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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 곁에서 평화의 환호를... / 대림절 둘째주일 | 장 본 목사 | 2025-12-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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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상의 사이즈와 화질은 500kbps, 중간화질입니다. 영상은 업로드 시 설정할 수 있습니다. . 주님 곁에서 평화의 환호를... 대림절 둘째주일 20251207 스가랴 2:1-13 1 내가 고개를 들어 보니, 측량줄을 가진 사람이 하나 나타났다. 2 내가 그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그가 나에게 대답하였다. “예루살렘을 재서, 그 너비와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려고 간다.” 3 그 때에 내게 말하는 천사가 앞으로 나아가자 다른 천사가 그를 맞으려고 나아와서, 4 그에게 말하였다. “너는 저 젊은이에게 달려가서 이렇게 알려라. ‘예루살렘 안에 사람과 짐승이 많아져서, 예루살렘이 성벽으로 두를 수 없을 만큼 커질 것이다. 5 바깥으로는 내가 예루살렘의 둘레를 불로 감싸 보호하는 불 성벽이 되고, 안으로는 내가 그 안에 살면서 나의 영광을 드러내겠다. 나 주의 말이다. 6 어서 너희는 북쪽 땅에서 도망쳐 나오너라!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너희를 하늘 아래에서 사방으로 부는 바람처럼 흩어지게 하였지만, 이제는 어서 나오너라. 나 주의 말이다. 7 바빌론 도성에서 살고 있는 시온 백성아, 어서 빠져 나오너라!’” 8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나에게 영광스러운 임무를 맡기시고, 너희를 약탈한 민족에게로 나를 보내시면서 말씀하신다. ‘너희에게 손대는 자는 곧 주님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자다. 9 내가 손을 들어 그들을 치면, 그들은 저희가 부리던 종에게 노략질을 당할 것이다.’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만군의 주님께서 나를 보내셨음을 알게 될 것이다.” 10 “도성 시온아, 기뻐하며 노래를 불러라. 내가 간다. 내가 네 안에 머무르면서 살겠다. 나 주의 말이다.” 11 그 날에, 많은 이방 백성들이 주님께 와서 그의 백성이 될 것이며,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머무르시면서, 너희와 함께 사실 것이다. 그 때에야 너희는, 만군의 주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음을 알게 될 것이다. 12 주님께서는 그 거룩한 땅에서 유다를 특별한 소유로 삼으실 것이며, 예루살렘을 가장 사랑하는 도성으로 선택하실 것이다. 13 육체를 지닌 모든 사람은 주님 앞에서 잠잠하여라. 주님께서 그 거룩한 거처에서 일어나셨다! 로마서 11:25-32 25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 신비한 비밀을 알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비밀은 이러합니다. 이방 사람의 수가 다 찰 때까지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 일부가 완고해진 대로 있으리라는 것과, 26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습니다. “구원하시는 분이 시온에서 오실 것이니,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못함을 제거하실 것이다. 27 이것은 그들과 나 사이의 언약이니, 내가 그들의 죄를 없앨 때에 이루어질 것이다.” 28 복음의 관점에서 판단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러분이 잘 되라고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지만, 택하심을 받았다는 관점에서 판단하면, 그들은 조상 덕분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29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마운 선물과 부르심은 철회되지 않습니다. 30 전에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던 여러분이, 이제 이스라엘 사람의 불순종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31 이와 같이, 지금은 순종하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여러분이 받은 그 자비를 보고 회개하여, 마침내는 자비하심을 입게 될 것입니다. 32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않는 상태에 가두신 것은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9:28-40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앞장서서 걸으시며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계셨다. 29 예수께서 올리브 산이라 불리는 산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오셨을 때에, 제자 두 사람을 보내시며 30 말씀하셨다. “맞은쪽 마을로 가거라. 거기에 들어가서 보면, 아직 아무도 타 본 적이 없는 새끼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을 것이다. 그것을 풀어서 끌고 오너라. 31 혹시 누가 너희에게 왜 푸느냐고 묻거든, ‘주님께서 그것을 필요로 하십니다’ 하고 말하여라.” 32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가서 보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그대로였다. 33 그들이 새끼 나귀를 푸는데, 그 주인들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 새끼 나귀는 왜 푸는 거요?” 34 그들이 대답하였다. “주님께서 그것을 필요로 하십니다.” 35 그리고 그들이 그 새끼 나귀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옷을 나귀 등에 걸쳐 얹고서, 예수를 올라타시게 하였다. 36 예수께서 나아가시는데, 제자들이 자기들의 옷을 길에 깔았다. 37 예수께서 어느덧 올리브 산의 내리막길에 이르셨을 때에, 제자의 온 무리가 기뻐하며, 자기들이 본 모든 기적을 두고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말하였다. 38 “복되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임금님! 하늘에는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는 영광!” 39 그런데 무리 가운데 섞여 있는 바리새파 사람 몇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선생님의 제자들을 꾸짖으십시오.” 40 그러나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를 것이다.” 1. 은진교회 교우들과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께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어린이-청소년은 대부분 산타할아버지를 알죠. 12월 24일 밤, 집에 오셔서 여러분 머리 맡에 선물을 두고 가신다고 믿었죠. 신기하게 성탄절인 25일 아침, 눈을 뜨면 선물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12월 24일만 기다렸습니다. 왜냐면 평소에는 갖고 싶은 것 부모님이 잘 안 사주셨는데 크리스마스에는 갖고 싶은 선물을 꼭 주시는 거예요. 정말 신기했죠. 그 신기함이 정말 산타할아버지가 있다고 믿게 했어요. 목사님은 초등학교 5학년까지는 진짜 믿었어요.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시는 거라고요. 그 환상을 깬 건 친구들이었습니다. ‘본아! 그거 사기야. 부모님이 놔주신거라고. 산타가 어딨어?’ 엄마에게 진짜냐고 묻고는 실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도 이런 경험 있지요? 그런데요. 목사님은 지금도 산타할아버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정말 그렇게 믿어요. 그리고 그 산타할아버지가 어렸을 적, 저에게 선물을 주셨다고 생각해요. 아닌 것 알아요. 그래도 그렇게 믿고 있어요. 아니 믿고 싶어요. 그런 마음으로 그 어린 시절 기다리고 기다리던 성탄절, 그래서 저는 예수님께 딱 붙어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거든요. 주변에 아주 친한 친구 있으면, 둘이든 셋이든 딱 붙어다니잖아요? 왜요? 좋아서요. 좋으니까... 예수님에게 딱 붙어있다는 말은 내가 예수님을 정말 좋아한다는 표현이거든요. 어릴적 그 기억 덕분에 저는 지금도 예수님 곁에 딱 붙어있는 사람이 되었답니다. 어린이-청소년 여러분. 대림절은 자꾸 예수님 생각하면서, 그 예수님 곁에 어떡하면 딱 붙어있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절기랍니다. 예수님께 딱 붙어있게 되면, 여러분 삶에서 절대 외롭지 않게 되거든요. 간절히 원하기는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이 더욱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대림절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이후 70년 동안 포로 시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 바벨론도 멸망하고 이스라엘은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여기서 고향이란 예루살렘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백성의 심장과 같은 도시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 하나님이 이끄시는 곳, 하나님이 역사하는 장소가 예루살렘이었습니다. 하지만 70년 만에 돌아온 예루살렘은 폐허 그 자체였습니다. 백성들은 다시 성전을 건축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습니다. 70년 동안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부유하지 못합니다. 스가랴는 그 시기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활동했던 예언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스가랴의 환상을 통해 새역사에 관한 비전을 제시해 주십니다. 지금은 다 무너져있지만, 측량줄로 잴 수 없을 만큼 다시 회복시켜주시리라 말씀합니다. 다시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도성이 될 것이라고 전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겠다 친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입장은 이미 충분합니다. 다시 예루살렘을 세우시기로 작정하신 겁니다. 하나님의 회복과 구원의 약속 앞에서 이제 남은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행하는 일입니다. 6절과 7절입니다. 6 어서 너희는 북쪽 땅에서 도망쳐 나오너라!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너희를 하늘 아래에서 사방으로 부는 바람처럼 흩어지게 하였지만, 이제는 어서 나오너라. 나 주의 말이다. 7 바빌론 도성에서 살고 있는 시온 백성아, 어서 빠져 나오너라!’” 두 절에서 세 번에 걸쳐 사용한 단어가 있어요. “나오너라!” 도망쳐 나오고, 어서 나오고, 빠져나와야 합니다. 누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요. 나오는 일은 그들이 해야 합니다. 직접 마음먹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나와야 합니다. 빠져나와야 할 것은 이런 것들입니다. 포로 시절 지녔던 생각과 습관, 생활방식, 70년 동안 하나님을 벗어났던 가치관과 종교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습관이 아닙니다. 주일 아침이 되면, 으레 교회에 가야하는 반복하는 루틴이 아닙니다. 신앙은 매일, 매주 우리가 살아왔던 생각과 삶의 방식을 주님의 말씀에 비추어, 밝히시는 가르침에 비추어 잘 가고 있다면 감사하고, 벗어나 있다면 그 길에서 나와 제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그래서 믿음은 매일 새로워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과 우리 사람의 일이 나뉘어 있어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로 다가서는 것은 우리의 일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하나님께로 다가설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세우겠다 하시면, 우리는 그 길에 함께 서가야 하는 겁니다. 이것이 신앙이고, 믿음입니다. 스가랴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고자 했던 하나님의 말씀은 명확합니다. “내가 간다. 내가 그 땅을 거룩하게 하겠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의 차례입니다. 곧 우리의 차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 한순간도 잊지 마시고 12월 대림의 절기를 지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서신서의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을 언급할 때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이 있어요. 사도 바울의 가장 큰 업적은 바로 이방 민족에 대한 선교였다고요. 사도 바울의 모든 선교여행의 중심은 다름 아닌 이방 민족에 대한 선교였습니다. 이것을 빼고는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없습니다. 그 선교의 뿌리가 이어져 2025년 우리가 복음을 듣고 있으니까요. ‘이방 선교가 그렇게 큰 의미입니까?’라고 제게 물으신다면, 그것보다 큰 의미는 없을지 모른다고 저는 대답하겠습니다. 왜냐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과 예수의 가르침을 전 세계로 전파했으니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없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예루살렘 동네의 작은 이슈 정도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오늘 로마서 말씀은 사도 바울이 하나님을 믿게 된 이방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사람들 말이죠. 이 부분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읽어야 오늘 말씀이 더욱 밝히 드러납니다. 당시 복음을 받은 이방 사람 중에는 내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는 우월감에 빠진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바울은 25절에서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라고 완곡하게 표현합니다. 우월감을 가진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이건 만국 공통이에요. 바로 타인을 무시하는 행동입니다. 우월감이라는 것이 ‘내가 당신보다 똑똑해. 내가 당신보다 잘 났어’라는 기재를 동반하기에 그렇습니다. 우월감이 반복되면, 2주 전 배웠던 단어. 완고해집니다. 고집불통이 되어버립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녔던 왜곡된 선민의식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스라엘만 믿던 하나님을 이방 사람들도 믿게 되었는데, 이방 사람 중에 나는 하나님을 믿는데, 나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았는데, 당신은 아직도 믿지 않느냐고 말하는 이들이 생긴 겁니다. 이방 사람인데 마치 유대 사람처럼 말하고 있어요. 참 이상하고 신기하지요. 바울의 설명입니다. 귀담아 듣습니다. 28절입니다. 28 복음의 관점에서 판단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러분이 잘 되라고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지만, 택하심을 받았다는 관점에서 판단하면, 그들은 조상 덕분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의 선민의식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임을 인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으로 인해 그들이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고, 이것은 이방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결정적 이유였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30절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겁니다. 30 전에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던 여러분이, 이제 이스라엘 사람의 불순종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이든 이방 민족이든 모두 구원하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29절,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마운 선물과 부르심이며, 철회되지 않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은 이방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방 사람에게도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셨다면, 당신이 선택한 백성 이스라엘도 다시금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바울은 전합니다.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이든, 이방 사람이든 차별없는 하나님의 긍휼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리스도가 다시 우리에게 오고 계십니다. 이것을 우리는 ‘은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대림절. 기다림의 절기는 곧, 은혜의 절기임을 기억하며 살아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복음서의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서는 종려주일에 읽어야 할 말씀 같아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거든요. 호산나! 하면서 외치는 장면이잖아요. 어린 나귀를 가져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마치 각본이 짜진 대로, 예수님의 말씀대로 어린 나귀를 끌고 올 수 있게 되죠. 대본 맞습니다. 하나님의 대본말입니다. 그저 우연이 아니라, 선지자들의 예언이 예수를 통해 이루어 짐을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예정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졌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아는 이들이 예수를 바라보며, 환호성을 지른 겁니다. 새끼 나귀라도 괜찮습니다. 내 눈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았는데 저절로 환호성이 나옵니다. 38절입니다. 38 “복되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임금님! 하늘에는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는 영광!” 임금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를요. 나귀타신 분을요. 왕이란 말입니다. 당시 왕은 헤롯입니다. 또 다른 왕이 나타났습니다. 요즘 말로 치자면 쿠데타라고 표현하면 될 듯합니다. 아니 쿠데타는 힘을 가진 이들이 하는 것이니, 민중봉기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기도 합니다. 어쨌든 왕이 있는데, 다른 왕이 오고 계신다고 외쳐댑니다. 그래서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게 된 겁니다. 39절입니다. 39 그런데 무리 가운데 섞여 있는 바리새파 사람 몇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선생님의 제자들을 꾸짖으십시오.” 바리새파 사람들은 왕과는 상관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당신을 왕이라고 부르는 제자들을 꾸짖어 달라고 말합니다. 이건 예수에게 호의적인 충고가 아닙니다. 예수를 향한 경고이자, 비판이며, 위협입니다. 왜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시기 전에, 이 도시의 멸망을 예언하셨거든요. 그러니 예수가 왕이라고 받는 찬양을 내버려두면, 바리새파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멸망을 두고보는 일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고 예수의 말씀을 거역하면, 그 결과로 예루살렘이 무너지는 꼴을 인정하게 되는 거죠.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40절입니다. 40 그러나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를 것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일갈합니다. 이 사람들이 조용하면, 말못하는 돌들이 소리칠 것이라고요. 메시아로 예루살렘에 들어서는 사실을 부인하게 하려는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무엇을 위해 환호할 것인가를 이 말씀으로 되묻습니다. 당신들이 환호하고 싶은 것은 지금의 성전을 유지하고 싶은 것이 아니오? 헤롯 왕의 비호를 받아 종교 지도자로 끝없이 추앙받고자 함이 아니오? 나를 향한 백성들의 환호가 그들의 비통함으로, 그들의 원망으로, 그들의 소망으로 들리진 않소? 메시아라면 그래야 하는 것 아니겠소? 5. 말씀을 정리합니다. 대림절의 아기 예수라면 마구간을 떠올리기 십상입니다. 갓 태어난 예수님을 상상하기 마련입니다. 맞아요. 그 예수님 기다리는 절기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늘 대림절에 기다려야 할 중요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아기 예수가 이 땅에 메시아로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자로 우리에게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새끼 나귀를 타고, 바리새파 사람들의 협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힘없는 백성들의 환호를 받으며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은진교회 교우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구원하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은혜에 보답하는 길 하나 알려드립니다. 그 옛날, 초라해 보일지 모르는 새끼 나귀 타고 오시는 예수님 곁에서 “하늘에는 평화, 땅에서는 영광!”이라며 외쳤던 그 백성이 되는 겁니다. 같이 외치면 되는 겁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예수님이 평화의 왕이라고 함께 외치는 겁니다. 대림절 둘째주일입니다. 누가 뭐래도, 예수님 곁을 떠나지 마십시다. 그걸 원하는 사람들도 있고, 의도적으로 떨어트려 놓으려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예수님께 딱! 붙어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잠잠하지 마십시다. 예수님을 향해 삶의 환호성을 내지릅시다. 그리고 그 기쁨으로 세상을 살아가십시다. 저와 여러분 모두, 예수님을 향해서는 환호하되 세상을 향해서는, 이웃을 향해서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지셨던 연민의 마음, 긍휼의 마음 품고 이 대림절, 살아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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