전하고 있지 않습니다. 에베소서에서도 우리를 빛이라 말씀합니다. 확인합니다. 5장 8절입니다. 8 여러분이 전에는 어둠이었으나, 지금은 주님 안에서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사십시오. 전에는 어둠이었대요. 에베소서에서 전하는 어둠은 예수님의 복음을 듣기 전의 상태를 말합니다. 예수님 몰랐을 때의 삶이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주님 안에서 빛이랍니다. 예수님을 알고 있으니, 그분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있으니, 빛이 되었습니다. 신앙인의 본질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기억하는 한 빛인 거죠. 그러니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라고 사도 바울은 전하고 있습니다. 모르면 빛으로 살지 못하는 거예요. 그런데 안다면 빛으로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무엇을 알아요? 예수님을요. 복음을요. 그러니 알면서 모른 척하는 삶은 안 되는 겁니다. 그건 신앙인의 삶이 아닌 겁니다. 신앙인은 예수를 아는 이상, 복음을 아는 이상,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보다 세상에 대해서 할 일이 더 많은 겁니다. 그래도 그 일들을 감당하며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신앙인이라는 깨달음에 기인합니다. ‘예수님 덕분에 이렇게 살아. 복음 덕분에 이렇게 산다’는 말이 되는 거죠. 그럼 “빛의 자녀”로 산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어지는 9절입니다. 9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와 진실에 있습니다. 선과 의와 진실. 이렇게만 말하면 정답인데, 좀 오해의 소지가 있어요. 무엇이 기준인 선인가? 어떤 기준의 의로움인가? 누구를 위한 진실인가? 하는 거죠. 그 기준을 오늘 구약의 말씀이 전해 주고 있습니다. 미가서 6장 8절입니다. 8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서에 명확한 기준이 나오지요. 바로 하나님입니다. 모든 선과 의와 진실은 사랑을 실천하고, 정의를 이루며, 하나님과 더불어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바로 복음의 근본정신이기도 합니다. 3.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것을 제가 자주 말씀드렸습니다. 뭐지요? 우상숭배입니다. 그런데 다른 신에게 절을 하는 것만이 우상숭배가 아니에요. 오늘날에도 심각한 우상숭배가 있습니다. 물질에 대한 탐욕, 내 욕망의 절대화, 내 신념의 이상화, 무한대로 가지고 싶어 하는 소유욕 등이 그것입니다. 개인의 욕심은 집단의 욕심으로 커져갑니다. 최대 이윤을 내야만 하고, 최고인 상품을 최저의 가격으로 만들어야만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 더 싼 노동력을 구해야만 하고, 더 착취해야 하고... 오늘날의 우상은 이미 자신의 모습을 감춘 채 세상 곳곳에, 우리 주변에, 우리 삶에 놓여 있습니다. 아까 소개해 드린 책에서 인공지능 AI가 그랬잖아요. 절실하지 않았다고요. 누군가 해결할 거라 생각했다고요.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이 세상이, 어쩌면 보이지 않는 우상에 찌들어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지 모르겠단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서요? 어떻게 하라고요? 이제 환경에 대해서는 우리가 절실하게 생각해야 한다고요. 누군가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요. 그 누군가가 우리가 되어야 한단 말입니다. 에베소서 5장 1절을 새한글 성경으로 제가 읽어드립니다. 1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랑받는 자녀들답게 하나님을 그대로 따라 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저를 따라하십니다. “하나님을 그대로 따라 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지난주 목요일부터 사전선거가 시작되었습니다. 돌아오는 화요일에 이 나라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하여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을 위한, 이 나라를 위한 말씀을 전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중차대한 선거를 앞두고 환경에 대한 말씀을 여러분에게 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환경주일을 지켜내지 않으면, 누군가 해결하지 못할 것만 같았습니다. 우리 교회는 매년 환경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제가 그동안 부탁드린 일들이 있습니다. 혹시 기억하실까요? 첫째, 쓰레기 줄이고 계십니까? 둘째, 재활용 분류 잘 하고 계셔요? 셋째, 음식물 쓰레기 줄여가고 있으신지요? 넷째, 주변의 여러 물건. ‘아나바다’,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고 계신가요? 마지막, 일회용품 되도록 사용하지 않고 있나요? 2025년 환경주일을 맞아 절실함의 기준 다섯 가지를 다시 상기시켜드립니다. 절실하게 다섯 가지라도 지켜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에 대한 우리의 태도, 자세가 될 것입니다. 그 자세가 우리를 세상의 빛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안내할 것입니다. 그런 우리의 걸음이 창조세계를 회복하는 녹색그리스도인의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걸음이 절망에서 희망으로 내딛는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나님을 그대로 따라 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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