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은진교회는... / 창조절 첫째주일 / 교회창립기념주일 | 장 본 목사 | 2025-09-07 | |||
|
|||||
|
본 영상의 사이즈와 화질은 500kbps, 중간화질입니다. 영상은 업로드 시 설정할 수 있습니다. . 은진교회는... 창조절 첫째주일 교회창립 48주년 기념주일 20250907 창세기 3:1-13 1 뱀은, 주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서 가장 간교하였다.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나님이 정말로 너희에게, 동산 안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느냐?” 2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동산 안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다. 3 그러나 하나님은,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 어기면 우리가 죽는다고 하셨다.” 4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5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6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을 슬기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서 먹고,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니, 그도 그것을 먹었다. 7 그러자 두 사람의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벗은 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엮어서, 몸을 가렸다. 8 그 남자와 그 아내는, 날이 저물고 바람이 서늘할 때에, 주 하나님이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들었다. 남자와 그 아내는 주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서,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9 주 하나님이 그 남자를 부르시며 물으셨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10 그가 대답하였다. “하나님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제가 들었습니다. 저는 벗은 몸인 것이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11 하나님이 물으셨다. “네가 벗은 몸이라고, 누가 일러주더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고 한 그 나무의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 그 남자는 핑계를 대었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짝지어 주신 여자, 그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그것을 먹었습니다.” 13 주 하나님이 그 여자에게 물으셨다. “너는 어쩌다가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여자도 핑계를 대었다. “뱀이 저를 꾀어서 먹었습니다.” 로마서 5:12-21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또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온 것과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13 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가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가 죄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14 그러나 아담 시대로부터 모세 시대에 이르기까지는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죽음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모형이었습니다. 15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때에 생긴 일은, 아담 한 사람이 범죄 했을 때에 생긴 일과 같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으나,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더욱더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16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은 한 사람의 범죄의 결과와 같지 않습니다. 한 범죄에서는 심판이 뒤따라와서 유죄 판결이 내려졌습니다마는, 많은 범죄에서는 은혜가 뒤따라와서 무죄 선언이 내려졌습니다. 17 아담 한 사람의 범죄 때문에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왕노릇 하게 되었다면, 넘치는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합니다. 18 그러니 한 사람의 범죄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아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으로 판정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이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으로 판정을 받을 것입니다. 20 율법은 범죄를 증가시키려고 끼여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나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되었습니다. 21 그것은, 죄가 죽음으로 사람을 지배한 것과 같이, 은혜가 의를 통하여 사람을 지배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6-9 6 “나를 믿는 이 작은 사람 가운데서 하나라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차라리 그 목에 큰 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 7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 때문에 세상에는 화가 있다.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을 일으키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8 “네 손이나 발이 너를 걸려 넘어지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서 내버려라. 네가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 속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손이나 발 없는 채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9 또 네 눈이 너를 걸려 넘어지게 하거든, 빼어 버려라. 네가 두 눈을 가지고 불 붙는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한 눈으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0. 은진교회 교우들과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께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시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오늘은 성찬식이 있는 관계로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과 여러분을 위한 말씀을 합하여 전해드립니다. 저의 하루일과입니다. 새벽에 일어나면 화장실에서 얼굴을 봅니다. 얼굴 한쪽에는 선명한 베개 자국, 머리에는 까치가 네댓 마리는 살 수 있을 만큼 헝클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새벽에 화장실을 가면 거울을 보기 전에 물을 틀고 얼른 머리부터 감습니다. 세수하고 로션도 바릅니다. 그 정도는 해 줘야. ‘그래! 이게 원래 내 모습이지~’라고 생각하며 흐뭇하게 미소를 짓습니다. 출근하기 위해 옷도 갖춰 입으면 정말 괜찮아 보이고, 목사같아 보이고, 그렇게 하루를 시작합니다. 요즘은 종종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문득, 내가 어느 틈에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 싶기도 하고, 없던 주름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기도 합니다. 흰 머리는 왜 이리 많이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새벽에 일어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나의 본래 모습에 가장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 보면 인위적으로 치장한 내 모습보다 푹 쉬고 난, 헝클어진 내 모습이 본래 나의 모습에 더 가까운 모습이라는 거죠. 우리는 왜 머리에 까치집을 지은 채로는 밖에 나가지 못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은 나에 대한 기준을 내가 아닌 타인의 눈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장본이라는 사람일 뿐인데 내가 나를 생각하기 앞서, 다른 이들이 생각하는 나를 떠올린다는 거죠. 분명히 내 모습, 내가 기준을 잡고, 내가 잘 조율하며 나아가면 될 텐데 어느덧 나는 없고 다른 사람이 보는 나만이 남아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모습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이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누구나 그 정도는 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이지요. 그런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어쩌면 오히려 다른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생각해 볼 대목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할 때도 나를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거죠. 대표적인 예가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은 분명히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개입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런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내가 목산데, 내가 장론데, 내가 권사, 집산데... 등등등. 우리는 하나님을 창조주라고 고백합니다. 그렇게 고백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의 모습을 온전히 다 아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형체도 없고, 어디에 계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늘 우리 가까이 계신다고 고백합니다.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다 아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두껍게 화장하고 그것도 모자라 치장에 치장을 거듭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그저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을 원하시는데 말이죠. 이렇게 반문하실 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님!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목사님 아침에 일어난 그 모습, 베개 자국 선명하고 헝클어진 머리, 넋이 나간 표정보단 세수하고 화장하고 곱게 차려입은 모습을 더 좋아하시지 않을까요?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모습이 비신앙적이라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나의 진정한 모습은 무엇인가?’ 하는 겁니다. 이 물음 앞에, 멋지게 화장하고 말끔하게 정장을 한 모습만이 진정한 우리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죠.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나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에 대한 대답을 사회 구성원으로서가 아니라, 신앙의 차원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1.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를 자라게 하셨지요. 그 나무는 두 종류였는데,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습니다. 첫 인류인 하와는 이 가운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뱀이,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어도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하자, 그 열매를 덥석 먹고 말았습니다. 창세기 2장에 보면, 이 나무에 대해서 본래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라는, 두 가지의 해설만 있어요. 그런데 3장 6절에 보니까 여자의 눈에는 이 나무가 이렇게 보였습니다. 창세기 3장 6절입니다. 6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을 슬기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서 먹고,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니, 그도 그것을 먹었다. ‘사람을 슬기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나무’로 보였다고 전합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여자는 뱀의 말을 듣고 그 열매를 먹고 말았습니다. 열매를 먹으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7절입니다. 7 그러자 두 사람의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벗은 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엮어서, 몸을 가렸다. 눈이 밝아졌답니다. 두 사람,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기 전에는 서로 벗고 있었지만, 전혀 부끄러운 줄 몰랐습니다. 아니 아무것으로 자기를 가리지 않고도, 그저 있는 그대로 모습을 드러낸다고 해서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눈이 밝아지고는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상식으로 벗은 몸이 부끄럽다는 것은 분명, 성숙하고 올바른 지식입니다. 누구도 벗은 몸으로 밖을 활보하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그런 사람은 경범죄로 처벌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나님 앞에서까지 성숙하고 올바른 지식은 아닐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서로 벗고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존재. 그게 사람과 사람의 관계, 여자와 남자의 관계, 창조물끼리의 관계였다는 거죠. 서로 벗은 몸을 보고 부끄러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데서 오는 지식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자기의 벌거벗은, 꾸미지 않은,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데서 온 결과라는 것이죠.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려고 나무 사이로 숨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데서 얻어지는 지식이라는 것이 고작, 부끄러움을 모면하려고 나무 사이에 숨는 일이었습니다. 나무 사이에 숨는다고 하나님께 들키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인간의 알량한 지식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가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그것은 소용없는 일이라는 거죠. 아침에 세수도 안 한 얼굴이 부끄럽다는 생각, 아니 좀 더 나아가서 나를 포장하거나 꾸미지 않으면 부끄러워해야 하는 사회가,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은 신앙 안에서 살아가는 성도들 사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또 우리 자녀들은 그렇게 자신을 그럴듯하게, 그리고 남들보다 더 근사하게 꾸미고 만들어가라고 교육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헝클어진 사람들을 보면서도 타인을 사랑스럽게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2. 오늘은 은진교회 창립 48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저는 매해 창립주일에 우리 교회 설립 이념을 하나씩 소개해 드리고 있습니다. 48년 전 이야기를 드리고 있는 거죠. 작년, 재작년 모두 말씀드렸었지요. 올해도 소개해 드립니다. 은진교회 창립이념 네 번째입니다. <넷째, 은진교회는 장로회 전통의 신앙유산을 귀하게 물려받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서만, 오직 성경의 말씀으로만, 오직 십자가 안에서 거저 주시는 믿음으로만 구원 얻음을 믿고 신앙의 지표로 삼는다.> 어마어마한 이념입니다. 알아야 할 것이 많아요. 장로교 전통도 알아야 합니다. 마틴 루터가 전했던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말씀’도 알아야 해요. 쉽게 설명해 드릴게요. 우리 교회가 장로회 전통에 서 있다는 말은 교우 여러분의 힘으로 교회가 움직여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목사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이 교회가 아니란 말씀입니다. 목사의 힘으로 움직이는 교회는 목사가 사라지면 끝입니다. 그런데 교우 여러분의 힘으로 움직여지는 교회는 목사가 사라져도, 목사가 바뀌어도 교회로 설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10년 만에 조직교회의 길로 가는 이유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손으로 장로를 선출한 이유입니다. 잊지 마셔야 합니다.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말씀’ 솔직하게 이건 우리 죽을 때까지 함께 공부해도 끝이 없을 만큼의 방대한 신앙의 경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미 제가 매주 설교를 통해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가? 은혜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말씀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가? 전해드리고 있잖아요. 우리가, 우리의 힘이 다할 때까지 가야 하는 길임을 뜻하는 거죠. 이제 우리 교회 네 번째 설립이념을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은진교회는 매주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은혜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면서, 교우 전체가 만들어가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어느 조직이든 설립이념이 있습니다. 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설립이념에는 그 조직이 나아갈 방향성이 정확하게 제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길로만 가면 됩니다. 중요한 건 48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온갖 풍파에 나아갈 방향성을 가리키던 나침반이 묻혀버린 거지요. 다시 그 나침반을 파헤쳐서, 잘 닦고 잘 보이는 곳이 둬야 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은 ‘아멘’으로 화답해 주십시오. <은진교회는 매주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은혜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면서 교우 전체가 만들어가는 공동체입니다.> 3. 말씀을 정리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충분합니다.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가십시다. 헝클어져 있어도 괜찮습니다. 얼굴에 베개 자국 있어도 괜찮아요. 왜냐면 헝클어진 ‘당신’을 보면서 ‘나’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감지 않은 당신의 모습에서 진정한 내 모습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에덴 동산에서의 모습이었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너를 통해 나를 볼 수 있게 되는 것 말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그래! 바로 네 모습이 나야! 내가 곧 너고!’ 이런 고백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에서 생각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나와 너를 뛰어넘는 하나의 개념, 즉 ‘우리’를 발견하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 안에서 함께 하는 인생이라는 긴 수련회를 통해서 그동안 예쁘게만 살던 내가 당신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 모습이 너와 나, 우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길입니다. 은진교회 성도 여러분. 수에 너무 연연하지 마세요. 우리 잘하고 있습니다. 잘 가고 있어요. 최선을 다해 이 교회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잊지 마세요. 함께 이 교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내 옆에 있는 당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셔야 합니다. 선악과를 먹은 인류의 대가는 책임전가였습니다. 여자가 먹으라고 그랬어요. 뱀이 먹으라고 그랬어요. 장로님이, 권사님이, 집사님이, 목사님이 그랬어요. 인류의 죄는 책임전가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창조질서를 무너뜨렸습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은진교회 창립 48주년을 맞아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그리고 우리 교회가 나아갈 방향성을 나를 통해서, 그리고 당신을 바라보며 세워가는 오늘이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