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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아버지에 관한 소고(小考) / 성탄절 첫째주일 / 송년주일 | 장 본 목사 | 2025-12-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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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상의 사이즈와 화질은 500kbps, 중간화질입니다. 영상은 업로드 시 설정할 수 있습니다. . 세 아버지에 관한 소고(小考) 성탄절 첫째주일 송년주일 20251228 호세아 11:1-4, 8-9 1 “이스라엘이 어린 아이일 때에, 내가 그를 사랑하여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냈다. 2 그러나 내가 부르면 부를수록, 이스라엘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갔다. 짐승을 잡아서 바알 우상들에게 희생제물로 바치며, 온갖 신상들에게 향을 피워서 바쳤지만, 3 나는 에브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었고, 내 품에 안아서 길렀다. 죽을 고비에서 그들을 살려 주었으나,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4 나는 인정의 끈과 사랑의 띠로 그들을 묶어서 업고 다녔으며, 그들의 목에서 멍에를 벗기고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렸다. 8 에브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원수의 손에 넘기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처럼 버리며, 내가 어찌 너를 스보임처럼 만들겠느냐? 너를 버리려고 하여도, 나의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구나! 너를 불쌍히 여기는 애정이 나의 속에서 불길처럼 강하게 치솟아 오르는구나. 9 아무리 화가 나도, 화나는 대로 할 수 없구나.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망시키지 않겠다. 나는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너희 가운데 있는 거룩한 하나님이다. 나는 너희를 위협하러 온 것이 아니다.” 고린도전서 1:26-31 26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을 때에, 그 처지가 어떠하였는지 생각하여 보십시오. 육신의 기준으로 보아서, 지혜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권력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가문이 훌륭한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27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셨으며,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28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비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셨으니 곧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29 이리하여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30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되시며, 의와 거룩함과 구원이 되셨습니다. 31 그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바 “누구든지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라” 한 대로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13-23 13 박사들이 돌아간 뒤에, 주님의 천사가 꿈에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헤롯이 아기를 찾아서 죽이려고 하니, 일어나서,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라. 그리고 내가 너에게 말해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14 요셉이 일어나서, 밤 사이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15 헤롯이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이것은 주님께서 예언자를 시켜서 말씀하신 바, “내가 이집트에서 내 아들을 불러냈다”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는 것이었다. 16 헤롯은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몹시 노하였다. 그는 사람을 보내어, 그 박사들에게 알아 본 때를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가까운 온 지역에 사는, 두 살짜리로부터 그 아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였다. 17 이리하여 예언자 예레미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18 “라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울부짖으며, 크게 슬피 우는 소리다.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우는데, 자식들이 없어졌으므로, 위로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19 헤롯이 죽은 뒤에, 주님의 천사가 이집트에 있는 요셉에게 꿈에 나타나서 20 말하였다. “일어나서,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거라. 그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죽었다.” 21 요셉이 일어나서,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왔다. 22 그러나 요셉은, 아켈라오가 그 아버지 헤롯을 이어서 유대 지방의 왕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 곳으로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는 꿈에 지시를 받고, 갈릴리 지방으로 물러가서, 23 나사렛이라는 동네로 가서 살았다. 이리하여 예언자들을 시켜서 말씀하신 바, “그는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1. 오늘은 2025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송년주일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옆에 있는 교우들과 이렇게 인사하며 말씀마당을 시작합니다. ‘한 해 사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인사도 전합니다. ‘내년에도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목사님 어릴 적 이야기 두 개를 여러분에게 해 드리려고 해요. 하나는 초등학교 6학년, 하나는 중학교 2학년 때 이야기랍니다. 결론은 따로 없어요. 결론은 어른들을 위한 말씀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거예요. 오늘은 끝까지 잘 한번 들어보세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입니다. 당시 아버지는 건강상의 이유로 잠시 교회를 떠나 있었습니다. 목사인데 목회를 하지 않는 아버지셨어요. 한마디로 무직 상태였습니다. 어머니께서도 교회를 돌보고, 가정을 돌보는 일 외에는 다른 직업은 없으셨어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부모님이 모두 무직 상태였지요. 가난할 수밖에 없지요.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먹고 지냈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다만 이 장면이 기억이 나요. 때마다 가정예배를 드렸습니다. 주일 오전 11시에, 주일 저녁 7시에, 수요일 저녁 7시에 꼬박꼬박 안방에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버지가 그러자 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솔직히 참 싫었어요. 왜냐면 예배 마지막 찬양 전에 온 가족이 돌아가면서 성경말씀 한 절씩 외워야 했기 때문입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외워야 했습니다.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이걸 외워서 뭐 하나?’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무서워 외웠습니다. 누나와 더 짧은 성경 구절을 정하는 경쟁을 놀이처럼 했던 기억이 나네요. 어쨌든 그 가정예배는 참 싫었습니다. 저의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입니다. 중학교 2학년이 되었어요. 그때 부모님께서는 완주로 목회하러 떠나게 되었답니다. 작은 농촌교회였고, 그곳에서 마지막 목회를 하셨거든요. 그러면 보통 자식들 다 데리고 가잖아요. 그런데 저와 누나만 남겨두고 내려가셨습니다. 서울에서 공부하라는 말씀을 남기시고요. 솔직히 좋았습니다. 왜냐고요? 이젠 가정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되었거든요. 아침, 저녁을 해 먹고, 점심 도시락을 싸가는 게 일이긴 했습니다. 중2, 고2 두 남매가 할 수 있는 반찬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래도 악착같이 해 먹었어요. 김치도 담그고, 깍두기도 담그고... 아마 감자채 볶음만큼은 우리 권사님들보다 많이 만들어 봤을걸요? 할 수 있는 반찬이 그거 밖에 없었으니까요. 더 좋았던 것이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아버지가 목회하던 교회가 아닌 다른 교회를 나가볼 수 있게 된 거죠. 아버지께서는 늘 우리를 사랑하셔서 가정예배를 드린다고 하셨고, 너희를 사랑하니까 서울에 남아 공부하라고 남겨두는 거라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세상의 아버지들은 다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고요? 사랑한다면 가정예배 좀 드리지 말고, 이왕 가실 때 같이 좀 데려가면 더 사랑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오늘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말씀은 여기까지입니다. 2.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 호세아서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지금부터 호세아서 말씀을 좀 풀어서 설명할 테니 성경은 눈으로 보면서, 귀로는 제 말씀을 들어보세요. 이스라엘 너희가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난 너희를 알았다. 나 하나님이 너희를 사랑하여 이집트에서 불러냈다. 그런데 난 사랑했는데 이스라엘 너희는 자꾸 멀어지더라, 멀어져 가더라. 그리고는 우상숭배, 돈 숭배, 사람 숭배하며 살더라. 난 너희를 몇 번이고 죽을 고비에서 살렸었다. 그런데 너희는 그거 모르더라. 내가 살려주었다는 사실을... 내가 너희를 사랑으로 업어 키웠고, 젖을 물렸지만 너희는 모르더라. 그래, 너희는 나를 모른 척할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난 너희를 버릴 수 없구나. 소돔과 고모라처럼 망하게 두진 못하겠구나. 왜냐고? 너희는 사람이어서 나 하나님을 버렸잖니? 그런데 나는 이렇기에 너희를 버리진 못하겠다. 함께 호세아 11장 9절을 읽습니다. 9 아무리 화가 나도, 화나는 대로 할 수 없구나.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망시키지 않겠다. 나는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너희 가운데 있는 거룩한 하나님이다. 나는 너희를 위협하러 온 것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니기에 너희를 버리진 못하겠다. 나는 거룩한 하나님이다. 3. 성탄절에 우리는 동방박사의 관점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래서 “동방박사의 마음으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받고 예수님을 그 마음으로 맞아들이고, 새롭게 한 해를 준비하자고 다짐했습니다.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에게 경배하고, 헤롯을 피해 돌아갔지요. 요셉의 꿈에도 헤롯의 음모가 나타납니다. 마리아와 함께 사랑 아니면 할 수 없는 40주의 시간을 기다리며 얻은 아이였습니다. 그 핏덩이를 안고, 이집트로 피신합니다. 이 아기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온 가족이 고향을 떠나게 되었을까요?
헤롯은 분명 그 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습니다. 하지만 동방박사들이 도움을 주지 않았지요. 이제 본색을 드러냅니다. 마치 그 옛날 이집트의 바로가 그랬듯, 베들레헴과 그 주변에 있는 모든 아이를 살해하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헤롯이 죽습니다. 요셉에게 천사가 다시 나타나 돌아가라 말합니다. 요셉은 찜찜합니다. 왜냐면 다음 왕이 헤롯의 아들이었거든요. 요셉 생각으론 아들이나 아버지나 똑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그 불안함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는 베들레헴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으로 돌아갑니다. 마태복음 2장 22절과 23절을 함께 읽습니다. 22 그러나 요셉은, 아켈라오가 그 아버지 헤롯을 이어서 유대 지방의 왕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 곳으로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는 꿈에 지시를 받고, 갈릴리 지방으로 물러가서, 23 나사렛이라는 동네로 가서 살았다. 이리하여 예언자들을 시켜서 말씀하신 바, “그는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예수님과 그의 가족이 갈릴리 사람, 나사렛 사람으로 불리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3. 세 아버지를, 우리는 만났습니다. 제 아버지와 하나님이라 불리는 아버지, 그리고 예수의 아버지 요셉입니다. 세 아버지 모두 ‘사랑한다’하는군요. 저를 사랑했고, 이스라엘을 사랑했고, 예수와 아내 마리아를 사랑했네요. 그런데 그 사랑의 방식이 모두 다르지 않나요?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아니시기에, 사람들이 가는 길 위에서 안타까워하시네요. 예수의 아버지 요셉은 예수를 위해 고향도 떠나 피신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지도 못했네요. 일부러 아무도 모르는 동네를 택한 것 아닐까요? 살기 위해서요. 저의 아버지. 참 고집스러운 분이셨어요. 신앙에 있어 타협이란 없으셨죠. 어린 저에겐 숨이 막힐 지경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중2 때 다른 교회 가보니 저는 아주 모범적인 청소년 신앙인이 되어 있더군요. 가정예배 드리면서 기도를 한두 번 했겠어요? 성경 구절을 얼마나 많이 외웠는데요? 찬송가는 이미 거의 다 알고 있었어요. 세상에 이런 중2가 어디 있겠어요? 대번에 차기 중등부 회장감으로 등극하지요. 하지만 전 아버지께 감사하진 못했어요. 그마저도 싫었네요. ‘아버지’라는 존재는 세상 많은 사람에게 애증의 관계인 듯합니다. 아버지와 관계가 좋은 사람은 애정의 관계일 것이고, 아버지와 관계가 틀어진 사람에게는 증오의 관계이겠지요. 여러분의 아버지를 떠올리라고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목회해 보니 아버지와 관계가 틀어진 교우들이 제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저도 이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 아버지가 하던 일을 이어서 하고 있고, 이젠 저도 아버지가 되었네요. 오죽했으면 저의 박사 논문 주제 중 큰 주제 하나가 용서였을까요? 저도 아버지로 인해 꽤 삶의 몸부림을 치며 살아왔었네요. 4. 이제 세 아버지 이야기는 그만하고, 우리 자신으로 돌아옵시다. 성서는 서신서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처음 신앙생활을 했을 때를 떠올려 보세요. 교회에 처음 나왔던 날, 말씀이란 것을 처음 들었던 날, 세례를 받았던 날, 그날을 떠올려 보세요. 이제 고린도전서 1장 26절을 읽어봅니다. 26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을 때에, 그 처지가 어떠하였는지 생각하여 보십시오. 육신의 기준으로 보아서, 지혜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권력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가문이 훌륭한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공동체 교우들에게 묻습니다. 처음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라고요. 당신들이 어떤 상황이었는지요. 지혜 있는 사람 많지 않았고, 권력도 없었어요. 훌륭한 가문 출신도 없었지요. 지금 우리에게도 묻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러지 않았냐고요. 수긍할 수밖에 없게 되네요. 우리가 처음 부르심을 받았을 때, 잘나봐야 얼마나 잘났었을까요? 사도 바울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네요. 그럼 우리가 자존감이 떨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였는지 바울은 말씀을 이어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입니다. 27절과 28절입니다. 27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셨으며,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28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비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셨으니 곧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오늘 2025년 마지막 주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를 정확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는 우리가 잘 나게 되고, 우리가 훌륭하게 되기 위함이 아니란 사실을요.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는 신앙인인 우리를 보며 지혜 있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잘났다고 하는 이들을 없애시려고 아무것도 아닌 우리를 선택하신 겁니다. 우리를 지혜롭게 하시려고? 아니에요. 우리를 강하고 잘나게 하시려고? 아니라고요. 우리의 삶을 보며 그들이 부끄럽게 하시려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이 하는 평가와 방향성이 완전히 다른 거죠. 그런데 굳이, 왜죠? 29절입니다. 29 이리하여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고요. 다른 말로 바꿔 볼까요? 하나님 앞에 겸손 하라고요. 주님 만드신 세상 앞에 겸손 하라고요. 주님 지으신 사람 앞에 겸손 하라고요. 그것이 30절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게 되는 길이란 말입니다. 좋아요. 인간이 어떻게 자랑을 멈춥니까? 정, 자랑하고 싶으시면 31절 주님만 자랑하세요. 그러면 됩니다. 그게 바로 신앙인입니다. 5. 은진교회 교우 여러분. 세 아버지로 시작한 이야기는 우리 자신으로 돌아왔습니다. 저에게 ‘목사님, 그래서 지금은 목사님의 아버지를 사랑하세요?’라고 물으신다면, 솔직히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라고요. 그런데 이 두 가지는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과 그의 어머니 마리아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겠다고요. 두 번째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아버지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겠다고요. 아! 이 말씀도 드릴 수 있겠네요. 그 두 아버지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로 인해 내 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조금씩 추스르며 살아가고 있다고요. 중요한 것은 여러분입니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 살아갈 여러분의 삶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으로 인해, 예수님의 부모로 인해,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는 과거의 일을 치유해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랑할 것이 주님밖에 없는 신앙인이 되어 갑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주십시오. 그리 살아달라고 요셉과 마리아는,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말이죠. 2025년 이제 막을 내립니다. 그 막은 다시 2026년으로 올라갑니다. 새해에는 더욱 주님을 자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그리고 우리 은진교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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