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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갈림길에서 / 성령강림후 둘째주일 장 본 목사 2025-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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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갈림길에서

 

성령강림후 첫째주일

20250615

 

신명기 30:15-20

15 보십시오. 내가 오늘 생명과 번영, 죽음과 파멸을 당신들 앞에 내놓았습니다.

16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하는 대로, 당신들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면, 당신들이 잘 되고 번성할 것입니다. 또 당신들이 들어가서 차지할 땅에서,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17 그러나 당신들이 마음을 돌려서 순종하지 않고, 빗나가서 다른 신들에게 절을 하고 섬기면,

18 오늘 내가 당신들에게 경고한 대로, 당신들은 반드시 망하고 맙니다. 당신들이 요단 강을 건너가서 차지할 그 땅에서도 오래 살지 못할 것입니다.

19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당신들 앞에 내놓았습니다.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손이 살려거든, 생명을 택하십시오.

20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의 말씀을 들으며 그를 따르십시오. 그러면 당신들이 살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그 땅에서 당신들이 잘 살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16-26

16 내가 또 말합니다. 여러분은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17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이 바라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릅니다. 이 둘이 서로 적대관계에 있으므로,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18 그런데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면, 율법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19 육체의 행실은 환히 드러난 것들입니다. 곧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20 우상숭배와 마술과 원수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분쟁과 분열과 파당과

21 질투와 술취함과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놀음과, 그와 같은 것들입니다. 내가 전에도 여러분에게 경고하였지만, 이제 또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22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23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습니다.

24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25 우리가 성령으로 삶을 얻었으니, 우리는 성령이 인도해 주심을 따라 살아갑시다.

26 우리는 잘난 체하거나 서로 노엽게 하거나 질투하거나 하지 않도록 합시다.

 

마가복음 4:1-9

1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매우 큰 무리가 모여드니, 예수께서는 배에 오르셔서, 바다쪽에 앉으셨다. 무리는 모두 바닷가 뭍에 있었다.

2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가르치셨는데, 가르치시면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3 “잘 들어라. 씨를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니, 새들이 와서 그것을 쪼아먹었다.

5 또 더러는 흙이 많지 않은 돌짝밭에 떨어지니, 흙이 깊지 않으므로 싹은 곧 나왔지만,

6 해가 뜨자 타버리고,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렸다.

7 또 더러는 가시덤불 속에 떨어지니, 가시덤불이 자라 그 기운을 막아 버려서,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8 그런데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져서,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가 되었다.”

9 예수께서 덧붙여서 말씀하셨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

 

 

0. 은진교회 교우들과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께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시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여러분과 게임을 해 보려고 합니다. 진짜 게임 할 거예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겁니다. ‘짜장면 vs 짬뽕’, 탕수육을 먹어요. 부먹 vs 찍먹’. 여러분에게 모두 묻습니다. 대답해 보세요. ‘비빔냉면 vs 물냉면

 

게임은 끝났습니다. 하나만 더 물을게요. 마음속으로 대답하세요? 왜요? 왜 그렇게 선택했나요? 다 말할 수 있죠? 짬뽕은 매워요. 부어 먹으면 바삭함이 없어져요. 물냉은 국물이 슴슴해서 싫어요. 다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고요? 나만의 기준이 있으니까요.

 

다시 물어볼게요. 마음속으로 대답해 보세요. ‘생명과 죽음중에서는 무엇을 선택할래요? ‘사랑과 미움중에서는요? ‘평화와 전쟁중에서는요? 답이 좀 뻔하죠? 생명, 자유, 평화를 선택해야 하겠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선택하여 살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 잘난 체하지 말아요. . 상대방을 화나게 하지 말아요. . 상대방을 질투하지 말아요. 이거 세 개만 하면요 생명, 사랑, 평화의 삶으로 살아갈 수 있답니다.

 

서신서에서는 그렇게 살아가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해요. 그 아홉 가지 열매는 이따 어른들을 위한 서신서 말씀으로 한 번 들어보세요.

 

중요한 사실, 사랑하려면, 평화 이루려면 잘난 체하면 안 돼요. 누군가를 화나게 해도, 질투해도 사랑할 수 없어요. 평화를 이룰 수도 없답니다.

 

목사님은 여러분을 위대한 사람으로 커가도록 안내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저는 여러분을 신앙인으로 커가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성령님의 이끄심으로 그렇게 커 갈 것입니다. 도우시는 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어린이-청소년 여러분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예배 후에 교회에서 점심을 드셔야 할지, 그냥 가야 할지 선택해야 합니다. 오늘 저녁식사는 어떤 메뉴로 해야 할지 또 선택해야 합니다.

 

산길을 걸으면 꼭 갈래길이 나옵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목표한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삼거리에서는 우회전을 할지 좌회전을 할지 선택해야지 우왕좌왕 멈칫거리면 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안내표지판이 있으면 다행입니다. 안내하는 대로 가면 되니까요. 그래서 운전할 때는 내비게이션을 켭니다. 따라가면 목적지로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앞에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습니다.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구약 신명기 3015절 말씀입니다.

 

15 보십시오. 내가 오늘 생명과 번영, 죽음과 파멸을 당신들 앞에 내놓았습니다.

 

여러분 앞에 생명과 번영, 그리고 죽음과 파멸이 놓여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선택은 분명하지 않을까요? 죽음과 파멸을 선택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15절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아마 거의 모든 사람이 생명과 번영을 선택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 모두 생명과 번영을 선택하셨지요? 말씀은 이어집니다. 16절입니다.

 

16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하는 대로, 당신들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면, 당신들이 잘 되고 번성할 것입니다. 또 당신들이 들어가서 차지할 땅에서,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생명과 번영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이제 말씀대로 제가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아멘으로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길을 따라가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켜가고 계십니까?”

 

모두 아멘하셨다면, 잘 살고 계신 겁니다. 애써 살아가고 계신 겁니다. 이제 나의 신앙은 되었습니다. 신앙은 이어져야지요. 자식이든, 부모든, 내 옆 친구이든 누구든 이어가야 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또 우리 앞에는 두 가지가 놓여 있습니다. 19절입니다.

 

19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당신들 앞에 내놓았습니다.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손이 살려거든, 생명을 택하십시오.

 

우리 앞에 생명과 사망이 놓여 있습니다. 여러분은 또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답은 역시 이미 나온 것처럼 보이지요? 생명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신앙을 누군가에게 연결하는 통로가 됩니다.

 

생명을 선택한다는 것은 자식을 많이 낳아 번성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생명을 지킨다는 말씀은 나를 포함한 모든 하나님의 창조물을 소중히 여긴다는 말입니다. 사람도, 풀 한 포기도, 물 한 방울도 말입니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다른 생명에게 상처 주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동물에게, 식물에게 상처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결국, 생명을 선택한다는 말씀은 사랑하겠다는 다짐입니다. 확인합니다. 20절입니다.

 

20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의 말씀을 들으며 그를 따르십시오. 그러면 당신들이 살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그 땅에서 당신들이 잘 살 것입니다.

 

신앙은 인생과 마찬가지로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럴 때마다 생명을, 사랑을, 하나님을 선택하는 교우 여러분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갈림길에서 안내표지판이 있으면 편하다고 했지요. 안내대로 가면 되니까요. 내비게이션 없으면 요즘 운전 못 하는 사람 많습니다. 도로가 워낙 복잡하니까요. 안내표지판과 내비게이션의 역할이 무엇일까요? 선택의 상황에서 고민할 것 없이 결정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이죠. 바로 기준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신명기의 말씀을 통해 우리 앞에 놓인 생명과 사망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지 확인하였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비교가 너무 확실했잖아요. 생명과 사망 가운데 누가 과연 사망을 선택할까요? 보통 사람이라면 모두 생명을 선택하겠잖아요?

 

이렇게 확실하게 구분이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땐, 즉 기준이 모호할 땐 무엇을 선택할지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안내표지판이 없다고 해야 할까요?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떡하니 나타나셔서 말씀해 주시면 좋겠는데, 예수님께서 손잡아주시면서 같이 가자!’ 하면 따라가겠는데, 하나님은 보이지도 않고 예수님은 이미 2천 년 전에 돌아가셨잖아요.

 

그래서 오늘 서신서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신앙의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거든요. 갈라디아서 516절입니다.

 

16 내가 또 말합니다. 여러분은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 늘 고민이 되는 부분은 바로 내가 가지고 있는 욕망과 신앙의 길이 동시에 놓여 있을 때입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 고민이 되지요.

 

지난 월요일에 친한 친구 부부를 만났어요. 참 선한 친구들이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친구들이죠. 회사에서 모든 사람이 교회 다니는 걸 알고 있어요. 3년 만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한 친구 회사에서 종교를 믿는 않는 친한 직장 동료가 이렇게 말하더래요. ‘너는 교회에서 설교를 듣고 있으면, 그냥 지갑이 열리니?’

 

이 말을 듣고는 당황해서 대답을 못 했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친한 직장 동료인데 막상 이런 말을 들으니 말문이 막혔답니다. 우리 비슷한 경험 많이 하면서 살아가잖아요.

 

기준이 다른 거죠. 돈이 기준이면,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수 있지요. 시간이 기준이라면 이렇게 말하겠죠. ‘교회 갈 시간에 잠을 자는 게 낫겠다.’라고요.

 

그런데 우리의 기준은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매 주일 세상 사느라 피곤한데도 그 몸을 이끌고 교회에 나와 함께 예배드리는 거잖아요. 하나님께 봉헌도 하잖아요.

 

16절 마지막, “육체의 욕망이라는 말이 나와요. 육체라는 단어의 순우리말이 무엇인지 아세요? ‘몸뚱이입니다. 그래서 새한글 성경에서는 몸뚱이의 욕망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말씀이 더 가깝게 다가옵니다.

 

몸뚱이가 원하는 것들만 채우게 하지 않기 위한 신앙인의 기준은 바로 성령께서 이끌어 주시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라고요. 17절에서는 성령과 몸뚱이의 관계를 전하고 있죠. 반비례해요. 몸이 원하는 것만 추구하며 살아가면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살 수 없단 말이죠.

 

그래서 19절부터 21절까지는 몸뚱이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부정적인 모습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다 알만한 것들이니 넘어갈게요. 중요한 건 성령에 이끌려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일 테니까요. 이제 성령에 이끌려 살아가는 삶에 대해 나옵니다. 22, 23절입니다.

 

22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23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습니다.

 

수도 없이 들어보셨지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말입니다. 너무 많이 들어서 감동도 없으시지요? 마치 성령강림절기만 되면 매해 들었던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지요? 왜 이럴까요? 결과만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내가 그리 살지 않아도 어떤 결과를 얻으면 괜히 안심이 되고 그렇거든요. 게다가 열매라고 하니 그것만 따먹으면 될 것 같잖아요.

 

중요한 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백날 외우고 있어 봐야 소용없다는 사실입니다. 외우고는 있는데, 답안지에 쓰지를 못하거든요. 외우고는 있는데 삶은 다르다는 말씀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26절에 나옵니다.

 

26 우리는 잘난 체하거나 서로 노엽게 하거나 질투하거나 하지 않도록 합시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으세요? 기쁨이 넘치기를 원하세요? 평화 이루기를 원하시죠? 욱하는 성격이신가요? 친절하고 싶으세요? 선하다는 말 듣고 싶나요? 신실한 믿음을 갖고 싶으셔요?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싶으신가요? 더불어 절제까지요.

 

그런 삶을 원하신다면 우쭐대지 마시고, 서로 화를 돋우지 말고, 서로 시샘하지 말고 살아가십시오. 이것이 성령의 열매에 이르게 하는 단 하나의 길입니다. 25절입니다.

 

25 우리가 성령으로 삶을 얻었으니, 우리는 성령이 인도해 주심을 따라 살아갑시다.

 

성령은 우리 삶의 신호등입니다. 안내표지판입니다. 그 인도하심에 따라 성령의 열매에 이르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어 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3. 오늘 복음서 말씀은 <씨 뿌리는 사람 비유>입니다. 다 아시죠? 농부가 씨를 뿌렸어요. 길가, 돌짝밭, 가시덤불, 좋은 땅에 떨어졌네요. 길가에 뿌린 씨는 새가 먹었고, 돌짝밭에 떨어진 씨는 바위 때문에 뿌리를 못 내려 죽었고, 가시덤불에 뿌려진 씨는 가시덤불 때문에 못 자랐답니다. 그래서 결론이 뭐지요?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었으니, 여러분은 좋은 땅 같은 마음을 가꾸며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맺으며 살아가십시오. 이렇게 배워왔지요? 정말요? 정말 이런 말씀일까요?

 

비유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쉽게 가르치고자 가장 많이 사용하신 교수법입니다. 비유로 설명하면 어려운 것도 쉽게 설명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비유로 가르칠 때 조심할 부분이 있습니다. 비유를 잘 못 해석하면 배가 산으로 가거든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9절에 이렇게 말씀하시잖아요.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으라고요. 잘 들으십시오.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맞습니다. 좋은 땅 같은 마음을 가꿔야지요. 우리 신앙생활의 목적이라고 해도 틀린 말 아닙니다. 맞는 말이긴 한데 이 비유, 씨 뿌리는 사람 비유의 결론으로는 부적절하다는 말씀입니다.

 

씨를 뿌립니다. 13절에 이 비유는 해석도 해 두었습니다. 씨 뿌리는 것은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고요.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바닷가에 띄운 작은 배 한 척에서 해변에 앉은 큰 무리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누가 듣고 있나요? 수많은 사람입니다. 별의별 사람 다 있었겠지요.

 

누군가는 말씀을 듣고 돌아갔을 겁니다. 누군가는 그 말씀을 주의 깊게 들었으나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 때문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을 겁니다. 누군가는 세상 염려 때문에, 몸뚱이의 욕망 때문에 말씀을 듣긴 했지만, 듣는 것으로 그쳤을 겁니다. 또 누군가는 예수의 말씀을 마음속 깊이 품고 있었을 겁니다.

 

... 시간이 흐르고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람들이 보는 것은 모든 것을 먹어 치우는 새들이며,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바위이고, 모든 것을 질식시키는 가시덤불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미 자라고 있고, 앞으로 풍요롭게 다가올 결실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 말씀에 발 벗고 따르겠다고 했던 사람이 얼마나 되었을까요? 아마 매우 적었을 겁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끝나고 모두 일상으로 돌아갔겠지요. 하지만 분명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돌아간 이들도 있었을 겁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렇게 온다고요. 한순간에 멸망하고 새 시대가 짠하고 나타나는 것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온다고요. 그들이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얻을 것이라고요.

 

내 삶이 팍팍해도, 이 세상이 절망을 향해 가더라도, 말씀은 이미 한 사람 마음에 자라고 있다고요. 세상이 아무리 저항해도 하나님 나라를 향한 주님의 선교는 지금도 자라나고 이어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땅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밭이 중요하지 않아요. 밭이 중요했다면 이 비유의 이름은 씨 뿌리는 밭에 관한 비유였겠지요. 중요한 것은 씨 뿌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자라고 있는 씨앗의 열매입니다.

 

 

4. 우리는 이미, 생명과 사망 앞에서 생명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안에는 이미, 그 말씀이 자라고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떨어진 씨를 쪼아 먹는 새들만 봅니다.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바위와 모든 것을 질식시키는 가시덤불만 보며 살아갑니다. 몸뚱이의 욕망에 자신의 삶을 내맡기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다시, 성령의 이끄심으로 살아가기 위해 지난주 함께 성찬을 나누며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이끄심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우쭐대지 않고, 잘난 체하지 않고, 서로 화를 돋우지 않으며, 서로 시샘하지 않는 삶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성령의 열매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안에 이미 뿌리내린 말씀은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인의 길입니다. 우리 삶의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성령의 이끄심 안에 많은 사람이 보지 못한 풍요로운 결실을 믿으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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