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을 풀어내는 삶-실전편 / 창조절 넷째주일 | 장 본 목사 | 2025-09-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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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상의 사이즈와 화질은 500kbps, 중간화질입니다. 영상은 업로드 시 설정할 수 있습니다. . ‘순종’을 풀어내는 삶 - 실전편 창조절 넷째주일 20250928 신명기 30:1-5 1 나는 당신들에게 당신들이 받을 수 있는 모든 복과 저주를 다 말하였습니다. 이 모든 일이 다 이루어져서, 당신들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쫓아내신 모든 나라에 흩어져서 사는 동안에, 당신들의 마음에 이 일들이 생각나거든, 2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손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오늘 내가 당신들에게 명령한 주님의 모든 말씀을 순종하십시오. 3 그러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마음을 돌이키시고, 당신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포로생활에서 돌아오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을, 그 여러 민족 가운데로 흩으신 데서부터 다시 모으실 것입니다. 4 쫓겨난 당신들이 하늘 끝에 가 있을지라도,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거기에서도 당신들을 모아서 데려오실 것입니다. 5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을 당신들의 조상이 차지했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어, 당신들이 그 땅을 다시 차지하게 하실 것이며, 당신들의 조상보다 더 잘 되고 더 번성하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골로새서 1:3-8 3 우리는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항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4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해서 여러분이 품고 있는 사랑을 전해 들었습니다. 5 이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두신 소망에 근거합니다. 이 소망은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받아들일 때에 이미 들은 것입니다. 6 이 복음은 온 세상에 전해진 것과 같이, 여러분에게 전해졌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듣고서 참되게 깨달은 그날로부터, 여러분 가운데서와 같이 온 세상에서 열매를 맺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7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와 함께 종이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서 배웠습니다. 그는 여러분을 위해서 일하는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8 성령 안에서 여러분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 준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12:13-34 13 무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내 형제에게 명해서, 유산을 나와 나누라고 해주십시오.” 14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분배인으로 세웠느냐?” 15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조심하여, 온갖 탐욕을 멀리하여라. 재산이 차고 넘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거기에 달려 있지 않다.” 16 그리고 그들에게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밭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 소출을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하고 궁리하였다. 18 그는 혼자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겠다. 내 곳간을 헐고서 더 크게 짓고, 내 곡식과 물건들을 다 거기에다가 쌓아 두겠다. 19 그리고 내 영혼에게 말하겠다.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 20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21 자기를 위해서는 재물을 쌓아 두면서도,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요하지 못한 사람은 이와 같다.” 22 예수께서 [자기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고,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23 목숨은 음식보다 더 소중하고, 몸은 옷보다 더 소중하다. 24 까마귀를 생각해 보아라. 까마귀는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또 그들에게는 곳간이나 창고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먹여주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으냐? 25 너희 가운데서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제 수명을 한 순간인들 늘일 수 있느냐? 26 너희가 지극히 작은 일도 못하면서, 어찌하여 다른 일들을 걱정하느냐? 27 백합꽃이 어떻게 자라는지를 생각해 보아라. 수고도 하지 아니하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의 온갖 영화로 차려 입은 솔로몬도 이 꽃 하나만큼 차려 입지 못하였다. 28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오늘 들에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풀도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더 잘 입히지 않으시겠느냐? 29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고 찾지 말고, 염려하지 말아라. 30 이런 것은 다 이방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31 그러므로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32 두려워하지 말아라. 적은 무리여, 너희 아버지께서 그의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33 너희 소유를 팔아서,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고, 하늘에다가 없어지지 않는 재물을 쌓아 두어라. 거기에는 도둑이나 좀의 피해가 없다. 34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 0. 은진교회 교우들과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께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인사합시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입니다. 지난주 여러분에게 ‘순종’이라는 단어를 설명해 드렸습니다. 순종은 ‘순순히 따르다’라는 뜻이라고 했고요,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살아야 한다고 했지요. 머리로는 순종하기 쉬워요. 고개만 끄덕이면 되거든요. 그런데 고개 끄덕인 그 내용을 실천하는 일은 쉬운 게 아닙니다. 왜냐면 순순히 따르려고 해 보니, 끄덕였던 머리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나거든요. 아까운 마음, 귀찮은 마음, 모른척 하고 싶은 마음들이 머리에서 마구마구 떠오르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에게 순종을 몸으로 살아내는 방법을 말해 주려고 해요. 되게 간단한데, 되게 어려워요. 간단하게 생각하면 쉽게 할 수 있고요. 어렵다고 생각하면 해내기 쉽지 않을 수 있어요. 뭐냐면요. 바로 “믿음-소망-사랑”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대상, 바로 하나님을 믿으세요. 여러분 부모님 믿잖아요. 그렇게 하나님을 믿으세요. 믿으면요, 하나님께 소망을 둘 수 있게 되어요. 부모님이 여러분의 소망인 것처럼요. 그럼요. 사랑할 수 있게 된답니다. 자 이건 하나님과 나, 부모님과 나와의 관계죠. 그럼 학교로 가볼게요. 친구들 있어요. 이제 다 알죠. 누가 믿을만한 친구인지, 누가 내 험담을 하고 다니는 친구인지... 이젠 그 정도 구분은 되잖아요. 여러분이 믿는 친구들을 떠올려 보면, 그들과 함께 하는 학교생활이 즐겁지 않나요? 그 친구들 보면 내가 사는 세상 괜시리 희망이 보이지 않나요? 친하고 믿으니까 친구가 사랑스러워 보이지 않던가요? 여러분의 학교생활과 신앙생활은 거의 비슷해요. 믿어야만 소망이 보이고, 사랑할 수 있게 된답니다. 그런데 분명히 기준은 있어요. 여러분 주위에 믿을 만한 친구만 있지 않듯이 신앙생활에서 그런 기준이 있어요. 그 기준이 신앙생활에서는 바로 성경이랍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이, 교회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 가운데 커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1.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지난주 설교에서 우리는 세 본문을 통해 아브라함을 만났습니다. 강조하고 강조했던 것은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었던 이유, 바로 하나님을 향한 순종을 낱낱이 풀어서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순종을 풀어서 기억해야 한다고 말씀드린 이유는 이렇습니다. 그래야만 아브라함의 삶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도 주님 앞에 드러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순종해야 합니다’라고 말할 때 신앙이 패스트푸드처럼 간편하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잡다단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 교우만 해도 각자 삶의 자리가 모두 다릅니다. 삶의 자리가 다르다는 것은 신앙을 펼쳐가야 할 믿음의 상황도 다양하다는 뜻입니다. 그 모든 자리를 순종이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하기 어렵기에,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순종인지를 알아야만 새 시대의 신앙인으로 서갈 수 있습니다. 오늘 신명기의 말씀에도 순종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신명기 30장 2절입니다. 2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손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오늘 내가 당신들에게 명령한 주님의 모든 말씀을 순종하십시오. 순종의 대상은 주님의 모든 말씀입니다. 쉽습니다. 그런데 어렵습니다. 어디 말씀을 순종하는 삶이 현실에서 쉽기만 하던가요? 그래서 오늘도 <순종을 풀어내는 삶 - 실전편>의 말씀을 드립니다. 전제가 있습니다. 순종하기 위한 전제입니다. 이미 2절 중간에 나와 있습니다. “돌아와서”입니다. 그대들과 그대들의 아들딸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순종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새한글 성경에서는 순종이라는 단어를 “그분의 목소리를 듣도록 하십시오”라고 풉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순종입니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주님께로 돌아와야 들립니다. 역으로 돌아오지 않는 사람은 주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주님께 돌아오는 척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 사람, 아무리 순종한다고 외쳐도 진정한 순종이 아닙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들어도 귀에 담지 않고, 실상은 흘려버리는 사람들입니다. 주님께 돌아와야 한다는 전제는 그래서 중요합니다. 이미 모세는 1절에서 백성들이 받을 수 있는 복과 저주를 다 말했다 했습니다.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겁니다. 백성들은요. 우리도 말씀을 통해 주님이 주시는 복과 저주를 다 압니다. 중요한 것은 돌아서는 일입니다. 주님께로요. 그래야 주님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순종은 그다음에야 가능합니다. 2. 오늘은 복음서의 말씀을 매우 자세히 들여다볼 것입니다. 왜냐면 복음서의 말씀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님께로 돌아오는 길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5년, 주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서의 시작은 한 사람이 예수께 나아와, 자신의 형과 유산을 나누는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입니다. 부모의 유산을 나누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던 모양입니다. 형이 욕심을 부려, 동생에게 나누어 주어야 할 몫까지 독차지했는지 아니면 동생이 자기 몫에 만족할 수 없어 조금 더 차지하려고 욕심을 부렸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유산 분배 문제로 형제간에 분쟁이 생겼다는 거죠. 그런데 예수님의 답변이 동문서답입니다. 어느 편이 옳다 말씀하시지 않아요. 대신 ‘탐욕’과 관련한 질문을 제기합니다. 예수를 찾아온 사람은 눈에 보이는 현실의 공평함을 해결해 달라 했고, 예수님은 현실의 상황에서 오히려 놓치지 말아야 할 본질을 생각하라 말씀하십니다. 15절에서 예수께서는 사람의 생명이, 재산의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비유 하나를 말씀해 주시지요. 그 유명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의 중요한 뜻은 ‘부요함’에 관한 윤리적 잣대가 아닙니다. 한 사람이 풍요로움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가?’ 이것이 중심입니다. 비유에 등장하는 부자는 많은 수확을 거둬들였고 그 소출로 무엇을 해야 할지 선택해야 했습니다. 어리석은 부자라고 표현했지만, 그가 수확한 것들은 부도덕하게 얻은 것이라 속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성경은 단지 풍년을 만났고 그래서 많은 곡식을 거두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을 ‘어리석다’고 한 데는 그다음에 이어지는 태도에 있습니다. 많은 수확물을 저장하기 위해 창고를 더 확장하기로 마음먹지요. 그럴 수 있지요. 그런데 문제는 자신의 소유가 된 것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였습니다. 17절부터 19절입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 소출을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하고 궁리하였다. 18 그는 혼자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겠다. 내 곳간을 헐고서 더 크게 짓고, 내 곡식과 물건들을 다 거기에다가 쌓아 두겠다. 19 그리고 내 영혼에게 말하겠다.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 ‘내’ 소출을 쌓아 둘 곳이 없으니, ‘내가’ 이렇게 해야겠다, ‘내 곳간을 헐고서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들을 쌓아 두고’, ‘내 영혼에게’ 말하겠다. ‘내가’ 이것저것을 하겠다는 말이 다섯 번이나 나옵니다. 주어가 ‘내’가 되어 버렸습니다. 주인이 ‘내’가 되어 버렸습니다. 자신의 풍성함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는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눌 생각조차 못 합니다. 그저 자기를 위해서만 마음이 커 갈 뿐입니다. 그의 삶의 목표는 편안하게 누리며 지내는 것이었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나 외에 누군가 다른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책임감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주님께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탐욕’의 본질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오직 자신만을 위해 가지고 있는 것임을 그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돌아서지 못했으니까요. 그 많은 수확물을 허락하신 분이 누구인지, 하나님께서 왜 그런 은혜를 풍성히 주셨는지, 그것으로 이 땅에서 어떤 책임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는 관심 밖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런 그를 ‘어리석다’ 전합니다. 돌아서지 못한 사람입니다. 3. 이 사람은 왜 그것들을 쌓아 두려고만 했을까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일 겁니다. 지금 주신 은혜가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았다면, 오늘 값없이 주신 그분이, 여전히 동일한 사랑으로 필요를 채우신다는 사실을 믿었을 텐데 이미 ‘내’가 주인이 되어 있으니 그것을 믿지 못하는 겁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있어야 할 모든 것을 다 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위해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은 이 사실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서는 믿는 이가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단 한 가지라 전합니다. 31절입니다. 31 그러므로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것이 우리 삶에서 잊지 말아야 할 본질입니다. 2025년 버전,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길입니다. 우리가 그 본질을 구할 때,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현실에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채우시리라 약속하십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셨던 걸까요? 예수님은 31절에서,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시고, 32절과 33절에서는 소유를 팔아 자선을 베풀어서 하늘에 없어지지 않는 재물을 쌓으라 하십니다. 즉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은 적어도 오늘 복음서에서는 ‘나누는 삶’입니다. 어리석은 부자처럼 ‘내가, 내가, 나’만 생각하며 살지 않는 겁니다. 이웃과 연대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낮고 낮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인류를 사랑하는 책임을 생명으로 지신 그분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이것이 주님께 돌아서는 길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위로하며 격려하십니다. 확인합니다. 32절입니다. 32 두려워하지 말아라. 적은 무리여, 너희 아버지께서 그의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나눌 것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궁핍할까 염려하는 마음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신다는 것을 진심으로 신뢰하기 바랍니다. 삶의 결핍에 대한 염려 내려놓고, 주님이 구하라 하신 나라, 우리에게 주기 기뻐하시는 나라, 나눔과 사랑의 삶을 이루어가기를 소망합니다. 4. 아직 복음서 한 절이 남았습니다. 34절입니다. 34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 재물, 새한글 성경은 보물이라고 전합니다. 보물, 말 그대로 내가 귀히 여기는 것일 테니 마음이 그곳에 있는 건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역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즉 우리의 마음이 있는 곳에 보물이 있습니다. 나아가 우리 마음의 표현인 그 보물은 이웃을 구제하는 긍휼로 드러나야 하고, 구제는 곧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현재와 미래의 ‘결핍에 대한 염려’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상을 받기 위해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구제는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대상’을 위한 겁니다. 무슨 말이냐면 나눔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대상 ‘사람’ ‘생명’이 소중하기에 나누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심이 예수님에게는 자신의 생명보다 우리의 생명이 더 소중했기 때문이었음과 같은 이치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누군가를 돕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질 ‘하늘나라에서 얻는 이득’이 아니라, 그것들보다 더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 생명을 위함입니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참 많이 간과합니다. 그래서 생기는 결과가 우리의 구제를 위해, 연약한 이웃이 존재해 주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그려지곤 합니다. 누군가를 돕는 것은 내가 더 우위의 자리에서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들, 생명 자체가 하나님이 귀히 여기시는 보물이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라고, 우리에게 그 은혜 주셨으니 당연히 나누며 산다는 사실입니다. 5.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가 하늘의 창고에 보물을 쌓기를 원합니다. 그 보물은 죽음 이후 세계에서 수여될 우리 자신의 ‘어떤 이득’이 아니라, 십자가가 서 있는 바로 이 땅, 이곳에서 고난당하는 이웃을 향한 사랑의 책임, 긍휼과 자비의 마음인 것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주님께 우리를 돌아서게 합니다. 순종하게 합니다. 혹여 우리 신앙의 내용과 행동이 그들을 향한 사랑이 기초가 되지 않는다면, 또한 보물을 천국에 쌓는 것이 세상 저편, 피안의 세계에서 주어질 '어떤 이득'을 말하는 것뿐이라면, 그 보물을 쌓기 위한 그 어떤 것들도 거룩과 진리로 포장된 또 다른 탐욕의 발로일 수 있습니다. 탐욕이 아닌 사랑을 하늘에 쌓아 두십시오. 그것이 ‘소망’입니다. 그 소망이 주님께 우리를 돌아서게 합니다. 순종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있어야 할 모든 것을 다 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위해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인식하고 받아들이십시오. 바로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주님께 우리를 돌아서게 합니다. 순종하게 합니다. 공교롭게 믿음, 소망, 사랑이 모두 나오게 되었네요. 기억하며 오늘 서신서 말씀, 사도 바울이 골로새 공동체에 전하는 감사 인사, 골로새서 1장 4절과 5절을 함께 읽습니다. 4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해서 여러분이 품고 있는 사랑을 전해 들었습니다. 5 이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두신 소망에 근거합니다. 이 소망은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받아들일 때에 이미 들은 것입니다. 여기서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모두 나오네요. 믿음, 소망, 사랑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도 강조합니다. 아니 모든 서신서에서 강조합니다. 오늘 세 본문은 이렇게 믿음, 소망, 사랑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순종은 쉽지만, 어렵다 했습니다. 어려운 이유, 주님께 돌아서는 길 가운데 우리 현실이 너무 분주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내 마음이 다른 데 있어 그럴 수도 있습니다. 세상살이 소망이 보이지 않아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물은 멀리 있는 것 아닌 의외로 우리 곁에 있음을 성서는 전합니다. 사랑의 마음 펼치십시다. 믿음의 굳건함 유지하십시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십시다. 이것이 우리를 늘 주님을 향해 돌아서게 하는 길이 됨을 기억하십시다. 그 마음으로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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