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 성령강림후 여섯째주일 | 장 본 목사 | 2025-07-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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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상의 사이즈와 화질은 500kbps, 중간화질입니다. 영상은 업로드 시 설정할 수 있습니다. . 다만, 성령강림후 여섯째주일 20250720 아모스 5:18-24 18 너희는 망한다! 주님의 날이 오기를 바라는 자들아, 왜 주님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 날은 어둡고 빛이라고는 없다. 19 사자를 피하여 도망가다가 곰을 만나거나, 집 안으로 들어가서 벽에 손을 대었다가, 뱀에게 물리는 것과 같다. 20 주님의 날은 어둡고 빛이라고는 없다. 캄캄해서, 한 줄기 불빛도 없다. 21 “나는, 너희가 벌이는 절기 행사들이 싫다. 역겹다. 너희가 성회로 모여도 도무지 기쁘지 않다. 22 너희가 나에게 번제물이나 곡식제물을 바친다 해도, 내가 그 제물을 받지 않겠다. 너희가 화목제로 바치는 살진 짐승도 거들떠보지 않겠다. 23 시끄러운 너의 노랫소리를 나의 앞에서 집어치워라! 너의 거문고 소리도 나는 듣지 않겠다. 24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 요한계시록 2:8-11 8 “서머나 교회의 심부름꾼에게 이렇게 써 보내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9 나는 네가 당한 환난과 궁핍을 알고 있다. 그런데 사실 너는 부요하다. 또 자칭 유대 사람이라는 자들에게서 네가 비방을 당하고 있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유대 사람이 아니라 사탄의 무리다. 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보아라, 악마가 너희를 시험하여 넘어뜨리려고,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감옥에다 집어넣으려고 한다. 너희는 열흘 동안 환난을 당할 것이다. 죽도록 충성하여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너에게 주겠다. 11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이기는 사람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 마가복음 13:1-13 1 예수께서 성전을 떠나가실 때에, 제자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보십시오! 얼마나 굉장한 돌입니까! 얼마나 굉장한 건물들입니까!” 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큰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3 예수께서 올리브 산에서 성전을 마주 보고 앉아 계실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따로 예수께 물었다. 4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이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이런 일들이 이루어지려고 할 때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 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는 ‘내가 그리스도다’ 하면서, 많은 사람을 속일 것이다. 7 또 너희는 여기저기에서 전쟁이 일어난 소식과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을 듣게 되어도, 놀라지 말아라. 이런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아직 끝은 아니다. 8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날 것이며, 지진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기근이 들 것이다. 이런 일들은 진통의 시작이다. 9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 사람들이 너희를 법정에 넘겨줄 것이며, 너희가 회당에서 매를 맞을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서게 되고, 그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0 먼저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한다. 11 사람들이 너희를 끌고 가서 넘겨줄 때에, 너희는 무슨 말을 할까 하고 미리 걱정하지 말아라. 무엇이든지 그 시각에 말할 것을 너희에게 지시하여 주시는 대로 말하여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성령이시다. 12 형제가 형제를 죽음에 넘겨주고, 아버지가 자식을 또한 그렇게 하고, 자식이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서 부모를 죽일 것이다. 13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서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0. 은진교회 교우들과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께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시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 서신서에는 서머나교회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서머나교회는 많은 박해를 받은 교회에요. 그래서 오늘은 그 교회의 순교자 한 분의 이야기로 말씀마당을 시작합니다. 그분의 이름은 폴리캅입니다. 역사책에는 폴리카르포스라는 이름으로 나옵니다. 교회에서는 보통 폴리캅이라고 부르죠. 이분은 서머나교회 출신 성직자입니다. 서머나교회의 주교였습니다. 뛰어난 학식, 탁월한 글솜씨, 넉넉한 인품... 당시 서머나교회 모든 사람에게 존경받는 인물이었지요. 그런데 서머나교회는 유대교의 핍박을 엄청나게 받았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러셨잖아요. 그래서 죽기까지 하셨죠. 서머나교회도 유대교의 억압 가운데 있었습니다. 하나 더 있었어요. 당시는 로마제국 시대였기에 로마의 핍박도 매우 심했답니다. 이유는 하나였어요. 로마 황제를 숭배하지 않는다는 이유였지요. 로마의 황제는 당시 신이라고 여겼거든요.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유대교조차 로마 황제를 숭배했지요. 그래야만 자신들이 살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서머나교회 교인들과 폴리캅은 달랐습니다. 폴리캅을 잡아들이기 위해, 로마는 한 노예 소년에게 매질을 하며 고문합니다. 고통을 견디다 못해 로마가 하라는 대로 폴리캅이 황제숭배 거부를 시켰다며 거짓 진술을 하게 하죠. 그것을 증거로 폴리캅에게 사형을 결정합니다. 사형 집행을 앞두고 폴리캅은 최후 진술을 통해 ‘예수님은 그리스도입니다. 여러분도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불구덩이에 던져질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사형 집행관은 폴리캅에게 황제를 향해 한 번만 주님이라고 말하면 살려주겠노라 말하죠. 폴리캅이 대답합니다. ‘내 나이 86년 동안 주님은 나를 한 번도 떠나지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주님을 바꿀 수 있겠는가?’고 대답합니다. 그는 이 말을 남기고 화형을 당합니다. 마치 소설같은 이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삶과 죽음 앞에서, 폴리캅은 죽음을 택합니다. 그런데 그 죽음은 폴리캅에게 진정한 삶이었습니다. 왜냐면 그에게 주님은 오직 예수님 한 분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에게 순교하라고 이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믿고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예수님은 목숨과도 바꿀만한 가치를 가진 분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일에 목숨걸고 이 자리에서 함께 예배하는 것이거든요. 간절히 원하기는 우리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의 마음에 예수님이 가장 소중한 믿음으로 살아 숨쉬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1.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별도의 서론없이 바로 구약의 말씀을 전합니다. 무섭습니다. 두렵습니다. 아모스 5장 18절 “너희는 망한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누구일까요? 확인합니다. 18절입니다.
18 너희는 망한다! 주님의 날이 오기를 바라는 자들아, 왜 주님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 날은 어둡고 빛이라고는 없다. 너희는 주님의 날이 오기를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날을 사모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믿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님의 날을 기다려왔습니다. 주님의 날은 메시아가 오시는 날, 구원자가 오시는 날,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그럼 아모스 예언자가 활동했던 시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주변 나라에게 고통을 받고 있었던 때이겠네요. 힘드니까 하나님께 구원의 날을 기도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 시기 이스라엘 백성은 영화로운 시기를 살고 있었습니다. 번영의 시기였지요. 물론 주변 국제정세는 위기감이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는 늘 그래왔거든요. 저 위쪽으로는 아수르 제국이 점점 영토를 확장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이스라엘은 번영의 시기였습니다. 부족할 것이 없던 때였습니다. 영광의 시기였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21절입니다. 21 나는, 너희가 벌이는 절기 행사들이 싫다. 역겹다. 너희가 성회로 모여도 도무지 기쁘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쉽게 풀면, 나는 너희의 예배가 싫다, 역겹다고 말씀합니다. 22절 제물도 받지 않고 거들떠보지도 않겠다고 하십니다. 23절 너희의 찬양도 집어치우라 하십니다. 듣지 않겠노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부족함 없이 풍요로운 시기라 말씀드렸지요.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예배와 예물을 받지 않겠다고 하시는 걸까요? 힌트는 마지막 24절에 나옵니다. 24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 ‘다만’이라고 말합니다. ‘다만’이라는 부사는 뒤에 나오는 문장을 조건으로 받을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다만’이라는 단어 뒤에 나오는 문장이 무엇인가요?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문장이 조건이라고요. 지금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너희, 이스라엘아! 너희가 나 하나님을 믿는다면 너희의 삶에는 공의가 물처럼 흘러야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해야 한다. 그런데 너희가 지금 영화로운 때를 살고 있어서인지 너희의 예배와 예물은 그저 형식에 지나지 않는구나. 난 그런 너희의 예배는 역겹다. 제물도 받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삶과 예배가 다르다고요. 삶이 예배와 동떨어져 있다고요.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서는 뒤돌아서는 자기들 살 궁리만 하고 있다고요. 그러면서 와서 예배는 드린다고요. 삶은 예배여야 한다고요. 예배드릴 때 하나님을 기억하고 찾는 것처럼,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기억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선데이 크리스천(sunday christian)’이라는 말 아시죠? 주일만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조금은 비판하며 하는 말입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이 사람이 기독교인지 아닌지 구분을 못 하겠다는 말이죠. 왜 그럴까요? 삶이 예배와 다르기에 나오는 말입니다. 삶에서 하나님을 깊이 고민하지 않기에 나오는 말입니다. 아모스 예언자는 그렇게 살면 멸망할 수 있다고 이스라엘에게 경고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주일에만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삶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공의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살아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 강물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곳곳을 흐르게 될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일상에서도 하나님을 기억하고, 주님의 공의와 정의를 기억하는 삶의 발걸음을 내디뎌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서신서의 말씀입니다. 서머나교회에 주시는 말씀이지요. 서머나라는 지역. 현재 튀르키에의 이즈미르라는 도시입니다. 튀르키에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옛날에도 그랬어요. 무역, 상업, 정치, 문화 모두 유명했던 도시였습니다. 로마제국의 치하에서 이렇게 흥했던 도시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바로 체제에 순응했다는 말입니다. 로마의 지배에 순응했다고요. 그러니 유대교조차 로마 황제숭배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했다는 말입니다. 황제숭배만 하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거든요.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에서 서머나교회의 주교 폴리캅의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황제숭배를 하지 않아 화형당하지요. 왜요? 예수를 구주로 고백한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 서머나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유대교의 박해를 받고 또 로마의 박해도 받은 거지요. 아주 멋진 도시에 있었던 교회이지만, 너무나 많은 시련을 당한 교회였습니다. 그 고통이 너무 심해서였을까요? 계시록에서도 서머나교회만큼은 칭찬을 해주십니다. 아시아 일곱 교회 그 어디보다 많은 박해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 서머나교회의 교인입니다. 그 마음 품고 계시록 2장 9-11절을 함께 읽습니다. 9 나는 네가 당한 환난과 궁핍을 알고 있다. 그런데 사실 너는 부요하다. 또 자칭 유대 사람이라는 자들에게서 네가 비방을 당하고 있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유대 사람이 아니라 사탄의 무리다. 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보아라, 악마가 너희를 시험하여 넘어뜨리려고,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감옥에다 집어넣으려고 한다. 너희는 열흘 동안 환난을 당할 것이다. 죽도록 충성하여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너에게 주겠다. 11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이기는 사람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 교우 여러분. 주님은 우리가 겪는 어려움을 모르는 분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지금 내가 걷는 길이 고난의 길이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 믿음을 “충성”이라고 전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이끄시는 분은 다름 아닌 성령님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외롭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렵지 않습니다. 중요한 사실, 주님을 떠나가지만 마십시오. 주님께 붙어있으십시오. 성령이 함께 하는 삶으로, 믿음의 삶으로 이 무더위와 세상의 어려움을 묵묵히 살아가는 교우 여러분 되어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3. 지금까지 우리는 아모스서와 계시록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묘하게 두 말씀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두 말씀이 마치 신앙의 비밀을 드러내듯이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아모스서는 신앙이, 예배와 삶이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임을 무서운 경고 속에서 비밀스럽게 드러내 주십니다. 계시록에서는 서머나교회가 겪는 박해를 통해 그것이 장차 다가올 하나님 나라의 베일을 벗기는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눈에 띄게 드러내 보이지 않습니다. 은밀하게, 비밀스럽게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이런 모습을 신학자들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성경의 묵시적 요소라고요. 묵시(默示). 비밀을 드러낸다는 말입니다. 여기 또 하나의 비밀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13장은 ‘소묵시록’이라 별칭이 붙은 장입니다. 작은 묵시록이라고요. 이전까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성전, 유대교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십니다. 성전을 나오는데 제자 한 명이 예수님에게 말합니다. ‘선생님, 보십시오! 돌들이 어마어마합니다! 건물들도 어마어마합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의 회당에서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고 나온 예수님에게 제자는 성전 건물에 눈이 팔려 저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제자에게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마가복음 13장 2절입니다. 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큰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예수님의 첫 문장은 분명, 제자를 질책하는 문장입니다. ‘당신 눈에는 건물밖에 보이지 않습니까? 당신은 이 건물 안에서 했던 내 말은 기억하지 못하나요? 이 건물요? 돌 위에 돌 하나도 쌓이지 않고 완전히 허물어지고야 말 겁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은 무너질 것 같지 않았습니다. 너무 좋은 돌, 너무 튼튼하고 높게 세워진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예수님은 무너질 것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을 마음에 품고 있던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안드레가 따로 예수님께 묻습니다. ‘예수님. 이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그 전에 어떤 징조가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첫째 속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자신이 그리스도로라고 말하는 이들이 생겨날 겁니다. 둘째 여기저기서 전쟁 소식이 들려올 겁니다. 그래도 놀라지 마세요. 아직 끝이 아니거든요. 확인합니다. 5절로 8절까지입니다. 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는 ‘내가 그리스도다’ 하면서, 많은 사람을 속일 것이다. 7 또 너희는 여기저기에서 전쟁이 일어난 소식과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을 듣게 되어도, 놀라지 말아라. 이런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아직 끝은 아니다. 8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날 것이며, 지진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기근이 들 것이다. 이런 일들은 진통의 시작이다. 마가복음 13장을 작은 묵시록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주님의 날을 비밀스럽게 보여주고 있다고요. 그날엔 스스로 구원자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그날엔 전쟁의 소식이 들려올 겁니다. 하지만 아직 아닙니다. 시작일 뿐입니다.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 9절입니다. 9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 사람들이 너희를 법정에 넘겨줄 것이며, 너희가 회당에서 매를 맞을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서게 되고, 그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스스로 조심하라 말씀하십니다. 자신 때문에 제자들이 겪을 일을 말씀해 주십니다. 매 맞고, 총독 앞에 서고, 그들 앞에서 증언하는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성전에서 제자들은 다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가 이전까지 그랬던 것처럼요. 왜일까요? 10절에 나옵니다. 먼저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가 죽을 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죽은 이후 일어날 일들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분명 예수님과 제자 사이에 제대로 된 의사소통은 아닐 겁니다. 제자들은 스승의 죽음을 모르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비밀스럽게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없는 상황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겁니다. 당시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우리는 설명을 듣고 말씀을 보니 이해할 수 있습니다. 11절입니다. 11 사람들이 너희를 끌고 가서 넘겨줄 때에, 너희는 무슨 말을 할까 하고 미리 걱정하지 말아라. 무엇이든지 그 시각에 말할 것을 너희에게 지시하여 주시는 대로 말하여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성령이시다. 예수님께서 같이 말씀해 주시면 될 텐데... 마치 없는 사람처럼 말씀하시네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예수님? 12절부터 눈으로 따라오십니다. “말은 그대들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하실 것입니다. 그래도” 13절, “모두에게 미움받을 거예요. 내 이름 때문에요. 다만, 다만, 끝까지 견뎌낸 사람, 이 사람이야말로 구원받을 겁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은 후에야 마가복음 13장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을 겁니다. 예수님이 우리 곁에 없을 것이라는 현실을 보고 나서야 이 말씀의 진짜 의미를 알았을 겁니다. 이렇게 묵시는 확연히 드러나지 않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4.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십시오. 다만, 죽기까지 충성하십시오. 죽음에 이르기까지 믿음직한 사람으로 남아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을 월계관으로 줄 것입니다. 다만, 끝까지 견뎌낸 사람, 이 사람이야말로 구원받을 것입니다. 신앙의 길, 혼자서 가는 길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길임을 믿으십시오. 성령님은 예수마저 떠난 제자들의 삶을 스승 못지않은 믿음의 삶으로 이끌어 주신 분이십니다. 그 성령과 더불어 우리의 삶을, 예배와 같이 살아주십시오. 세상에서 믿음직한 사람으로 남아 주십시오. 삶이 힘겨워도 끝까지 견뎌 주십시오. 이것이 구원의 삶임을 믿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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