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람이여! / 성령강림후 넷째주일 / 맥추감사주일 | 장 본 목사 | 2025-07-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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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상의 사이즈와 화질은 500kbps, 중간화질입니다. 영상은 업로드 시 설정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의 사람이여! 성령강림후 넷째주일 맥추감사주일 20250706 출애굽기 32:1-4 1 백성은, 모세가 산에서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으니, 아론에게로 몰려가서 말하였다. “일어나서,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 주십시오.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올라오게 한 모세라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2 아론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의 아내와 아들 딸들이 귀에 달고 있는 금고리들을 빼서, 나에게 가져 오시오.” 3 모든 백성이 저희 귀에 단 금고리들을 빼서, 아론에게 가져 왔다. 4 아론이 그들에게서 그것들을 받아 녹여서, 그 녹인 금을 거푸집에 부어 송아지 상을 만드니, 그들이 외쳤다. “이스라엘아! 이 신이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너희의 신이다.” 디모데전서 6:11-19 11 하나님의 사람이여, 그대는 이 악한 것들을 피하십시오.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십시오.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십시오. 영생을 얻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그대를 부르셨고, 또 그대는 많은 증인들 앞에서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하였습니다. 13 나는 만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에게 훌륭하게 증언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대에게 명령합니다. 14 그대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그 계명을 지켜서,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는 사람이 되십시오. 15 정한 때가 오면, 하나님께서 주님의 나타나심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찬양 받으실 분이시요, 오직 한 분이신 통치자이시요,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십니다. 16 오직 그분만이 죽지 않으시고, 사람이 가까이 할 수 없는 빛 속에 계시고, 사람으로서는 본 일도 없고, 또 볼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 그분에게 존귀와 영원한 주권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17 그대는 이 세상의 부자들에게 명령하여, 교만해지지도 말고, 덧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도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성히 주셔서 즐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하십시오. 18 또 선을 행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아낌없이 베풀고, 즐겨 나누어주라고 하십시오. 19 그렇게 하여, 앞날을 위하여 든든한 기초를 스스로 쌓아서, 참된 생명을 얻으라고 하십시오. 누가복음 16:1-13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청지기 하나를 두었다. 그는 이 청지기가 자기 재산을 낭비한다고 하는 소문을 듣고서, 2 그를 불러 놓고 말하였다. ‘자네를 두고 말하는 것이 들리는데, 어찌 된 일인가? 자네가 맡아보던 청지기 일을 정리하게. 이제부터 자네는 그 일을 볼 수 없네.’ 3 그러자 그 청지기는 속으로 말하였다. ‘주인이 내게서 청지기 직분을 빼앗으려 하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낯이 부끄럽구나. 4 옳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겠다. 내가 청지기의 자리에서 떨려날 때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네 집으로 맞아들이도록 조치해 놓아야지.’ 5 그래서 그는 자기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다가, 첫째 사람에게 ‘당신이 내 주인에게 진 빚이 얼마요?’ 하고 물었다. 6 그 사람이 ‘기름 백 말이오’ 하고 대답하니, 청지기는 그에게 ‘자, 이것이 당신의 빚문서요. 어서 앉아서, 쉰 말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7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묻기를 ‘당신의 빚은 얼마요? 하였다. 그 사람이 밀 백 섬이오’ 하고 대답하니, 청지기가 그에게 말하기를 ‘자, 이것이 당신의 빚문서요. 받아서, 여든 섬이라고 적으시오’ 하였다. 8 주인은 그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였다. 그가 슬기롭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자기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슬기롭다. 9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 그래서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10 지극히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큰 일에도 충실하고, 지극히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 일에도 불의하다. 11 너희가 불의한 재물에 충실하지 못하였으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12 또 너희가 남의 것에 충실하지 못하였으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인들 내주겠느냐? 13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그가 한 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 쪽을 떠받들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0. 은진교회 교우들과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께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시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길을 가다가 오천 원을 주웠습니다. 그럼 여러분 어떻게 해요? 가까운 곳에 파출소라도 있으면 갖다 주면 되죠. 그런데 파출소도 없고 주변에 아무도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린 주인 없는 물건을 주웠을 때는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고 배웠지요. 신분증이나 신용카드 같은 걸 주웠을 땐, 거기엔 이름이 적혀 있으니까 파출소에 갖다 주거나, 가까운 우체통에 넣으면 주인을 찾아 줄 수 있어요. 그런데 오천 원짜리 지폐에는 주인 이름이 적혀 있지 않잖아요? 그래서 일단 내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이 돈이 계속 찜찜해요. 내 돈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주인을 찾아줄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돈을 주운 친구는 고민 끝에 이 돈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했답니다. 이 친구, 잘한 일일까요? 아니면 잘못한 일일까요? 목사님 생각은 이래요. 잘잘못을 따질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다만, 그 친구는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해요. 공짜로 생긴 돈이니까, 내가 맛있는 것 사 먹을 수도 있었잖아요. 친구들에게 아이스크림 사 주면서 생색낼 수도 있었잖아요. 그런데 그 친구는 어려운 이웃을 돕기로 한 거잖아요. 비록 내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좀 더 좋겠다고 생각한 거잖아요. 돈은요. 우리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거예요.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 지랍니다. 성경에서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돈을 이렇게 표현한답니다. “불의한 재물”이라고요. 그런데 그 돈을 나를 위해서 사용하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용하면, 같은 돈이라도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어요. 오늘 복음서 말씀이 굉장히 어려운 본문이에요. 그래서 여러분의 눈높이로 쉽게 한 번 풀어드린 겁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 돈은, 재물은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용돈 받잖아요. 용돈을 사용하는 방법을 잘 고민하면서, 나를 위해서도 사용하지만,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내 것을 남겨두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을 복음서로 전했기에 우리도 먼저 복음서를 자세하게 들여다보며 말씀 마당을 시작합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어요. 너무 부자였나 봐요. 부자는 자신의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을 따로 두었습니다. 성경은 그를 “청지기”라고 표현합니다. 새한글성경은 “살림지기”라고 전해요. 그런데 이 살림지기가 부자의 재산을 날려 버리고 있다는 고발이 들어갑니다. 부자는 살림지기를 부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복음 16장 2절입니다. 2 그를 불러 놓고 말하였다. ‘자네를 두고 말하는 것이 들리는데, 어찌 된 일인가? 자네가 맡아보던 청지기 일을 정리하게. 이제부터 자네는 그 일을 볼 수 없네.’ 어떻게 된 건가요? 부자는 살림지기를 ‘해고’합니다.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어버린 살림지기는 고민합니다. 2절 3절에 그 고민의 흔적이 나옵니다. ‘이제 뭘 해야 하지? 땅 파는 일은 힘에 부치고, 빌어먹자니 창피하고... 에라 모르겠다. 이렇게 해 보자!’ 살림지기는 부자에게 빚을 진 사람들을 차례로 부릅니다. 먼저 기름 100말, 2,200리터쯤 빚진 사람입니다. 그에게 말합니다. ‘당신 빚 문서에 얼른 고쳐 적으세요. 1,100리터 남았다고요’ 절반을 탕감해 줍니다. 두 번째 빚진 사람을 부릅니다. 7절입니다. 밀 백 섬 빚진 자에게도 말합니다. ‘이 빚 문서에 고쳐 적으세요. 밀 팔십 섬 남았다고요.’ 살림지기는 그럴 권한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부자의 재산을 관리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으니까요. 그런데 주인 몰래 자신을 위해서 부자의 재산을 빼돌렸던 거죠. 그러다 해고당하고 나서, 생각 끝에 빚진 사람들의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부자는 어떻게 했을까요? 확인합니다. 8절입니다. 8 주인은 그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였다. 그가 슬기롭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자기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슬기롭다. 부자의 반응이 놀랍습니다. 살림지기, 청지기의 행동을 슬기롭다고 칭찬한 거죠. 부자에게 진 빚을 청지기 마음대로 절반이나 탕감해 주었는데도 부자는 칭찬한 거죠. 비유는 여기까지입니다. 2. 오늘 복음서 본문을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이유는 바로 9절부터 13절 때문이에요. 성경에 나오는 비유 자체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잖아요. 8절까지는 다 이해할 수 있다고요. 부자가 자신이 고용한 살림지기가 자신의 재산을 탕진했다는 고발을 듣고, 그를 해고했잖아요. 그런데 해고당한 청지기가 부자의 재산으로 사람들의 빚을 탕감해 줬네요. 자신을 위해 사용한 것이 아니고, 타인을 위해서 그리했네요. 물론 그 행동이 해고당한 나의 처신을 위한 것이긴 했어요. 그래도 부자는 재물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자신이 해고한 청지기를 칭찬한 거죠. 여기까지는 우리 충분히 이해할 수 있잖아요. 이어지는 9절부터는 이 비유를 적용하는 구절들입니다. 먼저 9절입니다. 9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 그래서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여기에서 조심하셔야 할 것. “불의한 재물”을 더러운 재물이라고 이해하지 마세요. 몇 주 전,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세관장 삭개오를 우리 만났잖아요. 세관장은 세리들에게 일정 부분의 돈을 받죠. 세리는 백성에게 세금을 받죠. 이 세리들이 원래 받아야 할 세금보다 많은 돈을 백성에게 뜯어냈거든요. 그렇게 자기 배 채우고, 남은 돈을 세관장 삭개오에게 준 거죠. 그러니 백성은 세리나 세관장이나 다 자신들의 피를 팔아먹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이라고 멸시한 거죠. 백성들 입장에서는 그들의 돈은 더러운 돈이죠. 그런데 삭개오가 그렇게 말했잖아요. 내가 공권력을 동원해 더 번 것이 있다면 네 배로 갚고, 내 재산의 절반을 나누겠다고요. 9절에서 말하는 “불의한 재물”이란 세상에서 벌어들인 모든 돈이란 뜻일 수 있어요. 우리 월급 받잖아요. 어떻게 생각하면서 받으시나요? ‘내 노동의 대가야!’, 연금 받죠? ‘내가 젊었을 때 열심히 부어 놓아서 받는 거야!’ 다 정당하다고 생각하잖아요. 자영업 하시는 분들, ‘내가 정당하게 팔아서 이윤을 남긴 거야.’ 맞아요. 정당한 대가이지요. 그런데 그 정당한 대가가, 재물이,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잖아요. 세상의 흐름을 통해 주어지는 것이잖아요. 그렇게 세상을 통해 생겨나고 주어지는 모든 재물을 의미하는 단어로 “불의한 재물”이 쓰였다고요. 그래서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세속의 제물”이라고 전합니다. “세속의 제물”로라도 친구를 사귀라는 겁니다. 청지기, 부자의 재산으로 빚을 탕감해 준 거잖아요. 그렇게 자기 사람 만들어 놓으려고요. 그들 당시 세상의 바닥을 살던 소작농들이었어요. 부자의 재산으로 청지기가 한 일은 가난한 사람들의 빚을 탕감해 준 것이잖아요. 그래서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9절의 말씀은 ‘세상에서 가진 여러분의 재물로, 여러분에게 맡겨진 것으로 어려운 이웃을 도우면서 살아가십시오.’ 이런 뜻인 겁니다. 3. 9절까지로 끝나면 그래도 어려울 것 없어요. 그런데 조금 생뚱맞은 비유에 대한 적용문이 또 등장합니다. 그래서 따로 풀어드리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10절, 11절입니다. 10 지극히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큰 일에도 충실하고, 지극히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 일에도 불의하다. 11 너희가 불의한 재물에 충실하지 못하였으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새한글성경으로 풀어드릴게요. 아주 작은 것에서 믿을 만한 사람은 큰 것에서도 믿을 만합니다. 그러나 아주 작은 것에서 올바르지 않은 사람은 큰 것에서도 올바르지 않다고요. 그러므로 올바르지 못한 재물에서 믿을 만하지 못하다면, 참된 것을 누가 그대들에게 믿고 맡길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의 것에서 믿을 만하지 못하다면, 그대들의 것을 누가 그대들에게 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불의한 재물”과 10절에 나오는 “작은 일”이 비슷하게 적용되기 때문이에요. 그저 이렇게 이해하면 쉬울 수 있어요. 가난한 사람에게 재물을 내어주는 일, 가난한 사람에게 작은 일을 하면서 섬기는 일은 11절 마지막 “참된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참된 일이 무엇일까요? 바로 ‘섬김’이란 말입니다. 우리 지난 주일 새벽의 집 가족들에게 한 일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얻은 재물로, 노력으로 섬긴 시간이었잖아요. 여러분이 섬긴 그 헌신이 각자의 삶에서 얻어진 것들로 이루어진 것이잖아요. 재물은 그렇게 사용하는 것이 옳다는 말씀입니다. 왜냐고요? 마지막 13절입니다. 13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그가 한 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 쪽을 떠받들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그 섬김의 길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새벽의 집 가족들을 섬겼지만, 그 일로 인해 우리가 섬긴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는 동안, 하나님을 섬기는 일 잊지 않고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4. 오늘 서신서 디모데전서 6장 11절에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이렇게 부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여!”라고요. 오늘 설교 제목이기도 합니다. 확인합니다. 디모데전서 6장 11절입니다. 11 하나님의 사람이여, 그대는 이 악한 것들을 피하십시오.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십시오. 악한 것을 피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쫓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지난주, 우리 은진 교우들의 섬김으로 사랑과 온유를 쫓았던 여러분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은 한편으로는 모험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싸움입니다. 모험이라 함은, 아직 눈에 확연히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향하기 때문이고, 싸움이라 함은 그러나 그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드러내기 위해 애쓰는 삶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율법의 죄의식으로 옭아매는 성전체제와 맞서 싸우셨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의 위선과 맞서 싸우셨고, 율법학자들의 권위주의와 맞서 싸우셨습니다. 초대 공동체는 로마제국의 힘을 우상화하는 현실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모험이자, 싸움입니다. 사도 바울이 12절처럼 말하는 이유입니다. 확인합니다.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십시오. 영생을 얻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그대를 부르셨고, 또 그대는 많은 증인들 앞에서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런데! 싸우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어요. 어떠한 상황에도 상대방을 악마화하거나, 제거할 적으로 삼지 말라는 겁니다. 상대방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기를 바라면서 싸워야 합니다. 미움이나 적대감이 아니라 사랑이 우리의 무기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전합니다. ‘선한’ 싸움입니다. 그러니 이 선한 싸움은 ‘사랑하면서의 싸움’입니다. 미워서 죽으라고 싸우는 게 아닙니다. 사랑하면서의 싸움입니다. 이는 나와 상대방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싸움입니다. 그런 싸움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 바로 영생입니다. 영생은 무한한 시간의 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깊은 일치’를 의미합니다. 18절, 19절입니다. 18 또 선을 행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아낌없이 베풀고, 즐겨 나누어주라고 하십시오. 19 그렇게 하여, 앞날을 위하여 든든한 기초를 스스로 쌓아서, 참된 생명을 얻으라고 하십시오.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 크리스천으로서 섬김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길이 17절 마지막 부분,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길”이 되고, 19절 “참된 생명”을 얻는 길이 될 것입니다. 5.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2025년 맥추감사주일에 우리가 주님께 감사할 일은 분명합니다. 우리가, 우리가 애써 살면서 취한 것으로, 우리와 같은 하나님의 창조물을 섬길 수 있음을 확인한 것입니다. 그 길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길임을 확인한 것입니다. 그 길을 통해 우리가 주님과 일치를 이룸을 확인한 것입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에서는 이스라엘이 모세를 버리고 우상을 선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백성들이 뭐라고 했는지 아시나요? “모세라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니 우리를 인도할 우상을 만들어 주세요.”라고 말합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사라지면 우상만이 남습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남아 있으면, 세상의 것도 주님께 소망을 두는 길이 됩니다. 세상을 열심히 살아주십시오. 그래야 함이 옳습니다. 그러면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사라지지 않도록 살아주십시오. 그것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주님이 우리 삶에 살아 숨 쉬는 일상이 되는 여러분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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