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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우리의 그리스도 / 창조절 아홉째주일 | 장 본 목사 | 2025-11-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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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상의 사이즈와 화질은 500kbps, 중간화질입니다. 영상은 업로드 시 설정할 수 있습니다. . 예수, 우리의 그리스도 창조절 아홉째주일 20251026 사무엘상 16:1-13 1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사울이 다시는 이스라엘을 다스리지 못하도록, 내가 이미 그를 버렸는데, 너는 언제까지 사울 때문에 괴로워할 것이냐? 너는 어서 뿔병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길을 떠나,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가거라. 내가 이미 그의 아들 가운데서 왕이 될 사람을 한 명 골라 놓았다.” 2 사무엘이 여쭈었다. “내가 어떻게 길을 떠날 수 있겠습니까? 사울이 이 소식을 들으면, 나를 죽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너는 암송아지를 한 마리 끌고 가서, 주님께 희생제물을 바치러 왔다고 말하여라. 3 그리고 이새를 제사에 초청하여라.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내가 거기에서 너에게 일러주겠다. 너는 내가 거기에서 일러주는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라.” 4 사무엘이 주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니, 그 성읍의 장로들이 떨면서 나와 맞으며 물었다. “좋은 일로 오시는 겁니까?” 5 사무엘이 대답하였다. “그렇소. 좋은 일이오. 나는 주님께 희생제물을 바치러 왔소. 여러분은 몸을 성결하게 한 뒤에, 나와 함께 제사를 드리러 갑시다.” 그런 다음에 사무엘은, 이새와 그의 아들들만은, 자기가 직접 성결하게 한 뒤에 제사에 초청하였다. 6 그들이 왔을 때에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고, 속으로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시려는 사람이 정말 주님 앞에 나와 섰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7 그러나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셨다. “너는 그의 준수한 겉모습과 큰 키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 그는 내가 세운 사람이 아니다. 나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처럼 그렇게 판단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 8 다음으로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다. 그러나 사무엘은 이 아들도 주님께서 뽑으신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 9 이번에는 이새가 삼마를 지나가게 하였으나, 사무엘은 이 아들도 주님께서 뽑으신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 10 이런 식으로 이새가 자기 아들 일곱을 모두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으나, 사무엘은 이새에게 “주님께서는 이 아들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뽑지 않으셨소” 하고 말하였다. 11 사무엘이 이새에게 “아들들이 다 온 겁니까?” 하고 물으니, 이새가 대답하였다. “막내가 남아 있기는 합니다만, 지금 양 떼를 치러 나가고 없습니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말하였다. “어서 사람을 보내어 데려오시오. 그가 이 곳에 오기 전에는 제물을 바치지 않겠소.” 12 그래서 이새가 사람을 보내어 막내 아들을 데려왔다. 그는 눈이 아름답고 외모도 준수한 홍안의 소년이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로 이 사람이다. 어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라!” 13 사무엘이 기름이 담긴 뿔병을 들고, 그의 형들이 둘러선 가운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그 날부터 계속 다윗을 감동시켰다. 사무엘은 거기에서 떠나, 라마로 돌아갔다. 사도행전 2:22-36 22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이 말을 들으십시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께서 기적과 놀라운 일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증명해 보이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여러분 가운데서 이 모든 일을 행하셨습니다. 23 이 예수께서 버림을 받으신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계획을 따라 미리 알고 계신 대로 된 일이지만, 여러분은 그를 무법자들의 손을 빌어서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24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서 살리셨습니다. 그가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25 다윗이 그를 가리켜 말하기를 ‘나는 늘 내 앞에 계신 주님을 보았다. 나를 흔들리지 않게 하시려고, 주님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기 때문이다. 26 그러므로 내 마음은 기쁘고, 내 혀는 즐거워하였다. 내 육체도 소망 속에 살 것이다. 27 주님께서 내 영혼을 지옥에 버리지 않으시며, 주님의 거룩한 분을 썩지 않게 하실 것이다. 28 주님께서 나에게 생명의 길을 알려 주셨으니, 주님의 앞에서 나에게 기쁨을 가득 채워 주실 것이다’ 하였습니다. 29 동포 여러분, 나는 조상 다윗에 대하여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는 죽어서 묻혔고, 그 무덤이 이 날까지 우리 가운데에 남아 있습니다. 30 그는 예언자이므로, 그의 후손 가운데서 한 사람을 그의 왕좌에 앉히시겠다고 하나님이 맹세하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31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미리 내다보고 말하기를 ‘그리스도는 지옥에 버려지지 않았고, 그의 육체는 썩지 않았다’ 하였습니다. 32 이 예수를 하나님께서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일의 증인입니다. 33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높이 올리셔서, 자기의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서 우리에게 부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일을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34-35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굴복시키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어라 하셨습니다.’ 36 그러므로 이스라엘 온 집안은 확실히 알아두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41-46 41 바리새파 사람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42 “너희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는 누구의 자손이냐?” 그들이 예수께 대답하였다. “다윗의 자손입니다.” 43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다윗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그를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말하기를, 44 ‘주님께서 내 주께 말씀하셨다.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굴복시킬 때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어라」’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된 일이냐? 45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그리스도가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46 그러자 아무도 예수께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했으며, 그 날부터는 그에게 감히 묻는 사람도 없었다. 1. 은진교회 교우들과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께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중요한 태도에 대해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이런 말 자주 하죠. ‘에이 이번 한 번만 봐줘.’, ‘다음부터 안 그럴게.’ ‘미안미안. 다음부터 안 늦을게.’ 실수를 했거나, 뭔가 작은 잘못을 했을 때 보통 저렇게 말합니다. 작은 일은 다 넘어가죠. 괜찮다고 말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되면, 상대방이 조금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어요. ‘일부러 저러는 것 같아.’, ‘무슨 다른 생각이 있는거 아냐?’ 이렇게요.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은 살아가면서 작은 실수들 많이 하면서 살게 될 거예요. 어른들도 그런 실수를 반복하면서 지금의 어른이 되었거든요. 점점 그런 실수를 줄여가고, 하지 않게 되고, 그러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아세요? 그 사람에 대한 믿음이 굳건해져요. 믿을만한 사람이 되는 거죠. 이게 삶을 살아가는데 꽤 중요한 거랍니다. 이런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게 있어요. 바로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어떻게 하느냐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답니다. 아무 눈에도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늘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사실 말이에요. 그럼 혼자 있을 때 하는 행동은 늘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그렇죠? 그럼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이미 답은 드린 것 같죠? 조금 어렵게 느껴지는 말씀을 드린 이유가 있어요. 어른들은 때론 ‘하나님도 모르실거야~’라고 생각하며 살 때 있거든요. 여러분은 그런 생각하지 않기를 바라며 드리는 말씀입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여러분의 삶 가운데 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마음이 아름다운 신앙인으로 커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 자기 무덤을 파는 사람들의 모습을 세 본문을 통해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주변 나라들처럼 왕을 세워달라고 졸랐지요. 사무엘이 왕은 어떤 존재인지 자세히 설명했음에도, 백성들은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에는 사무엘로 사사시대의 막을 내리고, 왕정시대가 열렸습니다. 그 첫 번째 왕이 바로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은 재임 기간, 주변 나라들과 죽도록 싸웠습니다. 매번 승리를 거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변 나라들의 왕을 선망했던 이유 ‘힘 있는 왕’, 사울은 그렇게 힘을 가진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힘을 가지게 되면, 망각의 존재가 되는 듯합니다. 그 힘이 곧 나의 힘인 줄 착각하는 존재가 바로 사람입니다. 사울은 왕이었지만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자신을 왕으로 세우신 분이 누구인지 망각했습니다. 힘을 너무 많이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신 이유를 신학적으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사울이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블레셋과 전쟁을 앞두고 사무엘이 도착하기 전에 자신이 제사를 드렸습니다. 규례에는 제사장이 아닌 왕이 하나님께 제사드릴 수는 없었거든요. 또 아멜렉과의 전쟁에서는 모두 다 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양과 소의 좋은 것들은 남겨 놓았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면서도 늘 이유를 댔습니다. 블레셋과 전쟁을 앞두고는 시간이 촉박해서 먼저 제사를 드렸노라고 말했고, 전리품을 남긴 것은 하나님께 드리고 싶어서 빼놓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현실적인 이유같고, 그럴싸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이런 이유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백성들은 이러한 변명을 듣고, 사울을 따를 수 있었겠지요. 왕이니까요. 더 큰 뜻이 있어 왕이 그리했노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조차 그렇게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우리 삶에도 이런 경우 많지 않나요? ‘주님, 이번 한 번 만요~ 주님, 오늘은 눈감아주세요. 내일부터 잘할게요. 시간이 없어서 그랬어요. 바빠서 그랬어요.’ 그래요. 우리, 삶을 살아가면서 참 바쁘고 힘겹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만큼은 타협없이 살아가는 신앙인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3. 사울을 버리신 하나님. 이미 다음 왕을 정하시고 사무엘에게 찾아가 기름을 부으라 명하십니다. 오늘 사무엘상 말씀입니다. 하지만 현직 왕이 살아있습니다. 새 왕에게 기름을 붓는 건 위험한 일입니다. 사무엘조차도 현실적인 걱정이 앞섭니다. 이 사실을 사울이 알면 자신은 죽을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베들레헴으로 직접 가서 제사를 드리면서 기름을 부으라 말씀하십니다. 베들레헴의 장로들은 사무엘이 제사를 드리러만 오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은 이새의 아들들에게 따로 직접 정결예식을 하고는 제사에 초대합니다. 이새의 아들 중, 첫째 엘리압을 보고서 사무엘은 그가 왕이 될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큰 키에 준수한 외모, 좋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다음 아들 아비나답을 불렀습니다. 그도 아니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일곱 아들 모두 지나갔습니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묻습니다. ‘혹시 빠진 아들이 더 있습니까?’, ‘막내가 있긴 한데요.’, ‘어서 데려와 보세요.’ 막내가 옵니다. 눈이 아름다운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 사람이다. 어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라!” 이 사람은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사람의 역사는, 왕정의 역사는 대부분 장자의 계보입니다. 첫째의 계보라는 뜻입니다. 둘째는 안 됩니다. 첫째여도 아들이어야 합니다. 이 말은 그 역사가 기득권자의 계보, 승자의 계보, 남성의 계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성경의 역사는 좀 다릅니다. 둘째의 계보이기도 합니다. 막내의 계보이기도 합니다. 힘없어 보이는 사람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가인의 계보가 아니라 아벨의 계보입니다. 에서가 아니라 야곱의 계보입니다. 므낫세가 아니라 에브라임의 계보입니다. 바로의 계보가 아니라 히브리 민족의 계보입니다. ‘내가 첫째인데요? 왜요? 이건 불공평한 것 아닙니까?’라고 외치는 수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입니다. 7 그러나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셨다. “너는 그의 준수한 겉모습과 큰 키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 그는 내가 세운 사람이 아니다. 나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처럼 그렇게 판단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 이 말씀은 사무엘이 장남 엘리압을 보고 그가 왕이라고 생각했을 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7절을 새한글성경으로 다시 읽어드립니다. 7 그런데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그의 겉모습과 큰 키만 눈여겨보지 마라. 내가 그를 버렸으니까. 나는 사람이 보는 것처럼 보지 않아.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을 보지만, 여호와는 마음을 보거든.” 나 주는 중심을 본다. 여호와는 마음을 본다. 그것이 하나님 섭리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약한 자의 계보가, 막내의 계보가, 둘째의 계보가 하나님의 역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얼굴이 아름답다 했습니다. 그 말을 히브리어로 찾아보면 ‘선하다’는 의미입니다. 얼굴이 아름답다는 말은 선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사람, 주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은진교회 교우 여러분! 하나님 앞에 선한 마음을 지닌 신앙인, 주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는 신앙인으로 서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4. 오늘은 복음서의 말씀을 먼저 봅니다. 지난주에 이어 생각하지 않는 죄를 범하는 사람들이 또 나옵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며 말씀이 율법이 되어 주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렸지요. 그들은 바로 바리새파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의 목적은 예수를 올무에 가두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입성 후, 성전을 정화하시고 여러 비유로 그들과 논쟁하셨습니다. 논쟁은 말로 전쟁을 벌이는 일입니다. 그래서 논리가 중요합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논리로는 당시 최고였습니다. 유대교 지도자였으니까요. 하지만 22장 앞부분에서 황제에게 바치는 세금을 두고 예수를 올무에 걸리게 하려다가 보기 좋게 당했습니다. 36절에서도 율법 중 어느 계명이 가장 중요하냐며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당하게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고 대답하십니다. 이렇게 대답하시고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묻는 예수님의 질문입니다. 마태복음 22장 42절입니다. 42 “너희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는 누구의 자손이냐?” 그들이 예수께 대답하였다. “다윗의 자손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그리스도는 누구의 자손입니까?” 그들이 대답합니다. “다윗의 자손입니다.” 그리스도. 구원자. 하나님의 섭리를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 오시는 주님. 바리새파 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정답입니다. 사무엘서에서 보셨잖아요. 이새의 막내 아들 다윗이, 사울이 왕임에도 불구하고 기름 부음을 받았잖아요.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다윗은 자신들의 조상 중 가장 위대한 왕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구원자는 다윗의 자손에서 나와야 함이 마땅합니다. 완벽한 논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게 굳건히 믿고 있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다윗이 찬양한 시편 110편 1절의 말씀을 그들에게 그대로 들려주며 반박하십니다. 확인합니다. 43, 44절입니다. 43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다윗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그를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말하기를, 44 ‘주님께서 내 주께 말씀하셨다.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굴복시킬 때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어라」’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된 일이냐? 마지막으로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에서 나온다는 바리새파 사람들의 믿음을 이 말씀으로 산산조각 내버리십니다. 45절입니다. 45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그리스도가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어떻게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 될 수 있습니까? 라고 예수님은 반문합니다. 논쟁은 끝났습니다. 논리로 벌이는 전쟁은 끝났습니다. 더는 바리새파 사람들은 대답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에게 드릴 수 있는 분명한 말씀은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마다 꼭 생각하며, 주님의 뜻을 헤아리며 읽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눈으로만 성경을 읽으면 바리새파 사람들처럼 맹목적인 믿음이 하나님의 뜻으로 둔갑해 버리고 맙니다. 막내 다윗을 하나님께서 왕으로 선택하신 섭리는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다윗의 자손에서 구원자가 나온다고 믿을 뿐입니다. 생각하는 마음 품고 서신서로 넘어갑니다. 5. 오늘 서신서의 말씀은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한 제자들은 성령의 오심을 경험하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합니다. 그 시작을 베드로가 엽니다. 베드로의 설교라 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이 말씀을 풀어드리면 설교를 다시 설교하는 것이 되겠지요. 우리 교우들과 베드로의 음성을 생생히 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별지로 새한글성경의 본문을 따로 준비해 드렸습니다. 이제부터 새한글성경으로 오늘 서신서 본문을 한 절씩 나누어 읽으며 베드로 선생님의 생생한 설교를 함께 확인해 보려고 합니다. 22절부터 마음에 받습니다. 22 이스라엘 사람들이여! 이 말들을 들으십시오. 나사렛 예수님은 하나님이 기적들과 놀라운 일들과 징표들로 여러분에게 드러내 보이신 분이십니다.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그것들을 여러분 가운데서 해 보이셨습니다. 여러분 스스로도 알고 있는 대로입니다. 23 이분을 하나님이, 정해 두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여러분에게 넘겨주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법을 모르는 사람들 손에 이분을 맡겨, 십자가에 매달아 없애 버렸습니다. 24 그러나 이분을 하나님이 다시 일으켜 살리셨습니다. 죽음의 엄청난 고통에서 풀어 주심으로써요. 이분이 죽음에 붙들려 계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25 다윗이 이분을 두고 말합니다. ‘나는 주님을 뵈었습니다, 내 앞에서 언제나! 그분이 내 오른쪽에 계셔서, 나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26 이러므로 내 마음이 즐겁고, 내 혀가 뛰놀며 기뻐했습니다. 내 몸도 희망을 품고 살아갈 것입니다. 27 주님이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니까요, 이 몸이 하데스로 내려가도록은. 주님이 허락해 주지 않으실 것이니까요, 주님께 거룩한 사람이 썩음을 겪도록은. 28 주님은 내게 알려 주셨습니다, 생명의 길을! 주님 앞에서 내게 즐거움이 가득하게 하실 것입니다.’ 29 형제자매 여러분! 먼 윗대의 조상 다윗에 대해 여러분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삶을 끝마치고 장례가 치러졌습니다. 그의 무덤이 오늘까지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30 그런데 다윗은 예언자여서, 자기 몸에서 난 자식 가운데 한 명을 임금자리에 앉혀 주시기로 하나님이 자기에게 단단히 맹세하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31 그래서 다윗은 앞일을 내다보고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두고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하데스로 내려가도록 내버려두시지 않았고, 그분의 살은 썩음을 겪지도 않았다.’ 32 이 예수님을 하나님이 일으켜 살리셨습니다. 우리야말로 모두 이 일의 증인입니다. 33 예수님이 하나님 오른쪽에 높이 올려지셨습니다. 그러고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을 아버지한테 받아서 쏟아부어 주셨습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보고 듣고 계시는 것이 바로 이 일입니다. 34 다윗은 하늘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 하나님이 내 주님에게 말씀하셨다. 「앉아 있어라, 내 오른쪽에! 35 내가 그대의 원수들을 그대의 발받침대로 삼을 때까지.」’ 36 그러므로 온 이스라엘 집안은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를 주와 그리스도로 삼으셨다는 것을요. 바로 여러분이 십자가에 매단 이 예수님을 말입니다.” 6.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 중심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진심’입니다. 마음이 아름다웠던 다윗을 장자가 아님에도 왕으로 선택하셨습니다. 마음이 아름답다는 것은 선한 마음을 지닌 사람, 하나님의 뜻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신들의 조상 다윗의 후손에서 그리스도가 나온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믿음은 구별된 선민의식에서 나오는 특권의식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세상의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선민의식, 우리만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이라는 선민의식, 우월감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 없음을 논리적으로 지적하십니다. 그리고 진정한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다시 생각해 보라 말씀합니다. 베드로는 진정한 그리스도야말로 예수였음을 오늘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막내 다윗을 선택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선택하셨음을 우리에게 확증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구원자는 누구입니까? 세상의 구원자를 두고 왜 아직까지 설왕설래를 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세상의 시선과 하나님의 시선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의 시선과 같은 선상에 두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우리의 구원자로, 우리의 그리스도로 거듭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그 고백으로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역사와 함께 하는 여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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