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말씀선포

  • 홈 >
  • 예배와 말씀 >
  • 이 주의 말씀선포
이 주의 말씀선포
그대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나요? / 창조절 다섯째주일 / 한가위감사주일 장 본 목사 2025-10-05
  • 추천 0
  • 댓글 0
  • 조회 25

http://eunjin.onmam.com/bbs/bbsView/101/6567568

.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이번 주 설교 음성파일은 올려드리지 못합니다.

 

그대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나요?

 

창조절 다섯째주일

한가위감사주일

20251005

 

마태복음 16:13-23 / 새한글성경

13 예수님이 필립의 카이사레아의 여러 지역으로 가셔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나요?”

14 제자들이 대답했다. “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엘리야라고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예레미야이거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으신다. “그러면 그대들, 그대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나요?”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했다. “선생님이야말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드님이십니다.”

17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대답하셨다. “그대는 복 있습니다! 시몬 바르요나! 그대에게 이것을 드러내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내 아버지, 곧 하늘에 계신 분이십니다.

18 나도 역시 그대에게 말합니다. 그대야말로 베드로(바위)입니다. 이 바위 위에 나의 교회를 세울 것입니다. 하데스의 문들이 교회를 힘으로 누르지 못할 겁니다.

19 그대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들을 줄 겁니다. 그대가 무엇이든 땅에서 묶어 두면 하늘에서도 묶여 있을 겁니다. 또 그대가 무엇이든 땅에서 풀어 두면 하늘에서도 풀려 있을 겁니다.”

20 그때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단단히 일러, 자기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21 그때부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드러내기 시작하셨다. “내가 반드시 예루살렘으로 가야 합니다. 원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한테서 고난을 많이 겪어야 합니다. 죽임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3일째 날에는 일으킴받아 살아나야 합니다.”

22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곁으로 끌어당기고는 나무라듯 말씀드리기 시작했다. “그럴 수는 없어요, 주님! 이 일이 절대로 주님께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23 예수님이 몸을 돌리시고는 베드로에게 대답하셨다. “내 뒤로 사라져라, 사탄아! 너는 나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다. 네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에 마음을 두기 때문이다!”

 

 

0. 오늘의 두 번째 말씀입니다. 과거, 명절 풍경입니다. 요즘도 이럴까요? 20대 후반이나 30대 자녀를 둔 가정입니다. 큰 집에 모입니다. 할머니도 계시고 할아버지도 계십니다. 조카들도 모여 있고, 복작복작 댑니다. 느닷없이 친척 중 한 분이 묻습니다. ‘넌 결혼 안 하니?’

 

여기에서 결혼할 사람이 없으면 그때부터 종잡을 수 없는 분위기로 넘어갑니다. 다행히 결혼할 사람이 있네요. 이렇게 답합니다. ‘저 결혼할 사람 있어요!’ 질문을 던졌던 친척이 큰소리로 외칩니다. ‘엄마! 아빠! 여보! 동네 사람들!!! 아무개가 결혼할 사람 생겼데요.’ 그때부터 청문회가 시작됩니다.

 

몇 살이야? 직장은 어디 다니니? 학교는? 장남이래니? 장녀래니? 부모님은 뭐하시고? 키는? 연봉은? 믿는 사람이니? 등등등... 국가 고위직 청문회 하는 것 못지않게 검증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이쯤 물어봤으면 대략 결과는 나옵니다.

 

일반적으로 사귀는 친구가 동갑이거나 두세 살이 많고, 대기업에 다니며, 명문대를 나왔고, 부모님께서 현직에 계시며, 둘째 자녀쯤이고, 연봉이 한 오천 쯤되면, 거기에 키도 남녀 평균 이상이고, 잘생기거나 예쁘다는 답변이 나오면 거의 대부분, ‘어머! ! 봉잡았다 얘!’ 이렇게 나옵니다.

 

그런데 나이 차이도 많이나고, 외모도 볼품없고, 직장은 다니지만 이름 없는 작은 회사 다니고, 부모님 중 어느 분이 편찮으시고, 첫째라고 한다면, ‘! 니가 뭐가 부족해서 그런 사람 만나니?’라고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게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를 듣던 어르신 한 분이 지긋이 자녀에게 한 말씀하십니다. ‘아무개야... 너는 어떻니?’, ‘좋아요’, ‘그럼 됐다. 좋으면 됐지.’ 그렇게 신랑감, 신부감 청문회는 끝이 납니다. 어른들의 한마디로 정리가 되는 거죠.

 

가족, 친지가 결혼하는데 배우자에 대해 궁금한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물어봅니다. 그런데 물어보는 항목들을 보면 하나같이, 다 뻔한 것들입니다. 심지어 믿는 사람조차 다 물어볼 것 물어보고 나서, ‘! 그런데 교회는 다닌 대니?’ 이렇게 물을 정도니까요.

 

이 정도면 세상에서 말하는 배우자의 조건에 대한 질문은 한결같이 공통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몇 가지 이상의 조건을 충족한 사람이라면 무조건 OK, 충족 요건이 조금 낮으면 일단 보류, 충족 조건이 하나도 없으면 무조건 결사반대가 되는 거죠.

 

언젠가부터 세상의 기준은 이러한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떤 사람이 살아온 인생, 즉 삶의 과정은 무시해 버리고, 결과만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것 말이죠. 우리가 만약 평가받는 당사자가 된다면 여러분은 어떤 사람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1. 예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에게요. 밖에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나요? 질문하신 예수님, 많은 병자도 고쳐주시고, 배고픈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당시 힘 있는 사람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조차 토론으로 꼼짝하지 못하게 하신, 그래서 상당히 유명해진 예수님입니다.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세례 요한이래요, 엘리야래요, 예레미야 선지자라고 하는 사람도 있던데요.’

 

여기서 이 대답을 하는 제자들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기분 좋지 않았을까요? 내 스승이 당시 꽤 인지도 높은 세례 요한이라는 소리를 듣고, 그 유명한 엘리야, 예레미야라는 소리를 들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까요? 내 자식 대통령감이라고 칭찬받으면 싫지는 않잖아요.

 

아까 배우자에 대한 청문회. 여러분도 다 해보시거나 참여해 보신 적 있으시죠? 꼭 배우자가 아니더라도 어떤 사람에 대해 그런 식으로 평가내리는 일, 해보신 적 있으시죠? 그런데요.

 

그 사람에 대해 그렇게 청문회를 한다고 가정했을 때 과연 무엇을 알 수 있던가요? 정작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결혼할 당사자의 마음이지요. 그걸 아는 사람이 이렇게 묻는 겁니다. ‘너는 어떠니?’라고요. 이 말은 지금까지 말한 것 다 제쳐두고, ‘너는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니?’ 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달리 물으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더러 그렇게 말해? 좋아 됐고, 제자인 그대들은 나를 누구라 생각하나요? 베드로가 눈물겨운 감동적인 대답을 하지요. 16절입니다.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했다. “선생님이야말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예수님은 그대에게 누구입니까? 제가 이렇게 묻었을 때, 여러분은 내 가족 중 결혼할 배우자에 대한 청문회를 하는 것처럼 예수님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믿어야 하는 예수는 적어도 하버드 법대 정도는 나와야 하고, 있는 집안 자식에, 비주얼도 훌륭해서 연예인처럼 다니기만 해도 광채가 나는 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냐는 말씀입니다. 왜요? 내가 따라다녀야 할 사람이니까요.

 

세상이 왜 중요한 공직자를 뽑을 때 인사청문회를 여는지 아십니까? 이 정도 자리라면 적어도 어느 정도 인격과 도덕성과 경험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기에 하는 겁니다. 즉 청문회라는 것이 일정 수준의 커트라인을 정해 놓고 그 사람이 그 기준선을 넘을 수 있는 사람인지를 파악하는 거라고요.

 

예수님에 대해 사람들이 그랬다 했습니다.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라고요. 이 말은 그들 사이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 세례 요한과 엘리야와 예레미야의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정도가 되지 않으면, ‘난 당신을 따를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요. 엄청난 비약이라고 비판하실지 모릅니다만, 아니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그러합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대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나요?”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가 그렇게 대답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 베드로에게 큰 칭찬을 하십니다. 베드로는 마치 어르신이 결혼할 자녀에게 넌 어떠니?’라고 물었을 때 네 좋아요!’라고 대답하는 그 심정으로 대답한 겁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는 이런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저에게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입니다라고 고백한 것이지요. 간절히 원하기는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과 신앙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베드로가 그리스도라 고백했으니... 나도 그리스도라고 해야지!’, 그게 아니라! 내 마음 안에서 예수님께 진솔한 고백을 할 수 있는 저 좋아요...’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신앙인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 중요한 것! 고백 이후입니다. 그리스도 고백 이후 칭찬을 받은 베드로, 교회를 세우겠노라 말씀하신 예수님의 축복까지 받습니다. 베드로의 이 고백이 있고 나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받게 될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시죠. 그러자 칭찬받아서 기분이 최고조인 베드로가 나섭니다. 22절의 말씀입니다.

 

22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곁으로 끌어당기고는 나무라듯 말씀드리기 시작했다. “그럴 수는 없어요, 주님! 이 일이 절대로 주님께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쉽게 풀어드리면 주님 그런 일이 주님에게 일어나서는 안됩니다라면서 따진 겁니다. 제가 예수였다면 이 자슥, 말이라도 고맙다. 베드로야했을 겁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던 베드로였기에 예수님의 고난을 반대하는 마음은 당연합니다. 화를 내고 대들면서까지 나서는 베드로의 모습은 충신으로 비춰지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다릅니다.

 

내 뒤로 사라져라, 사탄아! 너는 나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다.”(23)

 

장도 바뀌기 전에 칭찬받던 베드로가 사탄이 되어 버립니다. 이게 어떤 이유일까요? 베드로가 순간적으로 예수님을 세상의 눈으로 바라보았다는 사실입니다. 나의 그리스도인 예수, 나를 축복해 주신 예수님은 돌아가실 수 없어! 죽어서도 안돼! 내가 따르는 예수님은 그렇게 되어서는 절대 안 돼!!! 지극히 충성스러운 이 마음이 독이 된 것입니다.

 

교회를 세움받은 베드로와 천국열쇠의 주인인 베드로, 사탄 베드로는 같은 사람이지요. 그만큼 신앙인으로 예수님을, 하나님을 향해 올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이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룩하게 사는 것, 세상 속에서 사는 것, 종이 한 장 차이도 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한가위 가운데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시는 이유는 많은 가족 친척들을 만나며 세상의 이야기만을 한 우리에게 다시 한번 거룩한 것을 생각하라는 하나님의 뜻인 줄로 믿습니다.

 

은진교회 교우 여러분! 거룩한 것을 먼저 생각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냥 살다보면 나도 결혼예정자 청문회에 참석하여 이 사람은 잘났네, 저 사람은 못났네 평가하는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한가위 연휴를 지내며 조금은 진중하게, 조금은 거룩하게, 조금은 겸손하게 내가 예수님을 진심으로 나의 구원자로 고백하는 사람이 되어 주님이 진정한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며, 내가 평생을 따를 주인 되심을 고백하는 한가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이 시대의 유월절 / 창조절 여섯째주일 사진 장 본 목사 2025.10.12 0 9
다음글 '순종'을 풀어내는 삶-실전편 / 창조절 넷째주일 사진 장 본 목사 2025.09.28 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