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말씀선포

  • 홈 >
  • 예배와 말씀 >
  • 이 주의 말씀선포
이 주의 말씀선포
동방박사의 마음으로... / 성탄감사예배 장 본 목사 2025-12-25
  • 추천 0
  • 댓글 0
  • 조회 37

http://eunjin.onmam.com/bbs/bbsView/101/6591467

본 영상의 사이즈와 화질은 500kbps, 중간화질입니다. 영상은 업로드 시 설정할 수 있습니다.

.

동방박사의 마음으로...

 

성탄절

20251225

 

마태복음 2:1-12 / 신약 1

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셨다. 그런데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2 말하였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

3 헤롯 왕은 이 말을 듣고 당황하였고, 온 예루살렘 사람들도 그와 함께 당황하였다.

4 왕은 백성의 대제사장들과 율법 교사들을 다 모아 놓고서,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태어나실지를 그들에게 물어 보았다.

5 그들이 왕에게 말하였다. “유대 베들레헴입니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6 ‘너 유대 땅에 있는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가운데서 아주 작지가 않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올 것이니, 그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릴 것이다.’”

7 그 때에 헤롯은 그 박사들을 가만히 불러서, 별이 나타난 때를 캐어묻고,

8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를 샅샅이 찾아보시오.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할 생각이오.”

9 그들은 왕의 말을 듣고 떠났다. 그런데 동방에서 본 그 별이 그들 앞에 나타나서 그들을 인도해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에 이르러서, 그 위에 멈추었다.

10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무척이나 크게 기뻐하였다.

11 그들은 그 집에 들어가서, 아기가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서 그에게 경배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보물 상자를 열어서,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12 그리고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아, 다른 길로 자기 나라에 돌아갔다.

 

 

1. 은진교회 교우들과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께 주님의 인사를 전합니다. 오늘은 성탄인사로 같이 합니다. Merry Christmas!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이 조금 길어요. 여러분도 들어 보시면 매우 흥미로울 겁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영어를 아주 조금만 가르쳐 주려고 합니다. 목사님은 영어를 못해요. 그래서 아주 조금만 가르쳐 줄 수 있어요.

 

방금 우리 어떻게 인사했지요? ‘Merry Christmas!’ 좋아요.

그럼 우리 새해 인사는 어떻게 하죠? 우리 말로 하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렇죠?

그런데 새해 인사를 영어로는 어떻게 하죠? ‘Happy New Year!’

생일 축하 노래를 영어로 어떻게 시작해요? ‘Happy Birthday to You~’

 

가르쳐 줄 영어가 아니죠? 이미 다 아는 영어죠. 이제 퀴즈 나갑니다. 보세요. 새해 인사도, 생일 축하도 모두 happy로 시작해요. 그런데 왜 성탄 인사만 ‘Merry Christmas’일까요? 여러분 ‘Happy Christmas’라고 인사해 본 적 있어요? 별로 없죠.

 

왜 우리는 크리스마스만 merry를 붙일까요? 궁금해 본 적 없어요? 목사님은 해마다 이게 너무나 궁금했어요. 그래서 올해는 이것저것 찾아서 공부를 해 보았답니다. 나름 신빙성있는 가설하나를 소개해 드릴게요.

 

영국에는 아직도 왕실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국왕이 존재해요. 옛날에 유명한 여왕이 있었지요. 들어봤을 거예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라고요. 이분이 2022년에 돌아가셨는데, 이분은 성탄 인사를 전할 때, ‘Happy Christmas’라고 말했답니다. merry를 사용하지 않았어요.

 

왜 그랬냐면, 영국에서 merry라는 단어가 생긴 어원이 술에 취해 떠들썩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하면 종교적 의미보다 떠들썩한 축제의 의미가 더 강조된다고 생각한 거죠. 왕실에서는 사용하는 언어의 품격을 지키려고 했답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꼭 happy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나라에서는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하죠. merry라는 단어가 거의 표준어로 사용한 계기는 이분의 소설 때문이라고 해요. 여러분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님 다 알죠? 그 할아버지가 나오는 소설 이름이 뭔지 아세요? 크리스마스 캐럴이라는 소설입니다. 저자는 문학의 거장이라 불리는 찰스 디킨스죠.

 

뭐 이런 내용이잖아요. 스크루지 영감님이 엄청난 구두쇤데, 크리스마스 이브에 유령이 나타나서 자신의 과거-현재-미래를 보여주잖아요. 그래서 잠에서 깬 스크루지가 성탄절에 칠면조 고기랑, 선물이랑, 기부를 하면서 이렇게 외치면서 끝나는 이야기잖아요. ‘Merry Christmas’라고요.

 

찰스 디킨스는 영국의 문학가입니다. 그러니 이 이야기를 읽은 많은 사람은 merry의 의미가 나눔, 기부, 따뜻함, 사랑의 의미로 읽게 된 거죠. 그 이후로 크리스마스에는 거의 merry를 사용했다고 해요. 그럴듯한 이야기죠?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에게 merry라는 단어를 길게 설명한 이유가 있어요.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는 방향성 때문에 그래요. 메리 크리스마스는 내 앞에 있는 사람, 내 곁에 있는 사람, 내 곁은 아니지만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어려운 사람들을 향한 인사라고요.

 

그래서 우리 교회는 오늘 드리는 헌금만큼은 전액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하는 거랍니다. 그렇게 메리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실천할 때, 나에게는 비로소 해피 크리스마스가 되는 겁니다.

 

성탄절은 이웃과 함께 함으로 내가 기쁜 절기입니다. 그 의미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오셨다는 사실, 기억하는 어린이-청소년 여러분 되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1.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사설 한 대목 하기!)

 

동방박사 이야기는 유일하게 마태복음에만 나옵니다. ‘박사는 히브리어로 하카임이라고 해요. 헬라어로는 마고스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지혜 있는 사람이나 현인(賢人)을 의미합니다. 점성술이나 마법을 행하는 사람 혹은 꿈을 해석하는 사람을 뜻하기도 했어요.

 

그들이 어디에서 왔을까요? 말씀으로 확인합니다. 마태복음 21, 2절입니다.

 

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셨다. 그런데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2 말하였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

 

마태는 그들의 출신지를 동방이라고 전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에서 태어나셨잖아요. 박사들이 동방에서 왔다는 말은 그들의 출신지가 유대가 아니라 이방 지역이라는 말입니다.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그 동방이 과연 어디인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누구는 바벨론이나 페르시아라고 하고, 누구는 아라비아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는 거죠. 그 위치를 확인하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동방박사들을 구태여 이방에서 온 사람들로 써 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절로 본다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경배하러 온 사람들이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이라는 사실입니다. 더 재미있는 부분이 있어요. 마태복음 2729절과 37절을 보면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칭을 예수에게 쓴 사람들도 정작 이방인이었던 빌라도와 빌라도 휘하에 있던 병사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이유로 마태복음은 이방인의 복음서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이를 유대인이 아니라 저 밖의 사람들이 알아본다는 것! 이것은 한 마디로 모순이자 불합리한 일입니다. 여기에는 예수님을 애초부터 유대라는 울타리에 가두지 않고 온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분으로 모셔드리려는 마태의 의도가 분명히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결코 특정 사람이나 특정 집단만을 위한 분이 아니라 모든사람을 위해 오신 분이라는 것이죠.

 

 

2. 하지만 우리는 방금 말한 모순불합리의 의미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그래요. 진리가 바야흐로 모순과 불합리라는 옷을 입고 오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생명이 죽음을 통해 태어납니다.

자유는 억압의 시간과 공간을 전제합니다.

사랑은 반드시 희생을 치러야만 그 깊이가 확인되지요.

 

정작 예수님을 먼저 알아 모셔야 할 땅에서, 그래 마땅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냉대하고 시비하고 혐오하더니 결국 처형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분명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모순불합리가운데 오셨습니다.

 

모순과 불합리로 오신 예수님은 영원히 우리들의 가치를 거스르는 분으로 현재하십니다.

 

그분은,

대접을 받으려면 먼저대접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꼴지가 첫째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원수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삶 가운데 정작 우리가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무엇을 해야 하는지 일러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모순과 불합리 가운데 오셔서 세상의 가치를 거스르는 새로운 가치와 새로운 세상을 앞당겨 살고 가셨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의 눈에 모순으로 보이는 그분의 삶은 그 자체가 생명이었던 거죠. 우리가 예수님의 탄생을 고대하고 기뻐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3.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어요. 그들이 유대 땅을 찾은 목적입니다. 박사들이 유대 땅을 찾은 이유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를 경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때는 광포한 살인 정치를 일삼았던 헤롯의 치하였습니다.

 

에돔 사람과 유대인 사이의 혼혈이었던 헤롯은 정통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늘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유대에서는 베들레헴에서 통치자가 나올 것이라는 미가서의 예언도 있었지요. 그런 헤롯에게 유대인의 왕에게 경배하러 왔다고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말하니 당황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3절을 읽으며 확인합니다.

 

3 헤롯 왕은 이 말을 듣고 당황하였고, 온 예루살렘 사람들도 그와 함께 당황하였다.

 

헤롯이 대제사장들과 율법 교사들에게 묻습니다. 그들은 당시, 헤롯에 기대어 자신들의 기득권을 연명하던 사람들입니다. 5절의 대답 역시, 자신들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만 대답합니다. 예언자가 기록하였다고, 왕의 출현을 자신들이 말한 것이 아니라고 피해가는 모습이 보이잖아요.

 

반만 유대인인 헤롯, 아니 유대인이 아닌 헤롯은 조바심이 납니다. 그 조바심은 7절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박사들을 가만히 부릅니다. 조용히 불렀다고요. 캐어물었답니다. 알아야겠거든요. 유대의 왕이란 자가 태어날 장소를 말입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8절입니다.

 

8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를 샅샅이 찾아보시오.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할 생각이오.”

 

거짓말입니다. 헤롯은 그 아기에게 경배할 생각 애당초 없었습니다. 경배할 생각이었으면, 왜 조용히 불러 캐물었을까요? 온 신하에게 명령하여 그럴듯하게 찾아갔겠지요. 현직 왕의 행차이니 그럴 수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헤롯은 그 아기를, 그 사람을 죽이려 했습니다.

 

드디어 박사들은 아기에게 경배를 드립니다. 그 사람에게 경배를 드립니다. 그는 유대인의 왕입니다. 그는 예수입니다.

 

또 말씀드립니다. 동방에서 왔다 했습니다. 동방에서 유대 땅으로 왔는데, 유대의 왕 앞에서 다른 유대의 왕께 경배드리러 왔다고 말한 그들입니다. 목숨 건 거예요. 헤롯이 어떤 인간인데요?

 

게다가 선물도 가지고 옵니다. 황금, 유황, 몰약이지요. 우리 평소에 들고 다니지도 않는 물건들입니다. 한 아기 때문에, 그 사람 때문에 이날을 기다리며 그 선물을 들고 동방에서 왔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말입니다. 누가 이처럼 누군가를 간절히, 아주 간절히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4. 12절입니다.

12 그리고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아, 다른 길로 자기 나라에 돌아갔다.

 

헤롯의 의도를 꿈에서 봅니다. 죽을 운명이었던 아이의 삶이, 그 사람의 삶이 박사들의 발길에 의해 생명으로 전환하는 사건입니다.

 

박사들이 오매불망 기다린 것은 신비한 책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사람을 해방할 어떤 정치체계도 아니고,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주고도 남을 만한 금은보화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기다린 것은 어떤 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몇 번이고 크게 주목해야만 합니다.

 

왜냐면 박사들이 세상의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사람의 모든 궁극의 문제를 거머쥐고 있는 그 사람을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세상을 지으시고,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네가 어디에 있는냐?”고 찾으셨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하나님의 사람 찾기는 오늘까지도 우리를 부르시고 찾으시는 음성으로 계속됩니다.

 

일을 세우는 것도 사람이고 그 일을 그르치는 것도 사람입니다. 그래서 누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 언제나 중요한 화두가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의 탄생은 이렇게 역사를 세워 갈 사람을 기다렸던 오랜 시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이제 그분이 오셨기에 우리는 해답을 가지게 되었고, 세상에 질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6. 은진교회 교우 여러분. 사람들에게 기다림은 늘 있는 것이지만, 왕왕 그것은 피상적일 수도 있고 때로는 허황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신 것은 그분을 기다리는 애타는 심정의 주인공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침은 그저 밤이 지나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비는 단지 먹구름이 끼어서 내리는 것이 아니에요. 모든 아침 햇살과 촉촉한 비는 그것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애타는 심정 위에 내리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햇살은 찬란하고, 비는 단비가 됩니다.

 

진정으로 무엇인가를 기다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늘 지루한 일상이 있을 뿐입니다. 진정한 기다림은 반복하는 루틴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잖아요. 동박박사의 마음으로 오늘을 기립시다. 동박박사의 마음으로 예수님을 만납시다. 위험을 무릎 쓰고 그분을 찾은 동방박사의 마음으로 그분을 우리 마음에 품고 살아가십시다. 그분은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성탄절, 모든 교우 여러분 마음에 복음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세 아버지에 관한 소고(小考) / 성탄절 첫째주일 / 송년주일 사진 장 본 목사 2025.12.28 0 41
다음글 임마누엘 신앙의 정수(精髓) / 대림절 넷째주일 사진 장 본 목사 2025.12.21 1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