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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을 풀어내는 삶 / 창조절 셋째주일 장 본 목사 202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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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을 풀어가는 삶

 

창조절 셋째주일

남신도회주일

20250921

 

창세기 12:1-3

1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3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갈라디아서 3:1-14

1 어리석은 갈라디아 사람들이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모습이 여러분의 눈 앞에 선한데, 누가 여러분을 홀렸습니까?

2 나는 여러분에게서 이 한 가지만을 알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 성령을 받았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믿음의 소식을 들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3 여러분은 그렇게도 어리석습니까?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 와서는 육체로 끝마치려고 합니까?

4 여러분의 그 많은 체험은, 다 허사가 되었다는 말입니까? 참말로 허사였습니까?

5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시고 여러분 가운데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은 여러분이 율법을 행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믿음의 소식을 듣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이 복음을 듣고 믿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6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의로운 일로 여겨 주셨다는 것과 같습니다.

7 그러므로 믿음에서 난 사람들이야말로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여러분은 아십시오.

8 또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을 믿음에 근거하여 의롭다고 여겨 주신다는 것을 성경은 미리 알고서, 아브라함에게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하는 기쁜 소식을 미리 전하였습니다.

9 그러므로 믿음에서 난 사람들은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10 율법의 행위에 근거하여 살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저주 아래에 있습니다. 기록된 바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계속하여 행하지 않는 사람은 다 저주 아래에 있다하였습니다.

11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으로는 아무도 의롭게 되지 못한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하였기 때문입니다.

12 그러나 율법은 믿음에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율법의 일을 행하는 사람은 그 일로 살 것이다하였습니다.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사람이 되심으로써,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습니다.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는 모두 저주를 받은 자이다하였기 때문입니다.

14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복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방 사람에게 미치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약속하신 성령을 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53-59

53 “당신이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더 위대하다는 말이오? 또 예언자들도 다 죽었소. 당신은 스스로를 누구라고 생각하오?”

54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나를 영광되게 한다면, 나의 영광은 헛된 것이다. 나를 영광되게 하시는 분은 나의 아버지시다.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분이시다.

55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면, 나도 너희처럼 거짓말쟁이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를 알고 있으며, 또 그분의 말씀을 지키고 있다.

56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기대하며 즐거워하였고, 마침내 보고 기뻐하였다.”

57 유대 사람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당신은 아직 나이가 쉰도 안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다는 말이오?”

5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내가 있다.”

59 그래서 그들은 돌을 들어서 예수를 치려고 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몸을 피해서 성전 바깥으로 나가셨다.

 

 

0. 은진교회 교우들과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께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시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입니다. 퀴즈 드립니다. 오늘 세 본문 말씀 중,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름이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구약에서는 아브람, 서신서와 복음서에서는 아브라함입니다. 두 번째 문제. OX문제입니다. ‘아브람과 아브라함은 다른 사람이다.’ 하나둘셋! 정답은 X입니다. 아브람과 아브라함은 같은 사람입니다.

 

아브람은 구약에서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분입니다. 두 단어가 합쳐진 이름입니다. ‘아브이죠. ‘아브는 아버지입니다. ‘존귀한이란 뜻이에요. 그래서 아브람존귀한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오늘 구약 말씀 창세기 12장에서는 아브람이라고 나오다가 17장에 가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이름을 바꿔주십니다. 그 바뀐 이름이 아브라함이에요. 아까 아브람의 이름 뜻이 존귀한 아버지라고 했지요. 아브라함은 많은 사람의 아버지라는 뜻이랍니다. 의미가 더 넓어졌지요.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이름을 개명해 주신 이유가 있어요.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성실하게 지키면서 살았거든요. 하나님께서 그런 아브람에게 복을 주신다고 했어요. 그 복 중 하나가 이름처럼 많은 사람의 아버지, 모든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해 주신 거랍니다.

 

아마 이런 말 들어봤는지 모르겠어요.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해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고요. 그런데 목사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드릴게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그대로 살아냈기에 믿음의 조상이 되었답니다. 순종이라는 단어를 바꾸었지요?

 

순종은 순순히 따르다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순종의 다른 뜻은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산다는 뜻이랍니다.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에요. 몸으로 말씀을 살아간다고요. 어린이-청소년 여러분. 매 주일 듣는 말씀이 여러분의 삶을 살아내는 힘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 세 본문의 말씀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여러분은 아브라함에 대해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기독교인에게 아브라함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면, 열 명 중 아홉 명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라고요. 정답입니다.

 

그럼 아브라함은 어떻게 믿음의 조상이 되었을까요? 이 질문을 던지면 많은 사람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뭐 이 대답도 정답입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정리하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그 순종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게 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인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렇게 설교하면 대부분 아멘이라고 응답합니다. 그렇게 아브라함은 순종의 대명사가 되었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도 그렇게 아브라함이 자신의 조상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만약 여러분에게 이렇게 묻는다고 가정해 보죠.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맞나요? 아닌 것 같은데요?’ 제가 이렇게 물으면 여러분은 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살아왔던 사람들에게 아니라고 말해 보세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브라함입니다. 미친 사람 취급하겠죠. 그런 미친 사람 취급받던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은 먼저 복음서로 말씀여행을 떠납니다.

 

 

2. 오늘 요한복음 853절에서 유대인들이 예수에게 묻습니다. 제가 읽어 드립니다.

 

53 “당신이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더 위대하다는 말이오? 또 예언자들도 다 죽었소. 당신은 스스로를 누구라고 생각하오?”

 

질문에 날이 서 있습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당신이 더 위대하단 말이오?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는 앞에 나옵니다. 51절입니다.

 

51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의 말을 지키는 사람은 영원히 죽음을 겪지 않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예수가 예언자 흉내를 낸다고 생각했습니다. 메시아 행세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물은 겁니다. 당신이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더 위대하냐고요. 유대인들에게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54, 55절입니다.

 

54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나를 영광되게 한다면, 나의 영광은 헛된 것이다. 나를 영광되게 하시는 분은 나의 아버지시다.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분이시다.

55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면, 나도 너희처럼 거짓말쟁이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를 알고 있으며, 또 그분의 말씀을 지키고 있다.”

 

나의 아버지는 너희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그분이다. 너희는 하나님을 몰라. 하지만 난 알아. 나는 아버지를 알고 있고 그분의 말씀을 지키고 있어. 여기에 한마디를 더 하십니다. 56절입니다.

 

56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기대하며 즐거워하였고, 마침내 보고 기뻐하였다.

 

아브라함이 나 예수의 날을 보리라고 기대하며 즐거워했답니다. 그리고 기뻐했다고 전합니다. 그 오래전 죽은 아브라함이요. 자신들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요. 이 말을 듣는 유대인들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좋아요. 이 말까진 괜찮습니다. 예수를 그저 미친 사람 취급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다음 한마디가 유대인들을 폭발하게 만듭니다. 58절입니다.

 

5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내가 있다.”

 

아브라함은 자신들의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런데 예수가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대요. 그럼 유대인들은 뭐가 되는 겁니까? 유대인 입장에서는 예수의 말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고 생각하게 했지요. 그래서 59절 돌로 예수를 죽이려 했다고 성경은 전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뭐였나요? 아브라함이 유대인들의 조상이라는 사실을 부인한 거였나요? 그러진 않으셨어요. 다만 예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신 거죠. 하나님의 아들이니 아브라함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지요. 그 말을 한 겁니다. 내가, 나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요.

 

균열이 생겼습니다. 유대인들의 믿음과 신앙에 말입니다. 믿음의 조상을 아브라함이라고 믿고 살아왔는데, 서른 살 갓 넘은 젊은이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며 아브라함을 자기 아래 두는 것처럼 보입니다.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죽이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어디에도 그런 대목은 없어요. 다만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아브라함이 당신들 믿음의 조상인 건 알겠는데, 왜 아브라함이 그렇게 되었는지 아십니까?’라고요.

 

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었는지, 여러분은 아십니까? 순종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요?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분들 아닌가요? 기독교인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들 아니겠습니까? 그럼 모두 믿음의 조상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왜 오직 아브라함만을 믿음의 조상이라는 반열에 올려놓는 것일까요? 무언가 우리가 빠뜨리고 있는 것은 없는 것일까요? 이 질문을 안고 구약의 말씀으로 이어갑니다.

 

 

3. 창세기 12장은 너무나 유명한 말씀입니다. 아브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장면입니다. 아브람은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시죠.

 

1, 네가 살고 있는 땅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이 명령을 보통 지켜내기 꽤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하죠. 그동안 힘들게 가꾸어 왔던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니까요. 조상들이 묻힌 고향을 어찌 떠나나요. 그래서 많은 이가 이 어려운 일을 아브람이 한마디 불평도 없이 따랐기에, 2절과 3절처럼 되었다고 설교하지요. 기독교인이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2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3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내가 복을 주겠다.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 너를 축복하는 사람이면 내가 대신 복을 베풀겠다. 이 두 절에 복이라는 단어만 다섯 번이 나옵니다. 축복의 말씀이지요. 그래서 모든 기독교인이 좋아합니다. 복 받는다고요. , , , , ......

 

그런데 복이 이 말씀에 중요한 맥락일까요? 중요하다면 어떻게 해야 복 받는데요? 여러분 어떻게 해야 복 받는 건데요? 설명하실 수 있다면 대단한 교우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창세기 말씀으로는 어떻게 해야 복을 받을 수 있는지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오늘 본문에는 어떻게 해야 복을 받는지 나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복에 집중하여 이 말씀을 받는 순간, 이 본문은 우리에게 말씀의 의미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가장 중요한 의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3절만 다시 읽습니다.

 

3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3절 뒷 문장만 다시 한번 읽습니다.

 

3b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너로 말미암아이겁니다. 복에 치중하니까 이 말씀이 보이지 않았던 겁니다. 복은 너로 말미암아 시작되는 겁니다. 복은 당신 덕분에 시작되는 겁니다. 그저 막연한, 멀리 있는 순종이라는 관념이 복의 시작이 아닙니다. 복은 여기, 지금 하나님 앞에 있는 여기! 당신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함께 따라하십니다.

 

복은 나로부터 시작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하죠. ‘교회 잘 다니지 그랬어. 기도 좀 많이 하지 그랬어. 성경 많이 읽지 그랬어.’ 그러면 복이 굴러들어 올 것만 같았습니다. 아니오. 복은 나로부터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었던 것은 아브람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떠났고, 가는 곳마다 예배를 드렸고, 자손들이 하나님을 잊지 않게 했다는 말입니다. 아브람이 어떻게 삶을 살았는지 우리는 기억하지 못해요. 그리고 아브람이 받는 복만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복의 통로가 그저 순종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결론을 맺습니다.

 

단순히 순종이 아닙니다. 그 순종이라는 단어 하나로 생략한 아브람의 삶을 우리는 모두 풀어놓고 기억해야 합니다. 떠났고,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아 예배를 드리고, 자손들이 하나님을 잊지 않게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풀어서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겁니다.

 

나로부터 시작한 복이 어디로 갈까요? 3절 하반절 다시 보십시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으로 퍼집니다. 나로 인해서 그렇게 된다고요. 교우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복을 받을 수 있다고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몸으로 살아, 삶의 자리에서 아브라함과 같은 신앙인이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마지막 서신서의 말씀입니다. 갈라디아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방문한 지역입니다. 그때 바울이 전한 복음을 믿는 사람들로 인해 공동체가 세워졌습니다. 갈라디아는 소아시아 지역이었기에 그곳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유대 민족보다 다른 민족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이후 바울은 3차 전도여행 때 다시 갈라디아 공동체를 방문합니다. 공동체를 잘 꾸려가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바울에게 전해진 소식이 있었어요. 갈라디아 공동체에 그릇된 교리를 전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구약의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중요한데, 그중 할례를 하나님의 백성된 징표로 행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에게 할례는 필수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성이라면 어렸을 적 행하던 의식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갈라디아 공동체에는 다른 민족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잖아요. 그러니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 겁니다.

 

공동체 있던 유대인들은 할례를 받지 않은 다른 민족, 이방 사람들을 멸시하기 시작했고, 그 이방 사람들은 바울을 통해 믿었던 신앙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시작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는 겁니다. 갈라디아서 31절입니다.

 

1 어리석은 갈라디아 사람들이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모습이 여러분의 눈 앞에 선한데, 누가 여러분을 홀렸습니까?

 

바울의 화법이 참 유려합니다. 나를 통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만났는데 누가 여러분을 홀리고 있냐고 말합니다. 공동체의 어려움을 믿는 사람들에게 전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묻지요.

 

여러분은 율법을 통해 성령을 받았나요? 믿음으로 성령을 받았나요? 믿음 아니었나요?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을 행했기 때문이었나요? 믿음으로 인한 것 아니었던가요? 내가 전한 복음을 믿었기에 이 자리에 있는 것 아니었던가요? 2절부터 5절을 요약해 드린 겁니다.

 

그리고는 바울은 그 믿음을 설명하기 위해 아브라함을 소환합니다. 확인합니다. 6절입니다.

 

6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의로운 일로 여겨 주셨다는 것과 같습니다.

 

유대 사람들에게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잖아요. 그 믿음이 하나님께서 의로운 일로 인정했듯이, 여러분의 믿음으로 인해 여러분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전하고 있는겁니다. 이방 사람들에게요. 할례받지 않아 공동체 안에서 유대 사람들에게 따돌림당하는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아브라함의 이름이 많은 사람의 아버지’, ‘많은 민족의 아버지이지 않았던가요?

 

그리고 주시는 말씀입니다. 오늘의 세 본문을 연결해 주는 결정적 고리입니다. 8절입니다.

 

8 또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을 믿음에 근거하여 의롭다고 여겨 주신다는 것을 성경은 미리 알고서, 아브라함에게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하는 기쁜 소식을 미리 전하였습니다.

 

하필, 바울이 율법에서 인용한 말씀이 오늘 창세기 123, 그중에서 뒷부분 우리가 구약의 말씀에서 집중적으로 공부했던 말씀입니다.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당신들 덕분에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다. 할례받지 않은 당신들 덕분에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의롭게 하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이 되는 겁니다.

 

제가 오늘 구약의 말씀을 그렇게 풀어 드린 이유가 사도 바울 선생님께서 이렇게 증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낙담한 공동체 사람들에게 마지막 말씀을 전합니다. 14절입니다.

 

14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복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방 사람에게 미치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약속하신 성령을 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5. 말씀을 정리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 앞으로는 아브라함이 왜 믿음의 조상이 되었냐고 물었을 때, ‘순종했기 때문이에요라고만 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순종을 우리 삶에서 풀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삶을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떠났고, 가는 곳마다 예배를 드렸고, 자손마다 하나님을 잊지 않게 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으로 인해 모두가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복을 내려 주신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를 통해 다른 민족들도 하나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믿었더니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 믿음에 균열이 가지 않도록 지켜주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믿음의 삶을 살아갑니다.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요. ‘입니다. 구체적인 입니다. 같이 떠나고, 같이 예배드리고, 같이 신앙의 전승이 이어지도록 노력합니다. 삶에서요, 살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다. 바로 나로 인해 모두가 복을 받는 겁니다. 바로 우리로 인해 세상이 복을 받아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겁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은진 교우 한 사람, 한 사람이 복의 근원이 되고, 우리가 세상의 복의 근원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그저 순종이라는 단어 하나 말고 그 순종을 하나하나 풀어, 말씀으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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