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왕 노릇만 하지 마세요. / 창조절 일곱째주일 / 은진 평화의 날 | 장 본 목사 | 2025-10-19 | |||
|
|||||
본 영상의 사이즈와 화질은 500kbps, 중간화질입니다. 영상은 업로드 시 설정할 수 있습니다. . 평화... 왕 노릇만 하지 마세요. 창조절 일곱째주일 은진평화의 날 20251019 누가복음 19장 37-44 37 예수께서 어느덧 올리브 산의 내리막길에 이르셨을 때에, 제자의 온 무리가 기뻐하며, 자기들이 본 모든 기적을 두고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말하였다. 38 “복되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임금님! 하늘에는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는 영광!” 39 그런데 무리 가운데 섞여 있는 바리새파 사람 몇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선생님의 제자들을 꾸짖으십시오.” 40 그러나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를 것이다.” 41 예수께서 예루살렘 가까이에 오셔서, 그 도성을 보시고 우시었다. 42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터인데! 그러나 지금 너는 그 일을 보지 못하는구나. 43 그 날들이 너에게 닥치리니, 너의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에워싸고, 너를 사면에서 죄어들어서, 44 너와 네 안에 있는 네 자녀들을 짓밟고, 네 안에 돌 한 개도 다른 돌 위에 얹혀 있지 못하게 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1.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창조절 일곱째주일이며, 우리 교회가 1980년에 제정한 ‘은진 평화의 날’입니다. 다시 확인해 드립니다. 우리 교회 지난 역사에 나온 은진 평화의 날을 제정한 이유입니다. ‘은진 평화의 날’은 남북 간 정치적, 이념적, 군사적 대결 구도를 해소하고, 남북 간 인적-물적 교류와 평화협력을 위해 교회가 할 수 있는 평화운동을 도모하고자 선포한 날입니다. 그래서 화목, 평안, 평화, 완전, 구원을 의미하는 단어, ‘샬롬’을 써서 은진 샬롬의 날, 평화의 날로 선포하게 되었지요. 작년에는 말씀 전반은 평화에 대한 강연으로, 후반은 성경으로 평화를 풀어드렸지요. 작년에 어떤 말씀 드렸는지 기억하시나요? 한강 작가님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래서 한강 작가의 저서와 그가 책에서 말하고자 했던 의미를 책 내용과 함께 설명해 드렸습니다. 이제 조금 기억나실 겁니다. 오늘도 그렇게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2025년 10월 19일, 현재 우리는 어떤 평화의 모습 앞에 서 있는가? 그리고 성경은 평화를 무엇이라고 전하고 있는가를 함께 알아가고자 합니다. 2. 은진 평화의 날은 10월 셋째주일입니다. 이때가 스웨덴 한림원에서 노벨상을 수여하는 시기와 맞물립니다. 올해는 노벨 평화상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2025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누군지 아십니까? 베네수엘라의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라는 분입니다. 그는 1967년생이고, 여성입니다. 정치인입니다. 산업공학과 경영학을 전공했고, 베네수엘라에서 가장 많이 득표한 국회의원이기도 합니다. 베네수엘라는 1999년부터 두 명의 대통령이 독재 정치를 이어온 나라입니다. 65,000%라는 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인플레이션으로 경제가 엉망진창이 된 나라이지요. 화폐 가치가 너무 떨어져 실제 지폐로 만든 종이 공예품이 나올 정도니 말 다했지요. 그런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외쳤던 정치인이 바로 마차도였습니다. 197-80년대 우리나라 야당 정치인들이 참 많이 탄압을 받았지요. 사형 선고도 받고 그랬잖아요. 마차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당은 그의 피선거권을 박탈해서 마차도를 유력 대통령 후보에서 선거권조차 없는 범죄인으로 만들어 버렸지요. 힘겹게 힘겹게 아직까지도 베네수엘라의 민주화를 위해 살고 있는 분입니다. 한림원이 밝힌 그의 평화상 수상 동기는 이렇습니다. “베네수엘라 국민의 민주적 권리를 증진하기 위한 그의 끊임없는 노력과 독재에서 민주주의로의 정의롭고 평화로운 전환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라고요. 우리가 베네수엘라 정치 상황을 잘 모르죠. 그런데 노벨 평화상을 받았으니 민주화를 위해 꽤 치열한 삶을 산 사람이구나 뭐 그 정도 생각하면 되겠지요. 그런데 수상 후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슈는 마차도가 자국의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 미국이라는 나라에 군사적, 경제적 지원을 공식 요청하고 있다는 거죠. 요즘 국제 정세에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여러 나라와 갈등에 있잖아요. 관세 때문에요. 우리나라도 그중 하나죠. 이런 상황에서 그 나라의 대통령에게 노벨상을 바친다고 인터뷰까지 했으니, 논란이 될 수밖에요. 뭐가 뭔지 모르시겠죠? 저도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노벨 평화상을 받았어요. 평화상이에요. 이 상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 사람들이 받아왔어요. 물론 마차도는 자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한 사람 맞습니다. 그런데 그 상을 받은 공을 다른 나라의 대통령에게 돌렸어요. 그 대통령은 지금 현재로만 보면, 평화와는 거리가 먼 무슨 왕 노릇하는 사람처럼 보여요. 평화는 무엇일까요? 평화가 민주주의의 추구인 것 같아 보이기도 해요. 더 나아가 많은 민주주의 국가의 경제시스템인 자본주의를 따르는 것 같아, 평화가 마치 자본주의의 추구인 듯 보이기도 해요. 뭐가 뭔지 뒤죽박죽이에요. 이것이 우리가 이 상황이 뭐가 뭔지 모르게 하는 이유입니다. 그럼 성경이 말하는 평화는 무엇일까요? 은진 평화의 날을 맞아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성서에서 말하는 평화가 무엇인지 다시 되새기는 일인 줄로 믿습니다. 누가복음으로 평화 여행을 떠납니다. 3. 그분은 왕이셨습니다. 스스로 왕이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왕이라 불렀습니다. 그분은 예수입니다. 예수를 왕이라 불렀던 사람들은 진정으로 예수님을 왕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임금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들은 왕을 환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누가복음 19장 38절입니다. 38 “복되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임금님! 하늘에는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는 영광!” 예수님은 왕이십니다. 예수님을 왕이라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평화와 영광”입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만으로도 축복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더 큰 선물이 바로 평화와 영광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는 사람은 평화롭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가정은 평화롭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교회는 평화롭습니다. 그래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많은 모자란 사람들이 자신이 왕이 되려고 합니다. 왕은 예수님인데, 자신이 왕이 되려고 하니 그곳에서는 평화가 깨집니다. 나는 왕이 아닙니다. 왕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나는 그분의 종일뿐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종과는 다릅니다. 예수님의 종된 사람은 언제나 어디서나 왕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나의 삶에 오시어 “좌정하사 다스리소서”라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 마음 속에, 하늘의 평화가 있습니다. 4. 또 하나의 선물이 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 영광”입니다. 영광은 승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역시, 세상에는 모자란 사람들이 많습니다. 승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영광이기에 사람들은 영광은 잊어버리고 이기려고만 합니다. 그래서 서로 물어뜯습니다. 내 경쟁자는 지그시 밟아줘야 합니다. 그것이 승리인 줄 압니다. 그러면서 한탄하죠.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요. 그런데 영광중에 가장 최고의 영광을 차지하는 사람은 왕이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모시는 사람입니다. 승리를 해도 그분이 승리할 것이며, 그 승리 안에 거하는 사람이 지극한 영광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 승리를 찬양하고 인정할 때 그 승리가 나의 승리가 됩니다. 곧 나의 영광이 됩니다. 38절,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임금님! 하늘에는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는 영광!”이라는 말씀의 뜻은 바로 이런 겁니다. 그런데 그 왕이신 예수님께서, 평화이신 예수님께서, 영광이신 예수님께서 울고 계십니다. 41절입니다. 41 예수께서 예루살렘 가까이에 오셔서, 그 도성을 보시고 우시었다. 왜 예수님은 우시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보신 성, 예루살렘일 것인데 그 성은 평화의 도성, 거룩한 도성, 온 유대인의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곳일 텐데, 왜 그곳에 와서 울고 계신 것일까요? 확인합니다. 42절입니다. 42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터인데! 그러나 지금 너는 그 일을 보지 못하는구나.” 평화가 깨졌습니다. 평화의 상징인 예루살렘에 평화가 사라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네 눈에 그 평화가 숨겨진 것을 모르고 있다는 말입니다. 모른 채, 아직도 그 성이 평화의 성인 줄로만, 거룩한 성인 줄로만, 마음의 고향인 줄로만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어지는 43절을 보실까요? “그 날들이 너에게 닥치리니, 너의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에워싸고, 너를 사면에서 죄어들어서” 44절, “너와 네 안에 있는 네 자녀들을 짓밟고, 네 안에 돌 한 개도 다른 돌 위에 얹혀 있지 못하게 할 것”인데...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4.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평화가 깨져있는 현실을 보신 겁니다. 이대로 가면 안 된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기가 막힌 일을 벌이게 되는 것이지요. 결국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말대로 40여 년 후, 돌 위에 돌 하나도 얹혀 있지 않은 채 멸망하게 됩니다. 평화가 깨진 것만으로도 안타까운 일일 텐데, 평화가 깨지면서 영광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왕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주시기로 약속하신 평화와 영광을 예루살렘은 받아 누리지 못하고 성전은 무너져 버렸습니다. 평화의 성이, 평화의 자리가, 영광의 자리가 모욕과 수치의 자리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이것이 입술로는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라며 소리치고는 실제로는 자기가 왕 노릇하며 예수님을 죽인 결과였습니다. 은진교회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 속에서 왕 노릇하는 이가 누구입니까? 돈요? 출세요? 명예? 권력? 편안한 노후? 우리 모두가 입술로만 ‘주님이 왕’이라고 말하면서, 나의 삶 전부를 예수님께 맡기며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인정하는 ‘척’하고 있지는 않은지, 은진 평화의 날을 맞은 우리는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왕으로 오시는 그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인생은 평화가 깨지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왕이신 예수님을 거부한 인생은 영광없는 그저 부끄러운 인생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37절 함께 읽습니다. 37 예수께서 어느덧 올리브 산의 내리막길에 이르셨을 때에, 제자의 온 무리가 기뻐하며, 자기들이 본 모든 기적을 두고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말하였다. 가장 쉬운 방법. 그 옛날 예수님을 맞이했던 제자의 온 무리가 했던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첫째 기뻐하면서, 둘째 큰 소리로, 셋째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다들 모여 찬양하는데 나만 ‘꽁’하고 있습니다. 다들 모여 기쁜데 난 옆 사람과 딴 짓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입술로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기쁘게!! 큰 소리로 찬양하십시오. 세상 모두가 나에게 손가락질해도 내가 주인으로 모시는 예수님을 기억하고 기죽지 마십시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저 예수 믿어요.’라고 하지 마십시오. 당당하고! 크게! 기쁘다고!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같은 자리에 앉아 찬양하는데 나만 기쁘지 않다면 결국 나만 손해입니다. 그래요 압니다. 이 말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지 그러기 위해선 또 되어야 하는 일이 있지요. 그래야 기쁘고, 그래야 찬양이 터져 나올 테니까요. 그래서 믿는 사람들은 주님의 역사에 민감하고 예민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를 보아야 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모든 삶에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바로 주님의 동행하심을 느껴야 합니다. 별지로 나눠드린 악보 있지요? 평화의 노래입니다. 몰라도 크게 찬양합시다. 기쁘게 찬양해 봅시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 노래 / 평화는 아침에 피어난 꽃처럼 오리니
평화는 아침의 꽃처럼 옵니다. 평화는 우리의 눈물 가운데 옵니다. 바람처럼 옵니다. 우리가 평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그분을 왕으로 모시지 못한 까닭입니다. 내가 왕 노릇하려고 했기에, 권력이 왕 노릇하려고 했기에, 세상이 왕 노릇하려고 했기에 내 삶에, 이 세상에 평화가 깨지고 영광이 사라지는 겁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이 시간,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다시 한번 자리매김하는 오늘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럴 때 내 삶과 우리 교회와 이 나라에 하늘의 평화가 가득하고, 지극한 영광이 넘쳐나는 이 시대의 예루살렘 성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