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끄심을 따라... / 성령강림후 열두째주일 | 장 본 목사 | 2025-08-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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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상의 사이즈와 화질은 500kbps, 중간화질입니다. 영상은 업로드 시 설정할 수 있습니다. . 이끄심을 따라... 성령강림후 열두째주일 20250831 잠언 16:1-9 1 계획은 사람이 세우지만, 결정은 주님께서 하신다. 2 사람의 행위는 자기 눈에는 모두 깨끗하게 보이나, 주님께서는 속마음을 꿰뚫어 보신다. 3 네가 하는 일을 주님께 맡기면, 계획하는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4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그 쓰임에 알맞게 만드셨으니, 악인은 재앙의 날에 쓰일 것이다. 5 주님께서는 마음이 거만한 모든 사람을 역겨워하시니, 그들은 틀림없이 벌을 받을 것이다. 6 사람이 어질고 진실하게 살면 죄를 용서받고, 주님을 경외하면 재앙을 피할 수 있다. 7 사람의 행실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면, 그의 원수라도 그와 화목하게 하여 주신다. 8 의롭게 살며 적게 버는 것이, 불의하게 살며 많이 버는 것보다 낫다.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앞길을 계획하지만,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고린도전서 9:19-23 19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몸이지만,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20 유대 사람들에게는, 유대 사람을 얻으려고 유대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않으면서도,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을 얻으려고 율법 아래 있는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21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율법 안에서 사는 사람이지만, 율법 없이 사는 사람들을 얻으려고 율법 없이 사는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22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약한 사람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모든 것이 다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는 것입니다. 23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복음의 복에 동참하기 위함입니다. 마태복음 5:33-37 33 “옛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너는 거짓 맹세를 하지 말아야 하고, 네가 맹세한 것은 그대로 주님께 지켜야 한다’ 한 것을, 너희는 또한 들었다. 3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말아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라. 그것은 하나님의 보좌이기 때문이다. 35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라. 그것은 하나님께서 발을 놓으시는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라. 그것은 크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36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라. 너는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게 하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37 너희는 ‘예’ 할 때에는 ‘예’라는 말만 하고, ‘아니오’ 할 때에는 ‘아니오’라는 말만 하여라. 이보다 지나치는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0. 은진교회 교우들과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께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시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목사님의 고등학교 1학년 때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혜화동에 있는 경신고등학교를 다녔어요. 그 학교는 기독교학교였습니다. 매주 채플이 있었고, 국영수 외에 성경이라는 과목도 수업했었습니다. 그런 학교를 미션스쿨이라고 불렀어요. 교회에 다니는 친구는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배우는 것이 익숙했지만, 다른 종교를 갖고 있거나, 종교가 없는 친구들은 어색했던 시간들이었지요. 선택의 여지는 없었습니다. 미션스쿨이라는 이유로 전교생이 예배드리고, 성경 과목을 배웠습니다. 그 학교는 매년 봄, 전교생 신앙수련회를 했습니다. 당일로 이루어지는 수련회는 학교 근처 큰 교회에 모여 특강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이 고1 때, 봄이었습니다. 학교에서 2km 정도 떨어진 연동교회로 전교생이 걸어갑니다. 소풍도 아니고, 전교생이 천 명이 넘는데, 그 학생들이 줄지어 인도로 걸어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기대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수련회였지요. 버스로도 대략 7-8 정거장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모두 불만 가득한 얼굴을 하고 예배당에 앉았지요. 조용할 리가 없지요. 선생님들이 몽둥이를 들고 장의자 옆을 돌아다닙니다. 이내 조용해집니다. 교목 선생님의 인도로 예배를 드리고 설교자를 소개합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설교하는 목사님이 느릿느릿, 조심조심 강단에 섭니다. 교회가 커서 목사님의 모습이 잘 보이진 않았는데, 매우 왜소하고 선그라스를 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설교자 의자에서 강단까지 서는데 1분 정도는 걸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강단에 올라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미안합니다. 여러분. 제가 앞이 잘 안 보여서 여기서는 데까지 오래 걸렸네요.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그분은 시각장애인 목사님이셨습니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아요.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35년도 더 지난 일이니까요. 그런데 그 첫인사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몽둥이를 들고 다니는 선생님들을 보고도 떠들던 남학생 천여 명은 숨죽인 듯 조용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기운이 그 공간을 감쌌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제가 목사가 될 수 있었던 마음가짐을 갖게 한 제 인생의 첫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그리고 제 얼굴도 모를 그 시각장애인 목사님으로 인해 저는 그날 왠지 모를 마음에 동요를 느꼈지요. 지금도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저 주님의 이끄심이라고만 믿고 있답니다. 어린이-청소년 여러분. 여러분이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목사님처럼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일들이 삶 가운데 일어날 거에요. 그럴 때마다 겁내지 말고, 동요하지 말고 그런 일들을 잘 헤아리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1.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시각장애인 목사님을 만난 저는 이후로 여러 가지 삶을 살아왔습니다. 기계설계를 전공했고, 기타치고 노래부르면서 기독교문화운동을 했었고, 다시 신학을 전공했고, 신학대학원을 거쳐 목사 안수를 받았고, 그래도 부족할 것 같아 박사과정도 공부했습니다. 교회에서도 목회를 했고, 교단 교육기관에서도 목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교회로 돌아와 은진교회에서 여러분과 함께 행복한 2025년을 살고 있습니다. 어느 하나, 제가 계획하지 않았던 일은 없습니다. 제 인생이잖아요. 그러니 계획을 잘 세워야 했지요. 말씀드렸다시피 제 인생은 꽤 많은 폭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흔히 공돌이라고 부르죠? 기계설계 전공한 사람이 목사되는 건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지금까지 제 삶을 돌아보며 제 인생을 단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 잠언 16장 1절입니다. 1 계획은 사람이 세우지만, 결정은 주님께서 하신다. 한 문장이 더 있어요. 제 삶을 정의할 수 있는 한 문장말입니다. 9절입니다.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앞길을 계획하지만,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교우 여러분 모두... 자신의 인생을 잘 계획하며 살아가고 계시지요? 간절히 부탁합니다. 계획은 여러분이 세우지만, 그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심을 고백할 수 있는 신앙인으로 서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렇게 고백하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나의 삶을 인도하신다고 고백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잠언의 말씀을 그대로 풀어드리며 전합니다. 눈으로 2절부터 따라오십시오. 2절, 주님께서 우리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3절, 여러분이 하는 일을 주님께 맡기십시오. 그러면 계획하는 일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4절,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그 쓰임에 알맞게 만드셨으니까, 악인에 대해서는 너무 마음쓰지 마십시오. 5절, 주님 앞에서 마음을 드높이지 마십시오. 주님 앞에 꼭! 겸손하십시오. 6절, 어질고 진실하게 살아가면서, 주님을 경외하십시오. 7절, 여러분의 행실이 주님을 기쁘게 하십시오. 8절, 의롭게 살아가는 대가에 연연해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만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우리 삶은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삶이 됩니다. 9절 큰 소리로 다시 한번 읽습니다.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앞길을 계획하지만,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아멘! 2. 여기, 잠언의 고백을 몸으로 살아온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삶을 보면, 그의 삶이 주님이 이끄시는 삶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첫 번째 삶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19절입니다. 19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몸이지만,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자유로운 내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답니다. 이유는 단 하나,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요. 바울이 얻고자 했던 사람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를 알게 된 사람을 뜻합니다. 20절부터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유대 사람을 얻으려고 유대 사람같이 되었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을 얻으려고 율법 아래 있는 사람같이 되었답니다. 21절에서는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또한 그들을 얻으려고 율법 없이 사는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22절에서는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그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왜 그랬을까요? 22절 하반절에 이유가 나옵니다.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는 것입니다.”라고 스스로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 어떤 삶인지를 스스로 말하고 있습니다. 확인합니다. 23절입니다. 23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복음의 복에 동참하기 위함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리 한 겁니다. 오로지 남을 위해 개인적인 자유를 포기한 이유가 바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서였다고요.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보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 사람들은 교회 다니면서 좀 이상해진 것 같아.’라고요. 사도 바울을 보고서는 그러지 않았을까요? ‘바울은 예수에 미친 사람같아.’라고요. 예수에 미치니 삶이 예수와 동화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고 구원의 삶을 살아가니 그분의 삶을 전파하기 위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그 똑똑하고 주도면밀했던 바울이 주님 덕분에 새 삶을 살아갑니다. 바울의 변화는 바울 자신과 복음이 합해진 결과입니다. 그래서 유대 사람같이 되고, 율법 아래 있는 사람같이 되고, 약한 사람도 될 수 있는 겁니다. 교우 여러분. 한 사람의 삶이 복음과 합해지면 그 삶은 주님이 이끄는 삶이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앞서 읽었던 잠언 16장 9절을 제가 다시 읽어드립니다. 여러분은 ‘아멘’으로 응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앞길을 계획하지만,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3. 복음서의 말씀입니다. 우리 맹세합니다. 흔하게는 새끼손가락 걸고 하죠. 보통 약속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하지 않지만, 옛날에는 학교에서 월요일 아침마다 국기에 대한 맹세를 했습니다. 기억나세요? 2007년 개정된 것으로 제가 읽어 드릴게요.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30년 전만 해도 매주 외웠던 맹세입니다. 그러한 약속들을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있으니 계약서, 각서 등입니다. 다 쓰고는 서명을 하죠. 그렇게 이행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지키지 않으면 법적인 처벌을 받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런 계약의 시대에 살고 있어서인지, 신앙인들도 이상한 모습을 많이 보입니다. 자꾸 하나님과 계약을 하려고 해요. 자신이 지켜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서 맹세하려고 합니다. 지금의 시대만 그런 것이 아니에요. 이천 년 전에도 그랬습니다. 마태복음 5장 34절입니다. 3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말아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라. 그것은 하나님의 보좌이기 때문이다.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시죠. 특히 하늘을 두고 말이죠. 왜냐면 하늘은 하나님께서 거니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맹세로 더럽히지 말라는 거죠. 맹세 자체가 나쁜 건 아니죠. 다만 지키지 않을 경우, 더러워지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인 것이죠. 35절에서는 땅을 두고서도 맹세하지 말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요. 예루살렘은 성전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맹세 따위로 더럽히지 말라는 말씀이지요. 36절,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머리는 상징적인 의미이지요. 나를 걸고 맹세하지 말라는 겁니다. 왜요? 그 몸의 주인, 당신이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신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 의미를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게 또는 검게 할 수 없다고 예수님은 전하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서 말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산상설교의 일부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인 수많은 무리 앞에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 많은 사람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름으로도, 땅의 이름으로도, 너희의 이름으로도 맹세하지 말라 하십니다. 하나님을 안다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요. 그리고는 결정적인 한 말씀을 추가하십니다. 37절입니다. 37 너희는 ‘예’ 할 때에는 ‘예’라는 말만 하고, ‘아니오’ 할 때에는 ‘아니오’라는 말만 하여라. 이보다 지나치는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산상설교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설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 시작을 여덟 가지 복으로 말씀하시잖아요. 마음이 가난한 사람 복이 있다고 하시죠. 슬퍼하는 사람도, 온유한 사람도, 의에 주린 사람도, 자비한 사람도, 마음이 깨끗한 사람도, 평화를 이루는 사람도,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사람도 복이 있다 하시잖아요. 너희 모두에게 복이 있다고요. 그런데 주님 앞에서는 ‘예’와 ‘아니오’만 하라 하시네요. 하나님 나라를 쫓아 살아가는 사람은 그래야 한다고요. 하나님 나라는 진실한 사람만이, 성실한 사람만이, 하나님 앞에 내 삶을 자각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다고요. 주님 앞에서 ‘예’와 ‘아니오’만 하라는 말씀은 복종하라는 말씀도 아니고, 거역하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나의 삶을 주님이 이끌고 계신다고 인정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삶을 자각하는 사람만이 주님 앞에서, 주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오직 ‘예’와 ‘아니오’로만 대답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4. 은진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 중에는 부족함 없이 살아가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조금 지쳐있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매일매일 치열하게 살아가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우리의 삶을 주님께서 이끌고 계신다고 고백하고 있냐는 사실입니다. 그 고백이 우리 삶의 다양한 모습을 넘어, 우리를 진정한 신앙인의 길로 들어서게 합니다. 그 고백이 하나님 나라를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를 만들게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내 삶이 힘들어도, 더 힘든 이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게 합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합니다. 넉넉한 이는 더 많이 베풀어 더 많은 이들이 누리게 할 수 있습니다. 내 삶을 주님이 이끄신다고 고백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은 주님이 이끌어 주시는 것임을 기억하십시다. 이끄심을 믿고 함께 걸어가십시다. 그 길,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는 길임을 믿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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